멀고느린구름 |




아들에 대한 올바른 성교육은 사실 이런 사회를 만든 책임이 있는 아버지의 몫이다.




[맘편한 세상을 위하여] 이 폭력적인 세상에서, 아들을 잘 기른다는 것(경향신문)




지난 3월 16일, 경향신문 토요일판에 실린 위 기사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사를 쓴 임아영 기자는 딸을 키우고 싶었지만 두 아들을 키우게 된 양육자의 고민을 담담하게 술회하고 있다. 양육자의 고민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성에 의한 성폭력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두 아들을 미래의 성폭력 가해자로부터 거리가 먼, 올바른 어른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 사회는 진작 시작했어야 할 이 질문을 이제서야 묻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결국 30년, 40년 전에는 어린이였던 이들이 자라서 만들어내고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가 미래를 바꾸자고 한다면 궁극적으로 그 답은 교육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성교육이란 것은 한 마디로 미래의 피해자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것에 불과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릴 때부터 피해자가 될 여성들을 겁박해온 교육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학생들은 학창시절에 편성된 성교육 시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왔다. 


여러분이 옷을 그렇게 야하게 입으면 성폭력을 당하게 될 거야. 

여러분이 행실을 잘못해서 상대에게 여지를 주면 성폭력을 당하게 될 거야.

여러분이 일찍 귀가하지 않고 밤늦게 혼자 다니면 성폭력을 당하게 될 거야.

여러분이 낯선 남자를 잘 피하지 않으면 성폭력을 당하게 될 거야. 

여러분이 좋은 남자친구를 고르지 못하면 성폭력을 당하게 될 거야. 

여러분이 함부로 혼자 여행을 다니면 성폭력을 당하게 될 거야.

여러분이 상사의 요구를 피하지도 들어주지도 않는 아슬아슬한 균형을 지키지 않으면 성폭력을 당하게 될 거야.

여러분이 남자친구를 잘 설득해서 피임을 하지 않으면 임신을 당하게 될 거야.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참혹한 결과를 나열하며, 성폭력에 대한 공포만을 주입해온 성교육의 결과 많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가장 먼저 본인의 잘못이 아니었는지 자책하게 된다. 이는 오늘날 미투 운동을 통해 여러 방송에서 공개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증언에서도 또렷이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교육부가 제작한 참담한 수준의 성교육 지도서



자책감과 공포심으로 여성의 주의만을 요구하는 이런 기형적인 방식의 성교육을 끝내야 할 때가 왔다. 아니, 훨씬 이전에 끝냈어야 옳다. 


우리는 강도를 당한 사람 앞에 가서 왜 그렇게 만만해보이게 옷을 입었냐고 화내지 않는다. 왜 끈달린 지갑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추궁하지 않는다. 왜 강도를 당할 만큼 돈을 가졌냐고 묻지 않는다. 왜 진작에 상대가 강도인 줄 알아보고 빨리 피하지 않았냐고 따지지 않는다. 물론, 인간에게는 탐욕이 있으니 강도가 강도질을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는 헛소리도 지껄이지 않는다. 


우리는 강도 범죄를 막기 위해 학교에서부터 강도 피해자가 될 아이들에게 행실을 주의하라고 교육 시키지는 않는다. 우리들이 수천 년전부터 교육해왔던 것은 바로 '강도가 되지 말라'는 교육이었다. 우리는 만연한 성범죄에 관해 당연히 똑같은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을 모아놓고 '성범죄를 당하지 말라'고 공허한 소리를 할게 아니라, 남자 아이들에게 '성범죄자가 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굳이 왜 남자아이들에게 '성범죄자가 되지 말라'고 하는가? 라고 댓글을 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분이 있을 거다. 전체 성범죄 발생률 통계를 보았을 때, 남성에 의한 성범죄가 약 96%, 여성에 의한 범죄가 약 4% 정도라서 반올림하여 주장한 것이지만, 너무너무 분하고 억울하다면 여자아이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남자아이들에게 교육을 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미래에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4%의 여자아이들 또한 동일한 가르침에서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어느쪽에 교육이 절실한지는 자명하다


이제 위에 소개한 '공포의 교육'은 제한되어야 한다. 사실 저런 내용은 교육할 것도 없이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자연스럽게 받는 사회의 압력 속에 이미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일종의 변형된 맨스플레인인 셈이다. 앞으로의 성교육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강의명 : 아들이든 누구든 성범죄자가 되지 말아라


강의 내용 |


상대의 옷차림은 너의 성폭력을 허락하는 신호가 아니다.

상대의 행실이 어떠하든 성폭력을 행했다면 니가 범죄자다.

상대가 밤늦게 혼자 다니는 건 성폭력을 당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오밤중이든 성폭력을 행한 니가 범죄자다.

상대가 들어주지 않든, 어쩔 수 없어서 들어주든 업무상 상사가 행한 성폭력은 위계에 의한 성폭력 범죄다.

니가 원빈처럼 생겼어도 성희롱은 범죄다. 

성매매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앞으로 영원히 연애는 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해라.

피임을 하지 않을 거면 상견례를 거쳐 혼인신고를 하고 자녀 양육에 관한 각서부터 써라.

상대가 자발적이고, 분명하게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무슨 변명을 해도 성폭력이다.



단,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은 아이들에게는 기성사회의 문제 현상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성범죄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 성인 남성들의 잘못이지 자라나는 남자아이들의 잘못이 결코 아니다. 이 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성교육을 주관하는 교사는 반드시 기성세대의 잘못을 성찰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해야지, 남자 아이들에게 잘못이 있다거나, 원초적인 범죄의 씨앗을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하는 발언을 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디까지나 "우리들이 이렇게 잘못해 와서 미안하다. 앞으로 너희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나아지길 바란다."는 취지가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2018. 3. 28.


- 다음 편에서는 '미디어와 성교육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날짜

2018. 3. 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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