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느린구름/미디어 언박싱 54건이 검색되었습니다.

영화 열어 보기 - 새 구두를 사야 해

멀고느린구름 | 다시 찾아올 봄의 빛 속으로, 새 구두를 신고 새 구두를 사야겠군. 내 낡은 구두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다. 구두가 낡게 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저 오래 신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구입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도 자주 신어서 빠르게 낡을 수도 있다. 혹은 계단 턱에 걸려 넘어져버렸거나, 홧김에 하루 종일 거리의 음료캔을 차고 다녔을 수도 있다. 어쩌면 구두 신고 등산하기 동아리의 회원이 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우리들 자신처럼 구두도 삶 속에서 여러가지 일을 겪는 것이다. 나카야마 미호가 연기한 ‘아오이’가 새 구두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우연히도 파리에 온 여행자의 여권에 미끄러져 구두굽이 부러져버렸기 때문이다. 같은 고국을 지닌 여행자 센(무카이 오사무 연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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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열어 보기 - 먼저 태어났을 뿐인 나

멀고느린구름 | 언젠가 우리는 누군가의 교사가 된다 수많은 일본드라마 가운데 이 작품을 시청하게 된 이유는 교육 현장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오이 유우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거나,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안경 미녀로 나온다거나 하는 부수적인 것들은 작품 선택에 결코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 메인 사진을 남주인공인 '사쿠라이 쇼'로 하지 않고 아오이 유우로 한 것도 공연한 오해를 살 것 같으나 이미 그렇게 해버린 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차원에서 넘어가도록 하자. 이 일로 내가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은 없다. 앞서 소개한 '사쿠라이 쇼'가 연기한 남주인공 '나루미'는 35세의 평범한 영업사원이었다가 사내 정치에 휘말리며 갑자기 사립 케이메이칸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발령이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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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어 보기 - 도올, 나의 살던 고향은

멀고느린구름 | 도올 선생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존경해마지 않던 시대도 이제 저문 것 같다. 최근의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보여졌던 주최측의 갈등 양상(도올 선생이 관계자의 양해를 구한 뒤 사회자 김제동의 진행 중간에 올라와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는 과정에서 발언이 길어지자 주최측에 의해 발언을 중단 당한 일)에 대한 것도 어느 쪽이 더 결례를 범한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창 노자 과 공자의 를 공중파에서 강의하고, 노무현 대통령과 시국대담을 나누던 시절이라면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해는 저물고 저녁은 오게 마련이다. 청춘의 전반기 대부분을 도올 선생 밑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보낸 제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깝지만 한 '문제적 인간'을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는 그 자체로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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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어 보기 - 소설과 소설가

멀고느린구름 |  파묵의 소설을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쓴 소설 창작론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파묵의 본서 가 하버드대학교에서 그가 한 특강의 강연록인 점, 창작론의 내용이 일정한 보편성의 범주에 포함되는 점 등을 든다면 다소 작가 개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한 마디 쯤 거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하버드 마케팅은 비단 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던 책 판매 전략 중 하나다. 오르한 파묵의 이번 강연록이 번역되어 나온 맥락도 그에 맞닿아 있을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일종의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1등 대학의 이미지, 천재들만 가는 최고의 교육기관이라는 인상이 있다. 따라서 그 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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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어 보기 - 카페 소사이어티

멀고느린구름 |  개봉하던 첫 날 바로 영화 를 보았다. 추석 연휴 기간이었다. 지금은 윤상의 음악을 듣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우디 앨런 감독을 우디 앨런 감독이라고 불러본 일이 없다. 나는 항상 그를 우디 '알렌' 감독이라고 호칭했다. 지금까지 나열한 말들 사이에는 서로 아무런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단지 나라는 사람 속에서 자연스러운 순서에 따라 흘러나온 말들이라는 것 외에는 말이다. 에 대해 단 한 줄의 평만이 허락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말겠다. 그 영화요? 첫사랑의 추억에 사로잡힌 사람의 흔한 연애담이지요. 지겹게 반복되고 변주되어 온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허락된 것은 한 줄이지만 결국 두 줄에 걸쳐 이렇게 말하고 말 것이다. 영화관을 나서며 '쳇, 뭐야?' 라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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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어 보기 - 여름을 지나가다

멀고느린구름 |  "수는 이번에도 10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여자를 따라갔다. 여자는 딱 한 번 멈춰 서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오랫동안 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 외엔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부지런히 여자를 따라가다 보니 여자가 어디로 가는지 어느 순간 분명해졌다. 바람이 신선했다.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일 터였다. "- 조해진 194P여름을 지나가고 있다. 바람은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을 향해 분다. 대류 현상 탓이다. 공기는 풍부한 곳에서 희박한 곳으로 움직인다. 뜨거워진 공기가 대기의 상층부로 올라가버린 빈 자리에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흘러와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이라는 말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지구의 적도 부근이 역시 여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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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어 보기 - 악어 프로젝트

멀고느린구름 |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에게 침투한 악어 바이러스 이런 상상을 해보자. 약 2억년 전 중생대에 서식했던 악어의 조상 '테레스트리수쿠스Terrestrisuchus'(이름이 복잡하니 '테레'라고 하자)가 멸종하지 않은 채 인류와 금단의 이종교배를 이루어 인류의 한 부류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테레'들은 인간 남성들을 다 잡아먹어버리고 남자 사람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이 괘씸한 테레놈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0. 대부분 수컷이다.1. 고등생물체로서의 성욕 조절 능력이 없다. 2. 인간 여성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인간 여성들을 다른 테레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내가 잡아먹기 위해서다. 4. 인간 여성들이 테레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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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어 보기 - 동주

멀고느린구름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산다는 일어떤 말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부끄럽지 않을까.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는 뷰러 형태의 책상 선반에는 윤동주 시인의 가 언제나 놓여 있었다.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제목이 쓰인 정음사  1968년 초판본이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나는 종종 글을 시작하기 전, 또는 마치고 나서 손을 뻗어 시인의 시집을 아무렇게나 펼쳐 본다. 그러면 매번 다른 시가 내 앞에 펼쳐진다. 오늘의 시는 '창窓'이다. 쉬는 時間마다나는 窓녘으로 갑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나 역시 학생시절 쉬는 시간마다 창녘으로 가던 소년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윤동주를 몹시도 사랑하였다. '별 헤는 밤'은 어머니와 함께 살지 못했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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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어 보기 - 남과 여

멀고느린구름 |  함께 설원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에 대하여오래전 나는 혼자 대관령의 설원 속을 거닌 적이 있다.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을 무렵이었다. 적어도 내게 사랑은 연애심리학 책에서 말하는 것들과는 달랐다. 인내하고 배려하는 선의 속에서 싹트는 것도 아니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재밌는 말을 주고 받는다고 해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에는 시나브로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차갑고 하얗게 덮는 눈. 눈 덮인 마음을 품고 설원 앞에 섰을 때, 나는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 아무 것도 모르겠어서 그저 설원 속에 자박자박 발자국만 새기며 백지 속을 휘 돌아보고 나왔다. 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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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에서 / 영화 '바닷가마을 다이어리' 리뷰

멀고느린구름 |  바닷마을에서 산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듣는 소리는 항구의 뱃고동 소리였습니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때면 바다 냄새가 나는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교실의 창문을 열면 멀리 바다가 보였습니다. 바다 저 편에는 수평선이 있어 늘 '세상의 끝', 혹은 '저 너머 어딘가'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하나는 절망적이고, 하나는 희망적인 말입니다. 바다에는 끝도 있고 시작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면 항상 모래톱 위에 발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저 아무 것도 없는, 아니 단지 모래밖에 없는 백사장이었습니다. 그점이 저에게 깊은 위안을 주었습니다. 파도처럼 거칠게 휘몰아치는 상념을 공백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해변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으며 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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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어 보기 -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영화 열어 보기, 치앙시우청 - 멀고느린구름 커피는 어느새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까지 커피를 금기의 음식으로 여겼다. 어릴 적부터 커피란 건 어른의 자격을 얻어야만 먹을 수 있는 음료로 배웠던 것이다. 학생의 신분으로 커피를 먹는 이들을 보면, 학생의 신분으로 음주를 하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되게 정직한 체제의 모범생이었던 내가 처음 커피 맛을 본 때는 2001년 봄이다. 나는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기숙사에서 나와 혼자 자취방을 얻어 살고 싶었던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친구의 동아리방 옆 지하에 있었던 커피하우스 보헤미안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일터였다. 나는 30분 넘게 보헤미안의 입구에 서서 노란 간판을 보며 망설였다. 간신히 낡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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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어 보기 - 높고 푸른 사다리

책 열어 보기, 공지영 - 멀고느린구름 1950년, 바람 부는 흥남 부두를 떠올린다. 영하 20도 아래의 한 겨울이다. 육 킬로미터 밖, 열심히 행군을 해온다면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부터 중공군과 북한군이 밀려 오고 있다. 수 만 명의 사람이 흥남 부두에 모여 어떤 배라도, 배의 형상만 갖추고 있으면 올라타려고 시도한다. 그것이 폭발하면 주위의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연료를 실은 연료 수송선이라고 해도 상관 없다. 훗날 마리너스 수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30대의 미국인 레너드 P 라루 선장은 전쟁터에 연료 수송을 하라는 첫 임무를 부여 받고 흥남 부두에 도착했다. 교전 상황이 격화된 탓에 선장은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퇴각 명령이 떨어졌다. 선장이 배를 돌려 떠나려고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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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어 보기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 열어 보기, 홍상수 - 멀고느린구름 우리는 종종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과거를 반추하며 성장해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때의 일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반성한 사람이라면 지금에 와서는 그때와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지금은 맞을까? 애석하게도 알 수가 없다. 어째서냐면 우리의 지금은 다시 또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불멸의 명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시간은 어제가 되고, 우리는 어제를 추억하고 반성하니까. 과거로의 시간여행자는 달리 말하자면 반성자다. 과거의 어떤 일을 반성하게 된 인간만이 과거로 돌아가 어떤 것을 고쳐놓고 싶어한다. 관광목적으로 심혈을 기울여 과거행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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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어 보기 - 슬픈 예감

책 열어 보기, 요시모토 바나나 - 멀고느린구름 슬픈 예감은 좀처럼 틀리지 않는다. 특히 소설이나 드라마의 초반부를 볼 때 느껴지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이들이 사람의 인생을 유난히 닮아 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문득, 생각이 난다. 슬픈 예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슬픈 예감들만이 사는 별이 있다. 그 별에는 예감의 빛들이 살고 있다. 그중 유난히 강렬하고 파장이 긴 빛이 바로 슬픈 예감인 것이다. 희소식의 예감은 그보다 좀 빛이 약하다. 복권 당첨의 예감은 더욱 더 약할 것이다.(그 별을 찾아가서 이 그룹에게 빛 에너지 방출 특훈이라도 시켜야 할 것 같다.) 그 탓에 지구에 가장 먼저, 가장 선명하게 도달하는 것이 바로 슬픈 예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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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어 보기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책 열어 보기, 리베카 솔닛 - 멀고느린구름 1. 남성은 여성의 말이 불편하다 다행히도 내 남자사람 친구들은 '불편한 말'을 귀담아 들어준다. 스무 살에 처음 만난 우리들도 이제는 서른 중반이 되어 사실 자기 자신이 생각해온 방식을 바꾸기 쉽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남성 친구들은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그 생각이 옳다고 판단된다면 언제든 자신의 생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한편 자신의 주장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연성과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는 그 친구들을 나는 무척 존경하며 친애하고 있다. 임금에게 불편한 말을 일절하지 않고, 달콤한 말들만 일삼는 신하를 우리는 '간신'이라고 한다. 임금이 불편한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아무 것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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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열어 보기 -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일곱날들>

소규모아카시아밴드 - 멀고느린구름 지금 여행을 떠난다면 가방에 어떤 것들을 챙겨 넣을까. 지금은 한밤중. 스물 두 살 즈음의 강릉이 문득 떠올라 그곳으로 가고 싶다. 가방에 챙겨 넣을 것은... 작은 노트와 글쓰기 전용 샤프 한 자루, 카메라. 그리고 기타 한 대. 여유가 있을 것 같으면 맥북 에어도 함께. 여름을 밀고 오는 파도 앞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시나 가사, 혹은 밤새 소설을 쓴다. 아니면 모래사장에 엎드려 에어군으로 '봄날은 간다', '접속',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의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는 것도 좋겠다. 이왕이면 하룻밤이 아니라 일곱날들이 허락되면 좋겠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민홍 씨와 보컬 은지 씨가 조그만 마을들을 여행하며 노래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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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어 보기 - 추억의 마니

영화 열어 보기, 지브리 스튜디오 - 멀고느린구름 폭풍의 영향권에 접어 들었습니다. 여름 장마철이 지나면 뉴스에서 이런 일기예보를 듣게 된다. 만약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나는 아직 '마니의 영향권' 속에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극장용 만화영화 이야기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바람이 아직 차가울 때 보았던 마니의 금발과 스러질 듯 반짝이는 별빛 같던 왈츠 음악이 떠오른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재능이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에게 계승되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꼭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브리의 감성은 를 연출했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에게서 더 찾을 수 있었다. 전작에 대한 믿음 덕분인지, 웹 속에 흘러다니는 낱개의 컷 때문인지 에 대한 내 기대는 컸다. 내용을 전혀 모른 채 영화를 보기 시작했었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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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어 보기 - 젊은날의 초상

책 열어 보기, 이문열 - 멀고느린구름 청춘은 도무지 쓸모가 없다. 국어사전 검색창에 '쓸모'라고 입력하면 '쓸 만한 가치', '쓰이게 될 분야나 부문'이라는 뜻풀이가 나온다. 청춘은 아직 그 사람의 가치가 온전히 정해지지 않은 시기이기에 쓸모가 없다. 특히 오늘날의 청춘은 쓰이게 될 분야나 부문이 뚜렷하지 않거나 있으나 마나한 자리가 대부분이어서 쓸모가 없다. 이래저래 청춘은 참 쓸모가 없어져버렸다. 청춘의 쓸모가 분명하던 시절도 있었다. 가령,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거나,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의 투사가 되었어야 할 시절, 노동 탄압에 항거하여 정부를 향해 짱돌과 화염병을 날려야 했을 시절에는 청춘의 분명한 쓸모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결국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기획하는 것은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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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어 보기 - 와니와 준하

영화 열어 보기, - 멀고느린구름 처음 를, 조그만 자취방에서 10인치의 노트북 모니터로 보던 때가 언제였지? 하고 문득 떠올려본다. 비가 오던 날이었다. 가뜩이나 빛이 잘 들지 않는 방은 더욱 캄캄했다. 눅눅한 습기가 방 안에 자욱했고, 나는 외로웠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늘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에서처럼 동거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부러워했었다. 그때 아마 나는 짝사랑에 빠져 있거나,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상태였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우산을 쓰고 영화 속의 공간과 닮아 있는 제기동 골목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것 같다. 빗소리는 투명했고, 나는 세상의 투명인간이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며 처음 마음에 품은 것대로 이루고 사는 게 얼마나 될까 싶었다. 어린 날의 사랑과 꿈.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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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어 보기 - 저녁이 깊다

책 열어 보기, 이혜경 『저녁이 깊다』- 멀고느린구름 어떤 신문 지면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 정치인들이 내세운 구호 중 가장 아름다운 구호로 선정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혜경 소설가의 『저녁이 깊다』를 읽고 다른 각도로 생각해봤다. 삶에 저녁이 있다면. 삶에 새벽이 있다면 그것은 유년기일 것이다. 아침은 청소년기이고, 정오는 20대, 오후 2시에서 4시 즈음은 30대 퇴근이 기다려지는 5시에서 6시는 40대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7시에서 8시에 해당하는 저녁은 50대 즈음이지 않을까. 『저녁이 깊다』는 1960년대에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두 아이가 함께 새벽을 맞고, 아침과 정오, 오후를 지나 저녁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 산업화, 민주화, 삼풍백화점, 그리고 IMF.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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