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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고는 '웹에서 현실로'라는 세계적 흐름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포켓몬 고'의 성지가 된 속초


속초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포켓몬의 성지가 될지는 말이다. '포켓몬 고(Go)'는 일본 게임 기업 닌텐도에서 개발한 증강현실 게임이다. 포켓몬이라는 귀여운 형태의 몬스터가 실제 세계 곳곳에 숨어 있고, 실제 세계를 탐방하며 숨어 있는 몬스터들을 찾아내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다.


'닌텐도 DS'라는 휴대용 게임기를 제작한 회사로 우리나라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닌텐도 DS는 스크린 터치 기능을 당시 선도적으로 게임기에 탑재하여 '뇌가 젋어지는 두뇌트레이닝'과 '이라는 게임으로 세계적 인기를 끈 바 있다. 하지만 이 닌텐도는 사실, 훨씬 더 유서 깊은 게임계의 원로 기업으로 최초의 대중적 가정용 게임기 패미컴(패밀리컴퓨터)을 80년대에 출시하여 전 세계에 가정용 게임 시대를 연 기업이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슈퍼마리오>, <별의 카비>, <젤다의 전설>, <파이어 앰블렘>, <마더> 그리고 <포켓몬스터>의 게임을 제작한 뛰어난 소프트웨어 제작사이기도 하다. 


닌텐도는 바로 이 슈퍼마리오의 '엄마'입니다. 단기간에 반짝 성공한 기업이 아닌 것이지요.


'포켓몬 고'는 바로 마지막에 언급한 <포켓몬스터>의 무대를 모바일로 옮겨 오고, 증강현실을 추가한 것이다. 몬스터를 모아서 상대와 대결을 벌인다는 작품의 컨셉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이 '포켓몬 고'가 성공한(벌써 세계적으로 2억 명 가량의 유저가 존재한다고 한다) 비결은 아주 간단하다. 이미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이 등장한 지가 20년이 넘었고, 이 게임은 게임 플레이어와 꾸준히 함께 성장하며 20년의 세월을 버틴 것이다. 그 세월 동안 새롭게 추가된 몬스터만 700여 종이 넘는다. (*포켓몬스터 도감 참조) 2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10세에 이 게임을 처음 시작한 어린이가 이제는 30세의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되어, 구매력과 여행 수단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조기에 결혼했다면 그들의 자녀가 10세 가량일 것이다. 15세에 게임을 시작했다면 현재 나이 35세 자녀가 충분히 있을 나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즐기는 게임이 된 것이다. 이 파괴력은 대단하다. 만약에 한 세대를 더 돌게 된다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가 함께 포켓몬스터이 추억을 나누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포켓몬스터의 힘의 원천은 개성이 강한 캐릭터에 있다. 이 캐릭터들은 환상적이고 귀여운 동시에 현실적이며 과학적(?)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동식물과 사물에 기반하여 몬스터 캐릭터로 변환시켰는데, 캐릭터의 모습만 보면 앗 저건 어떤 것의 패러디 아냐? 라는 느낌이 확 든다. 미묘하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사람들을 가상 현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포켓몬스터의 원초적 힘



'한국형(?) 포켓몬 고'를 만든다고?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형 포켓몬 고'를 지원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평행세계 속에 있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 시절 바로 닌텐도에서 만든 닌텐도 DS의 세계적 히트를 목도하고 한국형 닌텐도DS를 지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후 이른 바 '명텐도'로 불리우게 된 한국 기업 게임파크홀딩스의 'GP32'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반짝 상승세를 탄 바 있다. (나는 그 게임기의 명예 홍보위원이자 게임 리뷰어였다 ㅎㅎ)  그러나 GP32는 곧 언론 지면 상에서 사라져버렸다. 나중에는 어학용 학습기로 덤핑 처리되어 팔리는가 싶더니 그마저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드웨어는 반평생 게이머 생활을 해온 내가 보기에도 훌륭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였다. 기기가 좋으면 뭐하나, 할 수 있는 재밌는 게임이 없는데. 


한국형 포켓몬 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닌텐도의 700종에 달하는 포켓몬스터 캐릭터에 견줄 캐릭터 콘텐츠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리와 하니와 머털도사와 뽀로로와 뿌까, 마시마로, 타요가 모두 모여도 어림도 없다. 그리고 열거한 캐릭터들은 포켓몬스터와 같은 세대간의 연결 고리로서 힘이 없다. 포켓몬 고와 같은 게임은 20년의 세월을 투자한 닌텐도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 시절 반짝이다 명멸한 비운의 게임기. 일명 명텐도. 이후 개량 모델도 나왔지만 초기 모델보다 오히려 더 실패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미래의 문화 산업을 위해 해야할 일은 기초 콘텐츠를 쌓아가는 일이다. 포켓몬 고를 만들기 이전에 먼저 지속적인 힘을 지닐 수 있는 캐릭터를 발굴해 축척해가야 한다. 기초적인 스토리 소스들이 더 개발되어야 한다. 조선왕조 실록을 하나 제대로 번역해둔 결과 21세기에 수많은 새로운 유형의 퓨전 사극들이 탄생하고, 각종 팩션, 게임의 요소로 적용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잠재력이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와 같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국가는 보기 드물다. 이 역사는 곧 문화사이며, 문화의 깊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역량을 너무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창의성'을 교육한다는 말의 함정


문제는 역시 교육이다. '창의 교육'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돈이 되니까 뒷북을 치는 느낌이 강하지만, 뒷북이라도 일단 북을 치는 게 어딘가. 근데 문제는 핀트가 좀 틀려 보인다는 것이다. 


우선, 창의 교육이란 말부터가 좀 이상하다. 아마도 창의성 교육을 줄인 말(별로 줄이지도 않았지만;)일 텐데... '창의성'을 교육할 수 있나? 


창의-성(創意性)[창ː의썽/창ː이썽]   
명사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 


표준국어사전에 의하면 '창의성'의 정의는 위와 같다. 어떻게 교육하면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을 지니게 될 수 있을까? 독서토론 교육을 통해서 계속 아무 말 대잔치의 기회를 갖게 하면 갑자기 툭하고 새로운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흔히들 창의성 교육이라고 하면 무슨 레고 블럭 같은 것을 가지고 놀게 하거나, 발명교실 같은 곳에 보내서 기존의 발명품따위를 다시 한 번 만들어보게 한다. 그러면 갑자기 '새로운 것'을 아이들이 떠올리게 될까?



과학실험, 로봇... 창의교육이란 제하의 익숙한 모습들



내가 판단하기에 '창의성'은 교육할 수 없다. 창의성은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특성일 뿐이다. 창의성이라는 인간의 특성이 나타나기 위해서 인간에게는 최소한 다음 네 가지의 힘(마음)이 배양되어 있어야 한다. 


1. 상상력(예지)

2. 판단력(지성)

3. 호기심(모험심)

4. 자립심(자존감)


상상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엇, 아직 시작되지 않은 어떤 일을 떠올리는 힘이다. 판단력은 자신이 지금 있는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이다. 호기심과 모험심은 상상력을 일으키기 위한 토양인 동시에, 그 상상력의 세계로 걸어나갈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자립심은 자기가 생각해낸 것에 자신을 갔고 밀어부치고, 시행착오를 통해 끊임없이 재개발해갈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새로운 것'이란 말 그대로 기존에 없거나 기존에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무엇이 새로운지를 판단하려면, 기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자기는 이제야 알아서 새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널리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무식한 게 죄'라는 말을 하게 된다. 


포켓몬스터의 몬스터들은 어쩌면 저렇게 창의적으로 만들어졌을까? 게임 기획자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어렸을 때 레고 블럭 쌓기를 열심히 한 결과일까?(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좋아했을 수는 있다^^;) 포켓몬스터의 몬스터들은 각종 동식물에 대한 생태 지식과 유년 시절의 경험 (숲과 바다, 마을을 뛰어다니며 놀았던 기억, 곤충체집의 기억 등), 그리고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들에 대한 지식(몬스터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악세사리), 물리학 지식(몬스터들 간의 속성 상호 관계 및 몬스터가 사용하는 기술의 배경) 등등 현실에 존재하는 새롭지 않은 지식들의 '새로운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역시, 새롭지 않은 것을 알지 못하면 새로운 것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역시 이미 있는 PDA의 기능을 휴대폰에 강력히 접목시키며 탄생했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배양할 수 있는 것은 위에 나열한 네 가지 힘이지, '창의성'이 아니다. (한국형 포켓몬 고를 개발한답시고 겉모양만 흉내내는 것과 닮았다. 다시 말하지만 포켓몬 고의 성공요인은 원천적 힘을 제공하는 콘텐츠에 있다. 따라서 교육 또한 원천적 힘 - 인간의 내적 콘텐츠 - 을 기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보시면 알겠지만 위 네 가지 힘은 쉽사리 길러지는 것들이 아니다. 오랜 세월, 꾸준한 노력, 그리고 올바른 방향의 교육을 통해 차츰차츰 함양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창의성을 속성으로 길러준다는 약장사의 말에 부디 속지 마시길.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과연 위 네 가지 항목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배양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내가 볼 때는 단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아마 앞으로도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포켓몬 고'와 같은 게임이 등장하는 것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재가 뚝 떨어지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클래식 음악계와 체육계에서 주로 그런 일들이 있어 왔지만... 이후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의 저변이 크게 확대되거나, 체육계의 신인 육성정책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는 보고는 딱히 없다.


물론, 무조건 비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국형 포켓몬 고는 아직 우스개 소리일 수 있지만, 한국의 콘텐츠를 길러내는 일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창의적 인재를 당장 만나는 일은 어려울 수 있지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내적인 힘을 길러내는 일, 교육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교육관료들께서 모쪼록 정신을 차린다면 말이다. 


뱀발 : 공교육이 바뀌는 것을 도저히 기다릴 수 없을 때, 여러분에게는 대안교육이라는 선택지가 있는 거죠 :  ) ㅎ 


2016. 7. 28.


날짜

2016. 7. 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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