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없는 사회

- 금안당

 



2015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삶에서 숫자가 무에 그리 실제적인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사람들의 의식은, 특히 집단의 의식은 숫자에 휘둘리니, 새해가 마치 새로운 기회이기라도 하듯이 어떻게든 한가닥의 희망이라도 걸어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품은 이런 기대와 바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2015년 대한민국의 운세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더 크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왜냐하면 발생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보다 해결되지 않고 쌓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사자방 문제와 박근혜 정부 1년차인 2013년도에 발생한 문제들은 놔두고라도, 2014년 한 해에 발생한 문제 중 가장 큰 세월호 참사만 해도 그 진상규명은 2015년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실감하다시피 경제문제는 2013, 14년 중에 해결된 것이 거의 한 건도 없다. 사회문제도, 그나마 군대내 폭력이나 성추행 등이 어느 정도 완화될 기미를 보일 뿐, 싸이코패스 류의 극악 범죄는 오히려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아이들의 자살률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에서 보듯이 교육문제 또한 좀이라도 해결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2015년에는 이 모든 문제를 그대로 다 짊어지고 가야 한다. 게다가 경제문제나 정치, 사회 문제 등에 있어서 돌파구나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불통이어서 그런지 사회의 모든 분야가 꽉 막힌 느낌이다. 그러다 문제가 터지면 자꾸 땜질만 하면서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 내 보기에는 이렇게 되는 주요 이유가 우리나라의 주요 지도자들이 미래 지향적이지 않고, 과거 지향적어서가 아닐까 싶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독재정권이 사용하던 국가 운용방식과 경제발전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여당의 '미래 권력'인 여당 대표는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를 운운하고, 야당의 대표주자인 문재인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젠장! 현행 대통령이 과거 지향적인 것도 국민들은 가슴이 답답한데, 앞으로 3년 후인 차기 대권주자 후보들조차 벌써부터 10년 전, 50년 전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사람들 눈에 보이는 미래는 그야말로 '앞날이 캄캄하다'는 묘사가 제격이 아닐까 싶다.

 

개인의 경우에도 과거 지향적인 정서와 미래 지향적인 정서가 공존하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과거 지향적인 정서가 미래 지향적인 정서보다 더 지배적일 때, 그 사람은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의 현실 문제 해결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그는 자신의 무능력을 '좋았던 옛시절'로 덮거나 '과거의 나쁜 놈들'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자신을 미화하고 남탓을 하면서 자신을 변호해도 실제적 무능력이라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현실에서 무능력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실은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데 이미 정지되어 있는 과거에서 현실의 답을 구하려고 하니,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가 만무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이런 사람들은 서서히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는 현재를 헤쳐나가고, 미래를 개척해갈 수 있는 인물이 되지 못한다.

 

이런 과거 지향적인 사람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과거에서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과거는 절대 선이거나 절대 악이다. 사실 과거가 살아 있는 생생한 현실을 덮거나  지배할 정도가 되려면 그 과거는 절대자여야 한다. 하지만 과거도 지나온 '현실'이고, 어떤 현실이 '절대' 악이거나 '절대' 선이라는 규정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과거에 대한 이들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과거를 절대 '악'이나 절대 '선'으로 규정하면, 과거에 대해 배울 게 아무것도 없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현실이든 잘잘못이 있어야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잘된 것은 이어가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게 배움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과거와는 '다른' 현실이 새롭게 전개될 수 있다. 물론 과거의 잘잘못에 대한 판단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인 물보다는 깨어지더라도 흐르는 물이 낫다. 고인 물은 썩을 뿐이다.

 

국민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전에 일어난 안철수 현상이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순위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손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그늘, 과거의 업보가 덜 드리워진 지도자를 선호한다.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때의 문제는 그의 지도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현재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목표인 대통령보다는 낫다. 사실 국제시장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평가(영화 속 주인공들이 마지못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놓고 칭찬 받을 애국심으로 표현한 것)는 그녀가 얼마나 과거에 얽매여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대통령들 중에 정치 9단이라는 인정을 받은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다. 두 사람의 특징은 입장이나 이념보다 정치 9단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현실적 문제 해결력이 앞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두 사람 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과거의 실패와 성공을 교훈 삼아서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 발전한 지도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대통령으로서 한 일들이 100% 다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거나 후퇴시키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에 집착하면, 역사를 후퇴시킬 수 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지난 2년 간은 2010년 대에 1970년대 방식을 적용하는 건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3년이 더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 방침과 통치 방식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왕조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는 '충(忠)'을 강조하는 비서실장을 곁에 두고 있고, 소위 '십상시'에 빗대지는 측근들을 감싸고, 입 바른 소리 한다고 일 잘하는 관료들을 내치고 있다.

 

그런데 대안을 제시해야 할 야당 또한 반성 없는 과거에 집착하는 세력들의 목소리만 드높아 보이니, 2015년 새해를 맞는 기분이 새해 답지 않게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대한민국 국민이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2015. 1. 6. 



날짜

2015. 1. 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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