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목적'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 금안당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한다. 실소가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실소로 넘어갈 상황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록위마라는 고사는 망국의 상황을 상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지식인층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택한 건 필시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문건파동에서 검찰이나 청와대가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무리 봐도 사실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사슴인데, 정부는 말이라고 우기고, 행여 사슴이라고 말하는 언론이나 사람이 있으면, 이 사자성어의 근원자인 환관 조고가 그랬듯이 그 입을 막기 위해 무슨 짓을 하는지, 유능한 경찰 한 명이 유서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남기고 자살까지 했다. 

 

지록위마를 그대로 해석하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인데, 이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지록위마는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사자성어다. 중국 천하를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가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워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뒤,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좋은 말 한 마리 바칩니다"고 거짓말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호해는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가"라며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대다수의 신하들이 조고가 무서워 사슴이 아닌 말이라고 하니, 호해로서는 사슴도 말로 바꿀 수 있는, 황제 자신을 능가하는 조고의 막강한 힘을 절실히 실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조고는 이런 희한한 짓을 벌였을까? 아마 모든 권력이 이미 자기 손아귀에 있으니, 호해더러 황제의 자리를 순순히 내어놓으라는 시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협박할 수는 없다. 황제를 협박해서 황위를 빼앗았다는 명확한 '증거'나 증인이 있으면, 자신이 나중에 부메랑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대놓고 황위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고, 마치 황제 스스로 황위를 내놓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이 황위 찬탈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게 숨겨진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에서도 통진당 강령의 '숨겨진' 진정한 목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말하자면 헌재는 통진당 주도세력들의 실제 활동 양태에서 볼 때, 통진당의 숨겨진 진짜 목적이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본 것이다. 법리적인 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헌재의 이런 식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법률조문에만 묶여서 형식논리로만 판단하는 일반 법원과 달리, 소위 헌법정신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헌법재판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방식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렇게 하니, 더 이상 은폐된 진실이 없어서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이번 헌재의 판결로 선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을까란 염려가 없지는 않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속이 쉬원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은폐와 위선과 거짓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선의의 피해자들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이 경우에 가장 대표적인 선의의 피해자들이 주사파의 득세로 두 번이나 탈당해야 했던 정의당 관계자들일 것이다.)

 

사실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와 비선실세 파동(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원하는 것도 진실이 은폐되지 않고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에 따라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바꿀 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수백명의 어린 생명들을 잃은 아픔을 딛고 앞으로는 더 나아지리란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갈 수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은 사슴을 놓고 자꾸 말이라고 하니, 국민들은 '국민을 바보로 아나?'라는 모욕감만 느끼고, 더 이상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

 

예전에 웹진에 쓴 글 중에서 "거짓이 없었다면 세상은 훨씬 단순명쾌해졌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덧붙여 "거짓이 없다면, 세상 고난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도 하고 싶다. 실제로 거짓은 먼저 거짓을 행하는 당사자를 심리적으로 고통스럽게 하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며, 이 거짓말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게는 의심과 분노와 같은 부정적 기운을 일으키는, 아주 '나쁜' 행동이다. 

 

우리는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거짓을 일삼는 사람이 있으면, 물론 처음 한동안은 그 거짓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거짓된 면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 더 이상 그 사람을 신뢰하지도, 인간적인 관계를 지속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의 거짓을 판단하기가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누구도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선언해놓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거짓인지 진짜인지 이쪽의 능력으로 알아내야 한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자신의 '진실'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객관적, 논리적으로 보면 거짓을 말하고 있는데도,  스스로가 자신이 거짓을 말하는 줄 모른다. 그러니 상대방이 무슨 수로 그의 거짓을 파악하겠는가?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그리고 정보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능력만 있으면, 그가 거짓을 말하는지 아닌지 파악할 수 있다. 설사 그 사람 자신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여기더라도.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위헌이라고 판결할 수 있었던 것도 통진당 주도세력에 대한 정보가 그만큼 충분히 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정보는 통진당이 이석기 1인을 위해서 당의 모든 것을 걸 정도로 비민주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정당이며, 북한이 시키면 언제든 '폭력적' 행위도 불사하지 않을 극좌주의에 빠져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정희 당대표를 위시한 통진당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듯이 말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는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강변한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아닌 듯이 말하는데, 이렇게 되면 그간 벌어져온 온갖 폭력적 사태, 특히 전국민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던 비례대표 경선부정에서의 폭력사태 같은 것은 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마찬가지로 정윤회 문건에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문제도 정보를 충분히 알면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참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는 권력도 잡지 못한 일개 정당인 통진당보다는 훨씬 파워가 막강해서 정보를 은폐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자체가 너무 폐쇄적이다. 사실 나는 일부에서 말하는, 박근혜 정부가 유신독재로의 회귀라는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폐쇄성이 현 정부를 유신독재와 유사한 것으로 보이도록 오해하게 만들 소지는 충분하다는 점에 동조한다. 게다가 정부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공공 정보들조차 공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일말의 정보라도 건지려고 유언비어와 '찌라시'에 몰릴 수밖에 없다. 정부로서는 자승자박의 결과인 셈이다.

 

언론의 자유와 정보의 공개는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보를 감추려는 자와 정보를 찾으려는 자들로 가득하니,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숨겨진 목적을 찾는 불필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등 그만큼 우리 사회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 대열에 이미 합류하고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공공 정보조차 감추고 조작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뻔히 보이는 사슴을 말이라 일컫는 것에 다름 아니어서 참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여하튼 2014년 한 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이 가슴 아팠던 한 해를 지나면서 내가 알게 된 바는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가리고 숨기는 은폐와 조작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만 통진당을 해산시킨 민주주의의 칼날이 우리 사회의 다른 모든 시대착오적인 분야와 행태들에서도 똑같이 위력을 발휘하여, 우리 사회가,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정말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 없는 사람도 아닌 경찰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살을 해야 하고, 또 죽고 나니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야 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2014. 12. 22.



날짜

2014. 12. 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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