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출처 = 불명. 문제 될 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경제정책에서의 세대 차별
- 금안당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경제란 말을 42번이나 언급할 정도로 '경제살리기'를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2014년 기자회견에서의 경제살리기와 거의 동일한 재탕이고, 그 효과도 모호한 것으로 판명난 정책들만 구태의연하게 제시하고 있을 뿐이라는 원성이 벌써부터 자자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비정규직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무거워진다. 비정규직은 열심히 고생해서 일하고도 정규직의 3분의 1 수준밖에 월급을 받지 못하고 계약이 끝나면 가슴 졸이게 돼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비정규직의 상황에 지극히 공감하는 듯하는데, 실제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건 기껏 비정규직의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해주는 안이다. 그리고 작년 한해 동안 늘어난 일자리란 게 시간제 계약직과 알바와 비정규직이 대부분인데도 50만개의 일자리가 늘었다고 자화자찬을 한다. 반면에 같은 통계에서 나온 수치로 청년 실업률이 오히려 작년 한 해 동안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거기다가 박근혜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한 주요 대책의 하나로 강조하는 것이 규제완화인데, 규제완화로 혜택을 보는 쪽은 대기업과 재벌들이고, 그로 인한 피해를 보게 될 쪽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이란 건 삼척동자까지는 아니라도, 경제활동을 해본 성인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마치 현실의 반은 존재하지 않는 듯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또 자본주의 경제란 면에서 보더라도 가장 비생산적이고 부유층의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에 대한 구태의연한 강조도 이것이 경제정책인지, 정치공약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모양새이다.
이쯤 되면 경제정책을 놓고서도 박근혜 정부의 속성이 과연 뭔가? 하는 깊은 의문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토건 중심의 자본주의이고, 노무현 정부가 어설픈 복지 자본주의라는 건 왠만한 사람들 눈에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어찌 보면 후진국형의 국가 주도 경제개발 정책을 추구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의료민영화니, 철도 민영화니 하는 걸 보면 신자유주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도무지 종을 잡을 수가 없다. 혹은 경제 정책의 결과물에 불과한 부동산 가격에 목을 매거나,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거시적이고 고차원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금융 영역에 함부로 개입하거나 낙하산 인사를 하는 걸 보면, 경제에는 영 잼병인 것 같기도 하고...
흔히들 정치를 생물(生物)이라고 하지만, 복잡성으로 따지면 인간 사회에서 경제만큼 생물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혹은 정치가 저등 생물이라 하면, 경제는 그야말로 고등 생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통제가 되지만, 경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신의 손' 운운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의지로 공산정부를 세울 수는 있었지만, 공산주의 경제는 성공시킨 사례가 없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사실 경제정책은 이 놈의 경제라는 생물이 정책이라는 특정 자극에 반응하여 어떻게 움직일지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면, 그건 올바른 경제정책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자극에 대한 그 반응이 다시 어떤 후속반응들을 불러오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예측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왜냐하면 경제는 자연과 달리 그 주체, 다시 말해 경제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그래서 똑같은 정책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심리가 작용할 수 있다.
- 예를 들어 어떤 사회는 정부의 정년 연장 정책에 대해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반면, 다른 사회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이 차이는 은퇴 후 받게 될 연금액의 차이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그 사회 대중들이 갖는 조직문화에 대한 수용성의 정도나 세대간의 역할 차이 등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10년도에 프랑스 정부는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늦추는 정책을 발표했다가 전국민적인 광범한 저항에 직면, 결국 이 정책을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박근혜 정부의 정년 연장 계획에 대해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해 허덕이고 있는 젊은층조차 별달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부모가 한 푼이라도 버는 게 실업자인 자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혹은 특정 경제정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대중적 인식 수준의 차이일까? -
어쨌든 경제는 대단히 복잡하다. 그래서 경제정책을 수립하려면 고도의 '전문성'이 있어야지, 어설픈 '이념성'으로는 긁어 부스럼 정도가 아니라, 잘못하면 국민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장기적으로 나라 전체를 나락으로 추락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 지도자도 경제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사실 정치 지도자가 의도한 대로 국가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건 산업화의 초기 단계 정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미 오래 전에 정치에서 독립해나간 경제를 억지로 정치에 예속시키려 하고, 대선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라는 큰 틀을 너무나 쉽게 내던지고, 대신 경제 전문가들조차 듣도 보도 못한 '창조 경제'라는 희한한 프레임(어쩐지 6, 70년대의 '새마을운동'을 연상시키는)에 이미 선진 자본주의화한 한국경제를 억지로 끼워맞추려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관만이 아니라 경제관도 참으로 구시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현정부 경제정책의 문제가 전문성이 부족하고 구태의연한 국가 주도형 경제개발로 복귀하려 한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세대를 위한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사실 초이노믹스라고도 불리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부동산 거래 활성화와 정년 연장, 노령연금 지급 등 방점이 50대 이상의 장노년층에 두어져 있다. 물론 그렇다고 장노년층 중심의 경제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반면에 2, 30대 청년층이 겪고 있는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은 그 효과를 따질 수도 없게 거의 전무하다는 문제가 있다. 아마도 박근혜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 50대 후반 이상의 노인층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노인층 중심의 경제정책이 국가 경제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가,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처럼 노골적으로 노인층 중심 경제정책을 편 경우는 유례가 없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만 하더라도, 당시 기득권층이던 농촌 유지들의 몰락을 불러왔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도 산업의 고도화가 계속되었고, 이렇게 성장 변화하는 경제에 더 적합한 층은 노인층보다는 젊은 세대였다.
더 나아가 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을 아이엠에프로 인한 경제 침체의 대안으로 내걸었다. 이런 새로운 물꼬의 유입은 언제나 노인층보다는 젊은층에게 유리하지만, 우리나라가 IT 관련 산업에서 선두주자가 된 것이(비록 그 과실의 상당부분이 대기업에게 흘러갔지만) 2000년대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것 또한 분명하다.
우리나라 경제의 노화현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이다. 새 물꼬의 유입을 통해 경제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않고, 단순히 FTA 등 시장의 확대를 통해 양적 성장을 꾀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양적 성장에서는 새로운 생산 동력보다는 기득권층의 파워만 강화된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소수 재벌 기업들에 의한 경제력 편중 현상과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었던 건 이 때문이다.
그러자 청년층의 소외 현상이 벌어졌다. 삼포세대니, 88만원 세대니, 청년 실업률 증가니, 출산률 저하니, 사교육비 증가니 하는 이야기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언론에 오르내렸다. 어느 순간 청년은 국가의 동량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약자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중소기업이 청년을 채용하면 취업지원금을 보태준다든지, 다자녀 지원이나 세금 공제 등, 청년들의 힘든 상황을 좀이라도 챙겨주는 듯한 제스처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 전보다 사태가 더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하에서는 청년층을 배려하는 경제정책을 찾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출산율 저하 문제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이 '애들은 다 자기 먹을 것 갖고 태어나니, 애 낳는 것에 겁먹지 마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욕을 들어먹긴 했지만, 그래도 이 문제를 회피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출산율의 저하 문제는 이명박 정부 당시보다 더 악화되어 이제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 중 1위를 너끈히 달성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오히려 재정 부족을 이유로 다자녀 가구에 대한 이런저런 혜택들을 없애버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노인연금은 국고로 지급하는 반면, 누리과정 지원 문제를 놓고는 지금까지도 지자체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진보 교육감들이 시행하는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못마땅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이런 청년층 홀대 현상은 정부가 민생을 강조하면서도 젊은이들의 최우선 관심사항인 '청년실업'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를 점진적으로라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제' 일자리를 늘이거나 '비정규직'의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식의 임시방편적 정책만을 추구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청년 세대는 미래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 세대는 젊은 세대의 미래가 워낙 불안정하다 보니, 자신들의 노후 자금을 희생하거나 정년 후에까지도 취업을 하여 어떻게든 자식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은퇴한 노인들이 다시 이런저런 저임금 노동에 재취업을 하거나 빈곤에 시달리는 주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런데 장노년층의 이런 정년 연장이나 저임금 노동시장에의 편입은 역으로 청년층의 취업 기회를 축소하고, 안정된 질 좋은 일자리 생성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청년층이 안정된 경제력을 갖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의 해결도 요원해진다. 젊은 세대가 경제력이 없어 부동산(주택)을 구매할 수 없으면, 나이 든 세대는 자신이 가진 주요 자산의 가치를 실현할 수가 없다. 하우스 퓨어가 발생하는 메카니즘이 여기에 있다. 장년층이 아무리 대출을 끼고 집을 샀더라도, 대출금이 집값보다는 작을 것이므로, 집이 팔리기만 하면, 자산이 줄기는 하지만, 빚쟁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을 살 사람이 없어 팔리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요즘은 이 하우스퓨어 문제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세 비용으로 덮어졌지만, 그래봤자 폭탄 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긴 하지만 전세금도 젊은 세대가 마련하기에는 거금이어서, 결국 젊은 부부는 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은행 전세 대출로 메꾸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경제활동에서 은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세대의 필요를 위주로 하는 경제정책을 펴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보다는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경제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성향 자체가 몇 십년 전 유신시대의 인물인 김기춘 실장을 중용할 만큼 '복고적'인 데다가, 경제 같은 전문 분야도 '전문가'에게 맡겨두지 못하는 만기친람형 지도자이고, 경제 정책의 수장조차 정치색 강한 '친박' 인물을 등용할 만큼 겁 없이 경제를 대하는, '소신' 강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세대별 박근혜 정부 지지율 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20대는 13%, 30대 20%, 40대 32%에 불과하고, 50대는 43%, 60대 이상 62%이다. 여권은 앞으로도 한 동안 노령화 사회가 계속될 것이므로, 세대별 지지율의 이런 편향성이 권력 유지에는 오히려 유리하다고 여기고 앞으로도 장노년층 우선 정책을 유지할지 모르지만, 한 집안에서도 자식이 잘 되지 않으면 부모가 아무리 권세가 있어도, 그 집안은 미래가 없듯이, 국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젊은 세대가 우리나라의 미래 주역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데 정책의 중심이 옮아가야 한다. 젊은 세대의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일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젊은 세대의 거주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임대주택 등이 광범위하게 도입되어야 하며, 자녀 양육비의 지원, 교육 복지의 실현, 사교육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학입시 정책, 반값 등록금제 실현 등이 한시 바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표를 의식하여 노년층 위주의 경제정책을 계속 유지하면, 우리 경제는 한때 경제대국 1, 2위를 다투던 일본 경제가 그러하듯이, 단순히 노화 단계를 넘어 퇴화 단계로 들어서게 될 수도 있다.
2015.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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