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안당 |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사건 폭로에 언론들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보수 정권인 MB 정권에서의 일이고, 가해자는 보수정권,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더 검찰 고위직을 섭렵한 인물이어서, 겉보기에 서기현 검사의 폭로는 문재인 정부에게 대단히 유리한 소재가 될 것처럼 보였는데,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미적지근한 대처가 드러나면서 정치적 불꽃은 오히려 현 정부로 튀어버린 모양새이다. 그러자 또 일부 편향된 네티즌들이 도리어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와 그 대변인 및 변호인을 비난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하고... 


그러니까 피해자가 인권의 문제, 인륜의 문제로서 제기한 문제를 각 정치세력들이 정치적 유불리의 문제로만 받아들이다 보니 발생한 본말전도의 안타까운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나라 검찰 역사에서 현직 검사가 검찰 조직 내의 비리를 폭로한 경우는 극히 드물며, 특히 피해자의 2차 피해 가능성이 심히 우려되는 성범죄 비리를 폭로한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에서 서지현 검사의 문제 제기는 정말로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서지현 검사의 문제제기를 현 정부도 문제로 느끼는 검찰의 기소독점권이나 권위주의적인 검사동일체 원칙 등 검찰 조직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기회로 삼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정쟁거리와 냄비 현상으로 끝나게 만들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처음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들었을 때,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나 또한 범죄행위를 판단하고 척결하는 선봉장인 검찰 조직 내에서조차 저런 범죄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은폐되다니, 정말 우리나라는 성범죄에 관한 한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가해자가 전 정권들에서 고위직을 두루 섭렵하면서 잘 나가던 사람이라고 하니, 역시 부패한 전 정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했었다. 



각각 적극적 방조자와 가해자로 지목된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과 안태근 전 검찰국장



하지만 관련 상황들이 더 자세히 밝혀지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단지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서지현 검사 사건의 경우에는 그것이 검찰 조직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건의 경과를 되짚어보면 알 수 있는데,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지금 우리 사회의 다른 여성들처럼 서지현 검사도 해당 사건이 발생하고 난 직후부터 계속해서 상관의 그런 부당한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었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2010년대 들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대략 2000년 대 중반 이후부터는 성범죄의 피해자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피해사실을 감추거나 침묵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물론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나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척 관계인 경우  등은 제외하고). 다시 말해 우리나라 성인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가장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성적 자율성에 관한 한 확실한 권리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서지현 검사의 문제 제기와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은폐되고, 나아가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 등을 주는 2차 가해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이 검찰이라는 조직 내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지현 검사의 증언처럼 성추행보다 훨씬 더 심각한 범죄인 성폭력 범죄가 검찰 내에서 실제로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들)의 피해자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 또한 검찰 조직의 특수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같은 심각한 범죄행위의 피해자가 되고서도 피해자가 침묵하는(침묵할 수 밖에 없는) 경우는 군대 조직이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군대가 아닌 민간 조직인 데다가 공무원으로서 윤리 규정까지 지켜야 하는 검찰 조직 내에서 심각한 성 범죄행위가 벌어졌는데도,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 침묵하거나 설사 항의를 해도 은폐되고 마는 상황이 벌어진다? 


비교를 위해 고위직 검사가 서지현 검사에게 한 행위가 민간 기업이나 일반 공무원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상상해보자. 물론 민간기업 상사나 고위 공무원도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2차 가해를 가할 수 있지만, 이 경우의 피해자들은 얼마든지 가해자의 이런 범죄행위를 경찰이나 국가인권위 등에 고발하거나 언론 등에 알릴 수 있다는 걸 가해자들도 이미 알고 있어서, 가해자들은 2차 가해는 커녕 피해자에게 사죄를 하는 등 사건을 무마하려고 애쓰는 것이 고작일 경우가 많다. 



비록 과거보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성폭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반면에 검찰 조직내에서 벌어진 일이면, 성폭력 피해자가 침묵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지현 검사의 경우에도 자신의 문제 제기나 항의가 행여나 조직에 누를 끼치는 행위가 되지는 않을까라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이런 경우 언론에 폭로하거나 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제한된 범위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조차 돌아온 대답은 언제나 검찰 조직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사건의 은폐였다. 이 때문에 서지현 검사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8년 간 은폐되고 말았고, 서지현 검사는 부당한 인사조치를 감수해야 했다. 


덧붙여 사건이 발생한 그 현장의 장면도 인상적이다. 즉 법을 집행하는 사람인 그 고위직 검사가 설마 그런 공개된 자리에서 범죄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서지현 검사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피해를 당했는데, 나아가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검사들)이 고위직 검사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는 장면을 버젓이 보면서도 아무도 말리거나 항의하지 않는 모습에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라고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장면은 아무리 2010년도라 해도 검찰이나 군대 조직이 아닌 민간이나 일반 공무원 사회에서는 절대 벌어질 수 없다. 


이처럼 사건의 경과만이 아니라 그 발생 상황 역시 민간이나 공무원 사회가 아닌 검찰 조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간이나 공무원 사회도 가해자가 힘이 있을 경우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힐 수는 있지만, 박근혜에게 찍혀서 좌천당한 노태강 국장의 사례처럼 그 부당함이 언론 등에 폭로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하지만 검찰 조직 내에서는 아무리 부당한 일이 일어나도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언론조차 전혀 모를 수 있다. 


왜냐하면 검찰은 기소독점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검찰은 기소 편의를 위해 마치 군대조직 같은 검사동일체 원칙을 그 조직 운영의 원리로 하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다음 백과 '재미있는 법률여행'이라는 코너에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가 실려 있는데, 다음에 그것을 옮겨본다. 



[ 사례 ]

전도환, 노대우의 내란죄를 수사하던 최정의 검사에게 상부로부터 압력이 빗발쳤다.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으니 적당히 수사하라"는 것이었다. 최 검사는 이 압력에 맞서 굴하지 않고 철저히 수사하였다. 그러자 검찰 총장은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책임을 물어 최 검사를 제주지검으로 전보 발령하고, 후임에 지당한 검사를 발령하여 수사를 맡게 하였는데, 그는 상부의 기대에 부응하여 내란죄를 기소 유예 처분하였다. 검찰 총장의 최 검사에 대한 전보 발령 처분은 법률상 정당한가?


[ 답안 보기 ]

① 정당하다. 전국의 모든 검사는 검찰 총장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② 부당하다. 검사가 사건 수사를 마무리할 때까지 교체할 수 없다.

③ 부당하다. 오히려 검사의 수사 업무를 방해하였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질문의 의도를 눈치챘을 테지만, 그래서 정답은 ① 일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그러면서도 워낙 비상식적인 정답에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 백과에는 정답이 1인 이유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 결론 ]

이 사례에서 검찰 총장이 수사 중인 최 검사를 다른 곳으로 전보 발령하고 교체한 것은 검사 동일체의 원칙이 폐지 또는 수정되지 않는 한 '법률상으로 정당하다'.



그렇다면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란 무엇이고, 이런 원칙이 검찰 조직을 운영원칙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백과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이해하기 쉽도록 전문을 옮깁니다.)



[ 해설 ] 

검사는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그 이름만 들어도 겁이 나는 존재이다. 오늘날 검찰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서 권력의 시녀라는 국민적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검사는 사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검사는 법률상으로는 행정부(법무부)에 소속하여 수사, 공소 제기, 재판의 집행 등 검찰 사무를 처리하는 국가 기관이다. 검사는 일반 공무원과 달리 개개의 검사가 자기 이름으로 검찰권을 행사하는 단독제 관청이다.


형사소송법상으로는 모든 '수사의 주재자'로서 경찰의 수사를 지휘 감독할 수 있고, '공익을 대표'하여 범죄자를 기소하며, 형사 재판에 있어서는 '소송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국에 산재해 있는 모든 검사는 검찰권 행사에 관하여 검찰 총장을 정점으로 하여 상하 복종 관계에 서서 일체 불가분의 유기적 통일체로서 활동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을 '검사 동일체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 원칙이 인정되는 이유는, 범죄 수사, 공소권 행사, 재판의 집행 등 검찰 사무의 처리에 있어서 기동성, 신속성의 요청에 부응하고 전국적 통일성과 업무 처리의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처럼 전국의 수많은 검사는 검사 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찰 총장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 정점에 서 있는 검찰 총장은 어떤 검사의 직무를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검찰청법 제7조의 2). 이처럼 검찰권 행사는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검찰 총장의 지휘 감독하에 놓여 있기 때문에 '검찰의 중립화'라는 과제는 실은 검찰 총장의 정치적 중립 유지 여부에 달려 있다.


신임검사 임관식 장면



요컨대 판사처럼 단독제 관청의 역할을 하는 검사들을 그 업무의 편의성을 위해 군대처럼 상하복종 관계에 확실하게 묶어두는 것이 소위 말하는 검사 동일체의 원칙이다. 


따라서 서지현 검사가 고위직 검사인 가해자를 고소하더라도 서지현 검사나 이 고소사건을 담당할 일선 검사는 상부의 허락을 받지 못하는 한 가해자를 기소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원칙 하에서는 상부의 부당한 압력도 범죄 행위나 월권 행위(따라서 권한 남용)가 아닌, 업무상의 준법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이 때문에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고수되는 한, 우리나라의 검찰 조직은 영원히 권력의 시녀가 될 수밖에 없다. 즉 대통령은 장관 중 1인인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권은 물론이고, 검찰총장에 대한 임명권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당연히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검찰총장을 임명하게 되고, 검찰총장은 자신의 자리 보전을 위해서라도 하명수사를 가장 중시하지 않을 수 없어 당연히 정치적 편향을 갖게 되는데, 문제는 이런 편향성이 검사 동일체의 원칙 때문에 검찰 총장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검찰 조직 전체로 번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데 있다. 


따라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깨어져야 하는데, 문제는 모든 정치세력이 자신이 야당의 지위에 있을 때는 자신에게 불리한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다가도 집권만 하면, 검찰 총장 한 사람의 임명으로 전 검찰 조직을 장악하게 되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자신에게 유리한 무기가 되다 보니, 결국 이 문제를 도외시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해방 이후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여 소수의 고위 검사들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어준 제헌헌법의 정신에 따라 입법된 형사소송법이 7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시대착오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평검사들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하는 등 검찰독립의 의지를 보였던 참여정부



아, 물론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즉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4년에 개정된 검찰청 법은 그 전의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검찰청법 제11조를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급자의 지휘. 감독을 따른다"로 수정했으며, 또 제7조2항에서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계된 제1항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 여부에 대하여 이견이 있는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검찰 스스로도 의문을 제기할 만큼 의미 있는 개정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말로는 참여 정부의 개혁 정신을 잇는다지만, 얼마 전 발표된 조국 수석의 검찰 개혁안에서 보듯이,  실제로는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는 어쩡정한 타협으로 일관하고 있다. 즉, 문재인 정부는 집권 8개월만인 지난 1월 14일, 조국 수석의 입을 빌려 권력기관의 개혁 방안을 제시했는데, 검찰에 대해서는 


“기소를 독점하고 있고, 직접수사 권한, 경찰 수사 지휘권, 형의 집행권 등 방대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며, “집중된 거대권한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결과, 검찰은 정치권력의 이해 내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검찰권을 악용해왔다”

고 하면서, 검찰권 악용에 대한 개혁방안으로, 특수수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건에 대한 검찰의 1차 수사 권한을 경찰에 넘기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검찰의 기소독점권은 유지하면서도, 부차적인 수사 지휘권을 일정 정도 제한하는 방식의 개혁으로, 대통령의 검찰 인사권은 물론이고, 검찰의 기소독점권과 검사동일체 원칙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 없이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이런 개혁방안이 어정쩡한 타협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야당 시절의 검찰 개혁 방안과도 다를 뿐 아니라, 당사자인 검사들 또한 새 정부의 이런 개혁 구상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것에서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어중간한 개혁조차도 실제 결과물이 아니라 아직은 구상에 지나지 않으니 염려스런 마음이 더 들긴 하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도 별 의미가 없으므로,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그런데 사실 검사동일체 원칙이 가져오는 폐해는 검찰총장과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일선검사들과 일반국민들에게 끼치는 폐해가 단순한 정치적 편향성으로 인한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할 것이다. 우선, 일선검사들에게 끼치는 폐해의 적나라한 사례는 이번 서지현 검사 사건과 댓글 수사 당시 좌천된 윤석렬 검사의 경우를 들 수 있다. (혹은 상관의 갑질과 업무 과다로 인해 자살한 젊은 남 검사의 사례도 빠질 수 없다.)


위의 백과 해설에도 나오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검사는 준사법기관이고, 개별 검사는 각각 독립적인 수사권을 갖는 '단독제 관청'이다. 하지만 모든 평검사는 자신이 직접 조사하고 판단한 사건의 경우에도 상관의 결재가 있어야만 그 판단이 유효한 것이 된다. 즉 일선 평검사들의 모든 '결정문'은 상관 검사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다. 


이는 마침 오늘 폭로된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서도 드러나는데, 강원랜드 사건의 수사 및 기소를 맡고 있던 안미현 검사는 춘천지검장이 검찰총장을 만나고 온 다음 태도가 돌변하여 불구속 수사를 지시하자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실 이 상황에서는 일선 검사가 상관 검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무리 검사 개개인이 단독제 관청이더라도 검사동일체의 원칙 때문에 상관의 결재를 받지 않고 단독으로는 기소 결정문조차 작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검찰을 단독제 관청이라는 지위도, 경찰 동일체라는 원칙도 없는 경찰보다 오히려 더 못한 존재로 만든다. 즉 경찰은 지금 같은 조직 상태에서도 동료 경찰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경찰이 그 사람을 체포할 수 있는 반면, 검찰은 동료 검찰, 특히 간부급이 범죄행위를 저지를 경우 검찰 스스로 이런 범죄행위에 대해 단죄할 방도가 없다. 고위직 검찰의 비리와 범죄만을 다루는 공수처가 대안으로 내세워지는 건 이 때문이다. 


이처럼 검사동일체의 원칙 하에서는 상관의 지시가 아무리 부당한 것이라 해도 이를 따르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런데 만일 윤석렬 지검장이나 임은정 검사, 서지현 검사처럼 상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검사가 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부당하든 어떻든 이들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자리로 인사발령을 내버리면 그만이다. 


이러니 일반국민들의 눈에는 하늘 같아 보이는 검사이지만, 그래서 드라마 같은 데서 '영감'이라는 호칭으로 불려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고 여기는 검사이지만, 실제로 검사 자신들이 느끼는 건 "평범하고 힘 없는 일개 검사"라는 자괴감에 다름 아니다.


예전에 <비밀의 숲>이라는 검사 세계를 비춰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런데 검찰이라는 조직이 아니라 마치 조폭 조직이기라도 한 것처럼 신임 검사장에 임명된 간부가 나타나자 휘하의 모든 검사들이 복도에 도열하고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또 검사들의 유일한 관심이 '승진'에만 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 드라마 <비밀의숲>



어찌 보면 철저한 상명하복 세계에 속해 있는 검사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한 자리라도 더 올라가야 자신의 의지를 좀이라도 더 관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찰의 인사는 공정하게 이루어질까? 전혀 그렇지 않아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서지현 검사의 고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빽 젤 쎈 놈이 젤 좋은데 간다’는 인사제도,

빽 센 놈이 밀고 들어오면 인사발표 당일에도 요직 자리가 바뀌는 인사제도,

그래서 빽 없고 힘 없으면 간부 말 잘 들어서 평가라도 잘 받아야 하니,

간부의 그 어떤 갑질, 폭언, 부당한 지시에도 눈감고 입 다물게 하는 인사제도,

제대로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명확한 이유도 알 수 없는 상벌제도,

가해자들은 당당히 잘 살아가고 피해자들만 박해를 받고 위축되어야 하는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이처럼 현직 검사의 폭로로 드러난 검찰의 속살은 정말 더 이상 갈데 없이 썩었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썩을 대로 썩었다는 이 표현이 절대 과하지 않은 이유는, 민간 기업이 이런 식의 인사제도와 상벌제도에 따라 조직을 운영했다가는 그 기업은 조만간 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비춰보면 알 수 있다. 경제적으로 망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갖 민형사상의 소송에도 휘말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당한 인사를 하고, 범죄행위가 일어나도 검찰 조직이라면 끄떡없이 몇 십년도,  심지어는 정권이 바뀌어도 버틸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이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조직 운영 논리 덕분인데, 이 원칙이 직급 낮은 평검사들에게 끼치는 폐해도 폐해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일반 국민들에게 끼치는 폐해 역시 이에 못지 않다는 것이다.  


- 다음화에 이어서



2018. 2. 6. 



날짜

2018. 2. 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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