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안당 |  





* 이 교육웹진의 입장이 아니다. 나 개인의 입장이다. 그러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개인의 입장이어도 안철수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면 아마도 굳이 내가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현실적 이해관계로 이 글을 쓴다는 오해도 없기를 바란다.


내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건 -물론 정치판과 정치가들의 100% 결백성을 절대 믿지 않는 나로서는 상대적인 지지다-무엇보다 그의 교육 공약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이야기하는 학제 개편은 대안학교였던 우리 파주자유학교에서 시행되었던 학제이다. 그리고 지난 10년 간의 실제 시행 결과, 관련 학생이나 학부모 대부분이 만족했던 학제이다. 특히 6학년을 초등 과정이 아닌 중등 과정에 편입하고, 고등 과정의 2년을 진로 탐색 기간으로 설정한 것은 물론 개별 아이들마다 적응에 있어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내 경험에서 볼 때 현 상황에서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잘 반영된 학제라고 판단된다. 또 유아교육(누리과정)의 공교육화 또한 교육기회의 평등성과 유아교육의 합리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자연자원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의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력이다. 따라서 인력의 양성, 즉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아이들의 성장 기간을 놓치면 안 된다. 따라서 무엇보다 교육에 방점을 찍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모든 것이 디지털화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지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에 맞출 수 있는 유연한 사고, 나아가 변화하는 상황을 앞장서 이끌 수 있는 창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유연한 사고, 창의적 사고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주요한 것으로는 감성주의와 형식논리, 이데올로기를 들 수 있다.  


감정주의는 논리고 합리성이고 다 제쳐두고 개인이나 대중의 감정을 가장 1차적 동인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이 경우 극우적이거나 극좌적인 편향으로 흐르기 쉽다. 왜냐하면 감정에 치우치면 극단적이 되기 때문이다. 대중의 의식 수준이 낮으면 이런 감정주의적 호소가 들어먹힌다. 총탄에 부모를 잃은 박근혜가 불쌍하다는 호소가 그렇고, 억울하게 자살로 내몰린 노무현을 복권시키기 위해서라도 노무현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제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호소가 그렇다. 더 나가서는 외국인이나 난민에 대한 혐오감에서 출발하는 서양의 신극우와 아무렇지도 않게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이런 감정주의적 사고방식의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감정주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항상 형식논리를 등에 업고 나온다. 감정적 동조만으로는 너무 1차원적이기 때문에 소위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러나 그 감정주의가 내세우는 명분은 흔들리기 쉽고 박근혜가 국민통합을 이야기하다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경제민주화로 표를 얻었지만 일찌감치 경제민주화는 나 몰라라 했던 것처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반면에 진짜 형식론자가 내세우는 형식논리는 너무 자체 완결성이 강하고 딱딱해서 새로운 상황변화나 다른 의견이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 문제이다. 이 경우는 유승민 후보가 대표적이다. 경제학 전공인 유승민 후보에게는 현실이나 현실의 변화보다는 논리로 짜맞춘 대안이 전부이다. 유승민 후보가 사드 배치에 대한 안철수 후보의 입장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보수는 대한민국의 현실적 보수가 아니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 당위적 보수상일 뿐이다. 유승민 후보는 보수는 원래 청렴결백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보수는 국가 안위라든지 현재의 경제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부수된 부정부패 정도는 눈 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승민 후보의 공약은 공약 자체 내에 모순이나 충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조건과 공약이 모순된다는 문제가 있다.


한 번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닌 형식론자들이 현실 조건이나 조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이 면에서 진짜 형식론자들은 진정성이 있다. 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는 것도 진정성이 있다. 그러나 고집불통이어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가 힘들다.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잘 오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형식론자들은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이해하지 못해 인조반종을 일으키고 나아가 주전파가 된 조선시대 올곧은 선비들과 닮았다.


현대에 와서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주요인이 된 것은 이데올로기, 즉 이념이다. 주로 좌우 이념이다. 예전에는 이 이념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였다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국가들이 개방된 지금은 소위 보수와 진보이다.


* 하지만 나는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명칭인지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수정자본주의가 되고, 국유화 등의 주장을 모두 접은 사회주의는 그야말로 개량적 자본주의에 지나지 않아서, 이 둘 사이의 간극은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리 선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복지의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보수주의자는 없다. 다만 시기에 따라 변하는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사실 그 논리와 주장이 일목요연하게 대별되던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와 달리 보수 대 진보는 어디 참조할 만한 '경전'도, 대표적 정치 지도자의 '어록'도 없다. 그냥 당으로 구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민주당이 하는 모든 정책은 진보이고, 공화당이 하는 모든 정책은 보수적이라고 사람들은 '추정'한다. 혹은 어느 후보가 내놓는 정치공약은 모두 진보적이고, 어느 후보가 내놓는 정치 공약은 모두 보수적일 거라고 사람들은 '추정'한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표를 의식해 비슷비슷한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거는 경우가 다반사인 21세기에 사람들의 이런 '추정'은 사실일까?


물론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도 후보자 본인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허위의식이 된 이념이란 안경을 쓰고 세상 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 때문에 아무리 진보가 안보를 책임지겠다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으로 미국 청년들 수천명이 사망하고, 중동 지역이 내전의 회오리에 휘말리고, 나아가 서구 국가들이 테러의 위험성에 노출되는 상황이 일어났음에도 미국인들도 안보는 보수가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인들 반 이상이 트럼프가 북한 미사일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전술을 실시하는 것에 언제라도 찬성할 자세를 갖추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우리나라는 이데올로기 분쟁의 희생양이 되어 왔다. 김구의 통일정부가 무산되고 김구 선생이 결국 죽임까지 당하게 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 영역에서 이데올로기 분쟁의 희생양이 된 것은 중도파였다. 이데올로기 분쟁에 편승한 좌우 세력들 때문이다. 사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될 정도의 정통성을 가진 이는 김구 선생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 선생은 역설적이게도 해방된 조국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중도파가 우리나라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과정은 신익희 선생과 장준하 선생 등 그 뒤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이념을 내세우지 않는 중도파를 희생양으로 삼으면 이념에 편승한 세력은 극단화하는 업보를 받게 된다. 스스로를 극단화하지 않고서는 중도를 탄압할 명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박근혜 정부가 극단화한 것도, 80년대 운동권이 주사파에 지배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문재인이 중도노선인 안철수에게 패권 세력과 야합한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 역시 이념의 비약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중도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에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나라의 완전한 독립 말고는 이념에 따른 목표가 없다. 안철수 후보 또한 마찬가지다. 4차산업 혁명에 성공하는 나라가 됨으로써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것이 유일한 목표이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이 잘 되기 위해서 가야 할 유일한 길은 이것이다. 그리고 안철수에게는 이념에 물든 세력들이 의도적으로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의 이력에서 보듯이 이 목표에 다가설 능력이 있다. 일단 국가를 재조직화할 권한이 있는 지위에 앉게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에게는 이 지위에 앉을 만큼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낼 정치력이 아직 부족하다. 무엇보다 그는 문재인과 홍준표를 비롯한 다른 후보들이 만들어내는 이념 대결 구도가 왜 대중에게 먹히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념에 물들어보지 않은 그로서는 평생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와이에스나 디제이 혹은 김종필과 같은 정치력을 가지고 다른 세력들과 밀당을 잘 할지도 의심스럽다. 아마도 안철수는 대통령이 되면 다른 정치세력들에게 "이 길이 옳은 길이니 같이 가자"거나, "국민의 다수가 바라는 정책이니 정치권도 힘을 합치자"고 유순하게 대응할 것이다. 이런 유순한 대응방식이 기존 정치권의 권력 투쟁이나 야합 방식과 전혀 다른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순리를 따르는 순탄한 과정이 될지, 아니면 오히려 상대의 오만함을 불러 일으켜 지지부진한 혼란의 도가니가 될지도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다.


* 혼란이라고 하지만 이념을 등에 업은 양 극단 중 한쪽이 권력을 잡는 데서 올 혼란보다는 훨씬 정도가 덜할 것이다. 왜냐하면 극단 중 한쪽이 권력을 잡으면 다른 극단이 기를 쓰고 그 상황을 뒤흔들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 안철수 후보가 상대적으로 다른 후보들보다 경제를 살릴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이 평가는 상대적일 뿐이고, 안철수로서도 국가 단위에서의 경제 사회 개혁은 미지의 영역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어설프고 헤맬 수 있다. 변화에 대한 공무원(교사들은 물론이고)의 저항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도 미지수이고, 대통령 임기와 관련된 1987년 헌법의 개정 문제도 있다. 짧은 임기로 장기적인 과제에 착수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 이미 첨단 산업이 우리 경제를 이끌 주요 동력이 된 마당에 이제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는 이념으로 경직된 지도자들이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같은 국민(심지어는 같은 가족 내에서도)이 이념에 따라 네 편, 내 편 하며 싸우는 모습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이념은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는 북한의 존재를 전제로 하더라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사력에서도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훨씬 뛰어날 뿐 아니라, 게다가 주한미군까지 고려하면, 군사적으로 우리 측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아무리 무모한 북한 김정은 정권이라도 독 안에 든 쥐가 되지 않고서는 6.25 당시처럼 남한을 침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북한에 핵이 있다고 하지만, 북한 자신도 같이 죽기를 각오하지 않는 한 미국이나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실제로 발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서구에서 극우세력이 새롭게 대두하는 것도 이제 전세계적으로 이념이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극우는 사회당의 사회주의 정책이 현실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는 보수 세력이 잡고 있는 독일에서 오히려 극우 세력이 약세인 것과 대비된다. 


생각난 김에 이야기를 잠깐 우회하면 유승민 후보의 청렴한 보수라는 관념은 독일식 보수상이지 우리나라식의 보수가 아니다.


물론 마르크스도 이야기했다시피 허위의식은 그 물적 토대가 사라져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념이 허위의식이 된 지금도, 심지어 서구 선진국의 일부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여전히 이념이 물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허위의식은 기본적으로 구시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착각하면 할수록 해당 역사는 퇴행한다. 말하자면 허위의식의 업보는 퇴행이다. (이는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타당하다. 영애 시절의 의식에 정체되어 있던 박근혜가 1970년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듯이 말이다.)


허위의식에서 벗어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중도 노선의 안철수 후보를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물론 나도 이런 의식적인 노력이 대중적인 차원에서 쉽게 진행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적인 노력이 모여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현대사회이고, 민주주의 사회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세계가 4차 산업혁명을 코 앞에 둔 지금 시점에서 우리 대한민국도 갈 길이 바쁘다. 30년이나 해묵은 1987년 체제에 발목이 잡혀 지난 30년 동안 되풀이되어온 실패와 혼란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다가는 대한민국은, 그리고 우리의 미래 세대는 자칫 뒤처지고 말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미지의 길이지만 앞으로 나가보겠다는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것이 내가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이다.


2017. 5. 1.

날짜

2017. 5. 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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