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에 글을 안 올린 지 한 달도 더 되었나 보다. 그나마 멀구 기자와 마음 기자가 열심히 글을 올려 블로그가 계속 살아 있도록 해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외부적으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사건은 목함지뢰 사건으로 인한 한반도의 전쟁위기(?) 고조와 해결 과정, 그리고 지난 주에 발생한 시리아 난민 꼬마의 죽음을 전세계인이 목도한 사건이다. 그러니까 이 글의 화두는 '전쟁과 평화'쯤 되겠다.
전쟁과 평화의 드라마 1 - 한반도
- 금안당
예전에 북한이 핵확산방지 협정에서 탈퇴하고,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군사적으로 침공하거나 핵시설을 폭파하는 군사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외신들에서는 몇 월 침공설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었지만, 국내 언론이 주요 뉴스로 보도하지 않아서인지 우리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거나 알고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당시 침공 예정시기가 다가오자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데도 오히려 내국 자본이 대거 주식을 매수함으로써 주가의 폭락을 막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사실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이고, 65년 전에 벌어진 전쟁이 아직도 계속되는 휴전 상태인 나라인 데다,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양쪽 권력자의 양보 없는 호전성이 두드러지는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군사적 충돌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게다가 북한에는 핵무기까지 있다. 하지만 당사자의 한쪽인 남한 사람들의 인식은 전혀 다르다.(북한 사람들이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놔두고.) 거칠게 표현하면 남한 국민들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낮게 본다. 수치로 얘기하면, 한 10% 정도... 외과 수술에 비교하면 의사가 제시하는 수술 성공 확률이 실패 확률보다 훨씬 더 높아서 환자들이 크게 불안해하지 않고 수술대에 오르는 쪽을 선택하게 할 정도의 수치랄까...
그러니까 수술 환자들이 실패 확률이 10%밖에 안 되는데, 설마 내가 그 10명 중 1명에 들겠어?라고 생각하듯이, 대한민국 국민들도 전쟁 날 확률이 10%밖에 안 되는데 설마 전쟁이 날려고?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외신과 정부와 군 수뇌부가 '위기'를 경고해도, 일반 국민들은 태평하다. 안전지대로 탈출하는 일은 물론이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생필품을 사재기 하는 현상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또 다시 신기하다.
그런데 왜 그럴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쟁에 둔감해졌을까? 메르스 사태 때는 자기 가족이 메르스에 감열될 가능성이 1만 분의 1도 되지 않았는데 초비상사태였던 데 반해, 진돗개 한 개까지 선포된 상황은 못해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 100분의 1은 될 텐데, 물론 모든 국민들이 상황을 예의 주시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해 과대하게 생각하고 떠드는 쪽은 정부와 군대, 그리고 중국 당국 같은 외부세력이었다.
내 보기에 우리 국민들은 한반도 내에서 전쟁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전쟁이 나면 남한이나 북한이나 잃을 게 너무 많다. 북한 권력자가 아무리 호전적이라 해도 6.25 남침에서 이미 한 번 패배한 경험이 있는 데다가, 김정은 정권이 특별히 내부적으로 궁지에 몰린 것도 아닌데, 굳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도박을 할 이유가 없다. 남한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 정부는 전시작전권이 미군에게 있어서 주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권한 자체가 없다.
그래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은 남북한 간의 갈등과 충돌이 얼마나 고조되느냐에 있지 않고, 부시 행정부 당시처럼 미국이 북한을 얼마나 적대적 위험요소로 판단하는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이란 핵협상에서 보듯이 대화와 협상으로 핵확산의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고 있다.(물론 이란과 달리 북한은 이에 응하고 있지 않지만.) 게다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 개발하는 게 아무리 미국에게 눈에 가시라 해도 소련이 미국의 코 앞에 있는 쿠바에 핵 무기를 배치하려던 경우와 달리, 북한은 드넓은 태평양 건너에 있어, 미국이 북한을 침공할 명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6.25 전쟁 당시와는 달리, 세계 초강대국의 하나가 된 중국의 견제도 있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전쟁이 일어나 세력 관계에 변동이 일어나느니 현재의 분단상태를 유지하는 게 자신들에게 유리하다. 다만 변수는 북한이 소유한 핵무기가 미국에게 얼마나 위협적일 정도가 되느냐와 이 위협의 정도를 판단할 미국 정부의 성격이다. (예를 들어 미국 공화당 출신인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 무기가 있다는 명분으로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했지만, 이라크 정부의 대량살상 무기의 존재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 김정은이 미치지 않고서야 전쟁을 일으킬 리 없다고 보고, 이번 위기 상황을 천하태평으로 대한 우리 국민 대다수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한국 정부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정부는 오히려 전쟁 위기를 부풀렸다. 그것도 목함 지뢰 사건(8월 4일)으로 우리 병사 2명이 다치고 열흘 이상이 지나고 나서. 박근혜 정부는 지뢰 사건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군사 분계선에서의 대북방송을 재개했고, 그러자 북한군이 경고용 포사격을 했고, 이를 계기로 남한과 북한에서는 위기 의식이 고조되어, 남한에서는 최고 경계상태인 진돗개 하나가 군 부대들에 내려지고, 북한에서는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었다.(하지만 우스꽝스러운 것은 남한 국민들만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도 정말로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양에서는 이 당시 국제 유소년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었고, 우리나라 대표팀도 이 대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어쨌든 남북한 당국 어느 쪽도 진짜 전쟁을 할 생각은 없었다. 21일 먼저 남한이 대화를 제의하는 통일부 장관 명의의 전통문을 북한측에 보냈지만, 북한은 이의 수령을 거부한 대신 몇 시간 후에 자기들쪽에서 전통문을 보내고, 세부적으로 고위급 회담 참석자의 선정을 두고 서로의 요구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22일 오후부터 판문점에서 긴급 접촉이란 명목으로 협상 테이블이 성사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남북한 당국이 각자 체면을 구기지 않을 정도의 외양을 취하면서 그동안 오기로 진행시켰던 남북한 경색 국면을 풀 명분으로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양보했는가라는 성적표를 보면, 이 지뢰 사건과 중국 전승절 행사 참여로 박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급상승하긴 했지만, 우리 정부가 이번 사건으로 어떤 성과를 올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뢰 사건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이 있긴 했지만, 사죄가 아닌 유감인 데다가, 남북이산가족 만남 재개 같은 경우는 그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이 아니었다면, 굳이 단절될 이유도 없었던 사안임을 생각하면, 그냥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군사분계선 내에서의 방송 중단을 합의한 2004년 지점으로 되돌아간 것이고, 남한 입장에서는 2010년 천안함 폭격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중단되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합의를 본 6개항의 나머지 사항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당국자 회담 개최 약속과 민간교류 활성화 합의는 건설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지만, 문제는 어떤 구속력도 갖지 않는 데다가(그러니까 한쪽이 틀거나 연기해도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는다고 무슨 제재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국자 회담 개최와 민간 교류 활성화가 그간 우리 정부쪽에서 요구해온 사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는 북한쪽 요구에 가깝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가 계속 요구해온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쪽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는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금강산 관광 재개와 나아가 5.24 조치 해제 등도 패키지로 함께 관철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적어도 6개항의 합의문에는 북한쪽의 요구가 더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공동 보도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부가 원칙을 가지고 협상한 결과"라고 자평하면서 "그동안 북한은 우리 국민들에게 불안과 위기를 조성하고 양보를 받아왔는데, 우리 정부에서는 그것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북한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관진 실장의 이런 자평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하나는 북한이 불안과 위기를 조성했는데, 그로 인해 양보를 한 역대 정권이 과연 있었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이번 고위급 접촉은 북한 입장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오히려 불안과 위기를 조성하면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하는 것이고, 셋째는 무슨 원칙을 가지고 협상해서 얻어낸 결과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위의 분석에서 보듯이 회담의 성적표는 북한쪽의 점수가 좀더 높다.)
내 보기에 박근혜 정부가 이번 협상에서 얻은 진짜 성과는 그간 강경 일변도였던 대북 정책의 방향 전환을 체면 구기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는 것뿐이지, 무슨 원칙을 관철시킨 데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나의 이런 평가는 북한도 애초에 전쟁을 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북한 정권은 얼마든지 전쟁이라는 미친 짓도 불사할 수 있다는 분석 하에 이번 협상을 진행시킨 거라면, 그래서 우리의 원칙적인 강경한 태도가 북한의 호전성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하는 거라면, 김관진 실장의 자화자찬 자체는 타당하지만, 과연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올바른 분석인가의 의문이 남는다. 아니, 만일 우리 정부가 정말로 이런 분석에 근거해서 전쟁 위기감을 고조시킨 거라면, 우리 정부의 대북 관점 자체에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군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패배를 자초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 점은 이번 회담에서 우리가, 아니 박근혜 정부의 강경론이라는 '원칙적 태도'가 얻은 게 별로 없다는 결과로 드러난다.)
보수정권이나 종편이 북한의 호전성을 강조하여 우리 국민들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도록 하는 것도 좋지만, 이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칫 되로 받아 말로 주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를 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국력 낭비가 초래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집권 기간 동안 경색된 남북관계는 우리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거꾸로 지난 7년 간 남북교류가 계속 활성화되고 확대되어 왔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우리 경제는 이 세계적인 자본주의 불황기를 견딜 수 있는 특별한 열쇠를 가진 셈이 되었을 것이고, 경제 교류를 매개로 한 개방성 때문에 북한 정권은 오히려 지금보다 불안정한 상태에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 이래로 남한 정부가 북한과의 교류를 전면 단절한 상황에서, 북한 김정은은 성공적인 권력 세습 과정을 마쳤다. 사실 장기적인 통일의 비전에서 보더라도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교류 단절로 얻을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정권 유지를 위해서 개방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쪽은 북한이다. 게다가 우리가 북한과 교류를 단절해도 북한에게는 중국이 있다. 다시 말해 경제 봉쇄 조치가 가져올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교류 단절이 북한의 도발에 대한 장기적인 응징이 되거나 북한 정권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오히려 김정은 집권 이래로 북한 경제는 장기 침체를 극복하고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이런 점에서 장기적인 대북 강경책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심각한 국력 낭비일 뿐만 아니라, 통일의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드는 어리석은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저렇게 끊임없이 도발을 해오는 북한에 대해 아무런 응징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시작전권이나 휴전 협정 위반에 대한 적극적인 반격권이 없는 우리 군의 입장에서는 도발을 당하고 나서 응징을 하기에는 재량권이 너무 없다. 따라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경계를 확실히 하고,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즉각 반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북한이 수시로 도발 행위를 하더라도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도발 행위는 압도적 군사적 우위에 있는 한미 연합군에 북한이 주눅들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역시 진짜 공격용이라기보다는 과시용이고 엄포용인 것처럼. 이 때문에 북한의 도발 행위에 강경하게 대응하더라도 전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번의 목함 지뢰 사건에서 이 두 가지 면에서 다 실패했다. 우리 군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와 아군 영역에 지뢰를 묻는 것도 포착하지 못할 정도로 경계를 소홀히 했으며, 사건 발생 이후 즉각적이고 확실한 반격도 하지 못했다. 사실 대북 방송을 재개한 것은 적군이 응징의 위력을 느낄 만한 군사 작전이라기 보다는 일상적인 정치적 심리전에 가깝다. 이 때문에 예전의 연평도 포격이나 이번 연천 포격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자칫하면 민간인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 (이번 고위급 회담 합의가 나오고 난 이후에 연천 주민들이 대북방송용 확성기를 지역에서 옮겨달라고 탄원을 올린 게 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는 군사적으로도 무능함이 드러났다고 할 것이다. 그나마 외교적으로는 중국의 힘을 빌어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다시피 그 협상 내용에서는 얻은 게 별로 없다.(박근혜 정부가 지금까지 기조로 삼았던 대북 강경노선이란 기조에서 보면.) [게다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굳이 중국의 도움까지 받을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도 있다. 중국의 압력이 없었다면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년 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최룡해 등 북한 고위급들이 깜짝 방문을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 정권 때보다 남한과의 교류와 협상에 더 적극적이다. 그때도 이들을 만나주지 않는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그런데도 고위급 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급등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일부 언론과 일부 국민들은 김관진 실장이 말한 대로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도발 행위에 원칙을 가지고 강경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쪽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이에 당황한 북한이 뜨거운 맛을 보기 전에 서둘러 협상 테이블로 나왔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해도, 설사 그 정책 수행의 결과 정권의 무능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도 현정부에 막무가내식 지지를 보내는 고정 지지층들이다. 이들은 정부의 아전인수식 자화자찬도 여과 없이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박정부를 비호하는 자기 명분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니 이들의 의견은 지지율 급등에서 주요 분석대상이 아니다.
박근혜 지지율은 고위급 회담 직후 30% 대에서 40%대로 10% 이상 급등했고, 중국 전승절 행사에 박대통령이 참석한 이후로는 54%까지 올랐다. 두 사안에서 지지율 상승을 끌어낸 원인은 각각 다른 것 같다. 고위급 회담 후 박근혜 지지로 돌아선 사람들은 그 과정이야 어찌됐든 일말이라도 전쟁 가능성이 있었던 상황을 박근혜 정부가 대화와 협상으로 마무리지음으로써 위기 상황을 종식시켰던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들은 회담의 성과가 무엇이었냐를 따지기 전에 그냥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애초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본 나같은 사람들은 회담 성사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특별히 박근혜 정부의 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지지자로 돌아설 이유도 없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여 미중 관계에서 적극적인 균형 외교를 취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 다시 지지율이 상승한 건 우리 국민들의 관심사가 안보나 전쟁이나 이념보다는 경제적 이해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제 중국이라는 초대형 소비 시장과 노동 시장 없이는 성장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경제성장을 정권 성공을 가늠할 저울추로 여기는 박근혜 정부로서도 요즘 같은 불황 시기에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까지도 뒷전으로 돌릴 만큼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최근의 대통령 지지율의 변동을 통해서 드러난 사실은 정부의 자화자찬과 달리 우리 국민들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이념보다는 경제적 안정을 더 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회로로 가든, 모로 가든, 혹은 실제로는 기존 원칙을 포기했든 간에 박근혜 정부는 이번 과정에서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마무리지었고, 덕분에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좋다고 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도 어쨌든 전쟁 위기가 해소되었으니, 그 공을 박근혜 정부에게 돌려도 뭐 크게 불만은 없다. 이 점에서는 야당 역시 마찬가지인듯 회담의 성과를 놓고 시시콜콜 따지지 않고 회담 성사의 공을 아낌없이 대통령에게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정부가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상승을 김관진 실장의 해석처럼 자칫 남북 대결 국민으로 비화될 수 있는 대북 강경책(원칙)에 대한 지지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나는 이번 과정에서 우리 국민은 이제 더 이상 전쟁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미 햇볕 정책을 통해 남북 화해와 남북 교류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은 남북한이 굳이 서로를 반드시 쳐부셔야 할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전쟁이 나면 북한보다는 우리가 잃을 게 훨씬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물론 북한 김정은 정권이 궁지에 몰려서 먼저 전면전을 시작하면 우리 국민들도 가만 있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아무리 보수정권이라도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원칙주의라는 명분 아래 상황을 긴장과 대결국면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지금 당장은 좀 도와주는 느낌이 있더라도 북한의 개방을 촉진할 경제 교류를 강화하고, 계속해서 북한을 대화와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 (더불어 종편들은 북한을 자극할 원색적인 발언들을 자제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이번 회담의 합의 사항 중 하나인 민간 교류의 활성화는 북한측의 요구이기 이전에 우리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항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충분히 개방되지 않으면, 남북 분단 상태도 절대 해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5. 9. 7.
'금안당 > 대안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0) | 2017.05.01 |
---|---|
헌법대로 하자! 대통령을 탄핵하고 직무 정지시켜라! (2) | 2016.11.17 |
커밍아웃, 퀴어축제, 동성애, 동성결혼, (0) | 2015.07.27 |
억울함이란 감정의 그늘 2 (0) | 2015.07.13 |
정치평론 - 새누리당은 과연 진짜 보수가 될 수 있을까? (0) | 2015.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