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퀴어축제, 동성애, 동성결혼

- 금안당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의 사회학과 대학원 과정으로 유학을 간 두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들이 유학을 가고 1~2년 정도 되었을 때 이 후배들을 믿고 미국 서점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둘은 대학에서 제공하는 뉴욕의 아파트에서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에 간 그때 마침,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그때도 이 축제의 이름이 퀴어 페스티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게이니 레스비언이니 하는 용어 자체도 낯설던 때라, 이런 축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약간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미국 자체에서도 아직은 동성애 문화가 공공연하게 인정받는 문화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매일 빠뜨리지 않고 이 축제 소식을 전하는 듯했지만, 그 뉴스는 그야말로 ‘새롭다’는 의미에서의 뉴스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가 직접 목격한 이 축제의 장면도 이면도로 뒤쪽에 있는 한 교회 문 앞에 무리를 이루고 선 동성애자들이었다. 그 교회에서 관련 행사가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교회 앞에서 만나서 함께 교회로 들어가기로 했는지, 먼저 온 사람들이 뒤이어 도착하는 사람들과 껴안고 인사하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보고 있던 나는 이면도로인 것도 그렇고 뭔가 조심스런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헀다. 그러니까 거기 모인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라고 해도 이런 축제를 제외하고 평소에는 ‘나, 동성애자요’라고 광고하고 다닐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

 

그들이 서로 껴안고 인사하는 장면을 본 당시의 내 심정은 솔직히 말해 좀 당혹스러웠다. 안 그래도 미국식의 껴안고 키스하는 문화 자체에 강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나마 레스비언인 여자들끼리는 한국에서도 온갖 친밀한 제스처를 다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익숙한 풍경이라 괜찮은데, 남자인 게이들이 마치 ‘연인’처럼 다정하고 살가운 모습을 나누는 걸 보는 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후배들 앞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이유는 우리가 동성애 페스티벌 관련 뉴스를 보다가 나눈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뉴스를 보다가(당시에는 영어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그 뉴스의 자막과 사진을 ‘보기만’ 했다) 한 후배가 대학원 토론수업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니까 수업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토론을 했는데, 한국에서 사회과학 공부를 했던 그 후배는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동성애란 건 일종의 허위의식이고, 한국 같이 사람들이 먹고 살기에도 바쁜 사회에서는 이런 동성애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같은 풍족한 사회에서나 발생하는 일종의 사회적 병리 현상이 아니냐”란 식으로 주장을 했다가 심한 반론에 직면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내 입장도 그 후배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동성애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의 한국 사회가 후배식의 단순 평가와 다르게 80년대 후반 이후의 민주화와 경제성장 - 물론 여전히 불충분했지만 그럼에도 최악의 상황은 이미 넘어선 지 오랜 상태였다 - 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후배가 수업에서 들은 반론들을 전해들은 나도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네’란 유보적인 여유는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가진 선입견에 이런 약간의 사전충격이 있었기에, 나는 눈앞에서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보고도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거부감을 최대한 억누르고 표현을 자제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사람들이 알고 있던 동성애 관련 정보는 에이즈가 동성애자들이 걸리는 불치병이라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난 바로는 에이즈는 성적 접촉이 아니라 혈액 접촉을 통한 감염이었다.) 하지만 ‘이상’ 성애를 통해 불치병에 걸릴 수 있다는 메시지 속에는 그 이상 행동에 대한 ‘천벌’이라는 선입견을 쉽게 내포할 수 있었다. 이 면에서 당시에도 동성애에 우호적이었던 유럽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에이즈 문제는 한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전세계 동성애자들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메시지였다.

 

그렇다고 당시 우리나라에 동성애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글의 일부나 지나가는 에피소드식으로 동성애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난다. 또 이태원에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클럽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자칭 레스비언이라는 친구의 고백을 듣기도 했다.(고백 이후로 그녀는 완전히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90년대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사회변혁에 관심 가진 지식인들조차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과장하고 있다고 여기고, 타고난 왼손잡이라도 오른손잡이로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동성애적 성적 취향도 스스로 노력하면 바뀔 수 있는 질병 혹은 장애 정도로 치부했다.

 


이런 암묵적 사회적 인식에 나름의 충격을 주고 변화를 요구한 것이 연예인 홍석천의 커밍아웃이었을 것이다.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한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2000년대에 들고나서가 아니었나 싶다.(그러니까 내가 미국에서 동성애자들의 축제를 만나고 난 이후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이 생소한 첫 사례를 놓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당혹감이었다. 보수 기독교도들조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사실 이 당시에는 개신교 내의 보수적인 입장이 명백히 우위를 점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성직자가 독신의 삶을 사는 가톨릭과 불교계는 이 문제에서 굳이 어떤 입장을 밝힐 이유가 없었다. (아직 로마 가톨릭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프란체스코 교황이 둉성애에 전향적인 태도를 가진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모두가 방송계의 태도만을 지켜보았다. 방송 프로그램의 운영자들은 스스로 게이임을 선언한 홍석천을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의 출연을 그대로 용인할 것인가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방송 관계자들 입장에서도 스스로 자수(커밍아웃)한 사람을 트집을 잡아 처벌(프로그램 하차)을 하는 건 자신들도 불편했다. 게다가 앞에서 말했듯이 특별히 지배적인 대중 여론이 조성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프로그램 하차는 의도적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문화가 반쯤은 허용받고 반쯤은 여전히 껄끄러운 상태임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석천의 커밍아웃이나 동성애 상황을 다룬 드라마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확산되던 동성결혼의 법적 허용 소식 등은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애가 공개 영역에서 조금씩조금씩 자리를 잡고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 열린 퀴어축제는 동성애자들의 입장에서는 지난 수십년 동안 축적한 내공이 겉으로 드러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아니, 퀴어축제는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몇 년 전부터 해마다 진행되어오던 정례 행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올해의 퀴어축제를 유명하게 만든 건 오히려 일부 극보수 개신교쪽에서 동성애에 대해 뒤늦게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예정된 집회장소를 먼저 선점하는 등 도를 넘는 축제 방해 행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제 개막 직전에 미 연방 차원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통과되었고(이렇게 되면 미국의 주마다 다르게 적용되던 동성결혼 허용 여부가 모든 주에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덕분에 리퍼트 주한 미대사도 축제에 참여하여 한국의 동성애 문화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미국대사관을 비롯해 13개국 대사관들이 퀴어축제에 부스를 설치했다.) 그런데 퀴어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서울광장 한쪽편에서 동성애 혐오집회를 벌인 단체는 김기종씨에게 피습당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면서 부채춤과 난타, 발레 공연을 펼쳤던 바로 그 기독교 단체(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총회)다. 아집과 광기가 만들어낸 아이러니라 해야 할 것이다.

 

이번의 미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으로 주요 선진국들 대부분에서는 동성애자들의 모든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일종의 대세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성소수자의 문제가 법적 차원에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2013년에 유엔인권위원회가 우리나라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면서부터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학력, 용모, 성별, 인종, 장애, 성적지향, 임신, 출산” 등을 원인으로 하여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으로, 유엔인권이사국이 된 한국은 위원회의 권고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노라고 약속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외국인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반대하는 기업들과 특히 동성애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개신교계의 입장으로 인해 아직까지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또 하나 동성애 문제가 법적 차원에서 표현된 것은 동성결혼을 한 영화감독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2014년에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불수리한 서대문구청을 상대로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 신청’을 법원에 제출하면서이다. 이 소송은 아직 재판장의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인데, 일부 교회나 시민단체가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동성결혼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어서 재판장도 쉽사리 혼인신고 처리를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소송에서 양측의 입장은 블로그 포스팅과 신문기사 참조. )

 

동성애 성향이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인 것인지, 혹은 선천적인 경우도 있고 후천적인 경우도 있는 것인지, 그래서 타고난 동성애만 법적 사회적으로 인정을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결국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이므로 후천적인 경우까지 포함하여 인정하는 게 맞는지, 혹은 8촌 이내의 친족간 결혼을 허용하지 않듯이 어떤 경우에도 동성결혼은 허용하지 않는 게 맞는 것인지, 아직 양측의 논리를 진지하고 충분하게 검토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 물론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나는 동성애가 설사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실수’라고 하더라도 프라이버시의 영역에 속하는 다른 많은 문제들에서 그러한 것처럼 ‘실수’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허용’쪽에 더 호감을 가지고 있다.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실수’할 기회를 차단하는 건 아무리 그 강제가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해도 타인의 삶에 부당하게 개입하게 됨으로써 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고백하건대 다른 한편에서 20여년 전에 미국에서 동성애자들의 축제를 처음 보았을 때 가지고 있던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동성애를 ‘비정상’이란 범주에서 완전히 따로 떼내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20년 전에는 생존이 문제가 될 정도로 절박한 사회에서는 일종의 허위의식인 동성애의 문제 같은 건 크게 대두하지 않을 거라고 봤다면, 지금은 오히려 경제적 발달 수준에 관계없이 인간사회에 여전히 억압과 불평등, 차별과 지배-피지배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동성애라는 왜곡된 관계 형태에서 사람들이 탈출구를 찾는 게 아닐까란 의구심이 드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이 의구심이 그냥 또 하나의 편견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러니까 인류가 좀더 평화롭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세상이 되고서야 밝혀질 것이다. (아니면 생물학적 지식이 더 축척되어 사람에게는 외양의 성(性)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내용적 성이 있거나, 이 내용적 성은 성장 시기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등의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에도 나의 의구심은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의 편견 혹은 의구심과 상관없이 갈수록 더 많은 나라들이 동성애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 것 같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도 그렇고, 지난 7월 22일에는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이탈리아에 대해 유럽인권재판소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인권침해"이고, 사생활과 가족 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제공해야 하는 유럽인권보호조약 제8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계속 성장해가는 한, 우리나라도 몇 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게다가 개신교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개신교가 동성결혼의 합법화에 반대하지 않는데, 유독 한국의 개신교만 계속 강하게 반대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2015.  7. 17.

 

날짜

2015. 7. 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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