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보수세력조차 절망하는 박근혜 정부의 자가당착

- 금안당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 답변으로 또 한 번 온나라가 시끄럽고, 정국은 마비 상태나 다름없게 되었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느끼고 황당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이완구 총리의 총리 인준 청문회 과정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일일 수 있다. 그때도 눈에 뻔히 보이는 사실을 거짓말로 요리조리 덮으려는 모습,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모습이 국민들 눈에 그대로 드러났으니 말이다. 그때 이미 국민들은 그의 총리 인준 여부에 관계없이 그에게 '비리백화점'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런 사람을 총리로 인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뿌리 깊은 부정부패"를 척결할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말했듯이 사정 대상 1호인 사람이 남을 사정하겠다는 웃지 못할 적반하장이 벌어진 셈이다. 게다가 비리척결이란 게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의 비리척결이 아니라, 전정권인 MB 정권을 겨냥한 것이고, 개중에서도 4대강 사업이 빠진 데서도 볼 수 있듯이 MB를 직접 겨냥하지는 않는 사안들(자원외교, 기업의 비자금 조성 등), 아니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박근혜 정부에 불똥이 튀지는 않을 부정부패 사안들로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박대통령은 총리가 추진하는 부정부패 척결이 마치 우리 정치계와 사회에 뿌리 박힌 모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일인 듯이 총리를 지원했다.

 

하지만 총리로 취임한 지 한두 주도 지나지 않아 아직 업무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총리가 내세운 부정부패 척결 과제가 총리 스스로 선정한 과제일 리 없다. 취임 전에 이미 로드맵이 짜여져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완구 총리는 그 전의 정홍원 총리가 그랬듯이 꼭두각시의 역할에 불과했을 수 있다. 그런데 꼭두각시를 잘못 내세운 것이다. 하필이면 mb 정권과의 유착관계가 있을 거라는 추측성 '단정'으로 사정대상 1호로 점찍었던 경남기업의 성완종 회장이 총리와 인연이 깊은 사람이었다. 지금 드러난 바에 의하면 성완종 회장은 '충청포럼'이라는 지역 기반을 동원하여 총리를 총리 자리에 앉혀주었을 뿐 아니라, 평소에는 같은 지역 출신 의원으로서 물심양면으로 총리를 도와준 사람이었다.

 

이완구 총리야 총리 인준과정에서 보았듯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밥 먹듯이 하고, 이번 성완종 게이트에서 보이듯이 신의 같은 건 헌신짝 버리듯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니,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로드맵에 따라 성완종 회장을 치라고 해도 전혀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문제는 상대방인 성완종 회장은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고 성완종 회장은 자신이 박근혜 정부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공신일 뿐 아니라, 이완구 총리를 위해서도 물심을 아끼지 않았다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실제로도 다이어리 상으로 2013년부터 2년여 동안 23번을 두 사람이 만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명확한 증거도 없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으니, 성완종 회장은 청와대와 총리에게 정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결국 그는 불법 정치자금의 액수와 수령자 이름이 적힌 소위 '성완종 리스트'라는 것을 남기고 죽음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전국민 앞에 폭로했다. 

 

나는 검찰 수사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또 경남 기업이라는 기업 자체의 부정 행위 유무에 상관없이 성완종 회장이 남긴 리스트만은 사실일 거라고 믿는다. 오히려 리스트에 남긴 명단과 금액은 검찰 수사를 하면 사실 증거나 타인의 증언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 최소한으로만 기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성 회장은 적어도 죽기 하루나 이틀 전에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죽은 자는 더 이상 증언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남 기업에 대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성 회장 자신도 아마 과거 몇 년치의 관련 자료와 장부들을 다시 확인하고 재정리하고 있던 차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성회장 차원에서는 어떤 자료가 남아 있고, 어떤 자료가 어떤 일의 증거가 되는지, 이미 확인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남은 자료나 뒷정리를 부탁한 측근의 증언을 통해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것들만을 리스트에 적었을 가능성이 크다. 자기 목숨까지 내어던지면서(실제로 성 회장은 죽기 몇 시간 전 경향신문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희생"한다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했다) 하는 폭로인데, 그것이 거짓말임이 밝혀져서 자신이 실 없는 거짓말쟁이로 역사에 남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마련이다. 그러니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 이완구 총리는 아무도 총리의 목숨을 탐내지 않으니 목숨까지 내놓을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총리라는 지위에서 물러나고 피의자 신분이 되는 것을 면할 방도는 없지 싶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총리의 거짓말과 기업 회장의 다잉 메시지 간의 진실 게임이 아니다.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기가 찰 정도의 무능함이다. 단순히 여당의원들조차 용납하기 힘들 만큼 뻔뻔스런 거짓말쟁이를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임명했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다. 내가 정치에 과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전(前) 정권의 비리를 사정했는데, 그 칼날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현정권을 강타한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박대통령은 여당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과는 항상 각을 세워온 사이여서, 친박계는 '여당 내 야당'이라고 지칭되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일반 국민들의 눈에도 드러나는 전정권의 사자방 비리 등을 파헤치기는커녕 계속 헛손질만 하다가 오히려 제꾀에 제가 속아넘어가는 상황이 되는 건 도대체 뭔가? 친이계 한 의원이 말하듯이 정말로 '큰도둑'이 '작은도둑'을 잡는 억지 상황이 되다 보니 이리 된 것인가? 아니면 세간에서 이야기하듯이 박대통령이 이대통령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잡혀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의 하나로 그 측근은 건드려도 전임 대통령만은 건드리지 않는 격식 있는(?) 태도를 취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인가?(박근혜 대통령은 예전 인수위 시절에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혹은 이번에도 자기 정권 탄생의 공신조차 알아보지 못하거나, 설령 알아보더라도 그 수확물을 함께 나누길 싫어하는 무지하면서 야멸찬 측근들의 문제인가?

 

그런데 이유야 여하하든 간에 전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 같은, 지금 정권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쉬운 과제조차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면, 그 다음에 떠오르는 의문은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잘 하는 일이란 게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현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뭐가 남았냐는 것이다. 정부의 낙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대북, 대일 등 대외관계 또한 박근혜 정부의 융통성 없는 방침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그야말로 정지상태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이고, 집권 여당이 다수당임에도 불구하고, 박대통령의 과도한 친박인사 편애로 인해 공무원 연금개혁 등 주요 정책 과제가 진전되는 게 거의 없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박정부의 인사는 최악인 데다가, 전문성이 중요한 금융영역에까지 친박 인사들을 대거 앉혀 국가 공무는 물론이고 경제의 핵심 영역까지 마비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그 정치적 이념은 놔두고라도 국가 관리 능력이라고 하는 면에서 무능한 대통령, 무능한 정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인지 대표적 보수언론으로 자칭하는 조선일보조차 사설(얼마나 더 무덤덤해져야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박정부에 대한 절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렇듯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좁혀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정권은 스스로 멀어지려고 애쓰는 것일까. 대선 때 '국민 행복'을 걸었다가 집권 후에는 '창조경제'를 앞세웠다. 한동안 '국가 개조'를 말하더니 '4대 개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비리 척결'에 '정치 개혁'까지 들고 나왔다. 목적지가 시시때때로 바뀌면서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애매해졌다. 어수선한 스토리에 관객들은 극장을 떠나 흩어지고 있다. 성인 영화를 보며 '그래도 언젠가 결정적인 한 방이 터질 것'이라고 참고 있는 소수의 단골 고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런 국민의 무덤덤과 인내를 적극 지지로 해석한 것일까.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문고리 권력을 내치라는 여론에는 '묵묵히 고생하며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로 옹호하며 딱 잘라 거절했다. 성완종 파문에서도 측근들의 비리 의혹에는 유감 표명 한마디하지 않은 채 정치 개혁만 강조한 뒤 비행기에 올랐다. 뇌물 영수증을 봐야 사과하겠다는 것인가.

취임 초에는 대선 공약을 135개로 추스르며 국민과의 약속을 모두 실행할 기세였다. 하지만 그토록 집착하던 무상 보육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공약을 다 실행하지 못하게 된 것도 사과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직후엔 국민이 사과를 기대할 때 하지 않다가 뒤늦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는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지만 사회적 언어를 배우는 학창 시절을 청와대에서 보낸 경우엔 그런 단어는 생략하거나 늦게 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일까.

취임 첫해는 총리·장관 후보, 수석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인사 실패로 보냈다. 취임 2년째는 세월호 후유증을 감당하지 못해 부대꼈다. 취임 3년째는 제 발등 찍힐 줄 모르고 비리 척결을 밀어붙이다가 '자살 폭탄'이 되고만 성완종 파동을 보며 보내야 할 판이다. 국민은 이제 썰렁 개그에도 웃을 수 없다. "우리는 얼마나 더 무덤덤해져야 하는 것일까. 인내심을 무한대로 가져야 하는 것일까."


 

사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만큼 많은 사람들이 정권의 성공을 기원해준 경우도 찾기 힘들다. 박근혜에게 표를 몰아준 50, 60대만이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저항했던 원로 정치인들과 일부 지식인들, 심지어는 야당측 대선후보까지도 박정권의 성공을 기원했다. 아마도 인정 많은 우리 민족의 속성상 박정희에 대한 부채의식(즉, 비록 독재 정권이었지만 그래도 박정희 정권이 이룬 경제개발 업적은 제대로 평가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과  암살범의 손에 부모를 잃은 박근혜에 대한 동정심이 주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이런 동정심은 집권 후에도 계속 발휘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왠만큼 잘못을 해도 마치 성역처럼 절대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는 대중적 관대함으로 표현되었다. 이 점은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차를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차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6개월도 되지 않아 수입 소고기 협상 문제로 전국민적인 광범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출범 1년차에 대통령의 특이한 통치 스타일이 만들어낸 인사 참극은 물론이고 정권의 정통성과 직접 관계되는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 등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반 정부적인 태도를 확실하게 보인 국민은 소수에 불과했다.(물론 여기에는 자신이 직접 공격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여 걸핏하면 공권력을 동원하는 박대통령의 특별한 개성과, 개인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야비한 방식을 써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검찰총장)를 낙마시키는 박대통령의 특이한 치인술도 사람들로 하여금 공공연히 대통령에 대한 선호를 표명하지 못하게 만든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인내심, 혹은 관대함이 아무리 크다 해도 세월호 사건 이후의 상황 전개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만큼 국민의 목숨이 달린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처신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처음에는 대통령을 믿었다. 대통령이 진도 체육관으로 내려와서 해경더러 철저한 수색을 지시했으니, 배안에 갇힌 이들이 살아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었고, 나중에 드러난 바로는 대통령 스스로도 그 골든타임에 자신의 업무를 방기했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한 진상규명 약속임에도 사건 후 1년이나 지나고서야 마지못해, 그러면서도 선심이라도 쓰듯이 선체 인양을 고려해보겠노라고 말했다. 게다가 세월호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아직도 가동되지 않고,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입법된 것이 눈먼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청와대의 입김 탓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때문이겠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1주년을 맞이하여 대통령이 팽목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팽목항의 분향소를 폐쇄해버렸다. 조선일보의 또 다른 사설은 보수언론답게 "대통령을 끝내 거부한 유족들은 대한민국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과 등을 지겠다는 것"이냐고 묻고 있지만, 사실 한 번이라도 유가족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유가족들의 이번 행동이 죽은 자식들을 배신하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행위였음을 인정할 것이다. 어떻게 그렇지 않겠는가? 대통령이 운명의 그날, 좀만 제대로 처신했다면 내 자식이 살아돌아올 수도 있었고,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이 좀만 더 진상규명 의지가 있었더라도, 아니 최소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술수만 부리지 않았더라도 1주기인 그날, 유가족들은 분노와 통한으로 몸부림치는 대신, 사랑의 애도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분향하거나 애도할 자격이 없다. 반면에 유가족은 죽은 자식이고 가족이지만 더 이상 대통령의 보여주기쇼에 이용당하지 않게 할 권리가 있다. 또 조선일보는 유가족이 대통령을 거부했다고 해서 유가족을 탓할 어떤 명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세월호 사건 다음에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국민들이 부채의식과 동정심과 인내심과 관대함만으로 일국의 대통령을 뽑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전국민이 절감해야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단순한 사조직이 아닌 비선이 일국의 대통령을, 일국의 국사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 왠만한 국가 수장 같으면 설사 그 비선이 대통령의 가족이라 해도 일단은 내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위 조선일보 사설에서도 이야기하다시피 박대통령은 온몸을 던져 당사자인 정윤회는 말할 것도 없고, 문고리 3인방이라고 하는 비서진들까지 막아주었다. 반면에 그냥 자신의 맡은 책무에 충실했을 뿐인 사람들(청와대 비서관과 경정 등)에 대해서는 중대 범죄 행위자이기라도 한 듯이 취급하여 경찰관 한 명은 억울한 마음에 자살까지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국민들은 대통령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인지, 비선들의 대통령인지도 헷갈려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했다.

* 여담이지만 이완구 총리가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발표하면서 나온 '대국민담화문'에는 부정부패 척결 대상 네 가지 중 하나로 "공적 문서 유출"이 있다. 그러니 조응천 전 비서관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청와대는 조 비서관을 겨눈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온나라가 시끄러웠던 연말 연초가 지나고 3월, 4월 두어 달 사태가 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성회장의 리스트 사건이 터졌다. 이번 사건도 지켜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 없다. 아무리 봐도 고 성회장이 친박의 실세는 아니라도 박근혜 정권 수립에 나름의 공헌을 한 사람인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왜 박대통령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까지도 저렇게 매몰차게 내쳐서 자살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내몬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자신을 저렇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도 내치는 대통령이 가진 밑천이라곤 달랑 투표권 하나밖에 없는 국민들은 어떻게 대할지 심히 염려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지난 2년여 동안 벌어진 여러 사건들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박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보았던 것 같다. 그 결론은 아주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위 조선일보 사설의 표현에 의하면, "사회적 언어를 배우는 사춘기 시절을 청와대에서 보내는" 바람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란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 세간의 자칭 심리 전문가들의 추측에 의하면 양친이 모두 암살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세월호 침몰 같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정신적 외면 내지는 마비 상태를 겪는 사람, 혹은 곁에서 지켜본 동료 정치인에 의하면 청와대를 우리 집이라 여기고 대통령직을 가업으로 여기는, 자신을 타고난 왕녀쯤 되는 듯이 생각하는 특이한 사람이다.

 

게다가 우리 국민들은 지난 2년 동안 대통령의 이런 특별함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는 국민들에게서 표를 얻는 데는 유리할지 몰라도, 정작 국정 운영에는 아무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국가를 총체적 난국 속으로 끌어들이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왔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권이 성공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보수언론들조차 제발 비선조직을 내치고, 만기친람형 국정운영 방식을 포기하고, 국무위원들과 여당 대표들과라도 자주 소통하고, 보은 인사, 최소한 실무 능력 없는 정피아 인사는 그만두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아왔다. 보수언론의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여전히 딴나라 사람,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인 듯이 행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대통령을 지난 2년여 동안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존중하고 대접해온 우리 국민들은 이쯤에서 부채의식과 인내심을 그만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들은 물론이고 성완종 회장을 포함하여 죽지 않아도 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통한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게 살고 있는 지경이라면? 현정부의 무능력한 경제 정책 때문에 너무 많은 중산층과 서민과 청년들이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대통령과 대통령이 발탁한 그의 측근들 때문에 나라의 품격이 일거에 추락하고 입에 담기도 창피한 황당한 사건들을 전국민이 몇 번이나 겪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보수적인 다수의 인사들조차 '대통령은 가만히 있는 게 국민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단언하는 지경이라면? 보수 언론들조차 왜 대통령은 중요한 문제가 터지면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서둘러 해외순방에 나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불평하는 상황이라면? 대통령의 이런 특이한 행동방식이 다수의 사람들을 심리분석가로까지 만드는 상황이라면? 이제 그만 대통령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자신이 자란 특이한 성장환경과 경험에 얽매여 민심을 읽지 못하고 민심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왕조사회가 아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박대통령은 여당의 비박계나 야당이나 전 통진당이나 세월호 유족이나 '일부' 국민들 때문에 국정운영이 되지 않고, 국정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실상 지난 2년간을 돌아보면, 정상적인 국가 경영의 발목을 잡아온 것은 대통령 자신 혹은 청와대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바뀌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의 조언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작년 연말에 몇 백명의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였다. 그런데 이 추세대로라면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사면초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팽목항에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것은 그 사면초가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고 말이다. 

 

2015. 4. 19.



날짜

2015. 4. 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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