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와 관련하여

- 금안당



어린아이에게도 거리낌없이 알려주는 '계단'이란 용어가 있다. 영어로 하면 stair(s)나 step(s)이다.

어린아이가 알아듣기에는 좀 어렵다고 여겨져서 약간 주저하면서 사용하는 '단계'라는 용어가 있다. 영어로 하면 stage나 phase, 혹은 step이다. 그런데 계단의 한자 표기가 '階(섬돌 계) 段(조각 단)'이고, 단계의 한자 표기가 '段(조각 단) 階(섬돌 계)'로 앞뒤 순서만 바뀌었을 뿐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또 같은 한자를 사용하니만치 두 용어의 의미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글자의 순서가 바뀐 것만으로 의미가 전혀 다른 면도 있다. 국어사전에서 계단의 뜻은,


1.사람이 오르내리기 위하여 건물이나 비탈에 만든 층층대.

2.어떤 일을 이루는 데에 밟아 거쳐야 할 차례나 순서.

3.오르내리기 위하여 건물이나 비탈에 만든 층층대의 낱낱의 단을 세는 단위.


이고, '단계'는 "일의 차례를 따라 나아가는 과정"이란 뜻이다.


그러니 계단의 2번 뜻과 단계의 뜻이 유사하다. 하지만 상징적으로나 비유적으로 말할 때를 제외하고 계단은 주로 1번이나 3번의 의미로. 말하자면 '층계' 혹은 '층계의 한 단'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단계'란 용어는 계단 대신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말을 배우는 아이들은 이 용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실물이든 그림이든 구체적인 형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계단이란 단어를 배우는 것은 호랑이란 단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어렵지 않다. 아마 계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직접 걸어보기까지 한 아이는 훨씬 더 쉽게 이 말을 기억할 것이다. 이 단어가 한자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해서 호랑이보다 더 어렵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아니, 사실 호랑이도 한자말이다. 호랑이의 우리말은 '범'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범'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경우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는 한 자 한 자 떼어내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통문장 혹은 통단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란 말을 일체 쓰지 않고 '애플'이라고만 알려주면, 아이는 사과를 가리키는 우리말이 '애플'인 줄 안다.

 

그럼 '단계'란 말은 어떨까? 대다수 부모들도 느끼듯이, 아이가 이 단어를 기억하고 의미를 이해하고 사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한자에서 나온 말이어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을 갖지 않은 추상적인 개념어이기 때문이다. 이 용어에 대한 아이의 이해는 아이의 추상화 능력과 사고력이 발달하는 것에 비례해서  높아진다.

 

그렇다면 추상적인 개념 언어에 대한 이해력은 어떻게 높아질까? 그건 아이의 추상적 사고력이 발달하는 나이(대부분 초등 고학년 이상)에 글이나 말 속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는 다양한 경우들을 많이 접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 아이들은 '1단계, 2단계, 3단계'나 '예비단계, 본단계, 심화단계'같은 말들이나 '너는 아직 그럴 단계가 아냐'같은 말들을 접하면서 '단계'라는 단어가 갖는 뜻을 짐작하고 추측하기 시작한다. 또 같은 개념 언어라도 '정의'나 '진리'처럼 어려운 '철학적' 용어들은 대학생 나이가 되어도 그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때 추상적인 개념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단계'의 한자 의미를 가르쳐주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가 개념어를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물론 지금 아이들에게는 섬돌이란 우리말조차 생소하겠지만, 어쨌든 섬돌이란 말을 아이가 머릿속에서 구체적 형상으로 그릴 수 있는 익숙한 용어라고 치고, 아이는 단계란 '층층이 쌓인 섬돌 한 계단 한 계단'을 뜻하는 것이란 설명으로 단계라는 개념어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영어에서 구체적인 계단이나 단계나 똑같이 srep(걸음)이란 단어를 쓰면 아무리 추상적인 개념이라도 좀더 이해하기 쉬운 것과 똑같다. '정의'나 '진리'같은 어려운 개념어도 '정은 바르다는 뜻이고, 의는 옳다는 뜻이어서 정의란 바르고 옳은 것을 뜻한다'고 설명해주거나, '진은 참되다는 뜻이고, 리는 다스린다는 뜻이어서 진리는 세상이 다스려지는 참된 이치를 뜻한다'고 설명해주면, 아이가 이 어려운 개념어에 접근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한자의 훈(뜻)이지, 한자 자체가 아니다. 사실 한자는 중국산이지만, 한자의 훈은 순수 국산이다. 우리 말만 있고 우리 글자가 없던 고대 시절, (문명의 성장과 더불어 글자의 필요성은 대두되는데 정작 우리 말에 부합하는 글자는 없는 상황을 놓고) 우리 조상들은 한자를 글자로 쓰기로 선택한 후, 우리 말과는 전혀 연원이 다른 한자라는 글자를 어떻게 우리 말과 연결시킬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이두나 구결, 향찰에서처럼 우리 말 음과 같은 음의 한자를 쓴 것도 그런 연결 방식 중 하나였을 테지만, 이보다 더 일반적이고 편리한 방식은 지금의 외국어 사전들처럼 한자의 뜻을 우리말로 설명해주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말에는 산 대신 뫼라는 말만 있던 시절, 한자 山이 뫼를 뜻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게 훈訓이란 이야기다. 지금의 우리가 mountain을 익힐 때, 무조건 마운틴 마운틴 하는 게 아니라 mountain = 산이라는 등식을 염두에 두고 외우듯이 말이다. 물론 우리 글자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이런 훈은 글로 적히지는 않고(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 나서는 글로도 적혔지만) 그냥 말로만, 다시 말해 구두로만 듣고 익혔을 것이다.

 

구두로 전승되면 좋은 점은 한자를 익히거나 쓸 기회가 없는 일반 '무지렁이' 백성들도 한자의 훈(뜻)을 들을 기회가 꽤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천자문의 훈 정도는. 아마도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도 이런 환경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을 수십 수백번 외는 어린 학동들의 낭랑한 목소리를 자꾸 듣다 보면 서당 개까지도 천은 하늘을 뜻하고 지는 땅을 뜻하며 황은 누렇다는 뜻이고 현은 검다는 뜻이란 걸 저절로 알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영어 학원 앞에 3년 동안 앉아 있어도 애플이 사과인 줄 모를 수 있다. 애플의 훈인 '사과'를 소리 내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자를 배울 때 반드시 한자의 훈을 함께 배우던 방식은 한자 자체를 배우는 데도 효과적이었을 뿐 아니라, 한자가 외국어에서 외래어로, 다시 외래어에서 우리말로 변화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말하자면 한자를 쓸 줄 모르는 사람들도 한자의 훈과 음을 자주 들으면서 한자어에 익숙해질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삼국시대 이후로 우리 말 중 상당수가 한자어와 병용되거나 한자어로 대체되었다. 앞의 호랑이란 말도 그렇고, '일백 百'이나 '일천 千' 같은 말도 한자에서 유래했지만, 이제 우리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천'은 즈믄이라는 우리 말이 희미하게나마 아직 남아 있지만, '백'의 옛 우리말이 무엇이었는지는 흔적 조차 찾기가 힘들다.) 그만큼 한자가 유식계급의 전유물로만 국한되지 않고,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우리말 중에 한자어에서 유래한 말의 비중은 아무리 작게 잡아도 50% 이상이 되었다. 말하자면 순수한 우리말이 한자유래어보다 오히려 비중이 더 적다. 우리 글자가 없어서 한자를 차용하여 글자로 쓰기 시작한 삼국시대 이후로 (혹은 그 이전부터일수도 있다)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언어생활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러니까 비록 한자어이지만, 그 한자어들 속에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역사가 배여 있다. 이 한자어들을 없애거나 '순수 우리말'로 대체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해방 이후에 일제시대 36년 동안 우리 언어 생활에 침투해들어온 일본말이나 일본식 한자를 우리말에서 몰아내는 운동을 의도적으로 하던 경우와는 다르다. 36년에 불과한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난 언어 생활의 변화였는데도 본래대로의 우리말을 되찾는 데 20여년이 넘는 시간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200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순수 우리말이 이렇게 줄어들고 없어진 원인이 우리 글자가 없어서 한자를 차용해 쓴 데만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한자어를 덜 쓰면 우리말이 더 발달하리라는 결론을 내는 것 또한 무리다. 이는 해방 이후에 우리 언어 생활 속에 영어 등 서양 언어가 침투하는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결국 언어의 교류는 문화의 교류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우리말의 순수성을 지키는 데 있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자어가 아니라 영어 등 서양 언어이지만, 이 문제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자.)

 

게다가 90년대부터는 교과서는 물론이고 신문이나 잡지, 책 등에서 되도록 한자를 병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자어들과 함께 순수 우리말도 사용 어휘수나 사용 빈도 등에서 계속 축소일로를 밟아왔다. 이는 1947년 조선어학어가 편찬한 『큰사전』에 실렸던 우리말 어휘들 중 상당수가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도 알 수 있다. 식민지 시대까지만 해도 사용되었음이 분명한 우리말의 다채롭고 감칠 맛나는 형용 용언들 다수가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또 풍부한 우리말 어휘가 자꾸 축소되는 데는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표준어' 제정 방식이 미친 영향도 크다. 일상생활에서 아무리 자주 사용되는 어휘라도 표준어로 지정받지 못하면 그 어휘는 서서히 사멸되어갈 수밖에 없다. 한 예로 무수히 많은 사투리들이 표준어로 지정받지 못해 이미 사라졌거나 일종의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오히려 일본식 한자어를 제외하고 한자어들은 이런 표준어 지정에 걸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 근대화 이후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점점 서구화되어간 것도 우리말 어휘를 빈약하게 만드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말하자면 생활양식이 변하면서 있는 우리말은 더 이상 쓸 데가 없고, 변화된 새로운 현상에 알맞는 우리말은 새로 만들어지지 않으니 결국 외국어나 혹은 한자어로 그 현상을 지칭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에게는 어렵다는 이유로 이미 우리말이 되었던 한자어들까지도 갈수록 사용하지 않게 된 것도 우리말의 어휘수를 줄어들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한자어의 사용 자제가 순수 우리말의 성장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말이 전체적으로 빈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 것이다.  특히나 추상적 개념어들에서 그러하다. 뭐 어차피 이런 한자에서 유래한 개념어들은 순수 우리말이 아니었으니,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문제는 대체어 없이 이런 개념어들이 없어져버리면 사람들의 사고 수준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문 법조인이 아닌 사람들이 판례 등을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심지어는 판결 결과가 뭔지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한자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되도록 어려운 한자어를 줄이고, 쉬운 우리말로 판결문 등을 작성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그다지 큰 변화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법률 문서들만이 아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 등의 전공 서적들도 비전공자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한 용어들이 많다. 혹은 양의학 등 서양과학의 영향을 주로 받는 전문 영역들에서는 영어는 물론이고 라틴어와 그리스어까지 범람하여 일반인들에게 의사가 적은 처방전이나 진료기록은 거의 암호문에 가깝다.(그나마 병명은 한자어로 말하는데, 이 역시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난해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한자를 배운 적이 거의 없는 세대들이 기성세대로 진입하게 되면 더 심해질 것이다. 물론 일반인들이 전문 분야의 전문 용어들까지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니, 말을 들으면 대충의 의미는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예전에 한 서양인이 '아시아 학생들이 서양 학생들에 비해 수학을 잘하는 이유'에 대해 분석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아시아인들은 한자에서 유래한 단순한 수자어를 사용하지만, 서양인들은 수자어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사실 영어에서 12는 우리 식으로 ten-two가 아니라 twelve이다.) 언어가 사고능력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념어에서도 사용자들이 그 개념어를 어렵게 느끼거나 생소하게 느끼면 그 개념어를 사용하는 사고 과정이 원활할 수 없다.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학문적 발달만이 아니라 그 사회구성원들의 일반적 사고 수준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우리의 언어 현실에서 우리말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기존에 존재하는 순수 우리말들을 일상 생활에서 자주 접하고 자주 쓰도록 해야 한다.(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그래야만 언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우리말의 구조와 조어방식, 원리 등에 익숙해지고 나중에 우리말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외국어가 들어올 때 외국어를 그대로 쓰지 말고 적합한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대학생들이 주도가 되어 예전에 사용하던 '써클'이란 영어 대신 '동아리'란 말을 만든 것이나, 북한에서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란 새로운 말을 만든 것이 좋은 예이다.)

 

둘째로 순수 우리말이 없어 그전부터 사용해오던 한자어들은 너무 억지로 생소한 순수 우리말로 바꾸거나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한자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해서 너무 기피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미 우리말이 된 한자어를 한자어라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게 되면, 그 어휘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의 한 측면까지도 외면하거나 무지해지는 것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앞에서 말했듯이 전문 영역들에서는 이보다 더 복잡한 한자어들이 사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아니 전문 영역으로까지 갈 것도 없이 중고등학교 교과서들만 해도 어느 정도의 한자어를 모르면 내용을 이해하기가 영 쉽지 않다. 글자가 한글로 적혀 있다 뿐이지, 그 의미는 한자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말을 빈약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말을 이용하여 삶과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도 우리말에서 자주 사용되는 한자어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우리말을 배워가는 중인 아이들도 한자를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다. 한자를 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한자의 훈은 알 필요가 있다. 훈을 알면 어휘를 쉽게 배우고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무 木 음절이 들어간 단어라면 그 용어가 새로운 용어라도 '아, 나무의 하나인가 보다'고 유추할 수 있다. 아이가 불 火자에 익숙하면, 소화, 화마 등의 말을 처음 듣는다 해도 어느 정도 연상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 사실 나는 초등학생들의 경우에는 한자의 훈만 익힌다면 굳이 한자를 쓰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초한자 300자이든 500자이든 부모나 교사가 이 한자들의 훈을 가르치고, 자주 쓰는 용어들 중에 이 한자가 포함된 단어를 예로 들어준다면 초등 아이들은 딱히 한자를 알지 않아도 좀더 쉽게 우리말 용어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복잡한 모양의 한자 자체는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한자가 개념어를 익히는 데 유용하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正義나 眞理 같은 한자를 익히게 하는 건 자칫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반면에 중고등학교에서는 국어교육의 일환으로 지금보다 한자 수업의 비중을 좀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 중고등학교의 한문 수업은 내가 말하는 국어교육의 일환으로서 한자 수업과는 다르다. 중고등학교의 한문 교과서를 보면 몇 백개의 기초 한자를 배우고 나서 곧바로 한문 문장으로 넘어가도록 되어 있는데, 지금 시대에 중고등학생들이 한문 문장을 해석하는 법을 굳이 배워야 하는지, 아니 과연 배울 수나 있는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 우리말들이 어떤 한자로 쓰여지는지를 배우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셋째로 너무 어려운 한자어는 순수 우리말이나 쉬운 한자어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자어를 용인한다고 해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까지 우리말 대접을 해준다면, 오히려 한자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질 수 있다. 그러니 공문서 용어나 법률 용어는 말할 것도 없고, 전문 용어들도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순수 우리말이든 쉬운 한자어이든)로 바꾸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또 전문용어들 중에는 외국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일반인들을 일종의 '문맹'으로 만드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이 전반적으로 저하될 수 있고, 이는 우리말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발전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교육부가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뜨겁다. 사실 우리 학교(파주자유학교)에서는 이미 몇 년 전에 이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정리하고, 아이들 수업에 실제로 적용하고 있다. 그 입장이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초등 아이들이 굳이 한자를 익힐 필요는 없지만, 한자의 훈은 익힐 필요가 있고, 중고등 과정에서는 국어 학습의 일환으로 한자 수업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우리 학교의 입장은 형식적으로 보면 교육부나 한자 병기에 찬성하는 쪽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한자 병기를 한다고 해서 초등학생이 한자 쓰기 시험을 치는 일은 없을 테니 아이들의 공부 부담이 더 늘어나지는 않을 거라는 교육부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전제에서.)  어느 쪽 입장이라고 치부되어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다만 우리 학교가 이런 입장을 갖게 된 건 한자를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말 이해력도 높아지지 않더라는 현실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부언해둔다.

 

2015. 5. 18.


 

날짜

2015. 5. 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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