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가 대안학교 파주자유학교의 초중고 과정이 어우러져 치러지는 체육대회 모습


미인가 대안학교 법제화, 무엇이 문제인가  

- 금안당


 LIST 

 ⑴ 사건의 경과 

 ⑵ 법률안 분석 1 / 2 

(3) 어떻게 할 것인가?


(3) 어떻게 할 것인가?


 

앞의 글들에서도 나타나듯이, 내 입장은 미인가 대안학교들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쪽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a. 대안교육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들

 

내가 보기에 가장 문제는 대안교육연대를 비롯한 대안교육 진영이 말로는 법제화가 필요한 건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필요성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때문에 법률안에서 대안교육에 대한 규제 가능성이나 시설 폐쇄의 위험성이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무조건적인(타협의 여지 없는) 법제화 반대 입장으로 비약하고 마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사실 앞의 글 '(1)사건의 경과'에서도 보았듯이, 대안교육연대 산하 학교들이든, 기독대안학교들이든 미인가 비인가 상태로 있는 대안학교들 대다수는 이에 대해 별반 공감하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는 해당법안이 대안교육의 자율성을 심하게 훼손하기 때문이 아니다. 법제화에 반대하는 의견이 대안교육 진영의 지배적인 의견이 된 건 법제화의 필요성을 인정한 대안교육기관들은 이미 특성화학교든 인가 대안학교든 법적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이번 법안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번 법안의 적용대상이 될 나머지 대안학교들은 애초부터 법제화에 뜻이 없었거나, 법적 형식을 시도해보았지만 그에 필요한 요건의 장벽이 너무 높아서 포기하고 만 경우가 다수이다. 그러니 미(비)인가 대안학교 진영의 지배적인 의견은 미인가 대안학교들의 법제화는 '필요하지 않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반면에 우리학교(파주자유학교) 같은 경우들은 미인가 대안학교의 형식적 불안정성이 갖는 문제들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학교 인가를 염두에 두고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여왔다. 물론 필요 요건의 장벽이 너무 높아서 아직도 현실화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법제화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같은 상황을 놓고 왜 이렇게 해석이 다를까? 아마도 대안교육의 지향점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대안교육연대 산하 학교들 중 일부는 대안교육, 대안학교를 '교육운동'적 시각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운동'적 시각에서 보면, 법적 제도적 장치는 때로는 고수하고 강화해야 할 요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변혁과 개혁의 대상 자체가 되기도 한다. 특히나 '비민주적' 정부가 추진하는 법제화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자칫 '민주적' 대안교육 정신을 왜곡할 수도 있다고 본다. 

 

반면에 우리 학교 같은 경우는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비운동'적, 혹은 '교육 중심적' 시각에서 보면, 법과 제도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으므로, 법과 제도가 요구하는 제한적, 규제적 측면과 함께, 안전 장치로서의 측면 또한 중시된다. 게다가 미성년자가 관련된 사항이므로, 조직의 안정성을 갖는 문제는 아이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해주는 방법일 수 있다고 본다.

 

대안교육을 '운동적' 시각에서 보면 대안교육의 자율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공공성은 그 내용적 순수성으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반면에 '교육적' 시각으로 보면 대안교육의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대안교육의 기본정신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의 형식적 공공성, 즉 "교육의 안정성"이나 "학생들의 학습권"이 보장되는 형식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내용적 순수성만으로 '공공성'을 주장하는 것은 그 기준이 '주관적'으로 흐를 위험성을 방지해주지 못하기에, 객관적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많은 사회적 활동이 법으로 규정된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인 현대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국가라는 하나의 조직틀 안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제어'할 수 있는 것이 법이라는 형식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공공성은 '법'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 구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친목 수준을 넘어서는 사회적 활동을 하는 집단이나 조직이 비법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면? 이는 한편에서는 그 조직이 무책임한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상누각처럼 스스로를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함으로써 약간의 내외부적 충격에도 그 조직이 흔들리거나 위태로워질 위험을 안고 사는 격이다. 

 

게다가 대안학교들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교육활동을 한다는 측면이 있다. 그것도 홈스쿨러들과 달리 자기 자식이 아닌 남의 집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러니까 대안교육은, 좁게 말하면 아이들 한명 한명의 인생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고, 넓게 말하면 대안교육을 받고 성장한 아이들 또한 우리나라 미래의 주역이란 점에서 나라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안교육은 우리 사회의 어떤 영역보다 공공성과 투명성, 안정성이 높게 요구되는 영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대안교육이 법제화를 거부하지 말아야 하는 첫번째 이유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안교육계는 이런 사회적 책임 요소들을 충족시키는 쪽보다는 '친권'의 확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온 면이 있다. 말하자면 아이의 '부모'가 공교육이 아닌 미인가 대안학교를 선택했으니, 그 공공적 형식, 법적 형식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우스개소리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친권'은 교권은 물론이고 공권력보다 더 막강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선택했다고 하면, 그 교육기관이 심하게 '불법'적이지 않는 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부모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결사의 자유가 있고, 아이는 부모의 '친권'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안학교들이, 특히 초등 대안학교들이 조합식 운영방식을 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 같은 경우는 교육 외의 권위(해당 종교단체나 종교단체의 장)에 의존해서 대중의 신뢰를 얻는 우회적인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설립자가 정치나 교육, 혹은 대중문화계 등에서 유명인사인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때로는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필요로 하는 사업, 즉 학교부적응 학생들에 대한 위탁교육을 함으로써, 즉 기존 관조직과 협조관계라는 면에서 비법적 상태를 보완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비효율적인 공교육에 비해 효율적인 입시 교육 혹은 엘리트교육을 강조함으로써 학부모들의 호응를 얻는 경우도 있다. 사설 입시학원과 유사한 학교들, 국제학교 등이 이런 유형이다. 근래에는 미인가 대안학교의 유형이 더 다양화되어 '직업학교'나 '특성화고등학교'와 유사하게 진로와 관련된 특정 분야로의 집중을 내세워 학부모들의 관심을 끄는 학교들도 생겨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 대안교육이라는 큰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보완적 측면들이긴 하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대안교육을 산으로 끌고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요소들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안교육, 대안학교의 성장을 가로막고 수업공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중 한 예만 들면 학부모들이 주도가 되어 조합주의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경우, 아무래도 교사들은 대안교육의 철학에 따라 소신 있게 교육 활동을 하기가 힘들다. 교육의 체계성, 안정성, 지속성, 전문성 등이 보장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학교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로 있는 한, 교장이나 교사는 학부모들의 지지 없이는 존립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기에, 교권을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가 없다.

 

대안교육계의 일부에서는 학부모가 학교 운영과 교육 방향 등에서 적극적인 주체가 되는 이런 측면을 마치 대안학교의 민주성과 평등정신을 대변하는 듯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동전의 반면일 뿐이다. 이는 모든 노동자가 기업의 주식을 공평하게 나눠갖고 기업경영에 참가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대단히 민주적이고 평등한 것 같지만, 기업의 효율성이란 면에서 보면 대단히 무식한 방법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 기업이 기업으로서 살아남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고, 그에게 경영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 주주 기업은 공동체로서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많은 수익, 높은 이윤을 올리는 것만이 목표도 아니고 능사도 아니다. 그러나 그 기업 혹은 공동체의 재생산이 가능할 정도의 수익은 있어야 그 조직이 계속해서 살아남고 공동체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안학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름의 교육적 성과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공동체와 연관이 있지만 공동체와는 별개로 유지되는 대안학교들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대안학교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교사진이 교권을 확실하게 보장받아야 하고, 그만큼 학교 운영과 교육활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다시 말해 교육기관으로서의 형식을 갖춰야 하고, 교육기관으로서의 전문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안교육기관들의 수공업적 상태를 극복할 수 있다. 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여기에 대안교육기관이 법제화를 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미인가 대안학교들이 법제화를 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대안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이(더불어 교사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학생들은 공교육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부모들은 온갖 국세와 지방세는 물론이고 교육세까지 납부하고서도 아이들의 교육비를 따로 지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납부한 교육비의 세금공제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그 변명으로 미인가 대안학교들을 지원하려고 해도 아무런 법적 형식을 갖고 있지 않아서 지원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변명을 하려면 미인가 학교들이 법적 요건들을 충족하기 힘들게 만든 쪽이 누구인지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 게다가 애초에 학생들이 공교육에서 벗어나게 만든 것도 교육당국의 잘못된 교육정책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이에 대한 책임은커녕 오히려 피해자 탓만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번 법률안에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하는 경우에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바이지만, 문제는 이 법률안에서도 드러나듯이, 교육당국으로서는 의무사항인 미성년자 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을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교육부의 이런 태도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일부 대안학교들이 몇 푼 안 되는 교육부 교부금조차 신청하지 않았던 일도 있다.

 

* 하지만 원칙적인 측면으로 보면, 교육당국은 미인가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재정 지원을 할 의무가 있고, 대안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은 재정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정말로 법적인 근거가 없어서라면 교육부는 미인가 대안학교들에 지원하는 교부금도 지원할 근거가 없다. 뿐만 아니라 미인가 대안학교이면서 위탁교육을 하는 경우에 교육청들이 거액의 지원금을 쏟아부을 근거도 없다.(대안학교 현황조사에 나오는, 교육비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미인가대안학교란 게 아마 이런 학교들일 것이다.) 따라서 대안교육연대는 '치사한' 교부금 자체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교육부가 교부금을 지원할 학교를 작의적으로 선별하는 것에 반대하고, 교부금을 증액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옳다. (게다가 올해는 '예산부족'(?)으로 극소수의 대안교육기관들에게만 교부금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항의하는 것이 맞다.)

 

미인가 대안학교들에서 재정 문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냥 돈 문제가 아니다. 사실 재정 지원을 받아 학부모들의 부담이 줄어들어야 대안학교들이 안정화되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경제 상황이 안 좋을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 게다가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이 줄어들어야, 서민층이나 저소득층도 필요한 경우에 대안교육을 선택할 수 있다. 대안교육의 입장에서는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 더 부언하면 미인가 대안학교들이 법적 형식을 갖추면 교사들의 경제적 처지도 좀은 개선될 수 있다. 대안학교 교사들의 열악한 보수 문제가 쉽게 개선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대안교육기관의 교사들이 4대 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고, 장기 근무자는 퇴직금도 보장받을 수 있다. 대안교육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기초 토대가 튼튼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당국의 미인가대안학교 법제화 필요성과는 별도로 대안학교 입장에서도 첫째, 공공적인 교육활동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둘째, 대안교육기관으로서의 전문성을 위해서, 그리고 세째로 대안교육기관들의 경제적 처지 개선을 위해서 법제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현실적 필요성들은 앞으로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교육연대가 주장하듯이 법제화를 통한 정부의 규제가 대안교육을 쇠퇴시킬 가능성이 높을까? 아니면 현실적 필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대안교육을 쇠퇴시킬 가능성이 높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판단을 내리기 전에 법제화 문제를 둘러싸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상황이 전개될지를 예측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b. 현실적 전망

 

내 보기에는 3가지 가능성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일부 대안학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법제화를 강행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앞 글에서 설명했듯이 '무조건적인 법제화 반대'는 여론의 지지를 받기 힘든 데다가 야당도 다수당이 아니므로, 교육부가 굳이 강행하겠다고 하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안학교들의 거센 반대가 교육부의 이런 일방적 강행에 어느 정도 흠집을 내기는 하겠지만, 일단 법제화가 되고 나면 흠집의 효과는 어느 샌가 시들해지고, 미신고시 시설폐쇄라는 위협 때문에 다수의 대안학교들이 적어도 신고는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사실 일단 입법되고 나면 남은 학교들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신고조차 하지 않겠다고 버티기는 대단히 힘들 것이다. 이는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교육청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보교육감도 전교조 교사는 보호해주겠지만, 미인가 대안학교에 대해 굳이 교육부와 대립하면서 보호하려는 마음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전에 대안교육연대 대표 몇몇에 의해 주도되었던 교부금 신청 거부 운동처럼 시작은 강경했지만 결국 모든 것이 유야무야 되고 말 것이고, 애초에 법제화 반대를 주도했던 세력에 대한 대중적 신뢰만 추락할 것이다.

 

두 번째는 '이념교육(?) 하는 대안교육기관들을 그냥 놔둘 거냐?'는 여당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닥달만 없다면, 교육부가 법제화를 무기한 연기하는 경우이다. 이는 공무원의 보신주의가 심리 기제로 작용하는 경우인데, 법제화에 반대하는 대안학교들 입장에서는 당장에는 원하던 바대로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안교육의 입장에서 법제화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어야 할 과제임을 전제로 하면 이런 유보상태는 대안학교들을 지금보다 더 불안정한 어정쩡한 상태에 처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대안교육연대 등은 그 사이에 야당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야당이 국회 내에서 다수가 아닌 데다가 해당 행정부처가 동의하지 않는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육부가 복안이 없다면 모를까, 교육부는 이미 구체적인 입법안까지 가지고 있는 마당이어서, 국회에서 의원 입법으로 법을 제정할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면, 아마도 교육부는 자신의 입법안을 다시 진행시킬 것이다. 결국 대안교육을 위축시키고 언제든 위기가 재연될 수 있는  불안한 유보상태일 뿐인 것이다. 

 

세 번째는 기본적으로 법제화에 찬성하면서 법률안에 대안교육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교육부가 대안교육계의 입장을 받아들여 법률안을 수정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밀당을 하게 되면 대안학교들측에서는 대안교육을 지원하기보다는 규제하려는 교육부의 의도를 폭로할 수 있어서 명분을 대안교육측에서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진정한 대안교육을 지향하는 대안교육기관들을 결속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안교육기관들의 대안교육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어서 대안교육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확대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국 각지에는 대안적인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꾸준히 정통 대안교육을 이어온 학교들이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개개 대안학교들은 교육부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요구들, 예를 들면 '교사의 정치적 중립의무로부터 자유' 같은 요구들은 양보해야 할 것이다. 또 신고나 등록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정 정도의 재정 부담을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대안교육기관에 대한 교육부나 지역 교육청의 지원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피력함으로써 여론의 공감을 얻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결국 법률이란 건 공정성,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방 의무가 아닌 쌍방 의무이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법제화의 긍정적 측면이 있다. 만일 정부가 법적 근거가 아닌 행정조치만으로 대안교육기관들을 대한다고 생각해보라. 실제로 지금까지 수년 동안 교육부의 지시를 받은 지역교육청들은 이렇게 행동해왔다. 이따금 지역교육청들은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미인가 대안학교들을 찾아와 '학교'라는 명칭을 쓰지 말라든 둥, '학생모집'을 공개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둥, 혹은 민원을 해결하지 않으면 시설폐쇄를 할 수밖에 없다는 등의 협박을 하곤 했다. 물론 해당 대안학교들로서는 학교 존립이 문제가 될 정도의 상황이면 행정소송을 내고 심하면 위헌소송까지 가겠지만, 그럼에도 공공기관의 이런 위협을 개개 대안학교들이 감당하기는 상당히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미인가 대안학교들이 '비법적'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안학교들이 인가는 받지 못했어도 다른 법률에 근거하여 '합법'적 상태로 있게 된다면, 민원 정도를 가지고 교육기관의 존립이 문제가 되는 상황 같은 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거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들도 자기 편할 대로 해석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물론 정말로 개별학교에 대한 시설폐쇄를 단행하여 대안교육계 전체의 반발과 행정소송 등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교육청으로서도 부담스럽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조치가 단행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안정 요소는 해당 대안학교만이 아니라 대안교육계 전체의 교육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라도 대안교육계는 법제화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앞서서 법제화를 요구해야 한다. 물론 법제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교육당국의 그것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이런 내용적 면에서 대안교육계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대안교육기관들은 먼저 원칙적으로 법제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게다가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정통 대안학교들에 더 유익하다. 지금까지는 대안교육기관들이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자발적 결사의 형태로만 있다 보니, 대안교육의 정신을 오히려 훼손하는 대안학교들, 그야말로 대안학교답지 않은 대안학교들이 난립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기존 대안학교들 내부에서도 약간의 입장 차이로 학교가 분열하는 상황(교육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가 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고, 심하게는 공금의 횡령이나 유용 같은 불법 행위가 일어나도 그 당사자를 문책할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결과적으로 대안교육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십년 넘게 대안교육에 헌신해온 정통 대안학교들로서는 공든 탑이 서서히 무너질 수도 있는 사태가 자꾸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제화를 한다고 해서 이런 상태가 일거에 개선되지는 않겠지만, 대안교육을 약화시키는 이런 추세를 어느 정도는 제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제화의 또 다른 긍정성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에 대안교육 법제화 준비의 일환으로 교육부가 실시한 현황조사 후에 교육부는 '사실상의 사교육 기관으로 운영하는 고가의 국제형 대안교육시설'은 대안교육기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법제화를 계기로 대안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너무 웃자란 가지 하나를 교육부가 제거해주는 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보다시피 대안교육 법제화는 대안교육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현상황에서는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 왜냐하면 지금은 아무런 법적 규제를 받지 않으니 자율성이 너무 과도해져서 대안교육계 자체도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는 국면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만하고 무질서한 상황이 대안교육의 본질, 대안교육의 정신마저 희석시키거나 왜곡시키는 국면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극복하는 방법은 자체 정화나 자율에 있지 않고, 대안교육이 어느 정도의 형식성과 체계성을 갖춰서 나름의 질서를 되찾는 것이다. (그게 설사 '법'이라는 외부 권위가 요구하는 형식과 체계라고 해도.)

 

아마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그렇다면 정부가 말하는 공공성을 인정하여 대안교육기관들이 정부의 규제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가라면서 거부반응을 보일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지금의 법률안 그대로 통과되어서는 안 되고, 대안교육기관들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반영된 법률안이 되도록 정부 당국에 적극적으로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수정 대안에 대해서는 앞의 글들에서 이미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기본적으로 법제화에 찬성하면서 법안의 구체적인 조문을 놓고 교육부와 밀당을 할 경우에는 쟁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C. 대안교육의 자율성을 주장하지 말고, 대안교육의 다양성을 관철시켜야 한다

 

대안교육연대 소속 학교들은 해당 법안이 대안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므로 법제화에 반대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한쪽이 자율성을 내세우면 다른쪽은 공공성을 내세울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타협의 여지 없이 충돌이 불가피하다. 교육당국과 민간 결사들간의 이런 충돌은 자칫 잘못하면 대안교육계에 불필요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러니 타협의 여지가 있는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타협의 여지가 있는 지점은 어느 쪽도 거부할 수 없는 공동의 명분인데, 대안교육의 경우에는 이것이 "교육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다. <초중등 교육법> 제60조의 3의 대안학교 관련 조문은 대안학교를 "학업을 중단하거나 개인적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현장 실습 등 체험위주의 교육, 인성위주의 교육 또는 개인의 소질·적성 개발위주의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법률안 역시 제2조 '정의'에서 "대안교육"이란 "다양한 교육방법을 통해 학습자의 개인적 특성과 필요에 맞는 따른 학습자 중심의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함으로써 학습자 개개인의 소질 및 적성 개발을 위주로 하는 교육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말하자면 대안교육이란 학습자 중심 교육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방식이란 걸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이미 기존 법률에 규정되어 있으니 교육당국도 인정하고, 대안교육계도 이에 대해 어떤 반론의 목소리도 없으니 대안교육기관들 또한 인정하고 있는 대안교육의 핵심 특성이다. 이번 법안 역시 대안교육에 대한 이 규정에서 출발한다.



지역의 예술가와 결합하여 진행되는 수업 등 다양한 대안학교의 수업방법


 

그렇다면 이번 법안의 적용이 현실에서는 오히려 대안교육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불러올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은 이 다양성의 정신이 법안에 얼마나 구현되어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만약 해당 법안의 특정 조문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대안교육을 획일화시킬 위험이 있다면 이에 근거해서 비판하거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하면 설사 교육부가 이 수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명분은 대안교육측에서 갖게 된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 때의 장점은 타협의 여지도 많아지고, 실속 있는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법제화를 통해 미인가 대안학교들을 관리하겠다는 건 비유하면 교육당국이 합법 건축물로 인정해주는 대신 대안교육이라는 주택 안으로 들어와서 내부 상황을 둘러보고 뭔가 개입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관 앞에서 들어오네, 못 들어오네 하고 실랑이를 벌이며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나면, 막상 어떤 식으로든 밀고 들어왔을 때 무방비 상태가 되기 쉽다. 그보다는 현관 앞에서 교육당국이 둘러볼 수 있는 영역과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정한 다음 들어오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또 하나, 다양성이 단순히 공동 명분이라서 우리가 내세울 모토로 하자는 게 아니라, 다양한 교육이야말로 대안교육의 본질이라서 우리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대안교육을 법제화로 그 범위를 위축시키지 않고 최대한 많은 교육기관들이 함께 갈 수 있다. 학습자 중심 교육이란 건 공교육 영역에서도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제시되어온 교육 방침이다. 하지만 같은 학습자 중심 교육이라도 공교육에서 '다양한 교육 방식'을 운용하기는 힘들다. 이는 소규모이고 실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대안학교들만이 구현할 수 있는 교육방식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학년과 각급 학교로 구분되어 있는 현재의 공교육 학교들에서 학년 통합 교육이나 초중고 통합 교육을 하기는 힘들다.)

 

이처럼 다양한 교육은 대안학교들의 장점이기도 하고, 대안학교만의 특성이자 자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안학교들이 이런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실험을 할 수 있었기에, 우리나라 교육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교육당국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대안교육계는 다양성이라는 대안교육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을 법률안을 교육당국에 당당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대안학교 중 하나로 '여행학교'가 있다고 하면, 이 학교가 해당 법률안에 따라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할 수 있을까? 아마도 현재 법률안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주 교육과정이 여행이어서 교사나 교지는 그냥 거점 역할을 할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충분한데, 현행 법률에서 요구하는 시설 규모는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는 학교에 준해 획일적으로 요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교육과정계획안 또한 교육당국이 아무리 융통성을 발휘한다 해도 "여행의 계획된 교육효과" 정도는 제시하길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여행의 주요 교육효과 중 하나인 '우발적 상황에 대한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문제해결력 키우기' 같은 건 도저히 미리 계획해서 키워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룹으로 숙박을 함께하며 여행을 다니는 것이 주요 교육 활동일 텐데, '(학교) 규칙'이 일반 학교의 그것과 같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해당 법안이 대안교육의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교육 내용과 관련된 요건들이 일반학교의 그것과 유사하게 규정되어 있는 것은 명백히 잘못되었다. 따라서 대안교육계는 대안교육의 다양성이 법제화로 훼손되지 않고 나아가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수정 조문을 교육부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 개개 대안교육기관들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여력이 별로 없는 미인가 대안학교들로서는 실제 교육활동이 반영되지 않는  법적 요건을 무리해서 맞추기가 역부족일 수 있다. 하지만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대안학교들이야말로 대안교육계의 주요한 자산이다. 이런 학교들이 법제화로 오히려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 우리나라 대안교육은 또 다른 의미에서 쇠퇴의 길을 밟을 수 있다.

 


D. 글을 맺으며

 

영국 교육당국이 대안학교의 원조격인 서머힐 학교를 폐쇄하려 한 것은 서머힐이 교육부가 요구하는 안전 규정을 위반하거나 법적 지위를 갖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머힐의 전면적인 수업 선택제를 교육당국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소송까지 갔고, 영국 법원은 서머힐 학교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서머힐 학교의 이런 공헌 덕분에 전세계 교육계는 '학습자 중심교육', '대안교육'에 대한 정의를 더 폭넓고 유연한 차원에서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서머힐' 학교


우리나라 대안학교들도 이렇게 할 수 있다. 대안교육이란 게 무엇보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는 실험교육이란 점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사실 대안교육이 이뤄야 할 성과는 정치적 진보성이 아니라, 아이들 한명 한명을 독립된 주체로 성장시키는 데 적합한 교육방법의 개발이다. 이는 소외와 개성의 파편화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에서 특히 중요한 대안교육의 소명이다. 법제화의 문제 역시 이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이번 법제화가 우리나라 대안교육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장애가 되는가? 불충분하거나 일부 문제가 있다면, 어떤 수정안을 제시해야 대안교육의 발전에 가장 도움이 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측면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부언하면, 대안교육연대는 자신이 미인가 대안학교들의 진정한 대변자가 되고자 한다면, 연대에 소속된 대안학교들만이 아니라, 이번 법제화의 대상이 되는 모든 대안학교 관계자들을 초빙하여 법제화 문제와 관련된 공개 토론회를 개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중지를 모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법제화 상황을 놓고 대안교육진영이 뿔뿔이 흩어질 위험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구속력이 없는 학교들에 결정을 강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의견 동향을 알 수 있고, 개별 대안학교들의 입장이나 사정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법제화에 찬성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는 그런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번 법제화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대안학교들의 운명과 우리나라 대안교육의 미래가 좌우될 수도 있다. 대안학교 관계자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대안학교 관계자들의 신중하고 합리적이며 지혜로운 선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4. 9. 22. 


날짜

2014. 9. 2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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