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소비가 대중예술을 숨쉬게 한다
- 멀고느린구름
위 동영상은 바로 어제 손석희 사장이 진행하는 JTBC 9시 뉴스에서 시나위의 신대철 씨가 우리나라의 왜곡된 음원 유통 구조에 대해 인터뷰한 것이다. 신대철 씨는 최근 '바른음원 협동조합'이라는 것을 창설하고 뒤틀린 시장 질서를 바로 잡고 음악인들의 실질적 자립을 도모하는 행동에 나섰다. (* 참고 기사)
지난 2006년에 나는 '가슴'이라고 하는 대중음악웹진에 '정당한 거래'라고 하는 제목의 칼럼을 올린 적이 있다. 그 칼럼은 주로 만화와 음악에 포커스를 맞추어 그것들이 '공짜'로 거래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개탄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당시에는 아직 웹툰이 활성화 되기 이전이었고, 음원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공짜로 불법 유통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만화계와 음악계의 멸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다행히(?) 만화계와 음악계는 멸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바랐던 대로 우리는 정당한 거래를 하게 된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바로 위의 동영상이 말해주고 있다. 8년 전 만화계와 음악계가 멸망의 직전에 처했을 때 웹툰을 서비스하는 포털 사이트와 멜론, 엠넷, 소리바다 등의 음원 유통 업체가 등장했다. 이들은 마치 구원투수처럼 등장해 만화계와 음악계를 기사회생 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이 곧 만화계와 음악계의 성공은 아니었다. 그 성공은 유통업계의 성공이었다.
웹툰의 성공은 만화는 포털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 시켰고, 생계 유지를 위해 많은 만화가들이 종이책에서 웹툰으로 헐값을 받으며 지면을 옮겨야 했다. 웹툰이 유료화 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만화가들이 노력이 필요했다. 그 사이 만화가에 대한 사회적 지위는 더욱 추락을 거듭하여 '강경옥'과 같은 대한민국 만화계의 거장도 자신의 컨텐츠에 대한 표절 혐의를 조심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음악의 경우는 신대철 씨가 동영상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처참한 수준이 되었다. 스트리밍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재의 음원시장에서 100만 명이 들어야만 음악 창작자에게 겨우 몇 10만원이 돌아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소설가가 책 한 권을 팔 때 인세를 1000원 정도 받는다고 치자. 만약 그 소설가가 100만 부를 팔았다면 초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 계산으로도 10억 정도의 수익을 얻게 된다. - 물론, 이 정도의 수익을 올리 수 있는 작가는 국내에서도 수 백명의 소설가 중 단 두 사람 정도밖에 없다. - 소설가가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하는데 1~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음악가의 경우 한 장의 앨범을 제작하는데 역시 1 ~ 2년 정도가 걸린다. 한 앨범에 10곡 정도가 들어가므로 이 10곡을 전부를 100만 명이 스트리밍으로 듣게 되면 음악가에게는 100만원 정도의 수익이 돌아가는 셈이다. 1~ 2년을 작업해서 100만원을 벌 수 있는 구조. 이 구조에서 과연 우리는 좋은 음악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CF나 드라마, 캐릭터 사업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아이돌 음악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이돌 음악의 음악 자체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다른 음악이 모두 죽고 아이돌 음악이 살 수는 없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상호견제를 하며 성장해가는 것이다.
죽어가는 음악계를 살린다는 미명 하에 우후죽순 생겨난 음원 유통업체들이 부당한 수익 배분율을 전제로 음원 가격을 책정하고, 불공정한 시장을 만들어 갈 때 미국은 전혀 다른 방향의 시장을 만들었다. 미국의 음원 시장을 만든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였다. 음악 애호가인 스티브 잡스는 '아이튠즈'라는 음원 유통 서비스를 구축하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음악 창작자에게 수익의 70%를 주고, 자신들은 30%만 갖겠다는 것이었다. 그 질서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고, 여전히 유효하다. 덕분에 미국의 음악가들은 고가의 비용이 드는 음반을 제작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독립적인 창작자가 음원을 만들고 유통해서 소수의 매니아들만 얻을 수 있더라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참 많구나... 하고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유통업체가 바꾸지 않겠다고 한다면 소비자가 직접 정당한 거래에 나서야 한다. 양질의 예술을 접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예술가가 양질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양질의 삶이 아니라도 최소한의 삶은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대철 씨가 만드는 '바른음원 협동조합'에 거는 기대가 크다. 설립이 완료되는 대로 나 역시 회원으로 가입하여 이 채널을 통해 음원을 구입할 생각이다. 이 협동조합의 설립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정의당의 의원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의원들도 다수 참여하여 뜻을 함께 했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어쩐지 진보의 정책인 것 같아 거부감을 느낄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런 정치적인 것들과는 무관한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신대철 씨의 협동조합과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대안은 있을 수 있다. 모쪼록,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거래를 위해 그런 새로운 대안들에 참여해주기를, 또는 그 대안들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지난 8년 전의 문제는 우리들 자신의 문제였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손으로 만화를, 음악을 공짜로 돌려 본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은 변했다. 정당한 댓가를 주고 예술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사이에 먼지 낀 필터가 끼어들었다. 잘못된 유통업체들이다. 그 필터에 끼어있는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필터를 끼운 이들은 스스로 그 먼지를 제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먼지를 제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필터를 없애거나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 지난 2006년에 쓴 글도 아래에 첨부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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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거래 (2006. 음악 웹진 '가슴' 기고글)
"저는 이 나라가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마왕(신해철)은 라디오 방송의 클로징 멘트로 위의 말을 한다. 나는 마왕의 의견에 심히 동감한다. 나 역시 가끔 이 나라가 미쳤다고 생각된다. 여러가지 미친 부분들이 많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어졌다.
'정당한 거래'에 대해서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꽁짜 공유가 활개를 치면서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는 '정당한 거래=경제관념 없는 바보 같은 짓' 쯤으로 프로그래밍 된 듯 하다. 피투피를 통한 공유가 활성화 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소위 '와레즈' 라는 사이트를 통해 음성적으로 게임이나 영화, 만화, 음악파일 등을 공짜로 이용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인가 대한민국 사람들(굳이 네티즌이라는 표현을 써서 애둘러 말하고 싶지 않다)은 마치 영화나 만화, 게임, 음악이 애초에 공짜로 배포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아무런 죄책감 없이 꽁짜로 그것들을 다운 받아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청렴결백한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아버지의 경제 그늘 아래서 지낼 때에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리어카 테이프만 구매했으며, 불법 복사 게임을 구입했었다. 그러나 내가 돈을 벌면서부터는 고가의 백신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정품만을 사용했다. 앞으로는 백신 프로그램이나 문서 프로그램도 되도록 돈을 모아서 정품을 구매하려고 생각 중이다.
내가 대한민국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나를 우습게 보는 사회의 시선 때문이다. 정말 미쳐버리겠다. 얼마전에 자우림의 6집 씨디를 사서 행복한 마음에 깡충거리며 듣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돈 아깝게 그걸 왜 사냐? 다운 받으면 되지. 너 돈 많냐? 라고 하는 것이다. 완전 기분 잡쳤다. 어떤 이는 인터넷 파일이랑 씨디랑 음질도 똑 같은데 왜 씨딜 사서 듣냐고도 했다.
너무나 황당한 것은 그렇게 말한 이들이 자칭 음악 애호가, 혹은 매니아(참고로 나는 이 표현을 몹시 싫어한다. 웹진 공지에 나를 웹진 마니아로 소개한 것을 보고 대좌절;)였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그들이 감히 음악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음악인을 생각하지 않는 음악 애호가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모차르트를 생각하지 않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생각하는 클래식 애호가가 있던가? 고흐가 어떻게 살다 죽었던가? 애드가 알렌 포가 그토록 수많은 명작을 남기고도 가난에 찌들어 죽지 않았는가. 예술은 중앙컴퓨터가 삐리비리빙해서 10초만에 프로그램으로 대량 복제해내는 것인가?
만화가는 단행본 한 권을 내기 위해 적어도 2~3명의 어시스턴트와 함께 6개월 정도는 꼬박 방에 갇혀서 나날을 보내야 한다. 6개월 고생해서 만화책 한 권 내면 500명 정도가 구입하고 3만명 정도는 대여점에서 보고, 4만명 정도는 인터넷 스캔본으로 보는 이 나라의 대단한 만화독자들이 한국만화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나는 도저히 꼴사나워서 못 보겠다. 6개월 중노동해서 고작 200만원 정도 푼돈 쥐어줘서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목숨이 왔다갔다하게 만들어 놓고 왜 좋은 만화를 못 그리냐니.
그 수많은 유망주들, 훌륭한 인디 음악인들이 못 먹고 못 자고 못 입고 해서 겨우겨우 만들어 놓은 음악을 따끈따끈한 방에 앉아서 손가락 놀림 몇 번으로 쓰윽 들어보곤 이 놈은 글렀네~ 라며 대단한 음악평론가 행세를 하는 이들이 한국음악계는 썩었다 라고? 실례가 안 된다면 당신의 집에 얼마나 위대한 음악인들의 음반이 소장되어 있는지 한 번 구경가고 싶다.
우리나라는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잘못되어 있다고 본다. 모든 예술가는 처음부터 완벽할 수가 없다. 예술가도 여느 사람처럼 성장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는 유기체이다. 진정한 예술 애호가라면 한 예술가가 자기의 뜻대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보일 수 있게끔 후원해주고, 여러가지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령, 나는 한국만화의 경우 100% 구입한다. 작품의 질이 좋으면 사고, 나쁘면 빌려본다는 태도도 나는 잘못되었다고 여긴다. 구매한 작품의 질이 나빴다면 내가 그 작가의 작품이 질이 좋아질 수 있도록 투자한 셈이 되고, 작품의 질이 좋았다면 내가 그 작가가 앞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꾸준히 창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셈이다. 웹진 같은 곳에서 평을 보고 마음이 가는 신인 만화가가 등장하면 단행본을 곧바로 구입한다. 단행본을 읽어보고 작가의 작품 세계가 마음에 들면 그때부터 나는 내가 이 작가를 후원한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그 신인 만화가와 나는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대면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관계로 관계맺음을 한다고 여긴다. 그 신인 만화가가 꾸준히 작품을 내고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는 마치 내가 그 만화가를 길러낸 것처럼 뿌듯함을 느낀다. 나에게는 그렇게 내 손으로 길러낸(?) 신인 만화가가 이미 3명이나 있다. 무릇 음악가와 청중의 관계, 문학가와 독자의 관계, 그런 모든 예술가와 예술 수해자의 관계는 수해자가 예술가를 보호하고 아껴주고, 예술가는 그런 예술 수해자들에게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보답하는 관계가 되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은 그러한 예술가와 수해자의 기본적인 룰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빌어먹을 돈을 거론하며, 어차피 대중 음악가나 만화가도 돈 벌려고 노래하고, 그리는 것 아니냐며 떠벌거린다. 부디 푼돈이나 벌게 해주면서 그 따위 말을 하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정확히 우리가 고딩 중딩 교과서에서 배운 천민자본주의에 다름아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얽혀 있다고 여기며, 돈을 떠난 가치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친다. 초등학교에서도 돈돈! 중학교 애들도 돈돈! 고등학교 애들도 돈!돈! 직장! 대학교에서도 돈!돈! 직장! 직장! 사회에서도 돈! 돈! 경제! 경제! 로또 로또! 정말 저는 이 나라가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글도 쓰고 음악도 만들며, 종종 만화도 그리고 있는데... 이 모든 예술이 그냥 몇 초만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6컷 만화 하나 그리는데도 색칠까지 다 하려면 포토샵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서너시간은 소비해야 한다. 노래? 노래 한 곡 만드는데 별다른 음향효과를 넣지 않는 나도 하루 종일 걸릴 때도 있다. 구상하는 시간까지 넣으면 시간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단편 소설 한 편 쓰는데 어떤 예술가는 목숨을 걸기도 한다.
그 모든 예술을 꽁짜로 하하호호 거리면서 즐기고 있는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그 예술작품을 만들어준 그 수많은 예술가들의 목숨을 하루에도 수 없이 싹뚝싹뚝 잘라내고 있는 것이다.
돈 많냐고? 제길, 나는 한 달 생활비 7만원 중에 아끼고 아껴서 음반 사고, 만화책 사고, 소설책 산다. 정 돈이 없으면 헌책방 뒤져서 책 산다. 제발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끼려고 하는 그 돈이... 그게 돈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목숨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만화와 음악 산업은 미안하지만 이미 죽었다. 곧 연극과 클래식 산업이 죽을 것이고 바야흐로 영화 산업도 죽을 것이며, 최종적으로 문학 산업도 사망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는 문화가 죽고 오직 돈만이 살아남아서 22세기의 한국인은 오직 돈 따먹는 놀이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06.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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