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세월호, 그리고 9시 등교
- 멀고느린구름
교황의 방문으로 지난 한 주가 치유의 시간이 된 분들이 많은 듯하다. 아마도 가장 큰 위안을 얻은 분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침몰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춘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유민 아빠가 단식에 돌입한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특별법을 제정하는 주체인 여당과 거대 야당(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가족들이 원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아예 안중에 없는 듯하다. 최근에 보도된 언론 어디에서도 두 정치 집단이 그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없다.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큰 실책을 범한 정부의 입장을 두둔해야 하는 여당이야 그렇다고 치자. 헌데 강력한 진상규명을 요청해야할 입장에 있는 거대 야당은 오히려 대학특례입학이니 의사자 지정이니 하는 유가족들이 전혀 요청하지 않았거나, 처음에 내용을 모르고 동의했다가 철회한 것을 여전히 자신들의 법안에 담아 요구하여 정부여당에게 공격의 빌미나 제공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동네 미용실에 가거나 택시 같은 것을 타거나, 혹 공공장소에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새정치연합에서 유가족들의 의사와 관련없이 내걸었던 피해보상 입법을 유가족들이 강력하게 원하고 있으며, 그것이 마치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 쟁점인양 오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이 내건 피해보상과 관련된 입법이 전혀 유가족의 의사와 관련 없는 것임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유가족들에게 오히려 사죄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분명히 다시 확인하자면 세월호 유가족 대표단체가 주장하는 것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정확한 진실 규명이며, 그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세월호 사건을 조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 멀리 이국의 교황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을 정작 우리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와 중에 또 최근에 교육자로서 놀라운 일이 있어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경기도 이재정 교육감이 추진하는 초중고 9시 등교에 대해 보여지는 부모 세대의 적의에 가까운 반발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혁신교육감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적으로 혁신을 내세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는 기현상이 일어났었다. 어느 지점에 포커스를 두느냐에 따라 해석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이나 대체로 세월호 참사를 목도한 부모들이 더이상 우리 아이들을 참혹한 교육환경에 둘 수 없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환경의 변화를 바라며 새로운 혁신 교육감들을 선출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응당 선출된 교육감들의 혁신안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호응들이 따르는 게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교육감을 선출했던 부모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고, 해당 교육감을 뽑지 않았던 부모들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어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정작 혁신을 선택했던 부모들은 반발하는 기세에 눌려 살짝 방관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재정 교육감의 9시 등교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물리적 학습 시간 감소로 인한 학력 저하, 둘째는 맞벌이 가정의 부담 증가다.
두 가지 중 첫번째 비난은 상당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우리가 지난 선거에서 혁신 교육감을 뽑은 것은 아이들에게 부과된 지나친 학습량을 조금 줄이고, 아이가 학창시절을 좀 더 행복하게, 소년소녀 시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지낼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나. 그것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현행 중학교의 수업 시작 시간은 9시이고, 고등학교는 8시 20분 ~30분 사이이다. 고등학교에 한 해서만 30분 수업이 늦춰지는 것이다. 사실상 학습시간의 변동률은 크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부모들은 어째서 7시부터가 당연한 아이들의 학습 시작 시간이라고 여기게 된 것일까? 이는 오래전부터 많은 비판이 가해져왔던 0교시 수업의 폐해다. 문제가 많았던 0교시 수업을 암암리에 계속 진행하니까 우리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마치 수업을 당연히 7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으로 세뇌를 받아왔던 것이다.
이런 때면 또 우리는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들춰보게 된다. 유럽 고교의 경우 대체로 8:00 ~ 8:30 사이가 1교시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미국 고교는 대체로 8:30 이다. 이런 사례를 들어 일부 부모나 교원 단체들은 선진국의 전례를 따라야 한다고 강변하곤 한다. 그럼 좋다. 선진국의 사례를 따르자. 유럽 고교는 하교 시간이 대체로 오후 2시 반에서 3시 사이. 미국 고교는 2시 반이다. 우리도 선진국의 사례를 따라 그렇게 해보자. 찬성하시겠는가? 아마 더 큰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하교시간은 오후 4:30 ~ 5:30 사이이지만 전 국민이 다 알다시피 실질적인 하교시간은 밤 9시 이후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하는 건 직업군인의 일과표지 학생의 일과표라고 사실 말하기 민망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도 참 옹색하다. 중학교는 수업 시작 시간이 원래 9시다. 수업 준비 시간을 다소 고려해도 8:40 ~ 8:50 정도까지 등교하면 충분하다. 직장인들의 일과 시작 시간도 대체로 9시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출근을 한다고 해도 별로 무리가 없으며, 중학생 정도라면 혼자서 등교를 하는 것에 아무런 무리가 없다. 설마, 중학생이 나이가 어려서 혼자 등교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하는 부모가 있다면 반대로 참으로 심각하게 우리 교육의 자화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학생이 이런 사정이라면 고등학생은 사실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준성인인 상태가 아닌가.
내가 재직하던 대안학교는 초중고 모두 일괄적으로 9시 등교를 오래전부터 시행해 왔다. 부모들로부터 등교 시간이 너무 늦다는 클레임을 받았던 적은 내 기억으로는 없다. 간혹 부모의 사정에 의해 아이가 30분 정도 일찍 등교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그때는 학교와 협의를 하여 당번 교사가 30분 일찍 출근하여 아이를 보살폈었다. 오히려 일괄적으로 등교시간을 과도하게 앞당기는 것보다, 아이들의 수면시간을 보장하고, 아침의 여유를 부여하는 차원에서 등교시간을 현실화하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보완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방안일 것이다. 이미 이재정 교육감은 부모와의 간담회 등에서 조기 등교를 하려는 아이들에게는 그에 따른 지원책이 여러가지로 마련되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경기도 교육감의 이번 9시 등교 안은 갑자기 고집 센 할아버지의 머리에서 뛰쳐나온 안이 아니라 여러 연구사례를 바탕으로 선진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안을 받아온 것이다. 최근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미국 고교는 아이들이 늦게 등교를 하는 것이 학업성취율을 고취하고 학교 폭력을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등교 시간을 점차적으로 늦춰가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관련 기사 보기) 미국에서 시행하는 다른 것들은 열심히 따라하면서 어째서 이런 것을 따라하면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 어른들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좀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9시 등교 정책에 대한 반대'가 꼭 9시 등교 정책에 대한 반대이기만 한 것일까. 그 속에는 정작 어른들의 온갖 불안이 투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아이만 성적이 나빠지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앞으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려면 지금 행복하기를 유보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오래 붙잡아두면 그만큼 성적이 더 오르는 게 아닐까, 아이가 게을러지면 어쩌나, 내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아이가 학교에 안 가고 딴 길로 세는 게 아닐까 등등등.
9시 등교와 관련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게시판 등을 살펴보면 대체로 당사자인 아이들은 대환영을 하는 분위기. 부모 세대들은 온갖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미리 앞서 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아이들은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고 표현한다. 그 소박한 꿈이, 꼭 우리 어른들이 좌절시켜야만 하는 꿈일까.
불안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세월호 참사를 만든 것도 결국 어른들이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른들의 일이다. 그런데 그 어른들은 아이들이 고작 하루에 1~2시간 행복해지는 것마저 두려워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이 하는 행위들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아이들이 자라나서 우리들을 과연 존중해줄까? 우리가 자신들을 위해 노력해줬다고, 자신들을 지켜주었다고 생각하게 될까?
글쎄, 전혀 아닐 것만 같다.
201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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