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혜 (출처: 시사in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23)




교육개혁, 과연 가능한가?

-금안당

 


 LIST 

 ⑴ 과연 공교육은 정상화될 수 있을까?

 ⑵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표준모델이 될 수 있을까?

 ⑶ 대안학교는 공교육의 대안이 아닌 비전이다! 

 

 

 

(2)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표준모델이 될 수 있을까?

 


2009년 혁신학교가 처음 경기도에서 도입되고 올해로 6년차를 맞고 있다. 그 동안 혁신학교의 수는 꾸준히 늘어 2013년 9월 현재 경기도에 227개, 전국적으로는 575개의 학교들이 혁신학교로 지정,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전국의 초중고에서 혁신학교가 차지하는 비율로는 5.3% 정도이고 경기도내 초중고 대비로는 12,4% 정도인 셈이니, 수치상으로 보면, 특히 경기도는 공교육의 표준모델 운운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하겠다.




 

이처럼 혁신학교가 어느 정도 확산된 지금 단계에서는 많은 학부모들이 혁신학교가 어떤 것인지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 혁신학교의 지정 절차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목적과 중점 추진과제에 대해서만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경기도 교육청이 제시하는 혁신학교의 목적은 1. 교육 정상화의 성공적인 사례/모델 창출 및 보급, 2.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으로 교육만족도 제고, 3. 교육 양극화 해소를 통한 교육복지 실현의 3가지이다. 그리고 중점 추진과제로는 체험교과 등 교육과정의 다양화("창의지성 교육과정 운영"), 수업연구 등에 있어서 교사들간의 협력과 교류("전문적 학습공동체 형성"), 교사들의 자발성과 교장의 권한 위임("자율경영체제 구축"), 그리고 인성교육과 공동체성 강조("민주적 자치공동체 형성") 등이 있다.

 

그렇다면 그 현실적 성과는 어떨까? 경기도내 혁신학교들만을 보면, 초기에 선정되어 이제 3, 4년이 지난 1, 2기 혁신학교들, 특히 도교육청에서 시범학교 등으로 내세우는 혁신학교들을 보면, 확실하게 나름의 성과들이 있어 보인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도 올 1월 초에 가진 기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혁신학교를 2년 이상 운영한 학교는 학생들의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줄어 들고 ‘보통 이상’ 비율이 늘었다. 혁신 고등학교에서도 학력이 높아졌다. 지금의 평가 방식에서도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혁신학교는 학생들의 지적 능력과 정의적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하고 있으며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를 좋아한다. 또한 학교문화가 바뀌어 학생·교사의 소통이 활발해지고 교사·학부모의 협력 관계가 증진되는 변화가 나타나 아이들의 창의성, 상상력이 길러지고 있다."고 혁신학교의 그간 성과를 평가했다.

 

말하자면 그간에 권위적이고 경직될 뿐 아니라 폭력적이고 경쟁적이며 성적 지상주의적인 학교 혹은 학교문화만이 지배적이던 상황에서 좀더 민주적이고 협력적이며 다양한 교육과정을 실험하는 학교들, 소위 말하는 '학교다운' 학교들이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물론 혁신학교로 지정된 지 아직 1, 2년차인 학교들은 혁신학교 관계자들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아직 일반학교와 큰 차이가 없고', 혁신학교의 운영과 교육활동을 소화할 수 있는 인력(교장과 교사진)이 부족함에도 혁신학교 지정이 자꾸 늘어나는 상황, 예산 지원으로 어느 정도 보완이 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혁신학교의 본래 취지가 제대로 살려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들의 크나큰 헌신이 요구된다는 점, 뿐만 아니라 예산 지원 자체가 한시적이라는 점 등에서 볼 때, 혁신학교 제도의 장기적 전망을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혁신학교 관련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읽으면서, 혁신학교의 현장 모습이 어떤 것일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어찌 보면 혁신학교는 공교육이 무너지기 전의, 우리 기성세대들이 다니던, 그런대로 정상적이던 학교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일반 비혁신학교들에 비해 시험이 줄고 왕따나 학교 폭력이 감소하고,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 상호간만이 아니라, 학생과 학생 간에도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일정정도 조성되고 있는 모습은 그런 느낌이 들게 한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에서도 나타나듯이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의 성격이 20~30여년 전의 권위주의적인 그것과는 다르고, 혁신학교가 강조하는 학부모들의 적극적 참여도 학부모들이 학교 일에 관여하거나 참여하기보다는 학교와 교사를 믿고 맡기던 예전 학교의 풍토와는 달라보인다. 이 때문에 혁신학교의 모습을 공교육이 무너지고 교실이 무너지기 전의 예전 학교의 모습과 비교하는 건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또 어찌 보면 혁신학교는 대안학교들의 초기 모습과도 닮아 있는 것 같다. 몸으로, 체험으로 배우는 학습을 강조하는 것도 그렇고, 일반학교에서는 흔히 소외되는 기초학력 미달학생이나 ADHD끼가 있는 학생들을 배려하고 나아가 학생 한명 한명에 대해 최대한 맞춤교육을 해주고 싶어하는 교사들의 헌신이 그렇고, 교장이 거의 전권을 가지고 학교 운영을 하는 일반 학교들과 달리, 교장이 교사들에게 교장의 권한을 상당 정도 위임하는 측면이 그렇고, 학교 운영과 교육 활동 등에서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을 유도하는 노력 등이 그런 것 같다.  혁신학교가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학교 문을 닫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가 교장과 교사, 학부모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학교상을 세운 남한산초등학교를 모델로 하고, 중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특성화 대안학교로 인가 받은 이우학교를 모델로 하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나 남한산 초등학교나 이우학교가 비록 공교육학교의 하나라 해도 전적으로 단위학교(그 구성원들)의 자발성, 다시 말해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에 근거해서 이루어진 대안학교적인 성격이 강한 것에 비해, 혁신학교는 신설학교의 경우조차 혁신학교라는 교육개혁정책의 일환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이 병존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의 핵심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대안학교를 설립할 때는 관련자들이 모여 백지상태에서 학교의 목적과 교육철학 등을 세워가기 시작한다. 반면에 혁신학교는 이미 목적과 철학, 방향성 등이 정해져 있다. 또 법적 행정적 지위로 말하더라도 혁신학교는 애초부터 제도권 학교 중의 하나로 설정된다. 반면에 대안학교는 제도권으로 할지, 비제도권으로 할지 미리부터 정해진 바가 없다. 왜냐하면 초창기 대안학교들은 '대안학교'라는 학교 형태가 각종학교 중의 하나로 초중등교육법에 규정되기 전부터, 말하자면 법제화되기 전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특성화학교는 1998년에, 그리고 대안학교는 2006년(실제로는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된 2009년)에 그 학교 형태가 법제화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미인가'로 존재하던 대안학교들 중 '인가'를 받아 특성화학교나 대안학교가 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후에 설립된 미인가 대안학교들도 '인가' 조건에 맞추어 학교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혁신학교가 대안학교와 형태상 유사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혁신학교를 대안학교와 혼동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준거점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혁신학교가 미인가 대안학교들을 포함하여 대안학교들을 벤치마킹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긴 하지만, 내가 대안학교 저작권자도 아니고 이걸 가지고 시비 걸 생각도 없거니와, 오히려 아이들 교육에 도움 되는 대안학교적 성과들이 있다면, 그게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혁신학교의 성격을 규명할 때 살펴봐야 할 요소로는 제도권 학교라는 틀 내에서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개혁을 실험하는 외국의 사례들이다.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쪽)는 스스로를 프랑스와 핀란드의 '프레네 학교'와 독일의 헬레네랑에 학교와 '발도로프 학교', 덴마크의 자유학교 등과 같은 흐름 속에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유럽 같은 경우, 이런 학교들은 제도권(공교육) 학교 들의 보편적 모델의 하나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니 혁신학교를 공교육의 표준모델로 안정시키고 확장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보면 유럽 교육 현장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혁신학교의 장기 전망을 낙관하고, 현재의 혁신학교 운동에 기운을 북돋우는 주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혁신학교들과 유럽의 '혁신'학교들이 비슷하다고 하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학교들이 놓여 있는 정치 사회 문화적 배경이 너무 다르고, 100여년의 긴 시간 끝에 이루어진 유럽의 '혁신'학교들에 비해 우리의 혁신학교는 그 역사가 기껏해야 4, 5년밖에 안 된다는 점에서  역사적 경과가 너무 다르며, 또 하나, 사회가 인정하는 교육의 효용성이 너무 다르다. 말하자면 유럽에 비해 우리나라는 대학입시의 성공 여부가 교육의 효용성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되고, 혁신학교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이 때문에 혁신학교에 대한 비난 중에서 '혁신학교에 다니면 학력이 저하한다'더라는 비난만큼 음훼적이면서 효과적인 공격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감이 곽노현에서 문용린으로 바뀌고 나서 나온 이 비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그 역사가 워낙 짧아(길어야 1년 반 정도) 혁신학교 전과 후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만한 통계치가 쌓일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직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문제는 일부 보수의 이런 억지스런 주장에 혁신학교 관계자들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성적이 떨어졌다', '아니다, 도리어 약간이라도 성적이 올랐다'는 식의, 도토리 키재기같은 논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논쟁의 양 당사자가 처해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교육상황을 반증해준다고 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중산층 학부모들은 학교의 교육환경과 수업방식이 혁신적인가 아닌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또 일부 보수의 주장처럼 설사 혁신학교를 이끄는 교사진이 전교조 교사들이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학교와 교육과정이 혁신이든 아니든 학교가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을 주는 것, 전교조 소속이든 아니든 교사가 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산층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대해 바라는 것은 꿩도 먹고 알도 먹는 것, 혹은 어부지리를 얻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산층 부모들은 혁신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이사까지도 불사하지만(새로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주변 아파트 전세값이 오른다), 단, 조건이 있다. 혁신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성적이 떨어지거나 시험에서 불리해지는 건 안 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급 혁신학교가 잘 확산되지 않고 초중등 혁신학교보다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혁신학교들은 '수업방식'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면서 60,7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90년대에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한 열린교육이나, 일본 공립학교들에서 실험되고 있는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 를 혁신학교의 주요 수업 모델 중 하나로 삼으려 한다. 강제적이고 반복적인 주입식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배움을 정말로 자기 것으로 가져갈 수 있는 살아 있는 수업, 그리고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수업을 경험할 기회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시도는 좋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한 초등학교의 배움중심 수업 참관 행사


 

그런데 혁신학교의 수업 방식 개선 시도에는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두어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새로운 수업방식을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에너지와 헌신, 심지어는 창의력까지도 너무 많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육이란 건 어떤 경우에도 그 성과가 쉽게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어서, 이 새로운 수업방식의 타당성을 확인하려면, 장시간에 걸쳐 교사들의 혁신적인 에너지가 계속 투입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교사들이 애써서 개발한 이 새로운 수업방식이 반드시 더 나은 시험 성적, 더 높은 대학 진학률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쩌면 인성교육도 되고 수험공부도 되는 식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 혁신학교의 새로운 수업방식은 예전의 열린교육처럼 학부모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교사들만의 실험실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혁신학교를 통한 공교육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한 만큼 아직은 안정적이지 않고 유약하다. 게다가 아래로부터의 개혁만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측면도 함께 가지고 있는 혁신학교운동은 아무래도 '정치적인 상황'에 좌우되는 측면이 크다 할 것이다.

 

이는 소위 진보 교육감이었던 서울시의 곽노현 교육감이 물러나고, 보수적인 입장의 문용린 교육감이 교육감직을 계승하면서 서울형 혁신학교들에 생기고 있는 변화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안 그래도 서울형 혁신학교들은 그 연륜이 짧아서 이렇다 할 성과를 말하기가 아직 어려운데, 이미 4년간의 혁신학교 실험을  약속받은 학교들에 대한 지원조차 줄이거나 철회할 기세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의 지자체 선거에서 혁신학교를 지지하는 새로운 교육감이 당선되지 않는 한, 서울형 혁신학교 흐름은 자연 쇠퇴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소위 진보 교육감들이 연임하면서 서울보다 훨씬 더 긴 시간 혁신학교를 실험할 수 있었던, 경기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혁신학교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추세에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사례에서 볼 때, 관내 교육기관들의 수장인 교육감의 정치적 색체가 변해도 이런 추세가 계속 유지될 만큼 뿌리의 지지력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게다가 중앙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육부 또한 혁신학교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결국 서울처럼 다른 지역들도 혁신학교의 지속 여부는 혁신학교 자체의 동력보다는 어떤 입장을 가진 교육감이 당선되느냐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물론 역으로 혁신학교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를 유권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선거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년여 동안 이룬 서울시정의 성과를 서울시민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6월의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의 재선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직선제 방식의 교육감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올 6월에 있을 교육감 선거는 지금으로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실정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혁신학교 제도가 새로 선출되는 교육감의 정치성향에 따라 풍전등화의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혁신학교를 보고 이사까지 감행한 경우를 포함하여 직접 관련되는 학생 수만 해도 적어도 몇 만이 되는데 말이다.  만약 경기도의 새 교육감이 서울시의 문용린 교육감처럼 혁신학교를 비호감으로 여겨서 전 교육감이 혁신학교들과 맺었던 약속(혁신학교 지정 후 4년 간의 재정지원 등)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린다면?

 

사실 이런 일은 전자본주의적인 봉건국가나 독재국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대단히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민주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현대사회에서는 리더나 오너가 바뀌더라도 채무와 권리, 사업의 연속성이 유지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새 리더나 오너가 굳이 자기 식의 사업을 하고 싶다면, 그 전에 맺은 계약의 파기에 대해서 위약금을 지불하거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이런 게 현대사회의 상식이고 정상이며, 이렇게 해야만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이런 상식을 잘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예전에 성남시장이 당선되고 나서 이전 시장이 진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며  모라토리움(지불유예)을 선언한 경우가 그렇고, 서울시의 새 교육감이 약속했던 기간 내에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재정 지원은 축소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여 서울시 의회와 예산 갈등이 격화하는 현재상황도 그러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정권에 따라, 또 교육감의 정치색에 따라 추진하는 교육정책이 다를 뿐만 아니라, 한 번 생겨난 교육제도나 교육정책도, 설령 그런 제도나 정책이 법률이나 조례로 확정된 것이라 해도, 또 성과가 어느 정도 확인된 것이라 해도, 지속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데 국가의 백년지대계여야 할, 우리의 미래세대를 키우는 교육이 이렇게 조석변개하면, 엄청나게 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뿐 아니라, 그 피해자의 다수가 우리의 미래세대여서 나라의 장래조차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제 이 글의 제목으로 표현되었던 질문, 즉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표준 모델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답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혁신학교가 공교육의 표준모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교육이 이렇게나 정치에 휘둘리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새로운 학교 유형인 혁신학교가 공교육의 '표준모델'로까지 되려면, 혁신학교를 지지하는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그것도 장기적으로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특정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계속 당선되는 경우에도 혁신학교의 지속성이 보장될 수 있는데, 이 때는 초중등학교는 그렇다치고 혁신고등학교가 공교육의 표준모델에서 얼마나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가를 장담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혁신학교 관계자들도 인정하듯이 고등학교는 입시제도에 직접적으로 제한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혁신고등학교라 해도 대다수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입시 공부에 목을 매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혁신학교로서의 취지를 살리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진보교육감들이 혁신학교 정책을 초등학교로만 한정했더라면 결과가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개혁의 범위가 초등학교만으로 한정되어 좁아지는 측면은 있지만, 오히려 그 취지가 더 충실하게 구현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혁신학교에 대해 학부모들이 이사까지 불사하는 등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초등학교의 경우이다. 그에 비해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반신반의하는 측면이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입시공부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혁신학교 정책을 초등학교로만 국한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의 초등학교들을 혁신학교로 지원할 수 있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혁신학교가 어느 정도 대세화되어, '혁신학교의 주도 세력'은 전교조 소속 교사라느니, 비혁신학교에 대한 역차별이라느니 하는 비난이나 오해, 원성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별 학교들에 대한 교육청의 지원 방식도 좀더 집중되고 체계화될 수 있어서 수업방식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새로이 만들어내야 하는 교사들의 노고도 어느 정도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내가 초등혁신학교의 일반화라는 이런 상상을 하는 건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상황을 생각할 때,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혁신학교 같은 학교들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인성교육'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필요하고, 더 효과도 크다. 그리고 경쟁을 줄이고 협력 수업 등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심을 키우며, 체험 수업 등의 살아 있는 수업으로 삶과 배움을 간극을 좀이라도 줄이고자 하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권위적이지 않은 혁신학교 문화는 어린 학생들의 인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초등혁신학교 문화에서 자란 아이들 다수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한다면, 그 중고등학교들이 혁신학교가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경쟁적이고 이기적이며, 어찌 보면 공격적이기까지 한 중고등학교 분위기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을까? 혹은 초등혁신학교를 경험한 아이들의 요구에 맞추어 중고등학교들도 혁신학교화하게 되지 않을까? 또 이런 식으로 좀더 자연스럽고 순탄하게 혁신학교 운동이 확산된다면, 혁신학교를 둘러싼 마찰음도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정치적 입장이 다른 쪽이라 해도 아이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교육방식을 쉽게 바꾸거나 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자, 나의 상상은 여기까지!  아마도 나의 이런 상상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할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나의 결론은 이런 상상 속의 혁신학교에 견주어볼 때 현실의 혁신학교가 앞으로도 계속 확산되어 공교육의 표준모델로까지 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혁신학교가 여전히 안정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데는 위에서 말한 정치적 측면만이 아니라, 혁신학교 주도 세력들의 성급함과 성과주의도 한 몫을 한 것이 아닐까란 의구심이 일긴 하지만, 혁신학교의 역사가 아직 일천한 마당에 과도한 탐구는 자칫 주관적 해석을 낳을 여지가 커서 이에 대한 탐구는 생략한다는 점도 덧붙여둔다.

 

 


날짜

2014. 1. 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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