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당히 답안지를 본다

- 봄비(파주자유학교 교사)

 


우리 학교는 1학년이 되면 수학 공부를 아이 개별 속도대로 할 수 있게 제작한 수학카드라는 것을 한다. 우리학교에서 하고 있는 수학카드는 이해하기 단원으로 시작해 기본과정, 심화과정, 테스트 과정. 단원정리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작은 소단원이 기본적으로 5개 또는 6개 많게는 8개까지 세분화되어 이것을 모두 풀어내고 마쳐야 대단원 1을 끝내고 대단원 2에 진입할 수 있다.


이 구성을 얼핏 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페이지 몇 장을 넘기다 보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님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또한 수학 수업 시간에는 획일적이고 일방적으로 교사 혼자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게 될 경우 선생님에게 1:1로 질문을 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이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연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학카드는 테스트와 단원 정리 부분을 제외하고 밑에 답안이 함께 인쇄되어 있어 아이들이 스스로 답을 맞추어가며 풀어볼 수 있게 작성되어 있다. 내가 직접 해결하고, 생각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있는 혹은 묻어갈 수 있는 수업이 절대 아니기에 아이들은 때때로 긴장하고, 힘들어하며 좌절도 한다. 이 방식이 익숙해지면 아이들은 수학이라는 단일 과목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수학카드를 하는 것처럼 오로지 자신의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특히 타인의 시선, 타인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아이들의 경우 수학카드를 하면서 자신의 것, 자신이 집중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도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런 수학카드를 파주자유학교 1학년들은 입학과 동시에 개학 주간을 마치고, 학습 시작일이 되면 각자에게 준비되어 있는 수학 카드 1-1-1 단원을 한명, 한명 앞으로 나와 박수를 받고, 책을 받는다. 그리고 바로 수업에 몰입한다. 처음 접해보는 수업 방식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지만 이제 공부하는 것 같다,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무조건 다 아는 거라 하루에 1권씩을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하며 수학이라는 학문에 발을 담근다.


1학년이기에 자신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의 속도가 어떤지 어느 기간 동안 내가 1단원을 마쳤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함께 시작한 옆 친구가 지금 어느 단원을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옆 친구의 속도에 자신감을 얻는 친구도 있고, 자신이 분발해야겠다고 느끼는 친구도 있으며 끊임없이 경쟁을 하는 친구도 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다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와 남을 비교하고, 옆 친구 진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1년 하고도 2학기를 지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내 진도에 만족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지금 잘 하고 있다고 격려와 칭찬을 받아도 본인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그 친구의 빠른 진도를 인정하지 못 하고 그 친구가 단원을 마칠 때 마다 울고, 새 수학카드를 받는 친구에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도 하며 다음 단원을 준비한 교사에게 매번 너무하다고 원망을 하기도 한다. 아직은 내 진도 보다는 친구의 진도가 신경 쓰이는 이 친구가 얼마 전에 숙제를 해왔는데 밑에 답안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모든 문제에 답안지의 답을 보고 써왔다.


우리 수학카드 문제 중에는 자신의 생각을 묻는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라고 묻는 문제들이 있다. 답안지에는 ‘생략’이라고 적혀있는데 그 친구는 급한 마음에 답에다가 ‘생략’이라고 모두 적어왔다. 한 문제가 아닌 한 페이지를 몽땅 생략이라고 깨알같이 적어왔다. 그래서 아이에게 ‘생략’이 뭐냐고 물었더니 “답이 생략이에요.”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나는 그렇게 순수하게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처음이기도하고 답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그 아이가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에게 생략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스스로 풀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그렇게 한번 봄비와의 작은 전쟁을 치른 후 문제를 잘 풀어내어 ‘잘 하고 있다’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며칠 후 내어 준 분량보다 많은 양의 숙제를 해 와서 채점을 하는데 답안지에 오답으로 기재된 답을 똑같이 써 온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또 물었더니 아이는 당당하게 “밑에 보고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아니, 봄비 밑에 이렇게 나와있어요.”라고 말하며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낸다. 그래서 틀린 답이라고 다시 해야 한다고 또 작은 전쟁을 치렀다. 그리곤 굳게 약속하였다. 답지를 보지 않고 풀어내는 것이 진짜 실력이라고 그러니 너의 속도를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수학을 하자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오늘 수학 시간에 하필이면 그 친구가 라이벌로 생각하는 아이가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게 되어 진도를 마친 아이는 좋아라 펄쩍 펄쩍뛴다. 그 아이의 노력을 알기에 교사는 아낌없는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라이벌로 생각하는 아이와 눈을 맞췄다. 그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흥, 너무해요”라고 하며 자신의 수학 문제를 읽고 또 읽으며 풀지 않고 읽기만 한다.


5분이 흐르고 나는 아이가 혹시라도 주눅 들었을까봐 아이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아이가 바쁘다. 책장을 막 넘긴다. 그리곤 무엇을 찾는다. “뭐 찾아?”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원래 기본이랑 심화는 뒤에 답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답지가 없어요.”라고... 나는 순간 아이를 야단쳐야하는 상황임에도 그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곤 아이에게 “진도가 빨리 나가고 싶어? 왜?”라고 물으니 아이는 대답한다. “○○이가 수학 빨리 하는 게 싫어요.”라고 그래서 또 물었다. “그럼 너도 답지 보지 말고 열심히 숙제를 해오면 될 텐데 그럼 진도가 빨라 질 텐데...” 라고 했더니 아이는 또 대답한다. “아니, 집에서는 시간이 없거든요. 내가 조금 바쁘거든요”라고 대답하고는 쌩하니 나간다.


수학 시간에  마치지 못 한 문제를 점심시간에 마주 앉아 보충을 한 후 아이를 꽉 안아주며 이야기 했다. “신경 쓰지 말아라, 너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고, 너의 진도가 느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 너도 훨씬 더 잘하는 것이 많잖아”라고 이야기 했더니 냉큼 나의 말을 받아 “그렇긴 하네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오늘도 숙제를 받아 갔다.


나는 이런 대답을 하는 이 아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찌 이렇게 순수하게 하나를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지, 때론 안타깝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느끼는 날이 오겠지... 라고 바라보며 아이와 나는 오늘도 답안지를 보고 할 것이냐 스스로 풀 것이냐를 두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내일 수학 시간을 기대하며...


2015.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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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1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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