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바람

- 봄비(파주자유학교 교사)


 

며칠 전 1학기의 마지막 과정, 들살이를 다녀왔다. 봄 들살이는 가을 들살이와 다르게 행복한 과정 아이들 전체와 선생님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바라보며 관계를 밀도 있게 나누는 자리이기도 하고, 새 학기 시작 후 두 달간의 생활을 하며 서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혹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봄 들살이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드디어 떠나는 날 아침. 너무 일찍 길을 나서는 바람에 8시 20분쯤 대화역에 도착했다. 그 때 길가를 보니 아무도 있지 않은 것 같아 커피를 한잔 마시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기다리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집결 시간이 다 되었고, 아이들과 만났다. 학교에서 만날 때와는 달리 들떠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방긋 웃으며 아이들은 나를 맞이해준다.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치고, 차에 올랐다.


아이들은 시끌벅적하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여행을 즐기는 친구도 있지만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는 아이도 보이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아이도 보인다. 엄마랑 떨어지자마자 엉엉 우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차가 출발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마음을 추스른다. 그렇게 38명이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누며 2박 3일을 지냈다.

 

이번 봄 들살이는 공간을 이동하지 않고 한 공간에서 3일을 지내기로 했다. 아이들은 즐거워보였다. 짐을 풀고, 안전 규칙을 듣자마자 마당으로 뛰어 나온다. 차에서 내려 식사한지 몇 분 되지 않아 개울물에 몸을 담구고, 흠뻑 몸을 적신 친구부터 손만 담갔다 빼는 아이도 보이고, 돌만 계속 던지는 아이도 보인다. 어떤 아이는 물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교사 옆에 앉아 수다만 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니 평화가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놀고, 자유롭게 모든 공간을 탐방하며 지냈다. 새로운 곳을 발견하면 꼭 달려와 그 공간에 대해 설명하고 함께 가서 탐방하며 3일을 보냈다.

 

놀며 쉬며 보내는 중에도 우리의 봄 여행 주제를 잊지 않고 내 마음을 따라 나를 찾는 작업을 했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깊게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한 명씩 돌아가며 마음공부를 할 때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이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코끝이 찡해질 만큼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이야기 해주는 녀석들이 기특했고, 고마웠다. 한 녀석, 한 녀석 이야기 할 때마다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내가 그 동안 보았던 모습이 극히 일부였음을 또 느끼게 되었다.

 

참,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아이들은 편안하게 받아드리며 해냈다. 훌륭하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그때 말하던 아이들의 눈빛과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의식적으로도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고맙다. 얘들아.



그리고... 나와 1학년을 함께 출발한 한 녀석이 내 곁에 오더니 말한다. 이번이 봄비와는 마지막 여행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 나와 1학년을 함께 한 아이들이 5학년이 되었다.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던 기수의 아이들이었다. 어설프고, 힘들었던 나에게 힘을 주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깊숙이 뿌듯함을 가득 담고 있던 나에게 그 녀석의 한 마디가 나를 많이 울렸다. 나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 그리고 나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한 아이들. 정말 고맙다. 너희들의 성장이 나는 진심으로 반갑다. 그래서일까. 이번 봄 여행에서는 얼음 같던 긴장도 있었지만 그 얼음을 녹여주는 따뜻한 봄바람도 함께 있었다.


마지막 날 아침은 나에게 따뜻한 봄바람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 혼자였다면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여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마음, 추억들 잊지 않고, 더 많은 추억을 쌓으려 노력할 것이다. 

 

내일이면 2학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봄 여행에서 쌓고 털어놨던 마음속 이야기들을 잊으며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하고 있기에 언제든 꺼내 놓을 수 있다. 그 깊고 깊은 서로의 마음들을 헤아리며 힘차게 2학기를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얘들아, 자~~알 지내보자꾸나!!


2015. 5. 5. 



날짜

2015. 5. 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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