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한번 열리는 파전(파주자유학교 전체회의)시간.
회의과정에서, 금안당께서 지난전체회의때 조직된 학생들의 기구인 갈조위(갈등 조정 위원회)가 활동을 잘 해왔으니 앞으로 전체회의 진행도 맡겨보는게 어떨까를 제안하셨는데 멀고느린구름이 반대의견을 냈고 이어서 그 의견에 관련한 이견토의가 있었다.
다음 안건인 작은 문화제준비건에서, 금안당이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로 하되 꼭 2인이상이 조를 이루어서 발표하도록 형식을 갖추자고 제안했고 이부분에서 멀고느린구름은 그렇게 조를 구성시키는것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약간의 토의과정을 거치다가 brain storming방식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식으로 마쳤다. 그런데 끝날무렵 다음번 회의때 논의할 미결안건을 공지하자 행복한과정 아이몇명이 소근거린다.
"구름하고 금안당하고 또 싸우는거 아냐?"
헐~, 어린아이들은 반대를 갈등으로, 토론을 싸움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래 그건 무리는 아니다. 나또한 교사생활 초기에 전체회의에서 똑같이 반응했었다.
내가 나름대로 의견을 얘기했었는데 어떤교사가 내 얘기에 반대를 한다면서 반박을 하는데 얼마나 당황스럽고 긴장이 되었는지 모른다. 할말이 있으면 교사회의때 조용히 얘기하면되지 어떻게 학생들앞에서 저렇게 노골적으로 반대생각을 드러내야만 하는건가, 그렇게 받아들여져서 은근히 화도 났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 우습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훈련이 완전히 체득된건 아직도 아니다. 아마 유교적 전통과 유신독재하라는 성장환경, 그리고 기술위주의 외골수적인 삶의 여정에 민주시민으로서의 훈련과정이 거의 없었으니,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아마 그래서 2년전에 프랑스여행중에 만난 학교경험이 신선한 충격으로 남은것 같다.
우리가 방문한 학교는 Lycee Auto-gere 라는, 이를테면 자율경영학교인데 학생과 교사가 공동으로 학교의 모든것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때 한국에서 온 대안학교친구들과 회의를 하고싶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였고 거기에 모인 교사,학생들과 2시간여에 걸친 인상깊은 회의를 하게 되었다.
각자소개를 돌아가면서 하고 안건을 토의하고 진행을 하는 과정에서 모두들 어떻게 그렇게 진지하고 열린자세로 임하는지 무척 신기했다. 다른 의견이나 반대나 질문등 모든것들이 수용적으로 이루어 질수 있으려면 이런 분위기어야 하겠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자자학교시절 프레네교육을 하시는 두분 장노엘과 프랑콤선생님께서 학교를 방문했을때는 더 놀라운 모습을 목격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의 교육과정과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시면서 두분은 끊임없이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방문을 마친 두분과 함께 임진각을 가는동안 차에서도 계속 무슨 대화를 하셨는데 동행한 불어통역샘 왈, 두분은 모든것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도 동의된것이 없이 하루종일 저렇게 다른 의견을 나누시는 것이라고. 그건 나에게는 놀라움이었다. 나같으면 저사람하고는 말이 안통한다면서 포기했을 터였다. 프랑스혁명등 오랜세월의 투쟁을 통해 확립된 똘레랑스의 정신을 보는 듯 하였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프레네(Freinet)교육의 신봉자가 된것 같다. 프레네교육은 "생명이 있다 : Life is"라는 철학으로 출발하여 "민주시민이 되기"를 목표로 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우리학교의 자연,자유,자립과도 일맥상통하는 철학이라고 보여진다. 물론 민주적 삶의 태도가 깊숙히 상식화된 그곳사회와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가 선전도구로 이용되는 작금의 우리사회는 출발선이 다르지만 그런 토양의 차이를 감안해볼때 우리학교는 훌륭한 민주주의 훈련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자퇴생 학부모 몇분들이 모여서 입학금등의 반환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벌여 온 일련의 일들을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온다. 요구자체가 정당하지 않다는것은 입학할때부터 주지가 되어서 본인들도 알고 있다고본다. 문제는 옳고 그름 이전에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한 행위들에 있다. 온세상에 공개된 싸이버공간상에 확인되지도 않은 소문들에 추측과 막말을 덧붙혀서 학교를 훼손시키려는 것이 결국 제얼굴에 침밷기라는 것을 정말 모를까?
민주적 의사소통은 존중, 솔직함, 다양성의 인정, 적극적인 문제제기등 성숙한 태도를 전제로 하는데 그것이 지켜지지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감정적 소란인것 같다.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느낌, 질투, 수치심, 자존심, 불안 등등. 올초에 호텔과의 분쟁에서 겪어보았듯이 사리사욕과 권모술수가 장애요인임은 말할것도 없고. 일단 감정의 동요에 휩쓸리면 논리는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의 도구로 전락하고, 결국 나중에 후회할 불익을 모두에게 초래하는 경우를 이번에 또다시 겪고 있는것 같아서 안타깝다.
대안학교는 제도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열악함때문에 교육환경으로 불안정하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 면도 있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사람의 삶은 기본적으로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욕망과 생각과 성향과 그로인한 갈등의 모습들. 그러니 뒤집어보면 오히려 대안학교는 사람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접하면서 한발한발 성장해가는 진지한 교육현장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학교의 하루하루는, 자유로운 환경속에서 자신의 자연스런 모습으로 지내고 거기서 발생하는 갈등과 문제상황들을 인식하고 해결해가며 서서히 민주시민이 되어가는 과정, 즉 자립을 향해 가고 있다. 학생도 교사도 부모도, 모두함께.
이번 자퇴생 학부모들 사태는 학교에 적지않은 피해를 주었지만 자신들의 비상식적인 행위에 대한 자각을 바로하고 대화의 장으로 들어와서 오해와 섭섭함을 풀어내면 그간의 모든과정을 성장의 진통으로 받아들일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되어야 모두가 win-win을 하는, 삶속에서의 교육이 아닐까.
오늘 2,3학년 영어수업에서 무지개색에 각각 해당되는 여러과일을 소개하는 동화책의 끝에 나온 한마디를 소개하려 한다.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의 여러 피부색이 무지개처럼 공존할때 세상은 더 낳아진 곳이 될거라고. 이 단순한 말이 가슴에 와닿는것은 이번사태로 인한 실망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확립된 사회는 결국 소통과 공감을 통해서 이루어질것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민주시민 되기"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수 없는 대안교육의 존재이유일것이다.
2012. 11. 29. 파주자유학교 교사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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