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이 없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큰 컴플렉스였던 여인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열심히 눈썹 화장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여서도 여인은 남편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서 눈썹을 그리고, 남편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며 화장을 지웠습니다.

그런 생활이 힘들기는 하였지만 눈썹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남편이 보는 것이 더 두려웠습니다.

혹여 자신에게 실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요.

그러다 남편이 하던 사업이 실패를 하게 되어 여인과 남편은 연탄을 파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여인은 눈썹이 없다는 사실을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썹 화장하는 일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연탄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겨울이었지만, 높은 비탈길을 수레를 밀며 오르자니 얼굴에는 땀이 흥건하였습니다.

남편은 잠깐 쉬어가자며 수레를 멈추고는 여인에게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여인의 얼굴을 닦아주었습니다.

남편은 아주 조심조심 여인의 얼굴을 닦아주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여인의 눈썹은 건드리지 않았답니다.......

 

아주 오래전, 행복한 TV동화에서 보았던 내용입니다.

여러 편의 이야기 중에서도 유독 그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 때 참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긴 시간이 흘러 파주자유학교의 교사로 살고 있는 그 어느 날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는 그 때와는 사뭇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야기 속의 남편은 언제부턴가 여인의 눈썹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여인이 그 사실이 부끄러워 애써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인을 사랑하는 남편은 여인을 배려하여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남편은 여인의 선택을 존중해주었습니다.

이 사연이 행복한 TV동화로 제작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파자의 철학은 그 보편성과 거리감이 있기에 어떨 때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이해하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여인이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라면....이라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아마도 교사들은 눈썹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에서 놓여나고, 두려움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들이는 에너지를 자신의 성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지도했을 것입니다.  

말은 이토록 간단하지만 사실 이 과정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게 된 확신 - '눈썹이 없는 나를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을 거야' 라는 그 확신은 자신의 삶을 지탱해나가는 무의식 속의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념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것을 놓아버리는 일은 마치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깨부수어야 할 것같은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리에 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파자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신념에 도전^^을 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더 웅크리며 교사들을 피해다니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나 좀 내버려두라고 교사들에게 대항하기도 합니다.

남편과 같이 배려해주는 행동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교사들의 이러한 도전은 때론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자신을(내 자녀를) 미워하기 때문에 혹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파자 교사들은 계속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파자 학생들이 두려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놓여나는 자유를 배울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태평양 건너 저 멀리 있는 알바니 프리스쿨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 출 수 없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2011. 10. 9. 파주자유학교 교사 나팔꽃 

날짜

2012. 11. 2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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