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홍보할 수 없다 




나는 왜 파주자유학교 교사가 되었나 


  2006년 겨울 처음으로 문산 내포리에 있는 '행복한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불교귀농학교 졸업 동기였던 노을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었습니다. 처음 나팔꽃 선생님과 만나 보조교사 채용 면접을 보고 거의 그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나팔꽃 선생님과 나눈 세상과 삶, 그리고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저에게도 무척 훈훈했던 것으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2007년의 한 해, 2008년의 반절을 학교와 함께 했습니다. 청미래학교와 합쳐져 파주자유학교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도 함께 했습니다. 군복무를 위해 떠나야 하는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중학생 무렵 가족간의 이별, 해결되지 않는 가난, 학교에서의 따돌림, 학업 부진 등 겪을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사건이란 사건은 다 겪고 난 후 누구보다 치열하게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도서관을 전전하며 철학과, 인문학, 과학서적들을 탐독했고 내가 겪어야 하는 일들의 배후에 무엇이 대체 도사리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일말의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그 시작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자신의 환경, 처지를 비관하며 세상에 대한 불만과 욕을 쏟아내는 친구들은 주변에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네들은 거기에 머무르다 결국 스스로의 폭력성을 견뎌내지 못하고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들을 보며 비관과 원망을 넘어선 비전을 찾아내지 못하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멈추면 자멸하고 만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대로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성경의 말씀, 부처의 법,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 등을 무식하게 문자 그대로 믿고 수신하며 사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제 속에 도사리던 분노와 세상을 향한 폭력성이 조금씩 이성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좀 더 시야가 넓어졌고 모든 일에 대해 전체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다시 2006년 겨울의 일을 떠올려봅니다. 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단으로서 '교육'을 통해 아이를 변화시켜야겠다는 야심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진보적인 정치관, 생태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 자기만의 것과 자기만의 존재론적 사명감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한창 불타오르던 26살의 젊은이였습니다. 그리고 나팔꽃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팔꽃이 말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교육을 세상을 변화시킬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교육은 그저 교육이어야 하고 어떤 정치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아이들을 그 방향으로 이끌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취지의 말씀이었습니다. 면담 자리에서는 잘 보여야 겠기에 적극 동의한다고 답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아뿔싸, 내가 가장 기본을 잊고 있었구나. 


  가장 깊은 변화는 강요와 주입을 통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나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변화해가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발현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행복한학교를 찾을 때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생태적 지향, 정치적 지향, 종교적 지향, 철학적 지향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나라는 자연과 아이라는 자연이 물 흐르듯이 만나야겠다고 여기고 만났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가 참 우스웠구나.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보다 아이들에게 내가 배울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타고난 결과 아이들 속에 잠재된 씨앗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저절로 눈부시게 성장했고, 내가 구태여 설명하려 들지 않아도, 아이들이 배웠으면 하는 것들을 아이들은 하나하나 배워나갔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은 일들이었습니다. 서머힐의 닐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부모들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를 자연에 맡겨라, 다만 부모는 아이의 자연에 귀를 기울여주어라.  


  3년 6개월. 정든 교정을 떠나 군대에서 만난 세상은 참으로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끊임없는 강압, 강요된 사명감, 과잉과 과욕, 출세욕, 성공에 대한 강박, 낙오될 것에 대한 불안감, 외로움, 적에 대한 공포, 수많은 규율과 도덕률... 모두가 병들어 있는데 아무도 병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 세계였지요. 


  열심히 자기방어를 하고 위악을 통해 내 속의 선을 지키려 하고 백방으로 애썼지만 말년에는 정말 저 역시 처절할 정도로 분노와 폭력성에 사로잡혀 지냈습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다시 학교를 찾았습니다. 학교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7년 행복한학교 교정에서 함께 아이들을 만났던 두 분의 교사가 이직을 하신 상태였습니다. 나팔꽃 선생님과 멋진곰 선생님은 행복한에 남아 계셨고, 노을 선생님은 청미래 선생님을 맡고 계셨습니다. 양쪽의 사정을 다 들었습니다. 어느 쪽도 회유하시거나 상대를 비방하지 않으셨음을 명백히 밝힙니다. 저는 큰 맥락에서 파주자유학교의 교육 철학에 적극 동의했기 때문에 복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홍보할 수 없다 



  복귀를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텔 및 파주교육청과의 분쟁 사건이 발생했고, 대응하기 위해 정신없이 고군분투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모텔 덕분에 학교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부정적인 소문이었기 때문에 학교 홍보에는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대해 문의하실 때 대부분 첫 말씀이 모텔과의 문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니까요. 


  학교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좀 걷어낼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관계를 경험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커져서 학교 홍보에 대한 의욕에 불타게 되었습니다. 


  전체 교사회의를 통해서도 학교 홍보 방안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이 개진되었습니다. 대안교육연대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방안도 물망에 올랐습니다. 여태 학교는 교육철학에 따라 대안교육연대 가입 신청을 하지 않고 있었으나 홍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해야하지 않겠나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허나 대안교육연대가 내재하고 있는 진보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성격이 가치중립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학교의 교육철학과 맞지 않다는 것이 다시 확인된 교사들의 중론이었습니다. 


  금안당 선생님의 생각은 늘 확실했습니다. 정치나 사회 교과목에서도 있는 사실을 데이터로서 가르치는 것은 무관하겠지만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정치에 있어서 한 단면만을 주입하는 식의 교육은 절대 금지라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교사들이 특정 정치적 경향성을 띠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발언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그것에 교육이 개입하면 안 된다는 일관된 금안당 선생님의 교육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여러가지 지식과 정보를 통해 스스로 자기의 정견을 만들어 가야 하지 힘있는 어른들의 일방적인 말에 휘둘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학교가 표방하는 '자립' 교육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금안당 선생님의 교육관에 동의합니다. 


  저 자신은 달동네에 거주하던 노동자의 자녀 출신인지라 상당히 왼쪽의 정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교육을 함에 있어서 일방적인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항상 나의 정견을 이야기할 때도 나는 이렇게 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스스로 정립해가야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그랬듯이 저 자신은 저 자신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고, 저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뿐이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입니다. 


  그렇게 학교의 이름으로 대안교육연대 회원이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재확인했습니다. 홍보를 위해 교육철학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대안교육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혁신학교를 통해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엿보이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고, 사회 전반의 경제불황이 아무래도 교육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대안교육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에 중론이 모아졌습니다. 올 겨울 신입생 모집사정은 이름 난 대안학교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좀 더 많은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는 속에서 입학설명회를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는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고, 여러 가정들이 내년부터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몇 차례 입학 문의가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서 다시 한 번 그 분들을 초청해 입학설명회를 가졌습니다. 


  두 차례의 입학설명회를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 와중에 나팔꽃 선생님과 저 간의 논쟁이 일었습니다. 군에서 군 홍보 담당을 3년간 했던 저로서는 학교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학교가 잘 못할 수도 있는 부분들을 미리 열거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이의제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초등과정 교감이신 나팔꽃 선생님은 학교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찾아오신 부모님들께 학교에 대해 기대를 내려놓기를 바라는 부분들을 열거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아이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일반학교처럼 집중적으로 인지교과를 수업하지 않기 때문에 학업성적 부분에서는 감안하셔야 할 부분들이 있다, 부모가 변해야 아이도 변할 수 있다고 믿는 학교이기 때문에 아이보다 오히려 부모가 배우고 감내해야할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다 지원할 수 있는 학교는 아니다, 아이들이 많지 않은 학교이기 때문에 특히 더 아이들의 수가 적은 학년에 입학하는 경우 교우관계가 어려울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오랜 시간 마음이 맞는 친구를 못 찾는 경우도 있다 등등. 나로서는 학부모가 직접 입학해서 겪으며 아셔도 좋을 것으로 여겨지는 일들을 어째서 홍보하는 자리에서 미리 말하는 것일까 우려스러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홍보마인드를 지난 3년간 철저하게 학습한 저는 겉포장을 잘해서 일단 고객을 유치한 후 서비스를 철저하게 해주면 VIP고객으로 계속 남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4개월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가 학교의 교육방침에 실망을 하고 나가신 한 학부모가 웹상에서 학교를 비방하며 소동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접었습니다. 아,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홍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 강하게 말하면 교육은 홍보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홍보란 기본적으로 포장의 기술입니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기술일 뿐이지 '진심'은 아닙니다. 교육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돕는 과정입니다. 수능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공교육과 사교육을 선택하는 것이 옳습니다. 변화는 진심을 통해서 시작되며, 그 진심은 '처음부터 진심'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처음으로 입학설명회를 찾아온 학부모들에게도 늘 '진심'을 말해온 나팔꽃과 풀꽃, 금안당 선생님의 생각이 옳았습니다.   


  하물며 진심을 전해도 자기 자신의 기대와 욕심을 부풀려 허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그 마음을 더 부풀게 할 '자본주의적 홍보'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요란한 말들이 넘치는 세상일 수록, 어쩌면 우리는 더 조곤조곤한 말과 진심과 뚝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인공의 향들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찻잔 속에서 가만히 풀려나는 향기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당장 우리 아이들이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차분히 진심의 향기를 퍼뜨리는 일에 더 매진해야겠습니다. 파주자유학교가 고양자유학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첫 씨앗을 심은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법 뿌리가 멀리까지 뻗고 큰 어른의 발에 힘껏 채어도 흔들리지 않을 만한 나무가 되었을 때입니다. 


  학교에 잘못이 있다면, 정말 이 학교가 거짓된 교육을 행하고, 부정을 감추고, 우리가 표명한 교육철학에 전혀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면 가장 먼저 제가 사과하고 이 학교를 나갈 것입니다. 오롯한 진실에 입각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내뱉은 허황된 말을 지키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고, 목소리를 높이고, 점점 더 자기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잃어가게 마련입니다. 진실에 입각한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진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따름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 앞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가진다면 현명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만이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겠습니까. 




2012. 11. 25. 파주자유학교 교사 멀고느린구름






 

날짜

2012. 11. 2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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