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열어보기,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 멀고느린구름
새벽은 늘 푸르다. 이것만큼 내게 큰 위안이 되는 것도 없다. 길을 걷다 문득 고개를 들어 올리면 거기에는 항상 하늘이 있고, 가끔씩 아주 멋진 모양의 구름들이 지난다. 이보다 멋진 일은 드물다. 해가 지면 언제나 어두워지고 우주가 선명해진다. 우주왕복선 비용 수억 달러를 우리는 매일 밤 절약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히말라야에서 날아와 이즈미로 옮겨가기 위해 잠시 철원의 한 호수에서 목을 축이는 단정학 무리들을 숨죽여 바라본 일이 있다. 두루미가 날아오르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숨어 있는 기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새벽 2시경부터 잠복은 시작되었다. 12월 초였고, 철원의 온도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던 즈음이었다. 단정학은 사람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태평하게 호수를 떠다니며 새로운 여행을 위한 준비를 했다. 기자는 아침 햇살이 호수 전체를 덮기 시작하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습니까” 하고 무심히 답했다.
기자들은 어째서 꼭 새들이 떠나가는 장면만을 그토록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오히려 나는 아직 햇빛이 수면에 닿기 이전, 지구 반대쪽 어딘가에 태양이 있고, 자신이 곧 오리라는 소식을 전할 때를 사랑했다. 호수를 감싸기 시작한 푸른 빛은 지구 저편에서 보낸 태양의 안부 편지 같은 것이었다. 오래오래 그 어슴푸레한 빛깔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 그 편지에 대한 내 나름의 가장 성실한 답장이다. 단정학으로서는 자기 자신의 일상적인 평화를 잘 지켜가는 것이, 조용히 호흡을 하고, 깃털을 고르고, 함께 먼 거리를 여행할 동료들의 안부를 묻는 것이 가장 성실한 답장이 아니었을까. 새들이 날아오르기만을 바라며 뷰파인더에 명운을 걸고 있는 기자는 사실, 그 풍경 속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였다.
오늘도 이른 새벽 눈을 떠 창을 넘어오는 푸른 빛의 편지를 수신했다. 어스름 빛에 잠긴 방에 앉아 있으면 종종 철원의 그 호수가 떠오른다. 단정학들이 지켜내던 평화가 떠올라온다. 세상은 메리 올리버가 쓰고 사랑하던 세상으로부터도 멀리 떠나와버렸다. 문을 열고 길가로 나서면 제자리인 양 당당히 피어 있던 풀꽃들도, 하늘의 여행자들이 쉬어가던 커다란 나무들도 어느새 모두 수목원과 국립공원 속에 갇혀버렸다. 마치 오래전 아메리카원주민들이 인디언 보호구역 속에 눈물의 길을 만들며 갇혀 버린 것처럼.
하지만 사람이 태양을 감출 수는 없으리라. 구름을 모두 걷어버릴 수는 없으리라. 우주를 원래의 작은 점으로 접어버릴 수는 없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남아 있는 한 아직 누구의 삶도 끝난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우리가 떠나가는 모습을 기다리며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강하고 눈부시게 지켜내는 것을 통해 그들의 카메라를 손에서 놓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들이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함께 태양이 저편에서 보내온 푸른 빛의 편지를 함께 읽어가게끔 할 수 있을까.
<완벽한 날들>속의 메리 올리버는 그 일에 성공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녀가 걸어간 길을 조심스레 뒤따라가고 싶다.
2014.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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