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디테일에 있다
영화 '제보자'를 보고
- 금안당
진실은 권력보다 오래 가고 여론보다 오래 간다.
공휴일에 일부러 시간 내어 영화 '제보자'를 봤다. 내가 본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영화는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성 영화들은 상영되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우연히 정보를 듣게 되었을 때 비디오 가게나 인터넷 등에서 찾아서 보곤 했다. 그러니까 상영 중인 다큐성 영화를 굳이 영화관을 찾아가서 본 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관심이 갔기 때문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를 보러 간 건 성공적이었다. 한 가지 사건을 다룬 것이긴 하지만, 우리 영화 중에도 이렇게 '진실'에 강조점이 두어진 영화가 꽤 괜찮은 작품성을 보이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만족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 '변호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도, 또 찬반 양론이 뜨겁지도 않은 것 같고, 영화 흥행 순위도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다. 이해가 간다. 이 사건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일어난 것인 데다, 당시의 청와대가 '진실'이 아닌 쪽(영화에서는 이장환 박사)을 지원하고 있던 상황이니,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그닥 내키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친노파는 진실을 가리려던 당시 노무현 정부의 과오가 드러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고, 지금의 보수 우익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등한시하거나 억압하는 현 정부의 잘못된 태도가 이 영화에 빗대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입소의 광우병 유발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해서 피디 수첩 제작진을 탄압하고 무력화시킨 것도 보수 우익이다.(하지만 이 문제는 대법원에서 이미 피디 수첩 제작진의 무죄로 판결이 나왔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니 인터넷 상에서 가장 많이 떠드는 양대 세력이 이 영화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발전은 결국 '진실'이 주는 교훈을 양식 삼을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모든 권력은 일시적으로는 성공할지 몰라도, 결국 권력 자신의 파멸을 가져올 뿐이다. 이는 얼마 안 되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보더라도 명백하다. 결국 3.15 부정선거로 권좌에서 물러난 이승만 대통령, 5.16 군사구데타로 1년도 안 되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윤보선 대통령, 자기 수하에게 암살 당한 박정희 대통령, 국가 반역자로 처벌 받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자살로 삶을 마감한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4대강 문제가 남아 있는 한 앞으로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르는 이명박 대통령. 보다시피 퇴임한 9명의 대통령 중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의 대통령에게 유고(有故)가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참으로 권력 무상(無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이 여당 소속 정치인이거나 여당 지지자라고 해서, 현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 yes맨이 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고, 반대로 야당쪽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No맨이 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나로서는 자신이 임기 5년의 대통령이 될 것도 아닌 사람들이 왜 무상한 권력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과 국회의원, 언론, 학자들을 총동원하여 궤변을 늘어놓았다. 사실 나는 이명박 전대통령이 왜 4대강 사업을 했는지보다,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하던 4대강 사업이 잘못된 정책임을 잘 알고 있었을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왜 진실을 왜곡하는 일에 앞장섰는지가 더 궁금하다. 떡고물은 떡고물대로 받아먹으면서 책임은 대통령에게 미루면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러나 진실은 적어도 권력보다는 더 오래 살아남는다.
얼마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서양 속담을 인용해서 화제가 되었지만, 재미있는 건 여기서 '악마'란 단어 대신에 '진실'이란 단어를 넣어도 훌륭하게 의미가 통한다는 것이다. 영화 제보자에서도 주인공들은 이장환(황우석) 박사가 말한 줄기세포가 거짓임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디테일한 증거를 구한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조연출 피디가 이장환 박사가 제출한 줄기세포 사진 데이터가 예전에 발표된 자료를 조작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밝힌 것이다. 11개의 줄기세포 모두가 남김없이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으니, 더 이상 어떤 거짓말도 통하지 않게 된 셈이다.
*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이 표현은 내 보기에는 용법이 잘못되었다. 서양속담에 나오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은 잘 돼가던 협상이 세부사항에서 암초에 걸려 결렬될 때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 한비자의 "천길 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나, 우리 속담의 "다 된 죽에 코 빠뜨리기"와 유사한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불산누출 등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방지를 위해 입안된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시행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으니, 애초에 관련 업체들이 규제와 관리를 제대로 받도록 만들기 위해서 입안했던 법률의 입법 취지만 오히려 무색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 것이 아닐까?
사실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할 때는 그것이 거짓임을 밝히기가 대단히 힘들다. 작정하고 최대한 거짓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작하고 대비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진실은 디테일에만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디테일을 실마리로 하여 진실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언론이나 기자가 타성에 빠지면, 디테일을 간과하고 넘어가기가 쉽다. 세월호 사건 초기 언론들이 기레기가 된 이유는 디테일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만을 그대로 믿고 다수가 구조되었고, 구조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야당 성향의 일간지들도 다르지 않았다.
반면에 디테일에 숨겨진 진실을 몰랐다고 해서 정치가가 비난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특정 사항에 대한 진실이 의심 받는 상황에서 권력자가 무조건 한쪽 편을 든다면, 이는 권력의 과오가 된다. 영화 제보자에서 보면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인에 대한 권력의 압력이 그리 강한 것으로는 묘사되지 않지만(독재정권들처럼 진실을 전하려는 기자를 구속하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은 없다), 그럼에도 그런 압력이 잘못이란 점은 분명하다. 이런 행동은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제보자는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로 대중의 압력도 놓치지 않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권력의 압력보다 대중의 압력이 진실에 더 위협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대중은 황우석 박사의 체세포의 줄기세포 추출 성공이 우리나라의 '국익'에 기여하리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황우석 박사에 의해 교묘하게 이용당한 언론과 권력이 대중에게 심어놓은 환상이지만 어쨌든 다수의 대중은 그렇게 믿고 있다. 따라서 대중들은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진실'이 밝혀지면 '국익'에 반한다고 여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언론인들은 '진실'이 우선인가, '국익'이 우선인가에 대한 물음에 당연히 진실이 우선이라고 믿지만, 혹은 진실이야말로 진짜 국익이라고 믿지만, 이런 생각은 당시에도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생각해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독재 권력에 의한 진실의 은폐와 왜곡보다 대중의 광신에 의한 침묵의 강요가 더 강하고 위협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권력에 저항해도 동지는 남지만, 대중(혹은 여론)에게 저항하면 세상에서 혼자가 되기 때문이다. 언론인들이 '신성한 이름'이라고 칭송해마지 않는 '내부고발자'가 '민주투사'보다 훨씬 더 드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부고발자를 주춤거리게 만드는 것은 해당 조직으로부터 받게 될 불이익만이 아니라 자신의 조직을 폭로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속했던 그 세계에서 혼자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내부고발자는 자신을 왕따시키는 그 조직 밖으로 나가면 고립무원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전국민이 거짓을 믿고 있으면, 그 거짓을 폭로하려는 언론인은 어디 도망갈 곳도 없게 된다. 이런 경우,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미국 정보기관의 인터넷 사찰 및 전화 도, 감청 사실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처럼 자칫하면 단순히 정권만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도 '반역자'로 낙인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인데도, 진실이 규탄받는 이유는 권력처럼 대중도 굳이 진실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권력처럼 대중도 진실이 오히려 불편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진실은 권력에 대해서처럼 대중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힘이 아니라 규제하는 힘으로 작용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진실을 밝혀내고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언론은 권력이나 대중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권력은 그나마 실체라도 있지만, 대중은 실체가 없는 존재라서, 언론이 대응하기에 벅찰 때가 많다. 이 때문에 많은 언론이 대중영합주의로 흘러가고, 심하면 특정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 언론 스스로 이념화된다. 언론 스스로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는 꼴이다.
하지만 대중의 여론은 권력보다 더 무상하다. 왜냐하면 대중이란 존재는 집단 감정을 기반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감정의 무상함은 우리 모두 익히 아는 바가 아닌가? 대중 또한 감정을 기반으로 하기에 한 달 전의 여론과 지금의 여론이 달라질 수 있고, 어제의 여론이 오늘은 백팔십도로 바뀔 수 있다. 오히려 개인 차원에서도 한 가지 감정에 집착하면 신경증적 히스테리 상태가 되듯이, 집단 차원에서도 특정 감정이 증폭 과장되면 집단 광기가 되고 만다. 게다가 정치가들은 이렇게 대중의 감정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증폭시키거나 조작하는 것을 주저하는 일이 없다. 정치가의 생명줄이 이 대중 감정에 있기 때문이다.(영화에서는 황 박사가 과학자가 아닌 마치 정치인처럼 여론을 조작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러니 대중의 여론은 절대 진실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권력의 압력도 불사하고, 대중의 위협도 감내하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 이 점에서 피디 수첩의 황우석 사건은 우리나라 언론사에 길이 남을 몇 안 되는 중요 사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의 감독인 임순례 감독은 뉴스엔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이 무너지면 한국 사회 자체의 건강한 성장도 불가능하다고 감히 생각한다. '제보자'의 배경은 과거의 일이긴 하지만,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매체인지 관객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영화 제작의 취지를 말했다. 동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앞장 선 것으로 나오는 한학수 피디(영화에서는 윤민철 피디로 나옴)는 현재 MBC에서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라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으며, 팀장으로 나온 최승호 피디(영화에서는 심민호 팀장)는 2012년 MBC에서 해고되어 현재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 앵커를 진행하고 있다. 변화된 언론 환경, 진실에서 더 멀어진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 없지만, 어차피 진실의 길에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그들이 이런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진실의 수호자 역할을 계속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201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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