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여신상
진정한 안전교육, 정의(Justice)
- 멀고느린구름
최근 정치권에서 각급 학교에 수영 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각에서는 교련 과목을 부활시켜 응급처치 및 응급상황에 대응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전교육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것에 대한 대책인 셈이다. 환영한다. 인지교과 과목만으로 빡빡하게 짜여진 우리 아이들의 시간표에 그나마 수영 수업이라도 의무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환영한다.
하지만 진정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이 이번 참사에 대한 예방적 ‘안전교육’으로서 이 카드를 빼들었다고 한다면 참으로 암담한 일이다. 교육 정책 담당자들은 정말로 이번 참사가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더불어 ‘수영을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대학생들이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씨랜드 참사가 발생한 것일까. 우리 아이들이 수영을 잘하게 되고, 응급상황에 잘 대응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의 참사는 일어나지 않게 될까.
아무래도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야 할 자리에 있는 어른들은 또 한 번의 참사를 겪어야지만 근본적인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부디 더 이상 이번의 참사를 아이들의 문제로 떠넘기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참사는 너무나 명백한 어른들의, 그리고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다.
우리는 근원적으로 어떠한 교육이 그러한 어른을 우리 사회에 만들어 냈는가를 물어야 한다. 1등을 위해서라면, 더 강한 권력,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여 먼저 자리를 차지할 것. 대한민국의 교육은 지금 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진솔하게 말하자. 더 이상 대한민국에 사람을 기르는 공교육은 없다. 교사들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먼저 사람이 되라고 교육하지 못한다. 현재의 대한민국 교육은 교육 스스로가 어떤 사람을 길러내야 할지 방향을 잃었다. 오직 1등. 오직 유능한 인재. 오직 유수한 대기업에 필요한 노동력.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을 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을 기르는 참교육을 주장하는 새내기 교사들은 교육현장에서 우스운 사람이 되고, 고립되고 만다. 교사들도 실적에 따라 평가받고, 각 학교의 교육 성과도 오직 얼마만큼의 성적, 몇 명의 해외 대학생, 수도권 대학생을 배출했는지에 따라 순위 지어지고 있다.
한 학교가 얼마나 정직한 아이를 많이 길러냈는지, 어느 학교에 얼마나 성실한 아이가 많고, 한 반에서 어떤 아이가 가장 훌륭한 인품을 형성해가고 있는지, 어느 아이가 가장 바람직한 인권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 교육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무섭지 않나. 두렵지 않은가. 우리의 미래에는 수많은 세월호들이 기다리고 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라(철밥통을 지켜라). 필요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한 발 앞으로 나가라. 경쟁해서 무조건 이겨라. 돈을 잘 버는 것이, 경제가 성장하는 것만이 최고의 선이다. 남을 돕는 일은 남보다 먼저 가진 뒤에 해라. 피해갈 수 있는 규칙을 지키면서 손해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대한민국 학교에서 아이들은 착실하게 이런 것들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안다. 정직하면 손해다. 아이들은 배우고 있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다. 아이들은 깨닫고 있다. 이 사회에서 어떤 어른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지. 이 아이들이 능숙하게 수영을 하고, 응급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까. 웃기는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자꾸만 축소시키고, 일부 몰지각한 어른의 도덕적 해이로만 여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자신을 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우리가 좀 어려운 길을 가야하지 않겠는가.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을 참혹하게 수장시킨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좀 더 느려지고 깊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알고 있다. 빨리 이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눈 감아버리고 "이 세상에는 더 많은 고통도 있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지 않느냐."고 퉁쳐버리고. 세상은 원래 이런 거야 라고 나와는 관련 없는 일로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무척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나는 청소년이 될 무렵까지 달동네의 단칸 방에서 가족들과 살았다. 과외는 커녕 학원 계단도 못 밟아봤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내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선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단, 사람은 정직해야 하고, 훌륭한 인격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늘 당부했다. 내 학업 성적이 떨이진 것을 나무란 적은 없었으나, 거짓말을 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행동에 대해서는 엄하게 꾸짖고는 하셨다. 지금의 나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지 못했으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큰 부끄러움은 만들지 않았다. 내 작은 이익을 위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초래하게 될 일이라면 기꺼이 거부할 자신이 있다. 벌이는 많지 않지만 이 벌이의 조그만 몇 퍼센트라도 더 어려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누고 있다. 내게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준다고 해도 그것이 전혀 정의롭지 않은 일이라면 행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부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국가에서는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를 쌓기 어렵듯이, 정의도 쌓기 어려운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은 정확하게 ‘부를 쌓으려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으로 기울어 있다. 물론, 이것을 완전히 기울여 ‘정의를 쌓으려는 사람’만을 만드는 교육으로 가면 조선왕조 500년의 폐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가치를 균형 있게 함께 추구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지금 현재의 우리 교육이 지나치게 전자의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기에, 이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게 반대 방향으로의 드라이브를 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해설로는 1948년 유엔에 의해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인권선언 전문)을 들 수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인류의 인권과 정의, 평화 실현을 위한 30개조의 항목을 담고 있다. 존 롤스의 자유주의적 정의 개념부터 독일 사회민주당이 함부르크 선언을 통해 공포한 정의 개념까지 포괄하고 있다. 전자의 정의는 공정한 기회를, 후자의 정의는 동등한 인간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분배를 각각 강조한다. 어느 쪽의 '정의'개념이든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가치를 우선할 것을 지향한다.
근대 서양의 개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는 유교적 인간 존중, 생명 존중 사상이 베어 있다. 불교와 기독교 등 우리 민족의 삶을 뒷받침했던 종교 속에서도 동일한 가치관이 담겨 있다. '정의'는 우리의 오래된 미래였다.
단언컨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진정한 안전교육은 ‘정의를 교육’하는 것이다. 정의롭게 자란 어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할 때에만 참된 사회의 안전이 도모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이익보다 사람의 가치를, 생명의 가치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어른들이 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을 때, 비로소 아이들의 안전이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수영 교육, 응급상황 대처 교육은 그 교육의 전제 자체에 이미 사고가 날 것이라는 것을 깔고 있다. 우리가 해야할 근본적인 교육은 사고를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지 사고가 일어난 이후 대응하는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어른들이 다시금 죽은 아이들과 청년들을 향해 우리는 책임지지 않겠다. 우리는 반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선,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다. 바로 우리 어른들이다. 우리들부터 우리가 내팽개쳐버린 정의감을 되찾아와야 한다. 스스로 다시 배워야 한다. 아메리카원주민(인디언)들은 아이들에게 말로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있으면 스스로 먼저 가르쳐야 할 것대로 행동한다.
교육부에 등록되어 있는 교사들만이 교사가 아니다. 이 나라의 모든 어른들이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회복해야 한다. ‘선생님’은 먼저 생을 산 사람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보다 어린 이들의 선생이다. 우리가 먼저 정의로워지자. 대통령이 먼저, 정부가 먼저, 교육부가 먼저, 그리고 각 학교의 교육자들이 먼저 정의를 회복하자. 그것이 진정한 안전교육의 시발점이다.
'멀고느린구름 > 오늘의 정치, 내일의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상 링크 - 게임, 중독인가 예술인가 (0) | 2014.06.27 |
---|---|
커피의 맛 (0) | 2014.06.09 |
한국 교육체계가 세계 1위? (0) | 2014.05.13 |
수학여행 전면 금지, 가장 먼저 도망간 교육 (2) | 2014.04.28 |
한국의 음반산업사... 그 파탄의 변 (0) | 2014.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