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교육 웹진 우물을 나온 개구리 업데이트를 재개합니다. 아직 많은 실종자들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만, 이번 참사에 대해 연대책임을 나누어 지고 있는 어른으로서 저희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또한 책임있는 자세라고 판단했습니다. 저희는 끝까지 희망을 품고 실종된 세월호 승객들의 생환을 기원하겠습니다.
수학여행 전면 금지, 가장 먼저 도망간 교육
- 멀고느린구름
청해진 해운의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난 16일, 경기 교육청은 ‘학생 전원을 구조’했다고 서둘러 발표했다. 하지만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이 목도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학생 전원을 구조했다고 거짓말을 한 교육청이, 그 교육청을 관리 감독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교육부 장관이 거짓 발표에 대해 사과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대신 교육부는 발빠르게 ‘초.중.고 1학기 수학여행 전면 금지’ 지침을 발표했다. 이러한 지침의 전제에 깔린 것은 세월호 참사가 아이들의 수학여행 때문에 발생했다는 판단이다. 물론, 일찍이 부처는 인간이 태어났기 때문에 고통이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장관은 아마도 깊은 불심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나무아미타불.
지금 드러나는 사실들을 몇 개만 추려보아도 세월호 참사는 자연 재해가 아니라 어른들의 인재요, 또한 탐욕에 물든 관리들에 의한 관재다. 그런데 지금 교육부는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누구에게 애도를 강요하고 있는가.
교육부의 지침이 참사의 원인을 수학여행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교육부는 더 이상 수학여행으로 인해 발생할 사고를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의 프로세스가 작동한다면 ‘수학여행 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 수학여행에 대한 각 학교의 안전 지침을 강화한다 -> 확정된 수학 여행지 및 교통편의 안전 점검을 대대적으로 시행한다 -> 수학여행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인다 -> 친구들의 희생을 옆에 두고 수학여행을 떠나며 죄책감을 느낄 수 있을 아이들에게 적절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와 같은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교육’이 아닌 손쉬운 ‘통제’를 선택했다. 단원고의 아이들이 지금 왜 저 차가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가? 어른들의 무책임한 ‘통제’ 때문이 아닌가.
한 발 양보해 교육부의 지침이 전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라면 ‘전면 금지’가 아니라 ‘시기 유보’가 되었어야 옳다. 그리고 어째서 어른들의 잘못에 대해 아이들이 책임지고 피해를 입어야 하는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지금 우리 사회의 공교육 시간표가 어떠한가. 아이들은 숨돌림 틈조차 없이 1년 365일을 입시 공부에 붙들려 있다. 꽃피는 봄이 와도, 싱그러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이 와도, 선선한 가을에도, 함박눈 내리는 겨울에도 자연의 변화를 느껴볼 여유도 없이 콘크리트 건물 속에 갇혀서 교과서에 머리를 숙이고 있지 않나. 그런 아이들이 1년 중에, 학교에 따라서는 3년 중에 단 한 번 떠나는 여행이 바로 ‘수학여행’이다. 그런데 그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생각이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무척 궁금하다. 지금 교육부가 해야할 일은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게 아이들의 수학여행을 책임질 수 있을지 그 대책을 시급히 세우는 일이 아닌가.
교육부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니 우리라도 안전한 수학여행의 방법들을 떠올려보자.
우선, 지금과 같은 대규모 인원이 동시에 같은 교통편으로 같은 장소로 이동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대규모 수학여행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학급당 학생 수가 많고, 전체적으로 한 학년 정원이 과다하기 때문이다. 전국에 학교를 더 신설하고 학급당 정원을 20명까지 축소하여 한 학년 정원이 150명 남짓하도록 조정해나가야 한다. 이는 대규모 참사를 막는 방편인 동시에, 담임교사가 안전을 살펴야 하는 학생의 총원을 줄여 안전성을 높이는 근본적인 대책이다. 더불어 20번까지 대기하고 있다는 임용고시 합격자들의 취업률도 높일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안아닌가.
두 번째로는 학생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담임교사에 대한 여행전 안전교육이 의무적으로 시행되어야 하고, 각 교육청은 이를 관리 감독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겠다. 부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서류상으로만 처리하는 방식은 이제 지양하도록 하자.
세 번째는 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이 이용할 교통편 혹은 여행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에 대한 사전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사고 시 대처요령을 메뉴얼화하여 아이들과 담당 교사가 소지할 수 있게 해야한다. 특히 해상이나 산 속은 일상적인 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아이들이 당황하여 미리 배운 내용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간단히 살펴볼 수 있는 휴대용 메뉴얼이 있다면 안전사고에 좀 더 능숙히 대처할 수 있다. 교육부는 각각의 여행지별로 어떤 메뉴얼이 필요한지 확인하여 각급 학교에 소책자로 만들어 배포하면 좋지 않겠는가.
이외에도 더 좋은 다양한 방안들이 있을 것이다. 교육부에는 조언해줄 훌륭한 전문가들이 잔뜩 있지 않나.
나는 작년에 대안학교 중등과정 아이들과 남한강 종주를 다녀왔다. 일주일 간을 자전거를 이용해 전북에서 경기도 파주까지 올라오는 고된 여행이었다. 그 일주일의 여행을 위해 학교는 3월부터 10월까지 7개월에 걸쳐 꾸준히 사전 훈련을 하고 수 차례 안전교육을 실시했었다. 교사들은 직접 여름방학의 시간을 할애해 전 코스를 사전 답사하고, 자체 연수를 통해 비상 시 메뉴얼을 숙지했다. 실제 여행에서 아이들은 단 한 명의 안전사고도 없이 무사히 귀가했다.
안전은 우리에게 많은 번거로움을 요구한다. 과도한 욕심을 줄여야 하는 순간이 많고, 굳이 그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게 귀찮기도 하다. 안전함이 유지되는 순간 속에 있으면 그 안전함이 그냥 거저 주어지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어떠한 안전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그 안전함을 유지시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 그 노력을 방기했기에, 우리가 욕심과 편의주의 앞에 눈을 감아버렸기에, 우리는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여전히 노력을 방기하고, 눈을 감아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세월호의 선장과 일부 승무원은 승객들을 구조할 의무를 저버리고 가장 먼저 도망가버렸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는 ‘수학여행 전면 금지’라는 가장 손쉬운 조치를 던져놓고 참사와 관계된 부처 가운데 가장 먼저 도망가버렸다. 숨 돌릴 틈 없는 아이들의 숨통을 막아놓고, 충격 받고 있을 아이들을 위한 아무런 교육적 조치도 없이, 그저 애도를 하라고 한다. 표류하던 이 나라의 교육도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버린 것만 같다. 애도를 표한다.
201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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