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장난감의 날부터 학교에는 식구가 한 마리 더 늘었습니다.
바로 0학년보다 커다란 북극곰 인형 '북극이'입니다.
4,5학년 1,2학기 사회 수업 주제가 '생태학'이고 지구 온난화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북극곰이 아이들 곁에 같이 있으면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집에 있는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오자마자 빅스타가 된 '북극이'는 하루종일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업고 다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같이 킥복싱을 즐기는 아이도 있고, 소파로 삼는 아이도 있으며, 눈싸움을 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아이들의 친구가 된 북극이었습니다.
허나 아이들이 너무나 신나게 함께 논 바람에 결국
지난 금요일 북극이의 가랑이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같이 논 아이들이 확인할 수도 없이 많고, 아이들도 자기가 그랬는지도 모르고 놔두고 가버렸을
공산이 크기에 특별히 북극이를 다치게 한 아이를 찾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아끼는 인형이니 바로 집에 복귀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아이들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 오늘 아침 여는모둠 시간에 공지를 했습니다.
"얘들아, 북극이랑 노는 건 좋은데 너무 과격하게 놀거나, 북극이를 집어던지면 안 돼. 그렇게 하다보니 북극이 다리 쪽이 찢어져서 오늘 대수술을 하게 됐어."
그리고 북극이를 교무실에 종일 눕혀 두었다가 - 아픈 모습을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
점심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수술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보니 아이들이 이전보다는 훨씬 북극이를 조심스럽게 대해주었습니다.
어떤 관계에서든 누구나 처음에는 상대방의 특성을 잘 모르고 실수를 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마음도 표현하는 방법, 표현 받길 바라는 방법 모두 제각각 참 다릅니다.
완전히 벽을 치거나, 완전히 상대를 외면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간을 함께 보내며 상대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해 가게 됩니다.
저 사람은 이렇게 대해주면 좋아하는구나, 이런 건 싫어하는구나.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해 가는 게 사람이라는 '자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부모님이 얻어다 주신 못난이 인형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며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보살핌의 마음을 배울 수 있었듯이
우리 아이들 또한 몸이 찢어지고,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여린 '북극이'와 함께 지내며
보살핌과 관계에 대해, 소중함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게 되길 기대합니다 : )
추신 : 모쪼록 북극이가 또 대수술을 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학교에 머물렀으면 좋겠네요^^;
2012. 3. 1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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