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가 대안학교와 교과부 지원금
- 금안당
며칠 전 교과부에서 미인가 대안학교들에 해마다 교부하는 지원금이 드디어 나왔다.
"얼마?"
"1500만원."
"에이, 그것밖에 안 나왔어?"
"올해는 2000만원 정도가 최고 금액인가 봐요."
행정교사의 답변이다. 예년에는 늦어도 12월초에는 나오던 지원금이 나오지 않아, 올해는 경제가 안 좋아서 예산 책정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저께까지만해도 걱정하던 마음이 그나마 한시름 놓아진다.
하지만 한시름 던 마음도 잠시... 점점 속에서 화가 솟아오른다. 학생 수를 70여명으로 치면 1인당 달랑 20만원의 보조금이다. 그것도 한달이 아니라 1년치가! 5세 아동 보육비도 월 20만원씩 지원한다는데, 의무교육 대상인 초중학생 교육에 대한 지원금이 달랑 월 16666원?
미인가 대안학교의 부모, 교사들이라고 교육세를 면제받는 것도 아닌데, 단지 미인가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아니, 공립 대안학교가 아닌 인가 받은 대안학교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그래서 우리 학교도 인가를 받게 되면 '미인가 대안교육시설'에만 주어지는 이 쥐꼬리만한 지원금도 못 받게 돼서 괜히 인가받았다는 얘기가 식구들 사이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란 어설픈 걱정까지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법적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하긴 인가받은 특성화학교도 재정지원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도 교육청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시도마다 다른 판이니, 대안학교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교과부는 쥐꼬리만한 지원금이라도 그나마 주는 제스처라도 한다고 치지만, 시도교육청들은 미인가 대안학교들에 대해서 학교 이름을 쓰지 말라는 둥의 제재를 하는 걸 봐서 미인가 대안학교들과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닌데, 유독 재정 지원 문제에서는 왜 이렇게 꿀 먹은 벙어리 모습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너네가 공교육이 싫다고 나간 것이니, 이런 불이익 정도야 감수하기로 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탈의무교육을 하는 것 자체가 기존 법률에 위반하는 것인데, 법률 위반으로 고소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교육관련 법률까지 포함하여 우리나라 교육제도도 정치만큼이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교과부 조사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의 탈학교 아이들 수만 해도 약 6만명이라고 한다. 이중 의무교육 연령인 초, 중학생만 하면 2만 6천여명이다. 그러니까 초중등 교육법을 정식으로 적용하면, 전국에 약 130여개로 추정되는 미인가 대안학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매년 2만6천명에 달하는 초, 중학생의 보호자들이 불법 행위로 인한 과태료 징수 대상이다. 아니, 벌금을 한 번 낸다고 해서 의무교육 준수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탈학교를 한 지 1년 이상이 지난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10만명(고등학생까지 포함한 탈학교 아이들은 2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수준에 육박할 것이다.
사실 10만명의 학부모를 범법자로 만드는 법이란 건 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사문화된 조항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초중등 교육법 65조는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다. 게다가 이 조항은 다른 한편에서 탈학교 아이들에 대한 지원이나 배려를 가로막는 반교육적 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부나 공공기관이 불법행위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할 수는 없다는 명분으로!
그런데 도대체 교육이란 게 뭔가? 그것이 과연 법으로만 재단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아이들의 교육 받을 권리는 천부적인 기본권에 해당하는 문제여서 법률로 재단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의무교육제 같은 경우도 제정 당시에는 아이들의 이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지, 이 기본 인권을 침해하거나 강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법적 강제가 국민의(그것도 우리 기성세대가 무엇보다 가장 먼저 보장하고 보호해야 할 아이들의) 천부적 기본권을 오히려 훼손할 수도 있는 상태에 이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현대 사회 이후 대다수의 나라들은 그 이전에는 개별 가정이나 지역 공동체 등에서 이루어지던 미래 세대에 대한 교육을 국가 주도로 바꾸었다. 그 나라, 그 민족의 장기적 발전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것이 더 합리적이고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고 자신이 낸 세금 중 일부가 정부가 주도하는 교육활동에 사용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부족한 교육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따로 ‘교육세’라는 목적세까지 전국민이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하는 공교육에서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이탈했다는 이유로 수혜 대상에서도 철저히 배제된다?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건 굳이 나의 경우에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미인가 대안학교 학생들이나 탈학교 아이들을 지원하면, 오히려 탈학교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교육행정 관계자들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그 정도의 경제적 지원 때문에 탈학교를 선택하는 경우는 아무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경제적으로만 따진다면 설사 한 학생당 월 20만원씩의 지원금을 받는다 해도, 공교육을 통해서 받는 혜택이 몇 배나 더 크기 때문이다.
탈학교를 하는 아이들과 그 보호자들은 경제적 불리함을 감수하고서 탈학교를 선택한다. 공교육제도가 주는 그 많은 경제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공교육에서 배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매년 6만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는 상황이란 건 문제의 원인이 학부모의 잘못된 교육관이나 개별 학생의 문제점 때문이 아니라, 공교육 자체가 뭔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란 이야기다.
정부와 교육기관은 국민의 혈세를 받아서 우리의 새싹들을 잘 키워보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했다. 그런데 보다시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미인가 대안학교들과 홈스쿨 학부모들은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번 생각해보라! 만일 탈학교 아이들 모두가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모두 ‘거리의 아이들’이나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고 하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얼마나 아찔한 일이겠는가?
요컨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교과부든 교육청이든 미인가 대안학교에 대한 지원을 시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는 것이다. 교육관련기관들은 탈학교를 한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고,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모든 미성년자들은 이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p.s - 그런데 뒤늦게 알고 보니, 그 알량한 교과부 지원금도 못 받게 된 미인가 대안학교가 13곳이나 된다고 한다. 그중 내가 들어본 적이 있는 지혜학교까지 포함된 걸 보면, 교육기관으로서의 부적잘한 편향성 때문도 아닌 것 같다. 아 ~ 왜 이렇게 자의적 판단이 횡행하는지 한숨만 나온다. 언뜻 ‘대안학교는 거지 중에서도 정말 상거지구나’라는 말이 머릿속을 지나가는데, 웬지 서글픈 느낌이 들 것 같아, ‘도대체 어디서부터부터 잘못 되어서 우리가 거지가 된 거지?’라고 우스게 표현을 만들어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2013. 1. 2.
'금안당 > 대안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교 2013, 끝없는 경쟁- 그 탈출구는? (0) | 2013.01.17 |
---|---|
자유와 강제 (0) | 2013.01.14 |
있어서는 안 될 세대 갈등 (3) | 2013.01.01 |
2012년 한 해가 드디어 저물고 있다! (1) | 2012.12.26 |
인성교육, 경쟁하지 않는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1) | 2012.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