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와 대안교육에 대한 단상
- 멀고느린구름
적을 만나기 두려워서 교육을 포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학교가 아니다. 학교는 무엇보다 아이와 교육을 지키는 곳이며, 그러한 지킴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교육을 포기한 학교들을 보라
그리고 교육을 포기한 어른들을 보라. 올 봄 사건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어른의 이기심이 사회를, 그리고 그들의 자녀를 병들게 하고 있다.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 그 어른들을 기른 것이 바로 과거의 우리 교육이었다.
교육이 도덕을 강요하고, 기존의 사회룰에 순종케하고, 암기에 능한 두뇌를 제조하며, 강박적인 안전과 건강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을 주입하는 활동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이 세계에 아이를 자꾸만 굴복시키려 하는가.
참된 교육은, 되려 어른이 아이에게 기꺼이 굴복하려 할 때 시작된다고 여긴다. 아이의 자연성, 아이에게 허락된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자유권, 그리고 이 세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자립성. 우리가 하고자 하는 교육은 이런 것이다.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의 방식이 모든 것보다 좋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길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른 방식에 동의한다면 그 방식의 교육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한 쪽의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건강한 사고가 아니다.
스카이라고 불리는 좋은 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길 바란다면, 경쟁사회에 최적화되어 온갖 스펙을 갖출 수 있는 청년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저 바로 앞에 닥친 현실을 주시하며 세상이 길들이는 대로, 힘 있는 자가 소리치는 방향대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젊은이가 되기를 바란다면, 오히려 기존에 있는 학교들이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정답이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나아가 이 사회를 중병에 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대안을 찾아 영국의 작은 학교 '서머힐'을 주목했고, 그 바탕에서 어지러운 이 세상의 한 귀퉁이를 조용히 쓸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서머힐의 창립자 닐 역시 저서에 언급하고 있다. 늘 학교를 비방하거나, 원망하거나, 심지어 저주했던 이들은 대부분 다른 곳에서 그저 화려한 소문만을 듣고 찾아와 1년 남짓의 시간을 보내다 못 견디겠다며 떠나간 이들이었다고. 닐은 말한다. 아이가 변하기에 1년은 너무나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덧붙여 자신있게 말한다. 3년 이상 학교를 다녔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학교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졸업한 아이들은 학교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한다고.
매일매일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바른 교육을 하고 있는가, 올바른 교사인가.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가.
언제나 100%의 수업을 할 수는 없다.
언제나 100%의 상담자가 될 수도 없으며,
언제나 100%의 어른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항상 나 자신에게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바른 교사인가, 바른 교육을 하고 있는가 하고 묻는 그 행위야말로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점은 100% 믿고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내가 바른 어른이고, 바른 부모인지...
어제 당신에게 물어보았는가.
201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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