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지인들과 소식을 나누게 된다.
요즘엔 SNS발달로 외국에 나가 살던 친구들과도 연락이 닿게 되니 설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특히 동창회 모임후기로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옛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진들 중에서 내 시선을 끄는 한 사람. 예전모습 거의 그대로다.
초등학교 5학년때, 온통 내 마음속에 있던 그 아이와 짝이 되었을때의 기쁨, 그리고 그렇게 몇달간 짝으로 지낸 행복한 기억들.. 그 느낌들은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끗거리는 이나이에도 생생하다. 어린마음이 꿈속에서도 그녀를 보았었으니까.
어느 닫는 모둠시간에 반짝이는 눈으로 L양을 쳐다보던 A군. 그리고 얼굴에 가득 번진 행복한 미소..
누군가 그랬다지. 재채기와 가난, 그리고 사랑은 숨길수 없다고.
0학년 꼬맹이들한테 무슨 사랑타령이냐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반 다른 두아이들은 이런저런 사정들로 학교출석이 들쭉날쭉하였는데 썰렁해지기는 커녕 그때마다 나름대로의 따뜻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었다. 하루는 A군만 출석했기에 진도를 나가기도 뭐하고 해서 도서관에 함께 가자고 길을 나섰다. 중간쯤 가는데 L양이 등교를 했다는 전화가 왔다. "지금 돌아갈거지?"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A군의 마음이 엿보여서 웃음이 피식나왔다.
학교에 돌아와서 L양도 태우고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좀전까지 몇마디 안하던 녀석이 왠 수다가 그렇게 많아지는지, 참. 그날 매섭게 추운날이었는데 둘은 아랑곳 않고 스타렉스 맨뒷자리에 앉아서 낄낄거리고 장난을 하며 갔다. 도서관이 휴관하는 바람에 떡볶이, 오뎅까지 사주는 벌칙?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3학기에 처음 내려왔을때 A군이 목소리가 크고 한동안 아이들 놀리며 장난이 심했는데 L양이 X라고 한마디만 하면 바로 "알았어"하며 조용해지는 모습이 신기했었다. 아마 L양이 보기와는 다르게 카리스마가 있나보다 했다. 그런데 두어달이 지나서야 속사정을 파악했으니 나도 어지간히 둔한 사람인것 같다.
나는 닫는 모둠시간에 아이들에 둘여쌓여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좋아한다. 네 아이들이 나와 무릎을 마주대고 초롱한 눈망울로 올려다 보면서 사소한 얘기에도 까르륵거리며 뒹구는 모습들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더우면 양말벗어던지고, 스킨쉽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이가 숭숭 빠져있는 얼굴로 마주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자연이고 구김살 없음이구나 싶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이 아이들도 변할까?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옷도 단정하게 유지하고 잘보이려고 애쓰고 그러면서 가까이 가기도 힘들어하겠지?
그래서 어린시절의 사랑은 가장 순수한 빛이 난다.. 고 생각한다.
이것보다 조금더 큰 아이들의 로맨스도 있다.
고등과정 공동담임으로 있을때 그녀가 입학했고 그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가까워진것을 알고 나는 그 둘에게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떳떳하게 사귀기를 권했다.
그녀의 부모님과 개별면담이 있던날 둘은 허락받지 못할것이라고 절망하고 있었다. 부모님께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건 축복이 아니겠느냐고. 불안과 의심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더 위축되고 숨어서 만나게 되지만 믿고 함께 성장하자는 마음으로 대하면 수면위에서 건강한 만남이 될것이라고.
그리고 나서 옆 밴드실에서 면담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두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허락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면담실로 함께 왔을때 두 아이들이 부모님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그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것이다.
그 뒤로 굴곡을 겪으면서 지금까지도 잘 지내는 두 친구들을 학교에 오면 볼수 있다. ㅋㅋ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로맨스도 기다리고 있다. 파주자유학교 행복한 교무실에서..
시시때때로 상호간에 연애상담을 주고 받는 두 청춘. 이 두사람 모두에게 각자 좋은 인연이 찾아올것을 기대해 본다.
건강한 생각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선남선녀이니 머지않아 따뜻한 두개의 사랑 이야기가 매일같이 교무실에서 흘러나오는 날을 기다린다.
사진한장과 화이트크리스마스가 불러낸 이야기들, 쓰다보니까 좀 허전해지네.
친구 만나서 한잔 걸치면 참으로 좋을법한 날이다.
2012. 12. 25. 파주자유학교 교사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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