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집착하고 있습니까?
- 한아름
필자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이들을 사랑 하냐고. 그리고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때때로 묻는다.
아이를 사랑 하냐고.
부모들은 한결같이 무슨 그런 질문이 있느냐는 반응을 제일 먼저 보인다. 그리고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자기 새끼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있냐고.
물론 필자가 뭘 묻는지, 왜 묻는지 그 의도를 먼저 알아내고 신중하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도 똑같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그런데 필자의 제자들에게 물어보면 부모들의 그 확신에 찬 일관된 대답과는 차이가 있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 않다고 느끼는 아이도 있고,
오히려 부모가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바로 부모가 주는 사랑과 자녀가 느끼는 사랑이 서로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부모의 사랑은 진실한데 그 사랑을 받는 아이가 사랑을 받아들일 줄 몰라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부모가 아이에 대한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해서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의 사랑을 느껴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이 숨막히고, 답답하고, 어지러운데 그걸 사랑이라고 우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집착을 빨리 알아차리고 집착을 끊어내고 담담하게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에 대한 기대를 접기 어려운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에게 향한 내 사랑이 온전한 사랑인지,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온전히 아이에게 관심을 주며 그 관심은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지금 받고 싶어 하는 것을 준다.
또한 아이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아이가 홀로 서보려는 노력을 기뻐하며 환영한다.
안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으면 대체로 아이를 자유롭게 하며
아이가 부모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늘 관심을 기울인다.
아이와 대화를 하면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면서 돈독해지고
아이로 하여금 숨통을 터주어 아이가 고민이 생기면 부모에게 털어놓는 것을 자연스럽게 한다.
아이가 진정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를 바라고 아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결국 사랑은 부모와 자녀! 서로의 삶이 존중되고 서로의 삶을 충실하게 살게 한다.
반면 집착은 아이에 대한 관심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성취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무언가를 받기는 받았는데 아이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부모만 흡족함을 느낀다.
아이가 홀로 서려고 노력하면 그 노력에 대해 부모를 등지는 것으로 느끼고
지금까지 베푼 사랑에 대한 배신감으로 상심하며 아이를 구속한다.
아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보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되어 있으며
아이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의 벽이 더 두텁게 쌓이고 아이의 숨통을 조인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움직여주기를 바라고 아이가 부모의 한을 풀어주는 삶을 살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결국 집착은 부모가 자녀에 매어서 부모의 삶도 살지 못하고
부모 자신에 매어서 아이를 진정 사랑하지도 못한다.
늘 최선을 다하려고 각자의 자리에서 부모는 노력하겠지만
아이를 향한 그 최선이 과연 아이에게 사랑인지, 집착인지 돌이켜보고
주의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집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면
자신의 집착이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자.
그래야 집착을 끊어내는 것이 매번 의식적인 노력으로 힘들기만 한 작업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이해, 자기와의 화해로 의미 있고 감사한 작업이 될 것이며 조금씩 집착이 끊어질 것이다.
한 번에 두둥~ 깨달음이 오지 않는다.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더 편해지는 내일을 희망하고 조금씩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필자는 고백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직업이고 사랑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여전히 매일 궁리한다는 것을!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필자는 오늘도 아이들을 맘껏 사랑하고 이해하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아이들은 느끼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말을 흘려들은 것은 없었는지,
나의 성급함으로 아이가 느끼는 지금의 어려움을 가볍게 대하지는 않았는지,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음에도 두려워서 현재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아이를
내가 성가셔 그대로 내버려둔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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