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논술 (2007)
- 멀고느린구름
가. 여는 말
요즘 서점에 나들이를 가보면 논술과 관련된 책이 한 쪽에 잔뜩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의 과열된 교육열 덕에 출판사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겠지만 나는 눈살이 찌푸려지기만 한다. 특히 <논술시험 노골적으로 준비하기>, <교과서만 따라해도 초등논술OK>, <난, 논술로 -서울대- 갔다!>, <논술 가르쳐줄 때 배워라!> 등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자신의 상품성을 광고하고 있는 책들을 볼 때면 더 하다. 단순히 시대가 요구하므로 아무런 반성 없이 그들이 요구하는 ‘논술’을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독서와 논술지도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예비 교육자로서 우리에게 ‘독서와 논술’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 독서와 논술이란?
나는 올해 초에 갑작스레 대안학교의 교사로 취직이 되어 0학년(일반 교육과정으로는 유치원)의 우리말과 글(일반 국어 과정) 교사를 맡게 되었다. 개학 전까지 남은 2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를 궁리하며 독서지도와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이것저것 찾아서 읽어보았다. 대부분의 책들이 독서와 논술이 우리 삶에서 갖는 의미는 생략한 채, 그 시대적 당위성만을 거의 협박 수준으로 강요하며 주로 어떻게 하면 잘 읽고, 잘 쓰게 되는지 기능성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 갔다. 몇 년 전부터 학계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선전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데, 국내의 독서와 논술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열기를 철학이나 사회학으로 풀어놓은 책이, 그런 현상이 일어난 지 몇 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만 봐도 인문학의 위기가 왜 닥쳤는지 수긍이 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서와 논술은 별 개의 분야로 인식했고 따로 교육을 했다. 그러다 어느 사이부터 논술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거의 논술이 독서의 영역을 잠식한 분위기다. 즉, 독서란 논술을 잘 하기 위해 요청되는 과정 중의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과거에는 아이의 교양을 높이기 위해 세계문학전집을 서가에 꽂아두었지만, 오늘날에는 서울대 논술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꽂아둔다. 독서지도법 책에서는 반드시 논술을 이야기하고, 논술지도법 책에서는 반드시 독서를 이야기한다. 물론, 독서와 논술은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입시’라는 사회의 제도 속에 독서와 논술의 고유한 의미가 퇴색되어서는 곤란하다.
나는 독서와 논술을 대상과 관계를 맺는 일의 기본적 요소인 해석과 표현으로 본다. 사물이든 생물이든 대상과의 관계는 나 이외의 타자에 대한 해석과 그에 대한 표현으로 이루어진다. 독서란 대상의 뜻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를 훈련하는 공부이고, 논술이란 어떻게 나의 뜻을 나타낼 것인가를 단련하는 공부이다. 단순히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독서와 논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독서와 논술은 우리네 삶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훈련의 하나인 것이다. 나는 교사들이 독서와 논술을 지도할 때 이러한 사유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여긴다.
다. 독서 지도법 소개
1. 독서 지도의 두 흐름
교육에 있어서도 자유주의 교육과 과정주의 교육이 있듯이 독서지도에도 자유주의와 과정주의가 있다. (이는 여러 독서지도 관련 책을 읽고 필자가 나누어 본 것이다)
* 자유주의 계열
<책 먹는 아이들>의 김진향씨나 <창의적인 독서지도 77가지>의 독서지도연구모임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독서지도를 한다. 이는 아이들에게는 명백하게 구별되는 발달단계가 없으며, 또 아이들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상세계를 해석할 수 있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고 그것에는 ‘다름’이 있을 뿐 ‘틀림’은 없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이러한 철학에 따라 독서지도교사는 최대한 자의식을 줄이고 아이의 능동적 독서 행위에 보조자로서만 참여하고, 아이가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도의 역할만 한다.
* 과정주의 계열
<논술잡는 스키마>의 유영호씨나 <글짓는 도서관 1, 2, 3>의 탁석산씨는 과정주의 계열에 가깝다. 이들은 독서능력이나 논술능력(표현능력)에 어떠한 수준이 존재하며 교사는 아이를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야 하는 존재라고 본다. 이들에게는 아이를 높은 수준에 도달시키기 위해서 수준에 못 미치는 아이를 야단치고 반복학습을 통해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독서지도의 목적이다. 목적의 끝에는 물론 일류 대학으로의 진학과 일류 직장으로 취직이 자리하고 있다.
2. 어떻게 지도하는가
* 자유주의 계열
- 아이의 다양한 해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준다. 다소 엉뚱한 상상이라도 인정하고, 그 상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독서 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책과 소통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에게 독서를 재미난 놀이로 인식시킨다. (자세한 사항은 필자가 쓴 행복한학교 우리말과 글 수업 계획안을 참조)
* 과정주의 계열
- a. 집중하는 것을 가르친다. 수업 도중 책과 관련 없는 장난을 치거나 책에서 크게 벗어난 상상에 빠지면 다시 책에 집중하라고 지시한다.
b. 고학년이 되더라도 아이의 수준보다 1~2살 높은 책을 부모가 읽어준다. 단, 잠자리에서 읽는 것은 학습효과가 떨어지므로 피한다. 아이의 듣기 능력이 강한지 약한지를 잘 점검한다(듣는 능력이 약하면 짧게 이야기를 잘라서 읽어주고 차츰 시간을 늘려나가서 듣는 능력이 강해지면 장편을 읽어준다). 아이에게 독서도 공부임을 인지시킨다.
c.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도록 한다. 자기의 상상이나 삽화에 대한 인상보다는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 후에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발표시킨다. 아이가 읽기를 원하는 책보다는 권장도서를 읽힌다.
d. 자기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을 자신의 예상 답을 섞어 질문한다. (사고력 훈련)
예) 백설공주는 흰 눈이 내릴 때 태어나서 이름이 백설일까?
e. 작가와 대화하거나 토론하는 형태로 생각하면서 독서. (독해력 훈련) 단답형 의문보다는 토론형 의문을 만들어 보며 읽기.
예) 소나기의 소녀는 왜 다짜고짜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진 걸까?
f. 독후감이나 토론 수업 위주로 표현을 한다. 독후감은 줄거리 보다 생각을 길게 쓰도록 한다. 단, 상투적인 윤리적 교훈을 이야기하거나 짧은 감상으로 마무리하면 다시 쓰게 한다. 독서토론을 할 때의 논제는 아이들 스스로 책에서 끌어내도록 한다.(논제를 읽고 쟁점을 끌어내는 능력 훈련) 또 상대의 주장이 아닌 주장의 근거만을 비판하도록 지도 한다.
라. 논술 지도법에 대하여
-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논술 지도서가 서론, 본론, 결론을 몇 대 몇의 비율로 나누어 쓰라느니, 문장의 경제성을 지키라느니, 맞춤법을 잘 따르라느니 하는 규칙과 형식에 대한 상투적인 충고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책을 보고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이 써내는 국화빵 같은 답안지들은 아무런 생명력이 없다. 이런 유형의 책들이 언제나 언급하는 서울대 모의 논술고사를 한 번 살펴보자. 배점이 이해, 분석 능력에 20점, 논증력 30점, 창의력 40점, 표현력 10점이다. 대부분의 교육현장에서 속성으로 가르치고 있는 앞서 언급한 규칙과 형식은 표현력 항목에 해당하는데, 점수를 보면 겨우 10점이다. 실질적으로 변별력을 가지는 논증력이나 창의력 같은 부분은 현재의 학교 교육으로 신장시키기 어려운 것들이다. 논증력, 창의력 제로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공교육도 우습고, 공교육이 절대 가르치지 못하는 70%에 가장 큰 점수 배점을 주는 현실과 동떨어진 논술시험도 우습다.
이 지면을 통해 또 한 번 간결한 문장을 쓰라거나, 퇴고하는 습관을 가지라거나, 책을 많이 읽으라는 둥의 식상한 기술들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논술에 관한 스킬(skill)들은 탁석산의 <글 짓는 도서관>을 통해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논술이란 자기 속에 있는 지식과 이야기를 표현하여 타인을 설득 또는 이해시키는 고차원의 행위이다. 이 행위의 미(美)는 표현의 깔끔함에 있지 않다. 아름다움은 논리의 정연함과 독창성에 있다. 논리의 정연함과 독창성은 논술 책을 백 권 읽는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앞 서 이야기 나눈 새로운 독서의 방법들이 꾸준히 오랜 세월 실천되어야만 길러질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논술과 철학강의>의 일독을 권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 참고 도서 -
김인환 <글쓰기의 방법> 작가
김용옥 <논술과 철학강의> 통나무
탁석산 <글짓는 도서관 1, 2, 3> 김영사
유영호 <논술잡는 스키마> 북포스
이태준 <문장강화>창비
한승원 <한승원 글쓰기 교실> 문학사상사
독서지도연구모임 엮음 <창의적인 독서지도 77가지> 해오름
김진향 <책 먹는 아이들> 푸른사상
정진채 <아동독서지도법>빛남
한국대학 평생교육원 독서지도사 교재편찬위원회 <독서지도의 이론과 실제> 이화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 교재집필연구회 <독서 교육론 독서 논술 지도론> 위즈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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