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下流)지향세대라고?

- 멀고느린구름


하류지향(下流志向) 세대..현실에 안주하는 젊은 직장인들(해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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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오늘날 기자들은 일종의 '작명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워낙 너도나도 언론이라며 매체가 난립하다 보니 다른 매체와 차별화 되는 자극적인 제목, 자극적인 개념을 창조해서 장사를 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것도 창조경제의 일원일까요?


'세대'를 특정 개념으로 지칭하고자 하는 욕망은 오래 전부터 늘 있어 왔습니다. 특히 'X세대'라는 작명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었지요. (제가 바로 그 X세대입니다^^;) 그러나 그후 등장한 세대 개념들은 뭐가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지고 말았죠. 가장 최근에 큰 이슈가 되었던 '88만원 세대'라는 것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삼포세대, 오포세대 등등에 밀려나버렸습니다. 


해럴드경제는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등등 다양한 네이밍을 얻고 있는 현재의 젊은이들에 대해 '하류지향세대'라고 하는 이색적인 작명을 시도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더 높은 직위를 얻고자 노력하지 않고, 현재의 직위에 안정적으로 머물려고 하는 세대'라고 하는 것인데요. 낮은 곳에 있으려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균형점에서 머무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류'지향이라는 네이밍은 사실은 맞지 않습니다. 법정 스님처럼 자발적 가난 '청빈'을 지향하고자 하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지향'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지를 가지고 그 방향으로 가고자 노력한다는 것인데요. 기자가 상상한 세계와 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청년들은 더 올라갈 수 있는데 자기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 있는 자리마저 잃지 않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고도 성장 시대,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었던 때에는 가만히 있거나, 올라가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가 있었을 뿐이겠지요. 그런 시기에는 과연 '하류지향'이라는 개념이 합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 성장 시대이고, 노동개혁이니 뭐니 하는 갖가지 기기묘묘한 방법들이 동원되어 끊임없이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를 밀어내려는 파도가 시시각각 몰려오는 시대입니다. 자칫 실수하면 해고를 당할 수 있고, "너를 대신할 사람은 거리에 널렸어!"라고 사용자가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노동법은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90% 이상 준수되지 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말 그대로 노동자, 직장인의 목숨이 파리 목숨에 불과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 파리도 잡기 번거로우니 모형 파리가 되라며, 쉬운해고 제도를 만들겠다고 하는 요즈음입니다. 땅이 꺼지고 있는데 그 땅을 디디고 뛰어오르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경제언론의 기사는 별명 많은 세대가 보기에는 참으로 유감스럽군요. 모쪼록 경제지를 애독하는 경제인 분들께서 땅이나 잘 다져놓고 이런 기사를 썼으면 합니다. 


2015. 9. 18.



날짜

2015. 9. 1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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