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합동분향소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멀고느린구름
지난 금요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들러 희생된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이 문장만으로 가슴이 서늘해지고, 고개가 떨구어질 어른들이 많을 거라 믿고 싶다. 최근 들어서는 합동분향소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무슨 '종북 세력'이나 '반정부 사상'을 지닌 이가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아야 할 정도가 되었으니, 시대가 참으로 수상하게 되어버렸다.
처음 합동분향소가 차려졌을 때는 너무 두렵고 죄스러워서 가지 못했고, 조금 시일이 지난 후에는 거리가 너무 멀고 바쁘다는 핑계가 만들어졌다. 그래도 서울에서 이뤄졌던 100일 추모제라든가, 몇몇 추모제에는 얼굴을 들이밀며 면피를 했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계속 풀지 않은 커다란 짐꾸러미처럼 모종의 부채감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아이들을 똑바로 마주하고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도리일 텐데...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동안 계절은 두 번이나 옷을 갈아입었다.
다행히 이번에 합동분향소에 가게 된 것은 강의를 나가고 있는 대안학교에서 세월호 아이들의 유작 전시회를 관람하러 가는 길에 함께 따라나선 덕분이다. 학교의 교사들과 아이들은 전시관 바로 앞 동에 설치되어 있던 합동분향소에도 응당 들렀다.
분향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생기발랄하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은 입구에 들어서서 수백 명의 영정사진을 목도하자 일제히 말을 잃었다. 저절로 숙연한 자세가 되어 어깨를 떨구고 헌화할 국화를 받아들고 영정이 놓인 기나긴 제단을 묵묵히 걸어갔다.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와 똑 닮은 또래의 아이가 바로 조금 전의 자기네 모습처럼 찍어놓고 간 유품 사진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교사들은 마치 신성한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꾹꾹 눌러담듯이 마음 속에 담았다. 나 역시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 돌리지 않으려고 한 아이 한 아이의 얼굴을 일일이 바라보았다. 가슴이 떨려오고, 뜨거운 눈물이 계속 솟구쳐 올라와서 눈 앞이 흐려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갈 어른의 의무일 것 같았다. 저 아이들의 얼굴을 모두 또렷이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 억울하게 진 꽃들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는 것으로도 좀 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살아남은 자는 이렇게 이기적이다. 결국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서 아이들의 죽음 위에 서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가 만들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우리 기성세대들은 입을 모아 자신들의 삶을 반성했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분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0여일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사뭇 달라져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시민의 절반은 이미 세월호 참사를 잊은 듯하다. 단순한 해상 교통사고로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경제발전의 방해물이 되는 것처럼 거론하는 경우도 허다해졌다.
잔인했던 4월, 다함께 슬퍼하고, 다함께 변하자고 약속했던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우리 시민들의 추모하는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싯다르타는 모든 생의 고통이 '무명(無明)', '알지 못함'에서 빚어진다고 보았고, 소크라테스는 참된 앎이란 결국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가를 아는 것이라 했다.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지기도 전에 세상에는 해무와 같은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 듯하다. 허나 결국 그 안개 너머에는 우리가 똑바로 목도해야할 진실이 있을 것임을, 그 진실이 우리의 마음을 다시 밝혀주리라는 것을 믿어본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이 남긴 유작 작품을 본 뒤, 노란 포스트잇에 이제 6학년이 된 아이가 조그만 손으로 편지를 써 남긴다.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세요."
나는 그 포스트잇을 보며 다시 한 번 이를 악문다. 저 아이가 '우리나라'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살아남은 나의 책임이다. 행복은 먼훗날 저 아이가 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 앞에서 아이가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일 테다.
2014. 11. 14.
*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인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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