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아이들과 가을 들살이를 다녀오다
- 풀꽃
파주자유학교는 봄, 가을 두 차례 들살이를 간다. 말 그대로 학교 밖에서 아이들과 교사들이 숙식을 함께하며 살아보는 거다. 짧게는 2박 3일에서 길게는 보름 넘게, 초등과 중등, 고등이 따로 과정마다의 특성을 살려, 역사기행, 둘레길 걷기와 자전거 기행, 해외여행과 트레킹, 소록도와 헤비타트 봉사활동을 한다.
과정마다의 과제와 체험의 범위는 다르지만 자연스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아이들이 보여주는 관계성이다. 학교안과 다른 환경에서 만나는 친구와 교사, 여행지에서의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자기 절제, 책임감, 두려움을 극복해내는 모습이다. 특히 학교 밖에서의 체험은 직접 적이고 해결하고 가야만 하는 과제과 요구되기 때문에 아이들로서도 피할 데가 없다. 아이들의 개성이 보이고 넘어서야 할 과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들살이에 함께한 구성원들의 태도에 서로가 주목하게 되고 아이도 교사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들살이를 갔다 오고 나면 교사와 아이들과의 유대감의 밀도가 달라지고 마음자락이 깊어지고 커진 걸 서로 느낀다.
올 가을에는 초등 2학년에서 5학년까지의 아이들과 4박 5일 일정으로 공주 백제문화 기행에 함께했다. 청미래 중고등 아이들 수업과 들살이 경험만 있던 내게 초등 아이들과 함께하는 들살이는 처음이었기에 긴장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공주 백제역사문화를 탐방하는 이번 여행은 집결지인 3호선 대화역에서부터 시작됐다. 아이들과 교사까지 27명의 단체 여행객이 되어 전철과 고속버스, 공주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여정은 그 자체가 생생한 체험이고 모험이었다. 첫날, 일행 마지막으로 개찰구를 지나갔던 난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났다. 전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한 아이가 못가겠다고 떼를 쓰는데 몇 마디 말로 다독이며 진정시키는데 막무가내였다. 그때 먼저 내려가 있던 다른 아이들이 올려다보는 눈길과 마주쳤고 아이들은 말을 보태기보다는 조용히 기다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담임교사에게 들으니 어두운 곳이나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는 걸 겁낸다며, 다른 아이들은 그 특성을 알고 기다려준 거라고 말해준다. 고등과정 자원교사로 온 아이가 덥석 안고 담임교사인 한아름에게 안겨주었더니 그제서야 진정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아이는 여행 내내 편안했다.
전철역에서 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만나는 계단, 에스컬레이터, 지하상가길, 표지판, 많은 바쁜 사람들과의 부딪힘과 멈춤에서 일행과 교사를 놓치지 않으려는 눈과 서로 맞잡은 손을 꼭 쥐고 걸으며 뒤돌아보고 주의를 주며 재잘재잘 조잘조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구경하면서도 적정 거리 유지와 자신의 안전과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숙소는 마을 안에 있는 단독주택 같은 팬션이었는데, 잔디 깔린 작은 족구장과 너른 마당, 나무와 가을꽃들이 잘 심어진 정원이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 맞춤이었다. 마을이 크진 않았지만 말끔하고 여유로웠다. 아이들은 짐을 풀자마다 마당에서 놀기 시작했다. 고등과정 형이 알려준 족구 규칙을 알고 나서는 떠나는 날까지 아침저녁으로 족구에 푹 빠져 지냈다.
여행 이튿날 아침, 6시경 눈이 떠졌다. 몇몇 아이들이 잠에서 깨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동네 산책 갈 사람은 나오라고 했더니 긴 옷을 걸쳐 있고 다섯 명이 따라 나섰다. 숙소 밖 큰 길 쪽으로 가니 정자가 있고 그곳에 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그림지도가 있다. 먼저 개울을 따라 가보기로 하고 걸어가는데, 계룡산자락이어서인지 계곡길이 이어지고 작은 불상과 촛대와 향꽂이, 제기들이 놓인 기도소도 몇 군데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가는 길 내내 보이는 들꽃, 곤충, 소리, 흐르는 개울물에 손을 담그며 좋아라 하고 도토리와 밤을 줍고, 다람쥐 먹이니 놓고 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걷는데, 참 유쾌하다. 아침밥 먹는 시간에 맞춰야 한다니 군말 없이 발길을 돌린다. 2학년 3학년 4학년이 고루 섞인 이날의 산책 모둠은 여행 마지막 날 아침까지 나흘간 빠지지 않았다. 한 시간여 아침산책을 다녀온 아이들은 별 반찬 없이 구이 김으로 조그맣게 빚은 따뜻한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셋째날, 어제 아침 산책에 동행했던 아이들은 벌써 준비를 마치고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날은 어제와 반대편에 있는 자연동굴이 있다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굴을 가는 길 양편으로는 황금들녘이 펼쳐지고 수로에는 물풀 들 사이로 작은 고기들이 다녔다. 아이들은 환호를 하고, 벼이삭 몇 알을 훑어 겉껍질을 벗기고 먹어도 보았다. 굴 이름은 공암굴, 길이는 10미터 정도 되는 자연굴이었다. 철조망이 쳐져 있었는데, 철조망 아래쪽이 들려 있어 웬만한 사람들은 드나든 흔적이 역력했다. 고청 서기 선생이 한여름에 더위를 피해 이 동굴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기록문이 입구에 서 있다. 아이들과 조심스레 굴 안쪽까지 들어가 보았다. 서늘했다. 비를 피하고 더위를 피할 정도의 작은 굴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신비로운 굴을 보는 것보다 열심히 벽을 살피고 바닥을 밟으며 들떴다. 이날 동굴을 본 이야기는 다른 아이들 귀에까지 들어갔고 박물관 가는 버스시간에 늦지 않게 조금 일찍 서둘러 나서서 아이들 모두 다녀왔다.
넷째날도 아이들은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마을 지도에 표시 되어 있는 다른 굴을 찾아 길을 나섰다. 큰길을 건너는 지하도를 따라 코스모스가 피어 있고 개울을 오른쪽으로 끼고 도는 마을을 벗어난 길이었다. 가는 길에 개를 산책 시키는 부부를 만났는데, 작은 아이들 여럿이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게 눈에 띄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아이들은 구김 없이 이야기를 잘 한다. 개울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자락 사이로 굴이 있을 듯싶어 계속 길을 가며 건널 곳을 찾는데, 개울을 건널 수 있는 돌다리가 보였다. 건너보니 논고랑 사이 길만 나 있었다. 방향을 잘못 잡은 듯해 내일 다시 찾아보자며 아침 식사 시간에 늦지 않게 돌아가려는데, 아이들은 물수제비 뜨는 데 여념이 없다. 야구공 던지는 것에 빗대어 돌을 던지며 친구에게 물수제비 뜨는 방법을 알려주는 아이, 체구도 작고 말수도 적은 한 아이는 조용하면서도 야무진 물수제비 솜씨를 선보였다. 이 아이는 이번 산책에서 풍부한 자연 상식을 보여주었다. 떨어진 모든 열매와 물고기에 호기심을 보여주었던 아이, 구별이 잘 가지 않는 수풀 길에서 여치, 방아깨비 등 곤충의 움직임과 자세를 콕콕 찝어 보여주던 아이, 그 모든 걸 관심 깊게 보면서, 그 순간의 공기의 맛과 냄새를 이야기하며 자신이 이런 냄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행복했던 때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웬지 축복받은 느낌이었다.
마지막 떠나는 날 아침 산책은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교사들과 들살이 에피소드와 아이들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 3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이들도 알았는지 자원교사로 함께 온 고등과정 형과 산책을 나갔단다. 또 다른 굴은 찾지 못하고 아이들과 달리기 시합을 하면서 즐겁게 산책을 갔다 왔다고 전해준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들살이어서 어느 때보다 교사들은 안전에 주의를 기울였다. 일정을 총괄 진행한 교사 초아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교통편과 식당, 일정조정과 하루 마무리 등을 현장 사정에 따라 조정하고 진행하고, 한아름은 전철을 타지 않으려 했던 그 아이를 중심으로 몇 아이를 주위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챙기고, 다른 아이들은 스스로와 서로를 챙기며 고등 자원교사와 내 주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백제문화역사 탐방기였던 이번 들살이에서, 백제문화유적 설명을 해주는 박물관 학예사에서부터 공산성 해설사까지 여러 어른을 만났는데,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조사해온 사전자료를 바탕으로 현장 설명까지 하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고, 잘 듣고 기억했다. 특히 듣는 자세는 고등 자원교사로 처음 초등 들살이에 합류한 아이도 놀랍다며 감탄했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나서지도 않고, 어른들 얘기를 귀담아 듣고 바로 현장에서 적용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놀고 늘 호기심 어린 탐험을 하던 아이들이었다.
마지막 체험은 무열왕릉을 지키는 진묘수 만들기였는데,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진묘수를 들고 나오는데, 드러나지 않은 그 아이의 마음속살이 스며들어 있는 듯해 살짝 놀랐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기점에서 시내버스를 탔는데, 다행이 일반 승객 들은 몇 없어 뒤쪽에 우리 아이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맨 뒷자리 가운데에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들은 앉자마다 진묘수를 갖고 온갖 상상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느 순간 버스 안이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 찼다고 느끼는 순간 앞쪽에 있던 교사를 포함해 승객 몇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때의 그 순간은 내겐 감동이었다.
들살이 내내 아이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며 그 시간과 공간에서 이끌고 안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숙소로 돌아와 자기의 경험을 재정리하는 시간도 알차게 보냈다. 잘 먹고, 잘 보고, 잘 놀고, 잘 듣고 지낸 들살이 체험을 오롯이 담아간 아이들이 이때를 어떤 느낌과 생각으로 기억하고 발현할지 자못 궁금하다.
너무 주관적이며 섣부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스스로 절제하며 자유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며 파자가 키워내고자 하는 아이들 모습을 살짝 엿보게 된 것 같아 행복했다.
아침 산책 모둠 아이들의 끝없는 호기심과 작은 것에 기뻐하는 모습, 자기 주변 모든 것에서 기쁨과 흥미로움을 찾아내고, 들살이 닷새간의 일정에 집중하고, 숙소 주변과 체험하고 견학하는 곳 안팎에서 즐거움과 관심거리를 찾아내던 아이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지는 않았겠지만
일상에의 집중, 그것은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일 것이다. 그것이 배움의 기본, 공부가 아닐까?
‘세상에는 텅 빈 곳이 한 군데도 없고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어디에나 생명이 있다. 삶은 흥미로움으로 가득했다.'는 글귀가 깊게 다가온다.
201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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