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번 글에 이어 이 글도 파주자유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오동 님의 글입니다. 대안교육 1번지(?)라고도 불리우는 고양-파주 지역에서 지난 달 개최되었던 공동육아/대안교육 한마당에 참여한 후의 소회를 느낌 있는 사진들과 함께 풀어주셨습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졌지만 따로가 아닌
2014 고양, 파주 공동육아 대안교육 한마당 감상기
- 오동(파주자유학교 초등과정 2,3학년 부모 대표)
좀 마뜩찮은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전전날에 학부모회의 대표들과 말이 오갔다. 불쾌한 감정을 실은 단어를 카톡에 남겼다.
이 행사의 참여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는 반대를 했다. 왜 이런 행사를 하느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고 말했다. 심각하게 이 문제를 얘기하진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회의의 끄트머리에서 지나가는 말 정도의 무게였고 그날의 결론은 불참이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른 논의가 있었다. 학부모회의 의견은 수렴되고 전달하고 논의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입학설명회 9월 20일. 체육대회 9월 27일. 대안교육한마당 10월 6일.
학부모회의 한사람으로써 도울 일이 많았다. 짧은 기간에 굵직한 일들이 몰렸다. 서로의 일정을 조율하고 일을 분담하는 것도 피곤하다. 몸이 힘든 것보다 신경의 소모가 더 피곤하다.
체육대회 마치고 '대안교육 한마당'에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통보라고 느꼈다. 학부모회에서 합의한 불참의 뜻을 재논의하는 과정에 나는 없었다. 거기서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참여를 결정했다. 이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정 그렇다면 하자고 했다. 그러나 불쾌했다. 내가 화가 난 지점은 참여 여부를 두고 재논의, 재논쟁, 재합의를 하는 과정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로 밀어부치는 방식에 나는 반대한다. 자발성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즐거운 일이라면 일주일도 일할 수 있지만 내가 싫은 자리라면 일초도 끼기 싫다. 대표들간의 소통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월급 받는 직장도 아니고 봉사와 약간의 희생을 하는 일이다보니 한계가 있다.
학교에서 참가를 바라는 것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일은 누가 할 것인가? 큰 뜻, 좋은 의도, 올바른 생각으로 결정한 일이 안 좋게 어그러지는 경우를 더러 봤다. 카톡에 '참여하라고 말한 사람들이 가서 일하라.'고 썼다. 연대의 의미로 참여를 바란다면 직접하면 된다. 왜 시키는 사람 따로 있고 일하는 사람 따로 있나? 이런 경우는 어느 조직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맞닥뜨릴 때마다 못마땅하다. 자연스럽게 신경의 날이 선다.
올 한 해 학부모회 일하면서 별다른 잡음이 없었다. 큰 행사도 거의 다 치뤘다. 그런데 학교의 직접적인 행사도 아니고 대안교육과 공동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서로 연대하고 홍보도 하는 일이 얹혀졌고 그 진행과정에서 삐딱해졌다. 나는 이 행사의 목적을 홍보라고 보았다. 홍보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늘 하는 말이지만 홍보는 웹으로 하면 된다. 홈페이지나 블로그보다 더 좋은 홍보의 채널은 없다. 2010년대의 찌라시는 홈페이지와 블로그와 페북과 트위터다.
매일 벌어지는 학교의 일들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만 하면 홍보는 저절로 된다. 단,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밋밋한 표졍의 예쁘고 바른 얘기들이 아니라, 못나고 엉성하고 부족해도 진정성이 있는 학교의 얘기들, 하루하루 일년일년 헤쳐나가는 학교의 얘기들. 우리가 남의 일기를 훔쳐보며 즐기는 '그 무엇'을 홈페이지에 담을 수 있다면 홍보는 된다. 꾸미지 않고 자기가 경험한 일들을 그냥 보여주면 된다. 진심이 담긴 '찌라시'를 꾸준히 만들면 된다. 그런 전략이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지만 일년 중 하루 날 잡아서 우리끼리 모여서 노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머리에 얹은 채, 파주자유학교의 홍보 부스를 꾸미는 미션을 맡은 책임감으로 92번 버스를 탔다. 시간은 오전 6시 40분. 행사는 10시에 시작한다. 준비하는 사람들은 8시까지 가면 된다. 내가 할 작업의 양을 가늠했을 때 두시간으로는 부족했다. 조금 일찍가기로 결정했다. 느낌상 30kg은 넘을 것 같은 종이와 재료와 공구를 챙겼다. 전날 검색한 정보로는 집에서 호수공원까지 57분이다. 버스가 생각보다 빨리 달린다. 20분 만에 일산에 도착했다. 아침 7시. 시간을 어떻게 흘릴까? 정류장에 내려서 호수공원 검색하고 느긋하게 길 따라 걸었다. 멀리서 보니 일당 나온 아저씨들이 많다. 이 아침에 하루 벌이 하러 온 사람들이구나.
가만 보니 사람들의 분위기가 다르다. 혹시, 다른 학교 사람들인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나를 저 곳으로 이끌었다. 김밥이 있었다. 어떤 이는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나눴다. 몇 마디 말들이 오갔다. 눈치를 보니 파주자유학교에서 온 사람은 나 혼자다. 이게 뭐지?
김밥 한 줄 먹고 포스터 붙이러 뿔뿔이 흩어졌다.
큰 틀에서 대안교육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기 시간 쪼개서 모였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일당 노동자로 보였던 사람들이 나와 같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대안'이란 이름으로 같은 장소에 있다.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다. 저들도 이런저런 사정을 뒤로하고 여기에 왔을 것이다. 저들 중 어떤이는 나처럼 뜨악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한 것이고 오늘 치뤄야만 하는 일이다.
조금 후에 파주자유학교 사람들이 왔다.
보통 민정 아빠로 불리는 이땡땡 씨가 저기서 수고를 하고 계신다.
민규 아빠로 불리는 방땡땡 씨도 같이 계신다.
우석 아빠로 불리는 김땡땡 씨, 종헌 아빠로 통하는 또다른 이땡땡 씨.
2014년 학부모회 회장님이자 주은 엄마로 통하는 박땡땡 씨.
천막에 가려 안 보이지만 종.주은 아빠 송땡땡 씨도 계신다.
남들 일할 때 혼자 사진 찍으면서 자꾸 '원마운트'가 보였다.
원마운트와 쇼핑몰과 대안학교가 나란히 있는 풍경.
대안학교에서 배우든 일반학교에서 배우든 아이들은 공부를 마치면 사회로 나올 것이다. 사회는 제 몸에 익힌 기능을 팔아 그것으로 돈을 벌면서 살아야하는 구조다. 쉽지 않다. 학벌이든 학력이든 빽이든 믿는 구석 하나는 있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
대안학교를 졸업했다는 게 '빽'이 될까?
다르게 세상을 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직업이 관건이 아닐까. 선택한 직업에 따라 살아가는 모양도 달라진다. 기왕이면 연봉 높은 직업이 유리하겠지.
나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월급? 땅? 융자금?
옆 집 사람들이다. 물리적인 위치야 서로 떨어져 있지만 생각만큼은 이웃인 사람들이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연대'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유독 고양 파주 지역에 대안학교들이 많나? 그렇다고 한다. 일산 때문인가? 일산 지역의 학부모들 연령대가 '대안'을 생각하던 시절에 교육 받은 세대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뭐든 이 지역에 이렇게 많은 학교들이 있는지 몰랐다. 들어서 알긴 했지만 눈 앞에 텐트치고 각자 학교 이름 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든든한 기분도 들었다.
고양 자유학교. 고양 우리학교. 불이학교. 하나인학교.
파주자유학교.
두드림 자유학교. 많은 얘기를 들었던 학교다. 파주자유학교와도 인연이 깊다.
나는 사진 속의 한 사람은 알고 한 사람은 모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안다. 인사를 한다.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사이라면 됐다. 각자의 상처는 자기 안에서 아물면 된다. 그러나 안타까웠다.
공동육아. 나는 안 해 본 것이라 어떤 방식인지 몰랐다. 부모들이 애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다 같이 기르는 풍경이 떠올랐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놀았다고 기억한다. 행사의 끝무렵 대동놀이 때 맨 앞에서 놀이를 이끌었다.
광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각자 준비한 놀이들을 벌인다. 굴렁쇠도 굴리고, 단체 줄넘기도 하고.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연주, 노래, 춤.
홍보전도 치열하다. 이렇게 샌드위치 맨을 자처한 아이도 있었다. 등짝에 자기 학교, 학년, 이름을 써 넣은 스티커를 붙이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어느 학교인지 인식이 된다.
홍보가 관건일까?
대안학교마다 안정적인 숫자의 아이들이 있길 바랄 것이다. 학교의 근본은 아이들과 교사니까.
일반 학교들이 상위 1%를 홍보로 내걸고 '어느 대학 몇 명 합격'을 카피로 내세운다면 대안학교는 무엇으로 홍보를 할까. '자유' '인성'만으로 될까?
파주자유학교는 '자유' '자립' '자연'을 내세운다. 그런데 나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단어나 의미가 틀려서가 아니라 전달의 효과성 때문이다. 더 깊이 박힐 수 있는 문구는 뭘까? 대안학교의 가치를 더 쉽게 전달하고 읽는 이에게 콕 박힐 수 있는 카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안학교는 문제 있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아니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홍보가 관건일까?
대안학교의 미래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좋은 힘을 기르기를 바란다.' 좋은 힘'이란 게 막연해서 콕 집어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독서를 할 수 있는 힘'은 있었으면 좋겠다. 요새는 '독서 근육'이란 표현이 자주 보인다. 독서가 강조되는 까닭은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독서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기술로서의 독서라고 한다. 생각의 힘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상상력, 창의력은 벽보고 공상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대안교육을 생각하고 공동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마련한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끌고 있던 아빠는.
좁은 땅에서 조금 다른 방식의 교육을 해보겠다고 뭉쳤지만 우리들은 모래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서로 돕고 있지만 모래알의 연대이다. 모든 학교마다 감추고 싶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터지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그런 일들이 반드시 있다. 빛과 그림자처럼, 안감과 겉감처럼. 좋은 생각과 나쁜 일은 항상 같이 일어난다.
대안학교든 공동육아를 하는 곳이든 모두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형식의 홍보를 한다. '자유'라는 말이 유독 많았다. '들살이', 별명으로 선생님을 부르기 등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단어와 생각들이다. 나는 홍보하는 형식의 차이가 아쉬웠다.
어쩌면 유사한 홍보 방식은 '대안'이란 개념과 실천 방법을 비슷하게 생각하고, 그런 비슷한 생각들이 서로 닮은 포맷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왜 꼭 달라야 하냐? 다르다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상상력의 문제라면 할 말이 조금 있다.
'회심(回心)이란 단어가 있다. 개체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인생에서 한 번 쯤은 마주치는 생각의 변화의 순간이라고 한다. 어느 날 생각이 '회까닥'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한 사람에게서 일어나면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의 자세가 달라진다. 상상력의 힘은 이런 '회심'의 순간을 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십 대에서 이십 대로 넘어가는 나이에, 이십 대에서 삼십으로 변하고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는 마디마다 몸과 마음의 변화가 있다. 그러나 생각의 변화는 어렵다. 나이 먹는다고 생각도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노인이 되면 현명해지는 게 아니라 고집이 세진다. 믿어 왔던 것만 믿는다. 상상력의 힘이 약해서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다르게 하기 시작하면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비슷한 철학을 가졌다고 해도 보여주는 방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간단하게 '인테리어'와 '디자인'이 왜 필요한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설탕으로 만든 솜사탕을 팔려던 노인 부부는 곧 쫓겨났다.
이 사진을 찍는 순간에 단속반이 왔다.
각 학교마다의 철학과 지향점을 간명하게 시각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형식.
각 학교마다 생활하고 노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형식.
이런 것은 중 고등 과정의 아이들과 같이 머리 맞대고 해 볼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우리들을 열광케한 <밤이면 밤마다>. 파주자유학교 밴드가 제법이었다. 진짜 흥이 나서 모두들 소리 소리 질렀다.
노래의 힘,
음악의 힘,
아이들의 힘.
이번에 느낀 것인데 우리 학교 아이들이 연주를 잘 하는 것 같았다. 막귀라 누가 누가 잘하는지 구분하진 못하지만 그냥 그렇게 들렸다. 그러면서 연습실을 떠올렸다. 여름이면 눅눅한 곰팡내가 나는 열악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일주일 정도 학교에서 게시판 만들면서 하루의 일과를 엿본 적이 있다. 아침에 청미래 아이들 몇 명은 꼭 기타든 드럼이든 연습하고 있었다. 아무 때나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학교가 부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자 곧바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날 본 어떤 부부, 혹은 남자와 여자.
생각없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데 몇번 이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는 학교 텐트에서도 마주쳤다. 사진의 남자분이 학부형 한 분과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고 있길래 다른 사람에게 누구시냐고 물었다. 풀꽃 선생님의 남편과 따님이란다. 남자분의 인상이 인상적이어서 가만히 훔쳐봤다. 무슨 일을 하고 살까,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보기 드문 얼굴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은 대개 착하다. 47년 살면서 본 진짜 나쁜 놈은 몇 명 없었다. 다들 적당히 약았고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고약했다. 관계에 따라 나쁘고 좋고 선하고 악한 얼굴들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선한 사람들도 드물었다. 어쩌면 충분히 선한, 선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표정이 저렇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다. 아니면 자기 뜻대로 살아온 얼굴?
액면을 너무 믿으면 안되는데.^^:
애들이 뭘 아는지 몸을 비비적 대며 춤을 춘다.
대안의 학교, 대안의 배움이란 공통의 생각으로 모인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극, 벼룩시장, 춤, 노래, 합창을 했다.
땡볕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나는 좋았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안의 삶과 배움을 생각하는 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혹은 둘로, 또는 셋으로 뭉치면 든든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 집 구경하고, 저 집 넘겨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약하지만 허약하지 않고,
모래알처럼 흩어졌지만 따로가 아닌,
우리들의 비슷한 생각과 우리들의 학교가 더 튼튼해지면 좋겠다.
전화기 배터리가 모두 나간 탓에 나머지 일정을 찍지 못했다.
대동놀이, 연합공연.
내가 본 감동적인 모습은 아빠들의 합창이었다.
각 학교에서 모인 아빠들이 스탠드를 가득 채우고 섰다. 저렇게 많은 아빠들이 노래를 부르기 전, 저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이해'와 '오해'와 '뜨악함'과 '쳇'과 '그러던지 말던지'와 '합의'가 있었을까. 저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대안'이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대안'은 언제나 주류와 비교된다. 주류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지만 그것이 메인은 될 수 없다. 어쩌면 대안이라 이름붙은 모든 것들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힘든 일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선택한 우리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얼굴을 한번 보자는 날이다. 그래서 얼굴 봤다. 모르는 얼굴들 보니 좋았다. 행사는 주로 자기 학교들 공연때만 우 몰려가서 박수치고 환호하는 식이었으나 옆에 나와 닮은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았다. 아빠들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마지막 공연에 앞서 어떤 분이 마이크를 들었다.
"대안교육, 공동육아 한마당을 기획하는데 가장 힘들고 가장 많은 시간이 드는 것은 이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걸 왜 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논쟁입니다. 그 시간이 절반을 넘습니다. 그 논쟁에 합의를 한 후에야 일을 진행하고 그래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말씀이었다.
201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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