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 무나씨 드로잉 <날마다 타인> http://cargocollective.com/moonassi


선택의 순간들 3

- 금안당 



세번째로 어떤 상황에서나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가장 큰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자신에게도 그리고 남에게도.

 

거짓된 상태가 되는 건 쓸데없이 몸을 치장하고 온갖 옷을 껴입는 것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내 몸의 단점을 나 스스로 잘 알기에, 내 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치장을 하고 이런저런 의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치장과 의상에 속아 넘어가 나더러 '멋있다'고 말한다. 그냥 최소한으로 면피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반응하면 문제가 커진 것이다. 내가 지금 와서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고백하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도 속았다는 느낌과 배신감을 가져가지 않을까?  맙소사, 그렇다면 사실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 이제 나는 더 치장에 열중하고 의상에 신경 쓴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기대는 더 커진다. 그리고 계속되는 사람들의 칭찬은 어느 새 나 자신까지도 속게 만든다. '그래, 난 본래 그런 사람이야!'  하지만 이런 허영이 내가 애초에 갖고 있던, 그래서 나를 치장하게 만들었던 그 자신감 부족을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단지 가슴 더 깊은 곳으로 감춰졌을 뿐이다. 혼자 있을 때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될까봐 불안감에 몸을 떤다. 이제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상황은 오리무중이 되고, 안갯속이 되고 말았다.

 

자, 흔히 펼쳐지는 이런 결과를 보면, 계속해서 숨기고 가리고 속이는 건 분명히 정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다들 알겠지만, 애초의 잘못은 나의 '단점'을 숨겨야 할 단점으로 여긴 데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이 지점까지 추론하는 건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물론 추론과 달리 실천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이따금 결심한다. 숨기고 거짓말 해서 더 골치 아파지느니, 그냥 다 털어놓고 말자고.

 

드라마 같은 걸 봐도 그렇지만, 각자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또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아서, 계산된 고의의 거짓말에다 선의의 거짓말들까지 보태져서 상황이 꼬이고 복잡해지는 건 어디서나 쉽게 일어난다. 사실 거짓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상황이 복잡해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드라마에서는 드라마 자체가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현실의 우리도 마음으로는 모든 걸 다 털어놓고자 하지만, 꼭 그래야 할 때가 되기 전까지는 거짓의 가면을 벗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예전에 '인간이 만든 가상세계'라는 글을 쓴 적도 있지만, 보다시피 거짓말도 가상세계를 만드는 데 큰 몫을 한다. 거짓이 없었다면 세상은 훨씬 단순명쾌해졌을 것이다.

 


미국 드라마 <24시>

유명한 미드인 <24시>의 시즌 몇인가를 보면,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살인사건에 연루된 일화가 나온다. 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건 누이인 대통령 후보의 딸이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누이가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안 오빠가 분노하여 가해자인 청년을 찾아가 몸싸움을 하다 그 가해자가 창문에서 떨어져 죽고 만 사건이다. 권력자의 자식들답게 이 사건은 덮혀졌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가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그와 정적이 된 쪽에서 새삼 예전의 이 사건을 들고 나와 폭로하겠다고 후보를 협박한다.

 

한편 대통령 후보는 그 전에는 이 사건의 진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후보의 부인은 알고 있었다. 부인은 자식들의 끔찍한 과거가 드러나는 사건인 만큼 계속 은폐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드러나면 선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반면에 대통령 후보는 고민한다. 또 사건의 경과를 자세히 조사하고 나서 자신의 아들이 한 행위가 살인이 아니라, 일종의 사고사였음을 확인한 후보는 정적의 거래에 응하지 않고 자진해서 이 사건을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최대한 진실을 말한다. 덧붙여 성폭행 당한 자신의 딸에 대한 과도한 동정이나 관심을 자제해줄 것을 부탁하고, 아들에 대해서도 자신이 먼저 살인이 아닌 사고사였다는 단정을 내놓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조사하면 밝혀질 사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과는 영부인 후보가 아니라 대통령 후보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후보의 정직함에 감동하여 정치가로서도 그를 더 신뢰하게 되었고, 덕분에 지지율이 치솟고 마침내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냥 드라마여서 그런 것뿐일까? 현실이었다면, 대중이 이런 엄청난 일을 일으킨 자식들을 둔 후보는 부모로서만이 아니라 정치가로서도 실격이라고 판단했을까? 그리고 그 아들에 대한 무혐의처리도,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대중이 의심의 눈초리를 절대 거두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했을까? 예비 영부인이 염려했던 게 이런 현실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염려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혹은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아끼지 않다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야지만, 진실의 전부도 아닌 한 조각만을 내어놓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다수 사람들의 이런 선입견은 그냥 기우, 즉 불필요한 염려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진실이 드러나는 걸 불편해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은폐하거나 속이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고 여긴다. 그래서 '난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할 거야'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젊은 여자를 못마땅해 하기는 하지만, 겉으로는 부나 조건 같은 건 전혀 안 따지고 사람됨만 볼 거라고 하던 여자가 결국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걸 보고 느끼는 분노와 배신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솔직한 게 그닥 손해보는 일도, 염려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문제가 터지기 전에, 굳이 솔직히 고백하지 않아도 될 때, 고백해보라. 안개가 깔린 것처럼 흐릿하던 당신의 마음 한 구석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사람들은 이럴 때 흔히 '다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그 털어놓은 사실이 범죄 행위일 때도) 그리고 당신이 거짓말을 했던 상대도 당신의 고백이 진심이라고 느끼면, 예상과 달리 당신을 쉽게 용서할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신뢰관계는 예전에 서로를 속였을 때보다 훨씬 돈독해질 것이다.

 

이처럼 거짓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신뢰를 잃게 만들 뿐 아니라, 나아가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식으로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것을 방해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 윤리나 도덕 의식 혹은 자존심, 혹은 자기 과신이나 기타 등등 때문에 진짜 자기 모습을 자기 스스로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명상 수련회에 갔을 때, 한 여자가 자기 큰 아들을 야단을 많이 치고 싫어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 큰 아들이 자신이 싫어하는 시아버지를 빼닮아서 그랬다는 걸 알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마도 수련회에 와서 깨닫기 전까지 그 여자분은 자기가 큰 아들을 야단치고 엄하게 대하는 건 큰 아이가 잘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시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만만한 아이에게 돌아갔을 뿐이란 게 밝혀진 것이다. 아마도 그 여자분은 시부모에게 화내고 시부모를 미워하는 건 인륜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는 금기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수련회에서 그 여자분은 금기를 해제하고 자신의 본 마음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그 여자분의 다음 행동이 어떤 것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예전보다는 최선의 선택에 근접한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만약 처음부터 솔직했다면? 거짓이 아니라 정직함, 솔직함이 우리의 평소 마음 자세였다면? 아마도 우리는 불필요한 실수와 착각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불필요한 노력과 타협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자신의 진짜 마음을 몰라 앰한 큰 아이를 학대하고 상처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결과들을 해결한답시고 불필요하게 우리의 에너지와 정신을 분산시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솔직해지지 못하는 걸까?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서이다. 애초에 거짓 상황을 만들어낸 것도 두려움 때문이었고, 거짓의 가면을 벗고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도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해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냥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책임지려는 용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려는 용기, 진실이 드러나는 걸 불편해할 사람들과의 관계가 앞으로 소원해질 것을 감수할 용기 말이다.

 

보다시피 솔직해지는 데 죽음을 불사하고 무시무시한 적과 맞서 싸워야 할 때 필요한 것 같은 그런 거창한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냥 단호한 결심이면 된다. 그래서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따금 솔직해지기로 결심을 한다. 마치 금연이나 금주를 결심할 때처럼 거짓이 불러오는 상황이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한 번씩 실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연이나 금주 결심처럼 솔직해지는 것도 한 두번의 결심으로는 안 된다. 금연이나 금주처럼 습관이 되어야 한다. 흡연, 음주 습관이 금연, 금주 습관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거짓말 하는 습관이 거짓말 하지 않는 습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할지 모르지만, 예전에 본 어떤 통계에서는 현대인이 하루에 평균 열 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는 10분에 3번 거짓말을 한다>는 제목의 책도 있다. 현대인에게 거짓말이 거의 습관화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통계이다. 그리고 이렇게 습관화된 거짓말이 현대인을 오리무중의 삶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리고 이 많은 거짓 중 상당수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다. 현대인은 안녕치 못한 데도 안녕하다고 하고, 일이 잘 안 풀려도 괜찮다고 하고, 자신에게 화가 난 것임에도 다른 사람이나 환경 때문에 화가 났다고 말한다. 나의 질투심으로 그에게 화가 나지만, 화를 내는 건 그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최선의 선택을 하려면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자각해야 하는데, 이렇게 '내가 나를 모르는데~' 라는 노래가사 같은 상황이 되어서는 나는 어떤 것도 제대로 선택할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다. 반면에 이 점에서는 오히려 일부 '악인'들이 유리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고, 이를 숨기지 않는다. 그만큼 그들의 선택은 그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살다 보면 천벌을 받아도 마땅할 것 같은 못된 인간이 천벌은커녕 떵떵거리고 잘만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욕심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가를 치르는 건 에너지를 집중하지 못했던 다른 영역에서이다.

 

반면에 인생은 착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불리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딴짓'을 하느라, 진짜 자신이 바라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념이나 교리, 자존심이나 강한 호오(好惡)의 감정 등으로 자기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사람에게도 불리하다. 스스로 닫혀 있어 이용할 수 있는 삶의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나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다.

 

앞에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장점만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단점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그 부분을 '단점'으로 보는 건 세상사람들의 평가이고, 내 마음이 그렇게 여길 뿐이지, 아무것도 증명된 건 없다. 게다가 내 단점이 있어서 내 장점이 있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앞의 '종수곽탁타전'에 보면, 곱사등이인 탁타가 낙타와 닮았다 하여 사람들이 놀림으로 '낙타야, 낙타야'라고 부르니, 탁타가 오히려 그 별명이 좋다 하며,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별명을 자기 이름으로 삼은 대목이 나온다. 또 어느 다큐에서는 등이 붙어 있는 샴 쌍둥이가 분리 수술을 거부하며, 자신들은 언제나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지금이 더 좋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 본 적도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독한 단점처럼 보이는 몸을 하고도 스스로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을 사랑한다.

 

사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 내가 키가 작다고 그걸 감추고 숨겨야 할 단점으로 여긴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욕심과 욕망을 감추고 숨겨야 할 부도덕함으로 여긴다면, 내가 팔방미인 내지는 만능인이 되는 게 당연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능력 부족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 단점으로 여긴다면, 이제 와서 뒤집을 수도 없는 내 과거의 실수들을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내 오점으로 여긴다면, 약하고 외로워하고 두려워하는 내 일부를 부끄러운 내 모습으로 여긴다면...... 나는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다.

 

생각을 바꾸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키가 작고 덩치가 작아서 유지비가 별로 들지 않는 자신에게 뿌듯해하고, 욕심과 애살로 내 삶이 활기차게 되는 것에 고마워하고, 모든 걸 다 잘 하면 무슨 재미로 살겠냐며 미숙하고 어설픈 자신을 기특해하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부끄러운 내 모습들이 반면 교사가 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자산이 될 것임을 이해하면...... 생각이 바뀐다. 그러면 가리고 감추고 덮으려는 내 노력과 손길이 느슨해지다가 종내에는 더 이상 그런 불필요한 노력과 긴장된 조작을 하지 않게 된다. 저절로 조금씩조금씩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습관이 솔직해지는 습관으로 바뀌는 것이다.

 

자신과 남들에게 솔직한 건 자기 주위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해두는 것과 같다. 그래야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최선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야구에서 내가 멋지게 쳐낼 수 있는 공이 맞은 편에서 날아오는데, 그때부터 잡동사니들 속에서 야구배트와 글러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절대 그 공을 쳐낼 수 없다. 아마 이런 상황에서는 공이 날아오는지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솔직해서 불필요한 오해와 불필요한 에너지 분산이라는 물체들을 이곳저곳에 흘려놓지 않은 사람은 날아오는 공을 알아챌 뿐 아니라, 잘하면 그 공을 멋지게 쳐낼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사실 인생에서 기회라는 공들은 계속해서 날아온다. 다만 우리가 잘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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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4. 4. 1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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