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나라? 딴 나라? 

- 금안당

 


오늘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0일째인가? 그러고 보니 나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한 달 넘는 시간을 (정신적으로) 몸부림을 쳤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지금 우리 사회에는 다수 국민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소수의 집단이 존재하고 있고, 그들이 정치와 경제 등의 영역에서 이미 확고한 지배력을 장악하고 있구나'라고.

 

내가 그 증거들로 여기는 건 참사 이후 불안과 초조로 결국 참지 못하고 뱉어진 기득권층의 그 충격적인, 그래서 이 자리에서 굳이 다시 언급하기도 싫은 소위 '망언'들이다. 그리고 정몽준 막내 아들의 '미개국민' 운운은 이런 지배층의 사고방식이 그 2세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실제로 19살짜리 아이가 한 말을 놓고 그 부모는 물론이고, 자신이 지배층의 일부라고 여기거나 혹은 지배층의 충복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은 '협력자' 혹은 '대리인'들은 "틀린 말은 아니다"고 칭찬해주는 기막힌 상황이 계속 되룰이되기도 하고 있다.)

 

그건 좌나 우, 혹은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 차이가 아니다. 그건 사람을, 밉든 곱든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사고방식과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의 차이다. 정치인들은 사람을 자신에게 정치권력을 줄 수단으로 보고, 거대 재벌들은 사람을 자신에게 부를 안겨주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포함하여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되면 사람이 '표'로 보인다. 어떻게 하면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서 내가 원하는 이름 옆에 빨간 동그라미 도장을 찍게 만들까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선거 전날까지는 무슨 짓이라도 한다. 야당의 상징 인물을 회유하여 아량 깊게 품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들지만 경제민주화, 군 복무기간 단축, 기초 노인연금, 보육비 지원 등 선심성 공약도 무더기로 남발한다. 떡고물이든 국물이든 그런 별거 아닌 거에 혹해서 침을 흘리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표를 얻기 위한 선심 공약이었던 만큼, 표만 얻고 나면 목숨 걸고 약속을 지킬 필요는 없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겠다면서 국민의 표를 얻었다. 정부 부처명도 굳이 행정안전부에서 안전행정부로 바꾸었다. 그런데 정작 재난이 발생하자 살릴 수도 있었던 몇 백명의 목숨을 무기력하게 수장시키고 말았다. 그것도 꽃 같은 나이의 어린 학생들을... 게다가 현 대통령은 예전에 김선일인가 하는 선교사가 정부의 주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굳이 위험한 중동 지역으로 출국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그쪽 반군에 의해 납치 살해되자,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고 당시의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몰아부친 당사자가 아닌가? 글쎄, 왠만한 사람 같으면 낯 뜨거워서라도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기 힘들 것 같은데, 정치인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돈 많은 경제인들도 다수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사실 그들은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들의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단원고 같은 서민적인 일반고에 다니거나, 그 불편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갈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말이다. 국제중학교, 특목고, 외국인학교, 외국 유학 등 돈의 힘으로 가질 수 있는 다른 선택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목사가 짜증스럽게 푸념한 것처럼 그들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 왜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디 출신학교의 차이 뿐이겠는가? '위험한' 군대 같은 것도 얼마든지 안 보낼 수 있다. 정 안되면 자식을 외국인으로 만들어버리면 되니까.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빵을 달라고 요구하는 민중의 요구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는가?' 라고 반문한 마리 앙또와네트 왕비처럼 그들이 사는 세상은 다수 국민이 살아가는 세상과 전혀 다르다.  

 

그런데 정몽준 아들의 할아버지, 즉 정주영 전 회장만 해도 어린 나이에 소 한 마리 몰래 끌고 집에서 가출하여 온갖 고생을 하면서 그야말로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또한 그 인물됨이나 사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집안의 어떤 후광(기득권)도 없이 혼자 힘으로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인물인 건 분명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 역시 그 인물됨이나 사고방식에 대한 평가를 별도로 하면 --비웃음거리가 되긴 했지만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란 말을 습관적으로 할 만큼 기득권층에서 출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이든 재벌이든 2세들은 다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지배층이라는 지위에서 출발하고, 그것밖에 모른다. 다른 세상을 이해할 기회도 경험도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의지도 없다. (삼성은 2세도 넘어 이제 3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시기인 데다가 1세 이병철 시대에도 이미 그 집안이 남달랐으니, 아마 이보다 더할 것이다.) 영화 '엘리시움'에 나오는, 하늘 위에서 사는 사람으로 애초에 태어난 것이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기존의 지위를 유지할 능력은 훨씬 커졌겠지만(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게 그것뿐이니까),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력은 훨씬 적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보낸 우리나라 광부들과 간호사들 앞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할 독일의 차관을 얻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당신들의 노임을 담보로 잡았다고 미안하다고 눈물 흘렸을 때, 국민들 누구도 그의 진심을 부정하지 않았던 반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보인 눈물이 그녀의 진심인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은 것이 아닐까? (딴 나라 충복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희생자 가족의 '눈물'보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는 희안한 주장을 하고 있다. )

 

함경도 출신인 정주영 전 회장이 사상과 이념을 넘어 몇 천마리 소를 끌고 북한을 방문했을 때, 민족 분단의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그의 진심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반면, 막내아들의 망언을 '대신' 사과한 아버지 정몽준 의원이 흘린 눈물이 단순히 표를 잃지 않기 위한 면피용이 아닌, 진심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사실 내 추측이긴 하지만, 정주영이었다면 자기 아들이 그런 망언을 했을 때 자신이 대신 사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주영이었다면 20살이 다 된 아들을 보호받아야 할 어린애처럼 대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혼을 내고 직접 사과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하늘 위에서밖에 살지 않은 사람에게는 땅 위 사람들의 삶이 벌레나 빈민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차이 아닐까? 자수성가한 사람과 부모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의 차이는. 그리고 3, 40년 전 세상과 지금 세상의 차이는. 

 

3, 40년 전보다 사회는 더 복잡해지고 고도화되었지만, 그 안의 개인은 더 무력해졌다. 사회 시스템이 훨씬 더 강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위 말하는 계층이동성이 훨씬 더 줄어들었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이 과정을 더 가속화한다. 어디선가 본 자료에 따르면 세계 인류의 0.01%의 사람이 전세계 부의 20% 이상을 소유하고 있고, 1%의 사람들이 전세계 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머지 99%의 사람들이 계층 상승을 시도하는 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혹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다. 나 스스로 든 비유이긴 하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이겼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지 말고 계란을 부화시켜 수십마리 병아리를 낳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해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스산해진 마음이 아직 달래지지는 않지만......)

 

2014.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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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4. 5. 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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