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느린구름 |
대한민국 대안교육 역사 20년
내가 대안교육, 대안학교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 문예부실에 있던 문예부 담당선생님의 교육 관련 잡지를 우연히 펼쳐보고 그 속에서 '간디학교'와 '풀무학교', 그리고 '서머힐'이라는 명칭을 처음 접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아직 학생이었기에 그 기사를 보고 굉장히 두근두근 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꿈의 학교, 이상적인 학교, 학생들의 유토피아. 아직도 내가 마음 어딘가에 품고 있는 '대안학교'는 그런 곳이다.
1997년에 간디학교가 문을 연 후로 벌써 20년이 지났다. 대안교육의 역사가 어느새 20년이 된 것이다. 20년이면 이제 부모의 품을 떠나 홀로 자립할 때가 되었다. (물론, 대한민국 현실은 30대까지 자립을 못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애초에 대안학교는 기존 공교육에 대한 '대안'을 기치로 내걸고 설립이 되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해 여기서 대안이란 20세기적 한국 교육 모델에 대한 '대안'인 것이다.
20세기적 한국 교육 모델이란 주입식 입시 위주 교육, 권위적 교사상, 군대식 학교 구조, 위압적 제식 및 예법 등등으로 대변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학생과 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학교 구조, 아이들과 수평 관계의 평등한 교사상, 입시 중심을 탈피한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교육 방식, 토론과 합의를 통한 규칙 제정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생태 및 종교철학 교육 등이 가미될 수 있다.
20세기에 문을 연 많은 대안학교들은 기존 교육에 대한 이 '대안'을 지난 20년간 '실험'했다. 2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만큼 시간이 주어졌으면 더이상 '대안'이 '대안'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예를 들어보자. 독재 타도, 민주화 운동을 20년 동안 했는데, 20년 후에도 여전히 독재 타도! 민주화!를 외치고 있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의 대안교육은 여전히 '대안'을 외치고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철저한 교육 대중과 지식인 사회의 외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작 대안이 없는 대안교육
현재 대안교육은 위기다. 하지만 아무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위기다. 마치 끓는 물 속에 들어 있는 개구리와 같아 보인다. 서서히 끝에 도달해 가고 있는데 물 속에서 뛰쳐 나올 생각을 못한다. 어째서 위기인가? 아래와 같은 측면에서다.
1. 사회적 담론의 장에서 '대안교육'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래도 '대안교육'은 대부분 소위 진보적 지식인 및 교육관계자들에 의해 주장되고, 실천되어 왔다. 최근 몇 년 보수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이 진보적 지식인들은 팟캐스트나 대안언론 등을 중심으로 열정적으로 수많은 글과 메시지들을 쏟아내 왔지만, '대안교육'이 이슈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대안교육이 이슈가 되는 것은 사건/사고 지면 뿐이다. 내가 몸담고 있었던 파주자유학교의 인근 숙박업소에 의한 폐교 위기 사건, 그리고 늦봄 문익환학교의 이념 논란. 내가 기억하기로는 지난 4-5년 사이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대안교육 관련 사항은 이것이 전부다. (아, 모학교의 성추행 논란도 있었지만 크게 다루어지지는 않았으므로. 그런데 이 역시 사건/사고 항목이다.)
이른 바 잘나가는 지식인 중 그 누구도 '대안교육'을 얘기하지 않는다. 대안교육이 막 태동하던 시기, 그리고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기간만 하더라도 대안교육은 많은 지식인들의 그리고 교육 수요자들에게 그래도 눈에 띄는 이슈였다. 해당 시기에 수많은 대안교육 기관들이 앞다투어 생겨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이상 '대안교육'은 핫하지 않다. 대안교육은 조용히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렸다.
2. 빠르게 낡고 오염되어버린 용어 '대안학교'
교육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고, 가끔 가다 뉴스를 보는 사람을 만나 아, 저는 대안학교 교사입니다 라고 소개를 하면 어떤 말을 들을 것 같은가. 아마도 모두가 예상하고 있는 그 말이다.
"애들이 험해서 힘드시겠어요? 괜찮으세요? 대단하시네요."
대안학교라는 명칭은 이미 사회적으로 '공교육에 부적응한 학생들이 최후의 선택지로 선택하는 학교'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낙인이 찍히는 동안 대안교육의 관계자 및 단체들은 아무런 해명과 자정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공교육에 부적응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공교육이 그에 대한 교육적 노력을 방기하고 있다면 더 나은 '대안'을 기치로 걸고 있는 대안학교가 그들을 수용해 적극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마땅히 칭송 받을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칭송을 받고 있나?
아니다. 대안학교는 점차 마치 '숭고한 교육을 하는 성지'처럼 일반 대중에게 여겨지며 법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취급되어가고 있다. 성지가 되는 것이 뭐가 나쁜가 라고 말할 수도 있다. 성지는 그 자체로 보존되고 지켜져야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진짜 성지에는 방문자가 별로 없다. 교육은 그 대상이 있어야 수행할 수 있는데, 대상이 사라지고 교육만 남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안학교라는 용어는 또 한 측면에서 오염되었다. 다음과 같은 말이다.
"거기 귀족학교 아니에요? 등록금 비싸겠네..."
이른바 2세대 대안학교라고 구분되는 종교단체 설립의 대안학교가 여기저기 생겨나며 중상류층의 자녀들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배경지로도 종종 등장하며, 기세는 더욱 등등해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대안학교'라는 명칭 속에서 위에 소개한 두 가지 중 하나를 본다.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학교이냐, 귀족형 사립학교이냐.
어디에도 1997년 설립된 '간디학교'와 같은 모델은 없다. 아주 애써서 설명하지 않으면 보통의 사람들은 대안학교를 그렇게 어여쁘게 보아주지 않게 되어버렸다.
3. 위기를 타계할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안교육 관계자들
대안교육 관계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교육 이슈와 관련해서 현재 가장 큰 스피커를 가진 사람은 경기도 이재정 교육감과 서울시 조희연 교육감 정도다. 두 사람의 발언 외에 주요 기사화되는 걸 본 일이 별로 없다. 이 두 사람은 공교육의 수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안교육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웹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교육 관련 필자는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블로그를 운영하는 김용택 선생님이다. 이분 역시 공교육과 관련된 말씀을 주로 하고 계시다. <민들레>라고 하는 대안교육 잡지가 있지만 담론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은 키우지 못했다. 오히려 이 글을 쓰고 있는 '교육 웹진 우물을 나온 개구리'가 지난 지방 교육감 선거 시에는 훨씬 큰 파급력을 지녔었다.
이런 말들을 다 뒤로 하고 당장 대안교육계의 리더가 누구냐?라고 길을 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먼저 대안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사람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아... 네에..."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가던 길을 가버릴지 모르겠다.
나 같이 잠시(잠시라고는 해도 귀농운동을 하며 글과 강의 등으로 대안교육의 필요성을 꾸준히 이야기했던 2003년부터 치면 지금 웹진 활동까지 거의 12년이다) 대안교육에 몸 담았던 사람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는데... 정작 대안교육의 리더들은 별로 문제 의식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제각각이어서 제대로 힘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다못해 지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국에서도 대안교육 관계자의 이름으로 무언가 분명한 메시지가 대중에게 인식될 정도로 발표된 적이 있는가? 대안교육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교육의 영역에서는, 교육 담론에서는 확실히 리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대안'이라고 이름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사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만 두고도 '대안교육은 이미 끝났다'라는 선고를 내릴 수 있을 지경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음지에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며 열심히 아름다운 교육을 실천하고 계실 수많은 교사분들과 대안교육 관계자들에게 상당히 실례가 되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20년 역사가 되었으면 그만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서 활동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제 교육 수요자의 입장이 되었으니 조금 함부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근데 나는 이제 좀 이 판에서 함부로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의 역사와 대안교육은 서로 닮아 있다
이번 총선에서 원내로 진출한 진보정당은 '정의당'이 유일하다. 진보정당은 기존의 정치가 아닌 '대안적' 정치를 기치로 걸고 출범하여 민주노동당이라는 정당을 원내로 진출시켰다. 그러나 그후 내부적 의견 차이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했다. 거기에 국민참여당이라는 민주당에서 갈라진 새로운 진보정당이 더해졌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과 사회당이 2012년에 진보정당으로 존재했다가,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일부가 통합해 통합진보당, 사회당과 진보신당 일부가 통합해 노동당이 탄생했으며, 그 과정에서 다시 또 녹색당이 출현했고, 통합진보당은 얼마 가지 않아 정의당과 진보당으로 갈라졌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진보 정치에 크게 관심 없는 분들은 머리가 어지러울 것이다. 300석 의석 중에 최대 13석을 차지해본 것이 전부인 진보정당이 자기들끼리 무슨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 이리로, 저리로 흩어져서는 또 자기들끼리 단독 국회진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끝없이 꿈을 꾸며 국회의 문을 두드린다니!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 유권자들의 마음의 소리를 가정한 것임을 밝힌다. 내 의견이 아니다.)
진보정당들의 선의와 진정한 정치를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과 아무 상관없이 일반 유권자들은 팔장을 끼고 코웃음을 친다는 말이다. 나는 이 상황을 보면 대안학교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대안학교들은 저마다 자기의 아름다운 이상을 소리 높여 외치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해줘야 할 일반 대중들은 다른 곳을 구경하러 가 있다.
정치계에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그런 대중들의 새로운 구경거리라면, 교육계에서는 '혁신학교'가 그 구경거리일 것이다. 혁신학교가 공교육의 새로운 스타로 출현하고 매력을 어필하며, 교육 수요층들에게 다가가는 동안 대안교육은 가만히 있었다. 마치, 진보정당들의 핵심 공약인 무상보육,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노인연금 같은 것을 민주당이 몽땅 차용해 가져가는데 진보정당들이 "어 가져다 쓰면 좋지"하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진보정당과 대안학교는 멍하니 자기 것을 가져가버린 대중들의 스타를 바라보고만 있다. 원래는 저게 내것이었는데 하는 박진영의 노래 가사 같은 말을 조용히 읊조리며.
무엇이 문제였나. 왜 이들은 매력적인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어필해서 대중들의 사랑을 이끌어내지 못했나. 나는 그 원인을 '순정주의'와 '시대착오'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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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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