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느린구름 |
글을 시작하며
아마도 웹기사를 자주 보거나, SNS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늘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는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내가 여성의 날을 분명히 기억하게 된 것은 한 정치인 덕분이다. 그 정치인이란 바로 정의당 소속의 정치인 '노회찬' 전 의원이다. 노회찬 의원은 내가 알기로 국내 최초로 여성의 날마다 원내의 여성 국회의원들에게 장미꽃과 축하 편지를 선물한 정치인이다.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나는 이후로 '세계 여성의 날'을 기억하게 되었다.
여성의 날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 낮은 인권 상황에 신음하던 유럽권의 여성들이 1908년 단결하여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체트킨이 1910년에 '세계 여성의 날' 제정을 제안하며 이 뜻깊은 기념일은 세계인의 달력에 등장했다.
이후 우리나라도 1920년부터 1945년 해방 시기까지 일제강점기 기간에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날을 기념했고, 이후 전쟁과 독재 등이 이어지며 사회단체의 결사 활동이 탄압을 받다가 1987년 6월 항쟁의 승리 이후 다시 여러 여성 단체들을 중심으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인의 기념일에 발 맞추는 것은 무척 능동적으로 잘 해오고 있는데 비해, 정작 본질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능동적이지 않은 것 같다. 당장 오늘 여러 지면을 통해 쏟아진 지표만을 놓고 보아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여성 인권 수준은 형편 없다.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최대
OECD 회원국 중 여성 유리천장 지수 최고
여성 국회의원 비율 15.7%
여성 대통령 3년, 여성 지위는 오히려 퇴보
500대 기업 중 여성 임원 비율 2.3%
지난해 가정폭력 피해자 5584명 중 여성 비율 91.7% (서울 소재 1개 상담소 기준)
남성의 데이트폭력으로 살해 당하는 여성 매주 1명꼴
출처 URL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072056571&code=940601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91726#.Vt6i18cRw2M
http://www.womennews.co.kr/news/91640#.Vt6kcMcRw2P
법률신문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96516&kind=AA
단, 10여분 정도의 웹서핑으로 이 정도의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이것만 보아도 대체 어떤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한국 사회가 여성 상위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 나돌고 있는지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이 정도의 사회를 여성 상위 사회라고 감히 명명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전의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였는지 상상만해도 섬뜩하지 않은가.
이런 상황 속에서 대다수 언론은 웹상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일종의 저항 캠페인 차원에서 등장한 남성혐오를 똑같이 문제다 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을 쏟지 않았던 언론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여성혐오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가부장제에 의해 생겨난 자생적 현상이고, 온오프라인을 망라해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을 괴롭혀 온 명백한 사회 문제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남성혐오라고 하는 것은 작년을 기점으로 '메갈리아'라고 하는 특정 사이트를 중심으로 여혐에 저항하는 운동 차원에서 생겨난 인위적 현상이다. 여성의 지위를 낮추어 보고, 여성의 행동을 제한적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다수 한국 남성들의 의식 속에 광범위하게 탑재되어 있는 반면, 이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유습에 반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소수이고, 충분한 스피커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바로 위에 있는 여성 국회의원 15%, 대기업 여성 임원 2%라는 수치가 너무도 절절하게 이 상황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여성들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특별히 만든 정부 부처인 여성부는 이명박 정권을 거치며 그 본래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황이고, 넘쳐나는 남성들의 목소리에 비해 여성들의 목소리는 거의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근 10년 사이 TV 프로그램에서 여성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단지, 세계 여성의 날을 축하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오늘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뭔가 근원적으로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한 사회가 특정 경향성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 근원에는 항상 '교육'이 있다. 결국 2016년 대한민국의 얼굴은, 10년 혹은 20년 전의 교육이 만든 것이다. 지금 당장 이 사회를 바꾸는 것은 아마 정치의 영역일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대한민국을 바꾸는 것은 교육의 영역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여성 인권 교육을 돌아보고 새롭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 다음 편에 이어서
2016.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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