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作 <책읽는 여인>
우리 아이, 책 좀 읽었으면 2(완결)
- 멀고느린구름
내게 책을 읽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 같다. "나를 스스로 성장시키는 데 책보다 도움이 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라고. 사람은 여러 사회적 관계와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성장해간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좀 더 많은 것들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점점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겸손해질 줄 알게 된다는 것일 테다. 세월이 지날 수록 이 반대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면 자신을 좀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은 '명상'이나 '수련(육체적 단련)' 등을 제외하고 정신적으로 인간을 스스로 성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나 영화 등이 문제의식을 환기시키고, 심미적 감성을 순간적으로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으나 내면 깊이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 데에는 여전히 책만한 미디어가 없다. 영상매체가 수용자를 수동적 입장이 되게 만든다면, 책은 - 다시 말해 독서는 - 자신이 직접 글자 한자한자를 따라 읽어가며 멈추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하며 흘려버리기도 하는 등 수용자로 하여금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게 만든다. 우리는 독서를 하며 마음 속으로 상대방의 의견에 자유롭게 반론을 제기해보기도 하고, 감동을 받아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한다. 한 권의 책에서도 어떤 부분은 갸우뚱하게 되고, 어떤 부분은 무릎을 치게 된다. 이렇게 책을 능동적으로 읽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정신세계를 모험하는 모험자가 되며, 그 모험이 끝난 후에는 마치 한 인생의 시간을 겪은 것과 같은 간접 경험을 얻게 된다.
내가 위에서 말한 독서의 순기능이 가장 강력하게 제공되는 장르는 역시 '소설'이다.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타인의 인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겸손함, 이타심 등을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소설 읽기라는 행위다. 인간의 고민을 깊이 있게 다룬 소설을 많이 읽은 노교수님들이나 다른 직업군의 어른들을 대하면 확실히 그 인품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것은 그분들이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소설 읽기를 통해서 다른 인생의 주인공도 되어보는 간접체험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각종 실용서가 넘쳐나고, 특히 인생과 사회에 대한 진정한 성찰을 담지 못하 자기계발서가 넘쳐나는 요즘이다. 물론, 그런 것이라도 자신의 경험에 잘 비추어가며 비판적으로 소화해낸다면 읽지 않는 것보다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반목하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는 '소설 읽기' 만큼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동화, 소설, 수필 등의 문학 장르는 독서의 입구이자 출구다. 요즘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데, 아이가 충분히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의 생각을 집중적으로 풀어내는 철학서나 사회학 서적은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역시 독서의 첫 출발은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야기는 그 자체의 재미와 흡인력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이를 독서의 왕국으로 불러들여줄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명심해야할 것은! 아이가 읽을 '이야기'는 아이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권장도서 목록이라고 만들어서 자꾸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정한 무언가를 읽어야 한다고 강요를 하지만, '권장도서'에서 '권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권하여 장려함.'
'이 책이 참 좋으니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정도의 이야기지 무슨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정도의 비장한 목록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볼 때는 차라리 권장도서 목록은 목록에 포함된 책의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다양한 장르에 다양한 저자의 책을 소개하여 아이들이 충분히 그 중에서 제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한 운용의 묘일 것이다.
- 내가 중학교 시절에는 권장도서 목록이라고 해서 30권의 책이 선정되어 왔는데, 그런 식의 목록은 이미 독서에 흥미를 붙인 아이들에게 도전 욕구를 불러 일으키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별로 효과가 없다. -
또한, 권장도서 목록을 정했으면 아이가 쉽게 그 목록 속의 책이 어떤 내용인지 알고 찾아볼 수 있도록 간단한 리뷰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 좋다. 내가 대안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때에는 직접 300여권의 책을 선정하여 해당 책에 모두 리뷰를 달고 책자 형태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제공한 일이 있다. 효과는 꽤 좋았다. 전혀 책을 읽지 않은 아이들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독서를 이미 시작하고 있던 아이에게도 유용한 안내서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책의 세계는 망망대해다. 국내에서 발간되었거나 발간되는 책만 해도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읽어도 그 10분의 1도 다 못 읽고 죽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권장도서목록이라는 개울가, 호수에서 아이들이 수영에 적응을 했다 싶으면 과감하게 망망대해로 배를 띄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이 방법으로는 '멋있는' 대형서점이나 책이 굉장히 많은 도서관에 함께 가는 방법 등이 있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국회도서관' 정도를 아이와 함께 방문해 보는 것도 멋진 일일 것이다. 그곳에서 아빠나 엄마가 어려운 논문을 한 권 빌리고, 그 논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까지 설명해준다면 아이는 '속으로나마' 우와~ 하고 감탄하지 않겠는가.
자연스럽게 다음의 팁으로 넘어가자. 독서는 '반드시' 부모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이에게 책 좀 읽으라고 한 마디 할 시간에, 먼저 책을 손에 잡자. 그리고 아이가 부모의 독서를 방해하려고 할 때, 굉장히 재밌는 부분을 읽고 있는 것처럼 "아, 잠깐 잠깐 이 대목만 읽고!" 라고 말해보자. 아마도 아이는 대체 저 책 속에 뭐가 그렇게 재밌는 게 있길래? 라고 상상하게 될 것이다. 상상하고 호기심이 생기면 아이는 책에 손을 뻗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을 쑥 빨아드릴 운명적인 책을 한권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후로는 책을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환경만 충분히 제공해주면 게임 끝이다.
지금까지 쓴 독서에 대한 팁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독서의 처음은 문학 작품이 좋다. 특히 '소설 읽기'는 강력한 자가 성장의 방법이다.
2. 자신이 읽을 책은 반드시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3. 권장도서 목록은 지나치게 넓은 범위를 조금 줄여주는 정도의 역할만 하되, 그 목록 속에 충분히 다양한 취향을 반영할만한 책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록에 포함된 책들에 대해 간단한 리뷰를 함께 제공해주는 것이 좋다.
4. 아이가 독서에 익숙해졌다고 판단되면(대략 100여권 정도를 돌파한 정도?), 보기에 멋진 도서관이나 서점에 함께 가보는 것이 좋다. 서울에 거주한다면 국회도서관과 종로 교보문고를 추천. 요즘에는 지방에도 멋진 도서관이 많이 생겼으니 검색을 활용해보시길.
5. 독서는 반드시 부모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린 아이일 수록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모방한다. - 또 한 가지 경고를 드리자면, 만약 아이만 독서에 빠져들게 되면 조만간 아이의 지혜나 인품이 부모를 추월하고 말 것이다. 그 아이에게 부모의 조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
위 다섯 가지 외에도 자잘한 다양한 팁들이 있다. 그러나 우선 위 다섯 가지 항목만 충실히 지켜도 아이는 책을 읽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위와 같이 했음에도 아이가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아이의 상황 설명과 함께 댓글을 남겨주시라. 맞춤형 조언을 제공해드리겠다.(이거 책임 질 수 있는 말일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21세기의 다음 시대는 아마도 굉장히 여러가지 인류의 과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복잡한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시대에 도전하고, 정면 승부를 벌이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이미 정보는 우리 앞에 널려 있다. 누구라도 의대 교수나 역사학과 교수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어느 정도로 활용하느냐 하는 판단력이다. 판단력은 다양한 간접 경험과 깊은 사색, 타인에 의견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제기를 통해서 길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인류는 이전 세대보다 더 성숙해져야할 의무가 있다. 점점 인류가 이 지구 전체의 문제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인류는 자연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인류가 지구 전체의 문제에 핵심적인 위치에서 관여하고 있다. 인간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겸손해지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힐 필요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끝으로 다시 언급하지만 매체가 반드시 종이로 인쇄된 책일 필요는 없다. 앞으로 '책'은 그 범주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 자체가 거대한 인류의 지혜를 모아놓은 종합백과사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형태의 책이든 계속 책을 읽어갈 것이다. '호모부커스', 독서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은 꼭 우리 아이들만의 과제는 아니다. 부디 이것을 명심하시길.
뱀발 : 남자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려면 무조건 아버지들이 먼저 책을 좀 읽으셔야 합니다~. 특히 국내에서 소설 독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은 좀 반성해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요?
2015.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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