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책 좀 읽었으면 1

- 멀고느린구름



유학자가 권세를 누린 조선왕조 500년을 거쳐온 민족이라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책을 좋아한다. 책을 읽고 지식인이 되면 벼슬을 얻을 수 있는 조선의 과거제도는 서양의 폐쇄적인 계급제도보다 한참을 앞질러간 진보적 정치사회 시스템이었다. 그 속에서 오래 지내온 탓에 한국인에게 '독서'는 놀이이기보다는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서 인식되어 왔다. 해방 이후에도 교과서를 열심히 읽는 행위(공부)를 통해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면, 좋은 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선의 과거제가 이어져 온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녀를 둔 부모라면 대부분, 자신의 아이들 속에 '수불석권(책에서 손을 놓지 않음)'의 유전자가 깃들어 있기를 오매불망 바라기 마련이다. 제발 읽지는 않더라도 손에 잡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부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서글픈 한민족의 부모님들께 조언을 하기 이전에 한 가지 재미난 통계를 알려드리고 싶다. 


2003년 유엔 통계. 한국의 독서량 세계 190여개국 중 166위. 

* 정확한 통계자료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기사 등에서는 자주 인용되는 통계. 


2011년 OECD 주요 가입국 독서량 실태




한국인이 한 달에 1.5권 정도의 책을 읽을 때 유럽, 일본, 미국은 그 5~6배 분량을 읽는다. 얼마전 피사(PISA)의 통계에서도 한국 학생은 교과 관련 독서량은 평균 이상이지만, 비교과 영역의 독서량은 평균 이하였다. 이는 결국 독해력과 문제해결력, 갈등 조정능력 등에서 핀란드나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 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잔인하게'도 이 통계를 굳이 먼저 제시한 이유는, 우리 부모님들이 현실을 먼저 자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시중에 독서 교육 관련 책은 넘치다 못해 이제 좀 버려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독서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났다는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 - 작년에 우리나라의 독서'율'이 유럽을 앞질렀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독서량과 달리 '독서율'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을 따지는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한 나라의 독서 실태를 드러내기는 미흡하다. - 왜 그럴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다. 부모가 책을 읽지 않으면 아이는 책을 읽지 않는다. 설령, 기적적으로 책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그 행위 자체를 평생에 걸쳐 즐기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독서는  '놀이'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놀이를 억지로 즐기는 변태는 세상에 드물다. 책 읽기를 '놀이'로 인식하지 못한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뒤늦게 책 읽기를 놀이로 재발견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서도  '게임'과 '인터넷 서핑', '영화', '티비 시청', '골프', '여행' 등등 세상에 넘쳐나는 온갖 유희를 제쳐두고 굳이 '독서'를 선택하려면 그 행위가 굉장히 재밌다거나, 혹은 굉장히 유익하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이어야 한다. 


통계에 의하면 대다수의 한국인은 '독서' 외의 다른 것에서 즐거움, 혹은 유익함을 찾는다. 당연히 이런 상황 속에서는 '독서의 즐거움'이 다음 세대로 전이되지 않는다. 그 수는 점차 줄어들 것이고, 한국인은 아마 앞으로 100년 뒤에는 독서를 하는 사람을 '달인을 찾아서' 같은 프로그램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엄청난 재미거리의 유혹을 이겨내고 독서를 하는 달인을 신기해하게 되지 않을까. 


처음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우리 아이, 책 좀 읽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어떻게 하면 채울 수 있을까. 실질적인 처방을 내놓기 전에 먼저 부모님들께서는 다음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봤으면 싶다. 


1. 독서, 좋아하십니까? 


2. 아이가 보는 앞에서, 혹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여가를 자주 보내십니까?


3. '독서'란 무엇입니까? 


4. 왜, 책을 읽어야 합니까? 



위 질문에 대해 모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 독서를 권할만한 부모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1번부터 머리를 싸매게 된다면? 글쎄, 좀 더 본인 스스로 고민을 해본 뒤에 아이에게 권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1번,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부모라면 3, 4항에 대하여 좀 더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어째서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물론,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부모라고 해도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할 수는 있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부모라도 아이가 그것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면 프로게이머의 길을 권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억지로라도 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거나, 아이 스스로가 선택한 분야인 경우다. 


독서를 억지로 권해서 어떤 성과가 날까? 내가 아는 한 전혀, 혹은 별로 효과가 없다. 부모님의 권유로 억지로 세계문학전집이나 삼국지 같은 것을 읽었던 아이가 훗날 대학생이 되어서 그 작품들에 대해 좋게 평가하는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반감이 생기지 않으면 천만다행일 수준이다. (사실, 이건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2번, 아이는(대체로 유아, 혹은 어린이의 범주에서) 결국 부모나 특정 롤모델이 되는 어른을 모방하면서 자기 삶을 디자인해가기 마련이다. 단 한 번도 부모가 아이 앞에서 책을 읽으며 즐거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아이가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가능성은 무척 적다. (따라서 반대의 경우에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운이 좋아서 아이가 좋아하게 된 어떤 주변 어른이나 선생님, 혹은 친구가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면 그이를 흉내내서 아이가 책을 읽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도 부모가 최대한 조금씩 아이의 취미에 보조를 맞추는 정도로 아이의 흉내내기를 도와주는 것이 좋다. - 내가 아는 어떤 가정의 경우 가까스로 아이가 이웃집 할아버지의 취미에 따라 책을 손에 잡기 시작했는데, 부모의 성향 때문에 이것저것 심부름을 다니고, 집안 일을 돕느라 결국 책에서 손을 놓게 되어버린 경우가 있다. - 


3번, 과거의 '독서'란 문자 그대로 책을 읽는 행위였다. 그러나 현대의 독서는 그 매체가 굳이 '책'으로 한정되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인터넷에 있는 모든 정보가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읽는' 행위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신문을 읽어야 한다며 학교에서 신문을 구독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럴 필요 없이 아이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으로 매일매일 신문을 읽고 있다. 어떻게 보면 과거에 비해 '무언가를 읽는' 독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다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기왕 읽는 김에 '좋은 것'을 읽기 바랄 것이다. 그리고 그 좋은 것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책'이 여전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 터. 하지만 꼭 '책'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이 아니고, 인터넷 글이라고 해서 모두 형편 없는 것은 아니다. - 우리 웹진의 글만해도 얼마나 좋은가?(죄송합니다;) - 


4번,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려는 부모님들의 마음 속에는 본인이 이루지 못한 '입신양명'의 꿈을 아이가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은 들어 있지 않을까. 혹은 자신처럼 아이도 '훌륭한 어른'이 되길 바라는 소망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은 그런 효용적 가치만이 있는 것일까. 아이를 지금의 상태가 아닌 더 나은 무언가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효험이 있기에 책을 읽혀야 하는 것일까.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2015. 2. 3. 



날짜

2015. 2. 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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