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안학교 서머힐의 전체회의. 교사와 학생 모두가 동등한 1표를 행사한다.


교권이냐, 인권이냐 

- 멀고느린구름 


 LIST 

 ⑴ 교권이란 무엇인가?

 ⑵ 교권침해 증가, 문제는 어디에?

 ⑶ 결국, 교육민주화가 답이다 



(3) 결국, 교육민주화가 답이다 1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사회가 된 시점은 언제일까.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 단독 정부를 수립한 1948년 8월 15일일까. 아니면,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전두환이 하야하고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시점일까. 그도 아니면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김영상 대통령의 당선으로 민주세력이 최초로 집권을 시작한 1993년인 것일까.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 시점은 조금씩 달라질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점은 아무래도 6월 항쟁 이후로 보아야 한다는 것에는 사계의 전문가들 간에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는 서양이 백 년 이상 축척해온 것에 비하자면 참으로 이제서야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은 마치 우리가 아주 오랜 기간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적 사고 방식,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과정에 동의하고 살아온 것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직 30대 중반 정도에 불과한 나의 학창시절만 돌아보더라도 그 시절의 삶의 모습을 민주주의 사회의 삶의 모습이라고 떠올릴 수는 없다. 초등학교 때는 여전히 '공산당이 싫어요', '때려잡자 공산군' 같은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학교의 공적 사업으로 매해 시행을 했고, 대통령을 마치 대한민국의 임금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셨으며, 학교 교실에 대통령의 초상화를 공공연하게 걸어놓는 곳도 아직 있던 시절이었다. 매일 아침 군대 열병식을 하듯 운동장에 모여 줄을 똑바로 맞추라는 훈계를 받았고, 제식 나팔 소리에 맞춰 애국가를 제창했다. 감히 선생님께서 어려워 할만한 질문을 수업 시간에 손을 들어 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고, 학교에서 시행하는 사업이나 규율에 대해서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를 가지고 머리 길이를 재러 다니고, 규정에 어긋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업시간에라도 교실에 불쑥 들어와서 머리통에 고속도로를 내버리고 나가는 학생주임 선생님이 있었다. 불손한 아이의 머리통을 교실 캐빗넷에 쿵하고 수차례 찧어버리는 교사들이야 흔했고, 나무 막대기로 허벅지를 내리치는 교사는 차라리 온순한 양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 그게 수용소의 삶이었지, 건강하게 학문을 배우는 학교였다고는 떠올릴 수 없는 풍경이다. 


그게 불과 10여년 전의 우리 학교의 모습이었다. 그런 곳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시민이 되었고, 사회의 시스템을 구축해온 것이다. 당연히 그이들이 구축한 시스템은 자신들이 자라난 학교의 시스템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 대해 조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근대 학교라고 하는 것은 앞서 내가 말한 '수용소'라는 명칭이 차라리 어울리는 시설에 기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곳곳에 생겨난 학교는 근대 학문을 가르친다는 목적보다는 나라(일본제국)에 충성하는 황국신민을 길러내는 정신교육 기관에 알맞게 디자인 되었던 것이다. 정신교육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율과 강력한 체벌이 필요했고, 그에 가장 알맞는 디자인은 물론 군대였다. 군대의 막사, 군대의 연병장, 군대의 제식을 어린아이와 청소년용으로 리디자인한 것일 뿐인 황국신민 양성소. 그것이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근대 교육기관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해방이 되고 새로운 민주주의 문화를 이 땅에 심을 겨를도 없이 우리는 불행한 전쟁을 맞이했고, 전후 피해 복구를 위해 민주주의 문화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이 다시 얼굴을 내밀고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목소리에 따라 황국신민 양성소는 독재국가의 정부에 부역하는 착한국민을 양성하는 양성소로 자연스럽게 탈바꿈하고 말았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발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근대 학교에도 훌륭한 교사, 훌륭한 학생들은 있어 왔다. 그들이 있었기에 분명 87년 6월 항쟁이 있을 수 있었고, 우리는 오랜 독재의 늪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웅들의 시대가 지나간 이후, 그 영웅들이 미처 바꿔놓지 못했던 사회의 곳곳의 뿌리가 되는 옛 제도는 다시 역사의 시계를 조금씩 거꾸로 돌려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지난 대선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대선에 나선 세 후보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외쳤다. 그 끝에는 복지국가로의 이상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민주화'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한 편의 민주화는 민간의 손에 자유롭게 맡긴다 였던 것 같고, 다른 한 편의 민주화는 '공의와 공익'의 가치에 따라 '공동'으로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에 있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앞서 백 년 이상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해온 나라들에게서 '민주화'의 의미를 찾아보자면 물론 후자의 의미에 가깝다.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자유, 정의(평등), 연대(박애)'이다. 이는 프랑스 시민혁명의 기치에 근원을 둔 것으로 대다수의 서양민주주의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다. 이 민주주의 핵심가치를 기초로 '민주화'의 의미를 찾자면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권리를 가진 개인들이 참여하여, 정의(사회적 양심)에 기초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적인 연대(박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의사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저 교과서를 통해서 '다수결의 원칙'이나 '의회 민주주의', '투표권' 등 몇 개의 단어의 집합으로만 막연하게 연상했던 두루뭉실한 '민주주의'와는 다른 깊이와 역사가 서양의 진짜 민주주의 속에는 깃들어 있다. 허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학창시절을 통해서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교육 받지 못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야 개인적인 독서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과 그 민주주의 속에 어떤 내용들을 담으려고 했는지에 대해, 또 민주주의가 지향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를 학습할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한민국 대다수 시민에게는 아직도 '민주주의'라는 말은 앞 단락 첫 문장에서 나열한 여러 단어들이 모여 형성된 모호한 테그 클라우드, 개념의 구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평소에 강변하는 것처럼 대다수의 국민들은 최근까지 여전히 조선왕조의 국민으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결국, 교육민주화가 답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교권과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본 나의 결론이다. 교육민주화라는 것은 학교시스템을 황국신민 양성기관에서 민주사회의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완전히 리디자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의사결정구조의 민주화와 선거를 통한 학교 조직 구축이다. 


학교를 구성하는 세 구성요소를 학생, 교사, 부모로 본다면 각 조직을 대표하는 결사체를 우선 합법적으로 조직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학생대표기관이 지금처럼 교사집단의 의사를 하명하는 유명무실한 조직이 아니라 학생 그 자체의 의사를 대변하는 자발적인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에 걸맞는 권위와 실질적인 발언권을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부모 역시 개별적이고 돌발적인 학교에 대한 이의 제기를 자제하고 의사 표현을 대의할 수 있는 자체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 부모회가 지금처럼 일부 유력한 부모들의 담화 모임 수준을 넘어서 상시적으로 학교의 교육행정에 참여하고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사의 경우 현재 일반 교사, 교감, 교장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수직 구조 모델을 혁파하고, 수평적 모델로 개혁하고 교감과 교장의 경우는 일반 교사들의 총의를 모아서 선출하는 선출직으로 변경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교육조직의 모습으로 알맞지 않겠는가. 


그러한 각기 조직이 갖추어진다면 상시적으로 3주체가 모여 학교의 운영에 관한 민주적 회의를 열고, 특별한 안건이 있을 경우 비상회의를 소집하여 공공의 의견을 모아 최종의사를 결정해 가는 방식의 민주사회의 학교 조직체를 갖추어야 한다. 언제까지 교장 일인이 학교의 모든 시스템을 좌우하거나 유력한 부모 한 사람이 학교를 휘젓거나, 한 학생의 교육적 문제를 어떤 특정한 개인의 편향된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결정하는 일을 지속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결국 우리의 학교가 어떤 모습인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주의 모델의 군대식 학교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하며 아이들을 그 틀에 맞춰 교육하고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진정한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어렵다. 


내가 재직했던 대안학교(파주자유학교)의 경우 교육주체를 학생, 교사, 부모로 분명히 하고 각 단체의 결사체를 인정하고 있으며, 각각이 담당할 영역을 분명히 하여 민주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수년 째 지속해오고 있다. 그 상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공동의 학교 생활에 관한 여러 안건에 대해서는 학생과 교사 모두가 참여하며, 각 1인 1표씩을 동등하게 행사하는 '파주자유학교 전체회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한다. 


파주자유학교의 전체회의.



전문적인 교육행위와 교육 목표 등 교육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교사들의 교사회의를 통해서 결정하며, 역시 각 교사는 그 직위와 관계 없이 1인 1표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교장과 교감 등 선출직은 교사회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된다. 


학생들 간의 자치 생활에 대해서는 학생회 조직이 매주 자체 회의를 통해서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며, 역시 연령에 관계없이 1인 1표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학생 대표는 역시 아이들 스스로 선출한다. 


부모회는 학교의 행사나 이미 동의된 내용 외의 교육 시스템의 변경 등이 있을 경우 공청회를 갖고, 주기적인 회의를 통해 학교의 교육 현황이나 앞으로 방향 등, 또 제정 운영 상황 등에 대해서 공유하고 의사를 결정한다. 


부모회 역시 독자적인 조직체에 대해 각 부모들이 참여하며, 1인 1표를 행사하여 자체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 


학교를 세 교육 주체가 꾸려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다수의 문제들이 이 각 민주적 조직들에 의하여 논의 되고 협의 되어 결정되어 가고, 이러한 문제 해결 모습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마음 속에 남는다. 아이들은 우리사회가 누군가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서 마음대로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되면 작은 소수의 의견이라도 충분히 귀담아 듣고, 공의와 정의에 입각해서 최종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암암리에 배우게 된다. 


민주주의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육시스템의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교육이 민주주주의 모습을 갖추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몸에 익힌다. 민주주의 가치를 내면화하면 자신의 인권이 소중하듯이, 교사의 인권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동일하게 감각할 수 있게 된다. 내 즐거움을 충족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만큼, 타인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더 큰 힘을 길러서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공평한 입장에서 나를 먼저 내려놓고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서로가 조금씩 자기 의견을 한 발 양보하는 것을 통해 좀 더 커다란 무엇인가가 조금씩 앞으로 진전해 갈 수도 있다는 감각을 얻게 된다. 이 배움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자유, 정의, 연대'인 것이다.  



'(3) 결국, 교육민주화가 답이다 2'에서 계속됩니다. 




날짜

2014. 9. 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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