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대안학교 '행복한학교(현재 '파주자유학교'로 통합)' 교사들의 에세이를 모은 <행복한 3.5년의 기록>에 수록된 글을 소개합니다. 글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사진은 행복한학교의 옛 학사입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본문에 등장하는 아이들과 무관합니다 : )
이름만 행복한 학교
- 나팔꽃(前 파주자유학교 교사)
2교시가 시작되어 수업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1학년 꼬맹이들 수업 준비 시간이 참 길다. 공룡 인형 정리해라, 책 보던 것 정리해라, 이쪽에 모여 앉아라, 얘길 해도 듣는둥 마는둥.
주혜는 쉬는 시간에 다방구를 하다 근이가 팔을 잡아당긴 게 아프다고 속상해하고 있고, 민송이는 옆에서 위로하다 근이 팔을 잡아당기며 "너한테 이렇게 하면 좋아?" 하고 주혜의 속상한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우리가 발굴한 공룡뼈를 만지지 말고 잘 보라고만 하였는데, 쉬는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만지고 놀다 승헌이가 준이네 조 공룡뼈 하나를 부러뜨렸나보다. 준이가 승헌이에게 화를 내고 있고, 승헌이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하며 역시 같이 화를 내고 있다.
주일이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승헌이에게 화내고 있는 준이에게 화를 낸다.
"왜 나한테 사기를 치냐고! 우리 학교는 행복한 학교가 아니고 사기 치는 학교야!"
민송이도 그 얘기를 듣고 한마디 한다.
"정말... 나팔꽃, 우리 학교는 행복한 학교가 아니고 슬픈 학교 같아요."
다연이는 이제나저제나 나팔꽃이 수업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공빈이랑 호범이랑 명윤이는 주변을 배회한다.
칠판에 오늘 수업시간에 공부할 것과 준비물을 적어놓고 다시 돌아보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다. 앞으로는 내가 칠판에 적는 동안 수업 준비를 해놓으라고 바로 전 날 얘기를 해줬건만... 다시금 아이들에게 정리를 하라 하고 책상 주변에 모여 앉으라 얘기했다. 수업은 무슨 수업.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와 관련해 아이들이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짚어줘야겠다 싶었다.
"민송아, 민송이는 우리 학교가 슬픈 학교 같아?"
"네..."
"음... 학교에서 지내면서 슬픈 일만 있었어?"
하고 물으니 가만히 생각해보던 민정이가
"그렇지 않아요."
하고 대답한다.
"얘들아, 우리 학교 이름은 뭐지?"
"행복한학교..."
"그런데 주일이는 우리 학교가 사기 치는 학교고, 민송이는 우리 학교가 슬픈 학교 같대. 왜 그럴까?"
"하지 말라는 것도 막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하니까 그렇지!"
"그래 맞아! 이름이 행복한 학교라고 그냥 행복한 학교가 되지는 않아. 우리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어. 여럿이 함께 지낼 때는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있어. 예를 들어 나팔꽃이 공룡뼈 발굴한 것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왜 그랬을까?"
"만지다가 부서질까봐."
"또 공룡 박물관 같은 데는 그런 것 못 만지게 하잖아. 공룡뼈가 있는 저 곳도 박물관 같은 곳이니까."
"그런데 그 얘길 듣지 않고 만져서 결국에는 싸움이 일어났어. 그렇지? 또 다방구 놀이를 할 때도 신난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다가는 누군가 다치거나 속상해질 수도 있어.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것,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거야. 그래야 우리 학교가 행복한 학교가 될 수 있어."
"그런 걸 안 지키면 벌칙을 줘야 해."
"일반학교에서는 말을 안 들으면 선생님이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라고 한대. 어떨 때는 양동이까지 들고. 우리도 그렇게 해."
"나팔꽃은 벌주는 사람이 아닌 걸? 다 같이 정한 약속을 안 지키면 우리 모두가 그 사람한테 벌칙을 주는 거야. 그리고 아까 말한 건 너무 심한 벌칙인 것 같아."
"맞아! 그래."
"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는 것도 행복한 학교가 되는 길이야. 내가 먹은 밥그릇은 누가 설거지해야 돼?"
"내가..."
"내가 즐겁다고 다른 사람을 막 때리는 건 괜찮을까?"
"아니! 그건 피해주는 일이야."
"맞아. 내가 즐겁자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힘들게 하면 안 되지. 그런 걸 잘 생각해보면서 우리 학교가 정말 행복한 학교가 될 수 있게 우리가 노력하는 거야. 나팔꽃이 얘기 하나 해줄까?"
"정말? 좋아!"
'옛날에 부자가 살았어...'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자의 심리변화에 맞추었고, 그래서 박진감은 하나도 없는 꽤 긴 이야기인데도 아이들은 열심히 듣는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는
"재밌다! 고마워, 나팔꽃!"
"나팔꽃이 실감나게 이야기해줘서 정말 재밌었어!"
"진짜 재밌다!"
하고 나팔을 칭찬해준다. 녀석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해주려던 얘기를 찾아냈나 보다. 그 약발이 얼마나 길겠냐마는 그래도 나팔의 마음도 흡족해진다.
수업을 끝내고 식당으로 식사 준비를 하러 갔다. 5분이나 지났을려나? 교실동에서 준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야, 이 멍청아! 왜 그렇고 있냐고!"
아니, 저것이... 싶다가는 피식 웃고 만다. 30분 이야기에 단 5분 약발! 이야기 한 편으로 100% 해결될 수 있다면야 세상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2006.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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