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2006년, 나팔꽃 선생님께서 초등과정 대안학교인 행복한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쓴 글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무력을 사용하며 싸우는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입니다. 글에서 '교사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주체를 '부모들'로 바꾸어 읽으셔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 ) 



싸움과 성장

- 나팔꽃(前 파주자유학교 교사)



한동안 아이들이 참 평화로운 모습을 보였다. 어디에서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삐져나오지 않고, 저마다의 영역에서 하고 싶은 것을 모색하고 탐구하며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 가득 감동의 물결이 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가을여행을 기점으로 아이들의간의 마찰이 잦아지고, 그 표현도 상반기보다 훨씬 거칠어졌다. 아이들 간에 일어나는 분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요는 그 분쟁과 갈등을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우리가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면서 해결점을 모색해나갈 수 있느냐 아니냐일 것이다. 


아이들 간에 마찰이 일어났을 때 교사들이 개입할 수는 있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누가 잘못했는지 심판을 해주고 사과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으로.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아이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문제를 교사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의존하게 만들어 자립심을 키우는 데 장애가 된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갈등의 과정을 불필요한 과정으로, 그래서 피하고 싶은 과정으로 인식하게 만들기 쉬우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데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너무나 쉽게 교사와 아이와의 싸움으로 전이되게 된다. 그래서 교사들은 아이들이 도움을 청하기 전에는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되 폭력적인 사태로 진행되지 않도록 방패막이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가을여행에서 있었던 수많은 갈등과 분쟁들, 그리고 그 마찰들이 저학년 남자아이들 중 소수의 몇 아이들에게 집중되어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며, 교사회에서는 갈등해결과정에서 교사들의 역할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점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가을여행 숙소의 비좁음, 거센 바람으로 초반에는 민박집과 마당에서만 지내야만 했던 갑갑함, 장거리 차량탑승 등, 아이들이 힘들어 했을 여지는 충분히 많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이끌어 가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이후의 여행계획을 세우는 데 충분히 고려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또한 교사회가 아이들 간의 분쟁에 개입을 하고 도움을 주는 부분에서도 부족한 점을 찾아냈다. 아이들의 도움 요청 없이는 개입하지 않고, 지나친 몸싸움이 되지 않도록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나, 이런 관점을 유지하고자 하면서도 실은 교사가 너무 깊숙히 개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싸움이 가장 고조된 상태에서는 몸싸움도 가장 치열해져서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거나 할퀴게 되고, 주변에 있는 막대기나 돌, 빗자루 등을 집어들어 위협하거나 위해를 가하려고 한다. 이 상황이 되면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눌러버리는 데에만 집중을 하여 자칫 위험한 일이 발생될 수 있다. 그래서 교사들은 흔히 싸움이 가장 고조된 상태에서 개입을 하게 된다. 


그 순간, 놀랍게도 아이들 간의 팽팽한 긴장감은 사그라들고, 상황의 주도권은 교사에게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물론 교사들은 심판자의 역할이 아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 또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도록 안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마음과 그 마음의 표현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는지 경험하지 못하게 되며, 타인의 통제에 의해 분노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멈추어졌기에 그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갈등을 종식시켜보는(그것이 서로 편안해질 수 있는 건강한 결과이든, 여전히 분노가 가득 남아 있는 상태이든)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다. 즉, 아이들 간의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이들이 각자의 선택으로 넘어서야 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끼어들어 아이들의 의존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분쟁의 시작과 끝을 아이들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도록 좀 더 지켜보기로 결정하였다. 다만 지켜보는 과정에서 교사들은 싸우고 있는 아이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를 몇 차례에 걸쳐 분명히 전달하기로 하였다. 마지막 선택은 아이들 몫으로 남기고. 


그 과정에서 여실히 느끼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이의 성장은 사랑과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을 진심으로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흥분된 상태에서 돌을 쥐고 있는 아이. 네가 지금 흥분해서 그 돌을 던지게 되면 저 아이는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저 아이의 상처는 사실 너에게 두고두고 더 큰 상처가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등등의 말을 해주며(때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 치료비라든지, 부모님의 가슴 아픔 등을 말해주며), 아이 스스로 그만두기를 기다리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저러다 정말 던지면 어쩌지 하고 계속 불안해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이들은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는다. 자신에게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으니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전가시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죄의식을 품고 싶어하지 않으며(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선택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게 되길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을 제어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을 보았지만, 믿어준다면, 대신 결정해주거나 통제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과격한 싸움이 왜 저학년 남자아이들 중 특정 몇몇에게만 나타나는 것인가? 앞서 교사회에서 평가했던 두 가지 내용(가을 여행의 어려움, 교사들의 적절치 못한 개입)은 위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조심스레 몇 가지 가설을 추정해보지만 아직까지는 그 원인이 분명치 않다. 다만 녀석들 안에 내재된 분노가 크며, 그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개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2006. 11월. 


* 편집자의 뱀발(蛇足): 이 글은 초등과정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전제로 한 글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글에서 나팔꽃 선생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자립적인 분쟁 해결 연습'은 상대적으로 아이들의 무력이 약해서 무력을 이용한 싸움이 진행되더라도 큰 불상사가 발생할 염려가 없을 시 장려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됩니다. 어린 시절 이러한 교육이 없었던 상태에서 이미 청소년으로 성장한 아이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대화와 교육 없이 무턱대고 스스로 책임지라고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 두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상황이 진행될 수도 있겠지요. 독자분들께서는 이 점도 분명히 염두해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청소년 과정의 아이들에게는 먼저 부모님께서 앞으로는 이렇게 해결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먼저 제안을 하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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