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2011년 7월, 파주자유학교 중등과정에서 진행된 바둑리그를 마무리하며 푸른지네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파자 바둑리그를 마치며
- 푸른지네(파주자유학교 교사)
바둑이란 무엇일까요? ‘세상사가 한 판의 바둑과 같다(世事棋一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 하고, 바둑 격언 중에는 삶의 교훈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만한 게 많습니다. '이기려고 욕심내면 이길 수 없다(不得探勝)’라든지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捨小取大)’ 같은 가르침은 현대의 일상에 적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바둑이 가장 많이 늘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열심히 공부만 한 것으로 알고 계십니다만, 사실은 주말마다 기원에 출입하였고 <수학 정석>이 아닌 <바둑 정석>을 더 열심히 들여다봤습니다. 제가 다녔던 기원에는 나이 지긋한 단골손님이 한 분 계셨는데, 이른바 강호의 숨은 고수였습니다. 처음엔 네 점을 깔고 두기 시작했는데,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호선까지 올라갔죠. 바둑을 업으로 삼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지만 바둑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물론 바둑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그 분에겐 아주 예쁜 따님이 있었습니다. 가끔 김밥을 싸 들고 기원에 오곤 했는데, 정말 갓 피어난 목련꽃처럼 우아한 여인이었습니다. 기원에 목련꽃 향기가 번지는 날에는 바둑이 만방으로 깨지기 십상이었죠. 슬쩍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여 도무지 수를 읽을 수가 없었거든요.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바둑의 매력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바둑은 이치를 궁구하는 놀이입니다. 직관과 연역적 추론이 둘 다 필요하지요. 어느 철학자가 “직관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사유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고 말했는데, 딱 바둑에 들어맞는 통찰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가르쳐서 되는 일은 아닙니다. 361로의 우주, 그 무궁한 변화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아이들 스스로 깨쳤으면 합니다.
바둑 수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교실은 도떼기시장 같았습니다. 사방으로 돌들이 튀고 바닥에 떨어지고 심지어는 바둑판을 엎는 아이도 있었지요. 입으로 두는지 손으로 두는지, 알까기를 하는지 사방치기를 하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자세도 꺼떡꺼떡 흔들흔들, 엎드린 놈에 드러눕는 놈까지 참 가관이었죠. 참다못해 몇 번 큰소리를 낸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승부에 집착합니다. 행마의 묘미를 느끼기엔 실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승부를 떠나 바둑 그 자체를 즐기려면 적어도 5급 수준은 되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바둑 두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떠들거나 떼쓰면 바둑 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이제 아이들은 이해합니다. 3주간의 바둑 리그를 통해 아이들이 얻어간 게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기간 동안, 교실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반상에 돌 놓이는 소리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변화는, 드디어 생각하며 바둑을 두는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1초 만에 돌을 놓던 아이들이 다음 수를 찾기 위해 3초, 5초, 10초, 심지어는 몇 분씩 손에 돌을 쥔 채 생각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바둑 실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이번 바둑 리그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예외 없이 생각하며 바둑을 둔 아이들입니다. 민우는 평소에 설렁설렁 바둑을 두던 아이였습니다. 민우의 말에 따르면 이번 바둑 리그에서 처음으로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는군요. 민우는 8연승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제게 바둑다운 바둑을 가르쳐주신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그분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피아노가 있는 집을 처음 보았습니다. 탕수육이란 요리도 그때 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언제나 깔끔한 정장을 입고 세련된 넥타이를 매고는 만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저를 맞아주셨죠. 가끔 저와 수담을 나누던 도중에 담배 한 대를 붙여 물며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왜 그렇게 두었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면 쯧쯧 혀를 차며 말하셨습니다. “맥없이 두면 바둑이 늘지 않아.”
그렇습니다. 바둑이 늘려면 자기가 둔 수의 의미, 혹은 의도에 대해서 설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그 수가 나쁜 수였다 해도 말입니다. 감각적으로 어떤 수가 떠오르면 그 뒤의 수순을 끝까지 읽어 버릇해야 바둑이 늡니다. 저는 이런 관점이 일상의 삶에서도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수도 유의미한 경험으로 포섭되면 귀중한 자산이 됩니다. 저 역시 초보 교사로서 악수와 완착과 무리수를 피해가기 어려울 겁니다. 그때마다 동료 교사들의 냉철한 지적이 있기를 바라며, 제 스스로도 자성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201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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