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대안학교 '행복한학교(현재 '파주자유학교'로 통합)' 교사들의 에세이를 모은 <행복한 3.5년의 기록>에 수록된 글을 소개합니다. 글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인정하기 (2007. 3월.)

- 사랑해(前 파주자유학교 교사)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서는데 달이가 잔뜩 화가 나서 말했다.

 

"사랑해! 유미가 자기가 잘못하고는 막 치우라고 하고 수련이 것도 망가뜨리려고 해!"


유미도 수련이도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앉아서 이야가 좀 해보자."


나는 아이들을 모여앉게 하고 한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시간을 주었다. 들어보니 사건은 이러했다. 


유미와 예민이는 전시대(스케치북과 수업시간에 만든 작품을 진열하는 긴 탁자) 밑에 기어들어가서 웅크리고 놀고 있었고, 수련이와 달이는 옆에서 종이접기 책을 보고 있었다. 유미가 예민이에게 전시대를 들어올려 보라고 했고, 예민이가 등으로 밀어올리자 전시대 위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졌다. 달이와 수련이가 자신들의 물건이 쏟아진 것에 화가 나서 아이들에게 치우라고 소리를 질렀다. 유미도 화를 내며 너희도 치우라고 소리를 쳤다. 


정리는 간단하지만 실상 이야기가 오고가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처음에 달이는 자신은 유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고, 수련이도 예민이도 그렇다고 말했다. 유미는 너희들 물건은 너희가 치워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갈등의 줄거리는 짐작이 되었지만 상황조차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교사의 입장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될까. 물론 달이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유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수련이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주면서, 아이들이 서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정리해주면 아이들도 대체로 쉽게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길로 가보기로 했다. 


"너희들 말로는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거네. 그럼 왜 지금 이렇게 서로 화내고 있는 거지? 혹시 생각해보니 자기가 뭔가 잘못한 점이 있는 것 같은 사람?"

"......."

"나랑 달이가 짜증을 내긴 했어."


수련이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한참이 지나서 달이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바로 화를 낸 건 잘못한 것 같아."


유미도 힘들게 


"나도... 달이랑 수련이에게 치우라고 한 건 잘못한 것 같아."


라고 했다. 


질문을 던지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나는 조금 놀랐다. 


"서로 너무들 잘 알고 있네. 내가 말해줄 게 하나도 없어."

"그런데 사랑해, 나는 자꾸 화부터 내.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자꾸 까먹어."

"그래, 달아, 어른들도 그러는 걸. 어려운 일이야. 내가 화를 냈구나 하고 알고, 다음엔 안 그래야지 생각하고 노력하면 돼."


일단 일차적인 잘못은 위험할 수 있는 장난을 하고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치우라고 한 유미에게 있다는 점, 하지만 화부터 내면 서로 화를 내게 되고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해주고 마무리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일까? 혹은 제 본성이 풀어져 나오는 것일 수도. 



2007. 3월. 


날짜

2014. 6. 1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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