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대안학교 '행복한학교(현재 '파주자유학교'로 통합)' 교사들의 에세이를 모은 <행복한 3.5년의 기록>에 수록된 글을 소개합니다. 글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내가 가진 만큼만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
* 원제 : 한 학기, 아니 올해의 이야기
- 노을(파주자유학교 교사)
이제 발표회도 끝났으니 며칠 정도 푹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종이에 적힌 하루이야기 메모들... 헉, 밀린 하루이야기들!
그때그때 쓸 걸... 또 후회한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하루이야기 미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게 몇 번째인지. 왜 이렇게 글 쓰는 게 힘들까? 내 딴에는 퇴근하면 아이 챙기느라 하루이야기 쓰기까지는 힘이 부친다고 생각했었지만, 따져보면 좀 궁색한 변명 같다. 학교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오면 심란한 마음 돌아보기 싫어서 영화 속으로 도망치던 게 몇 번이나 있었으니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생각이 널뛰어서, 마음이 복잡해서 그렇다는 게 더 맞는 얘기 같다.
어쨌든 힘든 한해였다. 또 그만큼 나도 아이들도 많이 성장했고, 그래서 보람된 한해였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무얼 알게 되었는지 돌아보고 나누어야 할 때인 것 같다.
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보아온 아이들의 무수한 싸움들. 특히 가을여행 동안 본 매일매일의 크고 작은 싸움들. 그 싸움들을 보면서 나는 왜 화가 났던가? 아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종이에 나열해보면서 나도 결국 같은 이유로 싸운다는 것을 알고 뉘우치기도 했다.
요즘에 드는 생각은 내가 해결하면 살지 못하고 가슴 속에 누적되어온 싸움의 감정적 앙금들이 아이들의 싸움을 통해 흙탕물처럼 휘휘 저어져 다시 일어나기 때문에 보기 싫고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교사의 입장으로 이야기하자면 싸움에 관한한(다른 것도 그렇겠지만) 전혀 귀감이 될 만한 삶을 살지 못했고, 그래서 나도 해결방향을 제시할 게 없다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많은 싸움들을 볼 때마다 반사적으로 잘잘못을 가리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할 뿐인데, 사실 싸움의 시작이 어디부터인지 뚜렷이 구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싸움을 만들어낸 '화'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화가 나는 이유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동안 아이들이 화내고 짜증부리는 상황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많은 이유로 화를 내고, 그리고 어떨 때는 나 자신도 이유를 찾지 못하는 화에 질질 끌려다니며 주변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화와 나를 동일시해왔다는 생각이 들고, 참으로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며 살아왔구나, 절실하게 느낀다. 그러니 내가 화를 내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게 전혀 없고, 그 무력함에 스스로 또 화를 냈겠지.
화와 싸움에 대해서는 성교육을 준비하면서 성의 본질과 내 안의 폭력성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어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긴 얘기를 줄여서 말한다면, 폭력뿐 아니라 삶의 모든 현상은 분리에서 출발한다는 것, 그래서 두려움과 욕망, 선입견에 사로잡힌 경험을 겪으면서 궁극에는 화해의 과정을 통해서 본성인 사랑으로 통합하는 여정을 거치는구나.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들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 말로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화가 나도 잘 참으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결국 배울 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에게 남겨진 숙제는 우선 내 가슴속에 감정의 찌꺼기들이 남아서 두고두고 날 괴롭히지 않도록 그때그때 내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근원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아는 훈련이다. 나의 경우 대체로 화의 출처는 불확실한 추측이나 오해가 거의 대부분인데, 예를 들어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들어서 화나는 경우는 내 말을 나로 착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다. 먼저 먹겠다고, 좋은 자리 앉겠다고, 쟤가 놀렸다고, 내 말이 맞다고, 그렇게 싸울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내 말을 안 듣는다고, 시끄럽다고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인 것 같다. 그걸 알아차리고 있으니 가능한 바로 들여다보고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화도 금방 풀어진다. 최소한 아이들에 대해서 만큼은.
그리고 이번 학기에는 평생 처음으로 내 안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나 자신을 믿는다!' 자괴감으로 퍽퍽 쓰러지던 내가 자존감을 가지게 되고 그 믿음이 아이들에게도 적용되고 그래서 좋은 관계 속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했다고 본다. 진정으로 다시 확인한 것은 내가 가진 만큼만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 필요에 따라서는 거짓말하면서, 아이가 거짓말하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고 야단치는 이중성으로 대하면서 구김살 없은 아이를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 왜냐하면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올 한해의 나의 배움과 성장의 기록은 내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의 입장에만 있었다면 나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기에, 대안교육의 길을 함께 가는 모든 부모님들과 나누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부디 대안교육이, 나는 비록 못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이러이러한 좋은 것들을 챙겨주고 싶다는 집착을 실현시키는 장이 아니라, 내가 변해서 삶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아이도 진정 성장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
2007.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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