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꽃들에게 희망을 

- 풀꽃

 

 

영화가 인간의 불완전한 감각기관, 즉 착각에 의존하는 예술 양식이라고 하듯이 움직임으로 느끼고 기억하지만 빠른 속도록 영사되는 정지된 사진들과 그 사진들 사이에 끼어드는 어둠일 따름인, 그래서 잔상효과가 큰 장르인 건 분명한 듯하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9명이 복닥복닥 살던 셋방 한 가운데에 주름미닫이 문이 달린 텔레비전이 놓였을 때, 내가 행복했나?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봤던 만화영화 인어공주는 강렬했고, 거품으로 사라지던 모습과 거친 물결 너울대던 흑백의 바다 풍경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렇게 들어온 텔레비전이 우리 가족의 삶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주말 밤만큼은 읽다 만 소설책을 보듯 텔레비전 켤 때를 기다렸고,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촌스런 인상의 영화평론가의 담담한 영화소개가 듣기 좋았던 명화극장을, 한방에서 부채 잠을 자던 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열심히 봤더랬다. 지금도 변함없는 시그널 음악은 여전히 정겹다. 할머니도 함께 계셨는데, 싫은 소리를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그때 어른들은 지금처럼 아이들의 심리나 정서발달이 어떻다 하는 지식은 없었어도 본능적인 감으로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 이유 없는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있을 때, 영화 속 삶과 음악은 내게 작은 위로가 됐다.

 

그래서 문득, 고학력 졸업자는 넘쳐나고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뉴스를 들으며, 새로운 출발로 분주한 이 계절에, 좌절감과 불안에 쌓여, 방향과 목적을 잃고 머뭇거리는 청춘들을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을 매우 주관적 감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로서, 학교를 졸업한 우리 아이들이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소개한다.


 

판타스틱 소녀백서

기성세대와 문화에 뻔뻔하게 또는 무례하게 냉소를 보내며, 자신의 삶을 찾아나서는 당찬 소녀 이야기

 

제목만으로는 B급 에로 영화가 아닐까 싶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0여 년 전 으뜸과버금이라는 비디오가게에서, 스티브 부세미라는 개성 있는 조연 배우가 출연해서 골랐던 것 같다.


영화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이니드와 친구 레베카의 일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졸업 이후 딱히 무얼 하고 싶다는 생각 없이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차에, 이 둘은 의기투합해 이웃과 어른을 향한 당돌하고 발칙한 장난을 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 외에 등장하는 인물과 의도된 풍자와 위트를 읽어내는 재미도 있는데, 탄탄한 만화원작의 힘과 감독의 깔끔한 연출력이 만들어낸 힘이다.

 

이 영화는 만들어진지 십여 년이 넘었지만 현재 진행형인 모습이다. 영화관에서 팝콘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독립을 준비하는 레베카의 모습에서,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우리의 20대를, 미술수업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아 예술대학 입학을 추천받지만 일이 틀어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이니드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려면 결연한 의지와 실행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설명 없이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사회 초년생의 방황과 고민을 발칙하게 보여주는 게 매력이다


주인공 이니드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패션과 머리색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내게는 시모어(스티브 부세미 역)가 소장하고 있는 블루스 음반이 부러웠고 음악도 좋았다. 무엇보다 도발적이며 냉소적이며 불안한 졸업반 여고생의 심리를 잘 표현한 이니드역을 맡은 도라 버치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친구로 나오는 레베카는 지금은 유명한 배우가 된 스칼렛 요한슨이 맡았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우리나라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와는 또다른 분위기로 20대의 방황과 불안함을 다루면서도, 만화가 원작이어서인지 적재적소에 깔린 풍자와 위트, 예술적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으면서 끝 장면에선 쓴맛과 구수한 맛이 알싸하게 퍼지는 커피 한잔을 마신 듯, 살짝 적시는 슬픔과 희망을 함께 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다.

 

몇 년 전, 문학 수업을 하면서 9학년 여학생과 고등과정 여학생 아이들과 이 영화를 같이 본 적이 있는데,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반응과 이니드의 불안한 심리는 이해하면서도 표현 방식과 태도에는 당황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 문화적 이질감에서 오는 낯설음과 우리아이들의 순박한 정서가 대비되었던 게 생각난다.

 

 

풍요로움 속에 채워지지 않은 결핍감을 끌어안고 

방황하는 20대 백수,

용기를 내서 삶으로 들어오라며 이끄는 영화 <잉투기>

 

겨울 방학이 끝날 즈음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잉투기>는 매우 낯설었지만 흡입력이 있었다. 아이디 칡콩팥’, ‘젖존슨으로 통용되는 세계, 실시간으로 빠르게, 맞춤법을 건너 띈 매우 간략한 댓글들의 전개와 일방적인 먹방 중계 등이 의도적인 거친 구도와 질감으로 표현된 이 영화는 다른 영화를 볼 때와는 다르게 낯설고 어색해서 반쯤 걸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그런 생경함은 영화 중반까지 감정이입을 방해했는데,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탄탄한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인터넷사이트 문화를 잘 알지 못했던 내게, 이런 소재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함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연출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의 초창기 데뷔작을 봤을 때의 느낌이었다.

 

<잉투기>잉여들의 격투기를 줄인 말로, 목표도 투지도 없이 살아가는 잉여 폐인들에게 모니터 뒤에 숨지 말고 현실의 냉혹한 링 위에 직접 나와 싸워보라는 취지로 실제로 두어 차례 열리기도 했다.

 

영화는 뭔가를 할 엄두를 못내며 컴퓨터 세계에서도 소심하게 자신감 없이 살아가는 잉여 청춘 태식’, 욕구 불만을 먹방으로 해소하는 특이한 격투소녀 영자그리고 겉보기엔 제일 부족함이 없지만 자존감이 매우 낮은, 그래서 채우고 싶어 하는 부유한 잉여 희준이 나온다. 게임 아이템 직거래인줄 알고 만난 칡콩팥’(태식)젖존슨(왕년의 아이돌 스타)’에게 속아 실제로 무차별 폭력을 당하고 이를 찍은 동영상이 현피(인터넷에서 싸우던 사람이 실제로 만나 싸우는 것)라며 인터넷에 떠돈다. 태식은 복수를 다짐하며 격투기를 배우는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처와 결핍감을 안고 있다.

 

익명의 공간에서는 거리낌 없는 댓글로 폭력을 발산하면서도 실제 현실에서는 낮은 자존감으로 한없이 움츠러든 이들을 감싸 안는 감독의 시선이 따뜻하고 열려 있다. 틀에 박힌 비판이나 훈계, 설교가 아니라 다독이면서 현실의 삶에 한 발짝 발을 내딛어 보라며 손을 내민다. ‘현피같은 폭력적인 소재를 장르적 오락 영상으로 그리지 않고, 이 시대 병폐 현상을 현실감 있게 담아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영상이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 온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20대뿐만이 아니라, 내가 만났던 몇몇 아이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도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 주저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조건 없는 가족의 사랑과 지지, 격려와 이해, 관심이 밥이요, 생명줄이다.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너 또한 한편의 시가 된다는 것이라고 한 휘트먼의 시처럼,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은가?

 

 

 

날짜

2014. 3. 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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