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람은 저마다 정의를 꿈꾼다
- 멀고느린구름
3. '쉬운 정의론'을 갖춘 세력이 정의 투표의 승자가 된다
앞의 두 화에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정의롭고 싶어 하며, 대략 다섯 가지 유형의 정치적 정의를 각각 지향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오늘자 각 정당 지지율을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정의론이 무엇인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교적 보수적 경향을 띠고 있어서 외려 객관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아마도 한국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한국 갤럽의 최근 정당 지지율을 살펴 보자.
새누리당 39%
새정치민주연합 21%
정의당 4%
지지정당 없음 35%
새누리당의 지지층은 앞서 분류한 정의 유형 중 국가와 경제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중도가 정의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일부가 결합되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층은 사람이 정의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중도가 정의라고 말하는 이들과 진보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일부가 결합되어 있다. 정의당의 지치층은 진보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일부가 결합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 각 정당의 지지율 격차는 일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왜냐하면 새누리당의 경우 국가와 경제, 두 개의 정의를 지향하는 지지층이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경제가 있다는 생각을 이들은 확고하게 지니고 있으며 서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단합하고 있다. 좀 더 자세하게 돋보기를 들이대 보면 국가가 정의라고 믿는 지지층은 대체로 살림살이가 어려운 서민층이고, 경제가 정의라고 믿는 지지층은 살림살이를 걱정할 필요가 별로 없는 부유층이다. 새누리당이 지니고 있는 '국가' 정의론이야말로 새누리당이 반서민적인 정책을 마음껏 펼치면서도 서민층의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는 비법이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에 더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고 새정치민주연합 쪽으로 넘어가 보자.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상대적으로 지지층의 핵심 그룹이 약하다. 새누리당이 두 정의 그룹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반면 새정치연합은 하나의 정의 그룹만이 견고한 지지층이라고 볼 수 있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층 중 중도 그룹과 진보 그룹은 서로 반비례 구도를 갖고 있어서, 중도 그룹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진보 그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진보 그룹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중도 그룹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그리고 어느 쪽도 아닌 어중간한 모습을 보일 때는 두 그룹의 지지율이 동시에 하락한다. 내가 볼 때 현재의 새정치연합은 중도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어중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덕분에 중도와 진보 그룹의 지지율 모두를 잃고 있어, 사실상 사람이 정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느슨한 지지율로 2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정의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정의론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것에 있다.
어떤 말이냐면, 사람이 정의라는 것에 공통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해법에 대한 고찰에 들어가면 생각이 갈린다는 것이다. 이 그룹에는 진보, 보수, 중도가 모두 섞여 있다. 사람이 정의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그룹을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흔히 '친노'라고 하는 프레임으로 엮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친노가 어떤 그룹인지 아무도 설명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노로 묶인 그룹 속에 진보, 보수, 중도의 목소리가 모두 뒤엉켜 있어서 사실상 하나의 정치적 의견 그룹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그룹 속에서 진보적 성향을 지닌 이들은 내 편이 별로 없는데 왜 전부 다 내 편이라고 하냐! 라고 울상을 짓고, 그룹 속에서 보수적 성향을 지닌 이들은 정반대 되는 이야기와 행동을 당내에서 하면서도 자신 역시 노무현의 유지를 이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새정치연합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20%대의 지지율도 공고한 것은 아니며, 모호한 것이다. '사람'이 정의라고 내세우다 보니 대체로 특정 정치인의 팬클럽 형태를 보이며, '누가 진짜 사람다운 사람인가' 하는 문제로 다툼이 잦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정의 그룹은 그 목표뿐만 아니라 그에 이르는 방법과 구체적 정치적 비전에 대한 뚜렷한 합의를 이루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영 카오스 상태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정의당은 새정치연합에 비해 당의 이름에 걸맞은 선명한 정의론을 지니고 있는 편이다. 정의당의 당원들 및 대표 정치인들은 대체로 대한민국이 유럽식 복지국가로 발전해 가야 한다는 비전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사회주의식 혁명론이 아니라 사민주의식 의회 정치론을 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 공고한 복지국가론 진보 지지층에 사람이 정의인 세상을 이루려면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결합되어 있기에 상대적으로 견고한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 그것이 좀처럼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로 확장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분명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사실 민주주의 앞에 항상 따라서 붙는 '자유'라는 수식어는 보수의 수식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엄밀하게 따지면 본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사회적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다. 즉, 국가의 지배구조로부터 개인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많은 보수들은 이 수식어를 단순히 '자유시장경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축소해서 해석하려고 한다. 시장에서는 자유롭되, 정치사회적인 면에서는 국가가 강력하게 통제하는 '국가주의'의 형태를 선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말하지만 '반쪽 자유민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허용해야 한다면, 동시에 개인의 정치사회적 자유 또한 최대한 허용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공산당이 허용될 수 있는 나라라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한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인 자유민주주주의자의 발언인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해방 이후 이 나라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기 이전까지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자(리버럴리스트)가 단 한 번도 집권하지 않은 나라다. 1945년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57년간 대한민국은 '국가'가 정의라고 생각하거나, '국가'를 중심에 두는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더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한 정치인들이 대통령이 되어 이끌어 온 나라다. 덕분에 국민 대다수의 마음 속에는 '국가주의'가 뚜렷한 정의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나라가 잘 되어야 내가 잘 살 수 있다'라고 하는 신념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되어 다수의 국민 속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애국'이라는 이 신념은 단순하고, 아름답고, 강력하다.
애국에는 세대도 없고, 계급도 없고, 성별도 없으며, 종교도 없다.
"나라를 사랑합시다!"라는 말에 격렬하게 항의할 수 있는 한국인은 거의 존재할 수 없다.
저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 한 마디만으로 나는 숭고한 애국자가 될 수 있다.
거기에는 아무런 고민도, 공부도, 특별한 행동도 필요하지 않다.
단지, 믿으면 그만이다. 나라가 나를 이끌어주리라는 믿음.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하면, 국민 총생산이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가면, 대한민국이 G20에 소속되면, 우리나라의 위상이 세계 만방에 드높아지면 나도 덩달아 잘 살게 되리라는 믿음.
그 믿음만 숭고하게 간직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정의론은 너무도 막강하다.
새누리당의 견고한 지지율은 결국 이 국가가 정의라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의론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개인적 인물이 아니라 국가의 표상이며, 가장 애국적인 대통령이었다고 믿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통성을 계승한 가장 바람직한 대통령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떠한 실정을 한다고 해도 그의 확고한 국가주의적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지지층도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최근 진보적 민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유럽에서도 극우 정당의 열풍이 일고 있다. 이 극우 정당의 공통 키워드는 '애국'이고 '국가와 민족'이다. 수십 년이나 된 진보의 역사를 되돌릴 수 있을 만큼 이 국가 정의론은 쉽고 강력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새누리당 지지층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경제 정의론자들은 국가주의에 영리하게 결합하고 있다. 뭐냐하면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국가가 무너진다'고 끊임없이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제 = 국가. 이 등식을 수학공식처럼 만들어 놓고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국가 정의론자들은 경제 정의론자들의 손을 잡게 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경제 정의론자들은 국가가 어떻게 되든 간에 개인에게 경제적 이익이 돌아오면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국가의 비전 같은 것은 국가 정의론자들이 하고자 하는대로 마음껏 열어줄 수 있다. 덕분에 이 결합은 공고하다. 서로 손해를 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이에 맞서야 할 진보 정의론, 사람 정의론, 중도 정의론 등은 사실 허약하다. 중도 정의론은 어느 쪽을 그 순간 선택하느냐 하는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내용적 실체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진보 정의론은 너무 어렵다. 국가 정의론이 반 백년 동안 구축한 세계 속에 틈입하려면 온갖 전략을 세워야 하고, 배우고, 신념화하고, 반성하고, 타협하고, 인내하고... 해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당장 생존하는 일에 바쁜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뭘 배우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진보 정당은 서민들에게 깨어 있어야 한다고 요청하고, 뭘 배우러 오라고 하고, 뭘 알아야 한다고 하고,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하고, 현상의 이면을 봐야 한다고 하고, 정부의 교묘한 음모가 있는 것이라고 하고... 이렇게 말만 나열해도 참 어렵다 어려워. 나라를 사랑합시다. 북한은 나쁩니다. 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이 간단한 세 문장이면 해결되는 저쪽 편에 비해 이쪽은 너무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이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정의다 라는 정의론은 이쪽 편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정의론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도 사랍답게 살아봅시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듭시다. 이 말은 '나라를 사랑합시다'에서 '국가'를 '나, 개인'으로 변환시킨 지극히 자유주의적 정의론이다. 이 정의론은 '애국' 못지 않는 파워를 지닐 수 있다. 새정치연합이 그나마 20%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 구호 하나를 간신히 만들어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보수 측의 국가 정의론이 경제 정의론과 공고히 결합한 반면, 사람 정의론 측은 진보 정의론과 공고히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진보적 대안이 2010년 민주통합당 무렵부터 기획이 되었지만, 사람 정의론을 내세우는 그룹 내부에 있는 보수주의자, 국가주의에 관심이 더 깊은 중도 정의론자들의 지속적인 반발로 오늘날까지 흐지부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정의론 그룹이 진정으로 온전한 힘을 다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가 정의론 그룹과 같이 경제 정의론과 결합해야 한다. 보수 측에서 좌파 정권이었다고 주장하는 노무현 정권은 실제로는 사람 정의론 그룹과 보수 측의 경제 정의론 그룹이 결합한 정권이었다고 판단한다. 참여정부가 정치적으로는 좌파였는지 모르나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우파 정권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다.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 하고자 한다면 같은 방법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사람 정의론 그룹은 진보적 경제 그룹, 즉 진보 정의론 그룹과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꼭, 새정치연합이 집권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진보 정의론 그룹과 합리적 경제 정의론 그룹의 조합도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 정의론과 사람 정의론이 일정 부분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반 백년 동안 국가주의 정의론이 중심을 이루었던 이 나라에 균형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번쯤은 정 반대의 극점으로(사회주의 혁명은 배제한다. 내가 말하는 반대쪽 극점은 북유럽식의 전면적 복지국가 모델이다.) 가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쪽 끝에서 잘 살아왔는데, 반대 쪽 끝으로 한 번 가본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무너지겠는가. 대한민국은 그렇게 허약한 나라가 아니다.
지금까지 3화에 걸쳐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시도해 보았는데, 어째 결론이 좀 허망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이미 글에서 늬앙스로 다 느끼셨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진보 정의론의 지지자다. 이 나라에서 좀 더 국가가 아닌 '개인'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로 사회가 발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가 정의론이나 경제 정의론을 확고히 지지하고 계신 독자분들께는 조금 불편하고 죄송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만약, 그런 분들 중에 여기까지 글을 다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함께 더 우리가 행복하게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자고 제안을 드리고 싶다. 비록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을 수는 있지만 적은 아니지 않은가. 모쪼록 서로의 정의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15. 8. 2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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