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람은 저마다 정의를 꿈꾼다

- 멀고느린구름




1. 대한민국 사람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요즘 우리나라 서민들의 삶은 어렵다. 정말로 어려운 것인지는 내가 증명해낼 방법이 없지만 아무튼 다들 어렵다고 하고 대통령도 언론도 연일 나라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계 경제 규모에서 14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이렇게 항상 어렵다면 대체 그 순위 아래에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존해가고 있는 걸까.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 지표가 여러 모로 세계 다른 국가와 견주어 볼 때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는 계속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부의 편중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 경제의 상당한 부분이 극소수의 부유층에 편중되어 있고, 나머지는 그 부유층에게 돈을 만들어 주느라 자신을 심각하게 희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진보적 정치인들은 항상 의아해한다. 이제는 그만 의아해 하고 현실을 제대로 진단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의아해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민중들은 이토록 고통 받고 부의 불평등 상황에 처해 있는데 어째서 '계급 투표'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진보적 정치인들이 십 여년 넘게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이유다. - 참고로 계급 투표란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 정당에 투표하고, 사용자 계급은 또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행위를 말한다. - 그들의 의아함은 일리가 있다. 실제로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계층들이 오히려 보수당(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냥 이렇게 통칭하자)인 새누리당의 후보를 지지했다. 그 결과로 보수 대통령과 보수 여당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게 되었다. 엄연한 국민들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퇴임 후 나라 경제를 어렵게 만든 혐의(4대강, 4자방 등등)로 갖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도 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경제적 약자에 속해 있는 서민들이 어째서 그들을 대변하겠다고 열심히 주장하고 있는 진보 정당이나 개혁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들을 입안하는 보수 정당에게 표를 주는 것일까. 물론, 보수 정당 측에서 지난 두 차례의 총선, 대선에서 서민들을 향한 립서비스를 해놓고 지키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서민들은 몇 번이나 그 립서비스에 속을 정도로 무지몽매한 백성인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오늘의 현상을 만들어낸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의 관념 속에 깃든 '쉬운 정의론'이라고 본다. 몇 해 전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책을 일단 사놓고 읽지 않은 사람이 절반은 될 거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그 책은 그 정도의 인기를 끌 정도로 대중적인 도서가 아니고, 읽는 내내 상당히 복잡한 사고를 하도록 요구하는 인문서이기 때문이다. 흥행의 요인은 두 가지로 판단된다. 첫째는 하버드 마케팅이 성공적이었고, 둘째는 '정의'에 대한 대중의 목마름을 잘 공략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의란 무엇인가>가 흥행한 두 번째 이유에서 우리나라 사회의 내재적 문제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의'에 참 목말라 있구나, 많은 한국인들은 정의로와지고 싶어하는구나. 


정치학에서 '정의'라는 개념은 사실 '평등'과 같은 궤도선상에 있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치학에서 '정의'는 '평등'보다 더 확장된 개념이다. 소위 말하는 '기회적 평등'을 넘어서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정의'의 기본 바탕이다. 즉,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요건이 50이라고 하면, 70이나 80을 얻는 사람에게 국가가 5나 10을 거둬서 어떻게 해도 30밖에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 20을 보충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적 평등뿐 아니라 최소한의 삶의 질이 평등해야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이다. 


정치학자들은 강단에서 맨날 이런 얘기만 하면서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쩌나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정의'의 개념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것과는 좀 많이 다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로운 나라'란 쉽게 말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이것이 곧 한국인에게 정의로운 나라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이뤄지는 난상토론이나 발언 등을 보면 쉽게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의'의 개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일부러 극우에서 극좌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논객들을 팔로우해놓고 지난 몇 년간 그들의 주장을 한 발 물러서서 관람하는 입장에 서보았다. 덕분에 재밌는 현상을 읽어낼 수 있다. 뭐냐하면 극우든, 극좌든 그들 각자는 너무나 정의로운 사람들인 것이었다. 


극우는 대한민국이 종북좌파에게 지배 당하고 있으며, 그대로 방치해둘 경우 북한의 대남적화통일전략에 휘말려들어 조만간 북한의 남침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극좌는 대한민국이 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수구 정권은 독재의 야욕을 품고 언제든지 긴급조치나 계엄령을 선포할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쨌든 두 세력 모두에게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내가 자칫 정신을 놓으면 대한민국은 곧 붕괴하고 말 것이다! 완전히 다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유이한 공통점은 각자의 정의(국가 불안 세력 타도, 독재 정권 타도)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들이야말로 대중에 의해 핍박 받을 운명에 처한 정통적 정의의 사도라고 굳건히 믿는다는 점이다. 주요 요소들을 모아보면(교주와 교리가 있다, 폐쇄적이며 내부 결속이 강하다, 간절히 염원하면 우주가 도와주리라 믿는다 등등) 차라리 신앙집단에 가까워 보인다.


이렇게 소개를 하면 '쉬운 정의론'이 마치 이 두 극단적인 세력만의 문제점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 이 두 극단은 마치 남극과 북극처럼 자기장을 형성하며 중간의 사람들을 자신의 극으로 강력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중심축이 제대로 살아 있는 사회라면 사람들은 중간을 향해 모이겠지만, 구심점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양 극단으로 끌어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비난에 직면하고 만다. 너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지금 30대인 나와 비슷한 또래의 세대라면 이 질문을 어딘가에서 익숙하게 보았을 것이다. 바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이명준이 내내 고민하던 바로 그 질문이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근대사를 장악했던 '이데올로기 시대'의 대표 질문이다. 아,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데올로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정의'는 진짜 정의가 아니라 각자가 품은 '이데올로기'의 다른 이름이 될 뿐이다.



- 다음 편, '2. 네버엔딩, 이데올로기 시대의 정치'에서 계속 


2015. 7. 17.



날짜

2015. 7. 1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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